*초등학생 영수(가명)의 눈으로 본 가족 이야기입니다. 홀로 사남매를 키우는 영수 어머니는 지난 3월10일 장발장은행(www.jeanvaljeanbank.com)에서 벌금 70만원을 대출받았습니다.
기획연재 - 우리 시대 ‘장발장’들
사과꽃을 보았어. 친구들도 알지? 사과꽃. 봄이잖아. 목덜미가 뜨듯해지는 날,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어디쯤이더라. 사과꽃 하얀 꽃잎이 포롱포롱 하늘거렸어. 손을 대면 꽃술이 톡 떨어질까, 쪼끔 겁이 나기도 했어. 바람이 이마의 땀방울을 사르락사르락 훔쳐가는 줄도 몰랐어. 그렇게 한참을 보았어. 우리 반 여자애들보다 더 예뻤어. 너희는 어땠니? 난 이상했어. 저 하얀 꽃잎이 지고 나면 어떻게 가을에 발간 사과가 전등처럼 매달리는지 모르겠거든. 하얀 꽃잎이 발간 사과로 변하잖아. 신기하지 않니? 쪼그리고 앉아 사과꽃을 올려다보면 좀 슬퍼져. 하얀 내 티셔츠에 묻은 빨간 김칫국물도 창피하고. 오늘은 바짓단에 흙도 잔뜩 묻었어. 학교 운동장에서 신나게 축구를 했거든. 집에 가면 엄마한테 혼날지도 몰라. 호날두처럼 멋진 축구 선수가 되고 싶은데, 엄마는 돈이 없대. 그래서 축구화가 없어, 나는….
축구를 좋아하지만 축구화가 난 없어
참, 내 소개를 깜빡했네. 난 충남 공주에 사는 영수라고 해. 초등학교 6학년이야. 내년에는 누나들처럼 중학생이 되지. 체격은 좀 작아. 우리 학교 1~2학년 아이들 중에는 나보다 한 뼘은 더 키가 큰 애들도 있어. 그래도 괜찮아. 난 그 애들보다 잘 달릴 수 있거든. 배가 고프면 더 빨리 달리지. 집에는 엄마랑 누나 둘이 있어. 누나들은 다 중학교 2학년이야. 큰누나는 원래 중학교 3학년 나이인데 초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교통사고를 당했대. 머리를 많이 다쳐서 학교에 잘 못 갔다고 엄마가 그랬어. 그래서 한 살 아래 둘째누나랑 같은 학년이야. 아이고, 유치원 다니는 막내를 잊어버렸네. 일곱 살 먹은 여동생이야. 내 말을 좀 안 들어서 요즘 미워졌어. 아빠는 없냐고? 아빠, 아빠는, 있는데 같이 안 살아. 엄마랑 12년 전에 이혼했대. 이혼이 뭔지 난 잘 몰라. 선생님한테 물어보려다가 참은 적도 있어. 내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돼서 엄마·아빠가 이혼했대.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 이혼, 이혼 하고 소리내서 말하면 휘파람 소리가 나. 왠지 슬픈 소리 같아.
우리 집? 작은 아파트야. 방이 하나밖에 없어. 거기선 누나 둘이 자. 난 엄마랑 막내랑 같이 거실에서 자. 어른들이 17평짜리래. 지난해 9월에 이리 이사를 왔어. 한 달에 한 번씩 돈을 또 내야 한대. 엄마가 월세라고 불러. 25만원이라는데, 그게 얼마큼 큰돈인지는 모르겠어. 내가 좋아하는 새우맛 과자가 1300원이니까, 음, 그러면 몇 개를 살 수 있는 거지? 에잇, 잘 모르겠다. 아무튼 내가 좋아하는 과자를 엄청 많이 사서 먹을 수 있는 돈이야. 엄마는 과자를 거의 사주지 않거든. 돈이 없대. 나라에서 한 달에 145만원을 준다는데, 우리 집이 가난해서 나라에서 도와주는 거래. 다른 친구들은 어떤지 모르겠어. 친구들은 새우맛 과자를 자주 사먹는 걸 보면 우리 집보다는 잘사는 것 같아.
집에는 책상이 하나도 없어. 숙제를 하려면 방바닥에 누워서 해야 돼. 그래서 조금만 지나도 허리가 아파. 공부하기가 싫어져. 누나들도 그럴 거야. 큰누나는 아예 옆 동 친구네 집에 가서 공부를 해. 오늘, 내일 중간고사를 보거든. 거기는 책상이 있대. 큰누나는 공부를 잘해. 반에서 1등도 여러 번 했거든. 저번에는 전교 부회장 선거에도 나갔어. 아깝게 떨어져서 좀 시무룩해 있어. 작은누나는 나랑 잘 놀아주는데 공부는 잘 못하나봐. 간호사가 꿈이라는데 그건 공부 못해도 되는 건가? 큰누나 꿈은 가수야. 다비치의 이해리를 젤 좋아해. 거실에 컴퓨터가 하나 있는데 누나들이 먼저 써야 해서 내 차례는 잘 안 돌아와. 하고 싶은 게임이 있는데 많이 못해. 그래서 자주 뾰로통해져.
엄마는 많이 아파. 한 달에 한 번씩 병원에 가야 해. 약을 한 움큼 받아서 돌아와. 그 약을 먹으면 몸이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리는 것 같대. 그리고 잠을 계속 자. 살도 많이 쪄서, 예전보다 한 40kg은 더 몸무게가 늘었대. 약을 안 먹으면 좋을 것 같지? 하지만 엄마는 약을 안 먹으면 무서워져. 옆집 아줌마가 그러는데, 우울증에다 조울증이라는 것까지 겹쳐서 그렇대. 감기 걸리면 훌쩍거리는 것처럼 슬픈 병인가봐. 병원에 다닌 게 4년도 넘었어. 엄마는 요즘 약을 사흘에 한 번만 먹어. 너무 힘들 때만 먹으려고 그런대. 병원 의사 선생님은 엄마한테 입원하라고 하는데, 엄마는 그렇게 못해. 우리가 아직 어려서 걱정이 많이 되나봐. 그럴 땐 아빠가 미워. 아무렇게나 돌멩이를 자주 걷어차게 돼.
돌멩이 걷어차도 발보다 마음이 아파
두 달 전 얘기도 해야 하나? 작게 들어줘, 알았지? 그땐 사과나무에 아직 꽃이 피기 전이었어. 그날도 길가 돌멩이가 괜히 미워서 뻥뻥 차면서 집에 왔어. 이상하게 조용했어. 엄마가 침대에 누워 있었지. 또 약을 먹어서 잠이 쏟아졌나보다 생각했어. 창밖이 검은 물감을 칠한 것처럼 깜깜해졌는데도 엄마가 잠에서 깨질 않았어. 배도 고프고 그래서 엄마를 흔들어 깨웠어. 근데 엄마가 일어나지 않는 거야. 숙제를 안 하고 학교에 간 날처럼 덜컥 겁이 났어. 누나들한테 전화를 했지. 앙, 울음이 터졌어. 얼마나 지났을까, 삐용삐용 소리를 내며 구급차가 와서는 엄마를 실어서 갔어. 그날 오줌을 싼 것 같아.
밤에 꿈을 꿨어. 이상한 계단을 내려가는 꿈. 뱅글뱅글 돌아서 내려가야 하는 계단이었어. 접었다 펴는 부채처럼 동그랗게 된 계단. 몇 바퀴를 돌아 내려갔을까, 아무리 가도 끝이 없는 거야. 고개를 돌려 위를 쳐다보았더니 어지러워서 그만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어. 쉬가 마려웠어. 엄마를 찾았는데 아무 데도 보이지 않았어. 쉬가 더 마려워서 바지춤을 움켜잡았어. 계단을 내려가지도 못하고, 올라가기는 더 무섭고…. 철퍼덕 엉덩이째로 앉아서 엉엉 울었어. 그러다 까무룩 잠이 들었는데, 눈을 뜨니까 막내가 엄마 옆에서 쌔근쌔근 자고 있더라. 눈이 가려워서 손으로 비볐더니 눈물이 묻었어. 그날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사과꽃을 보았던 거야. 멀리서 보면 하얀 튀밥 같은 사과꽃.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어.
그러고는 며칠이 지났는데, 장발장은행이란 걸 들었어. 처음 듣는 은행이었지. 눈꺼풀에 막내가 올라탔나 싶게 무겁더니 스르륵 잠이 들었나봐. 잠결이었어. 엄마랑 큰누나랑 소곤닥소곤닥. 뭐라고 하더라…. 기억나는 대로 말하면 이런 얘기였던 것 같아. 엄마가 올해 초에 안 좋은 일이 있었대. 아는 이모한테 전화가 와서 나갔는데 싸움이 나서 뜯어말리다가 엄마도 다쳤거든.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는데 142만원을 내야 했다는 거야. 근데 엄마는 돈이 없잖아. 그러니까 병원에서 엄마를 고소했대. 고소? 엄마가 잘못한 게 있으니 벌을 주라고 나라에 요구하는 거라던데? 그러고 나서 엄마한테 벌금 70만원을 내라는 통지서가 집으로 왔어. 70만원이 우리 집에 어딨겠어. 엄마는 지금도 누나들 현장학습비 10만원을 학교에 못 내고 있는데.
날마다 벌금 내라는 문자도 전화로 오고, 나중에는 ‘지명수배’라는 이상한 말이 찍힌 문자도 왔어. 엄마 얼굴이 우리 야단칠 때처럼 무서워진 걸 보면 큰일이 난 것 같았어. 벌금을 안 내다가 잡히면 하루에 5만원씩 쳐서 보름 가까이 교도소에 갇혀 있어야 한대. 그래서 엄마 얼굴이 사과보다 더 빨개지고 무서워졌나봐. 그러다 어느 날 텔레비전에서 장발장은행이 생겼다는 뉴스를 엄마가 봤대. 거기에 전화해서 무슨 신청서에다 여러 가지를 보냈더니 열흘쯤 뒤에 벌금 낼 돈을 거기서 보내줬대. 엄마는 6월부터 7만원씩 열 번을 갚아야 한대. 매일같이 말해도 석 달에 한 번씩 겨우 삼겹살을 먹는데, 엄마는 이제 그 돈도 아껴야 한대. 그래야 벌금 빌린 돈을 갚을 수 있거든. 이제 어린이날인데, 엄마는 5월이 없어졌으면 좋겠대. 장난감 안 사준다고 막내가 또 엄청 울 거야.
작은 비에도 축축 늘어지고 말아
사과꽃이 자꾸 생각이 나. 포르릉포르릉 바람에 흔들리면 더 예쁜 사과꽃이잖아? 꽃잎이 다섯 장이어서 꼭 우리 집 다섯 식구 같기도 해. 근데 비가 내리면 고만 축 늘어져버려. 요즘 나도, 우리 가족도 그런 것 같아. 예전에 읽었던 동화 얘기도 잘 기억이 안 나. 엄마한테 을 사달라고 졸라도 될까? 이제 어린이날인데…. 공주=글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
일러스트레이션 조승연
기획연재 - 우리 시대 ‘장발장’들
축구를 좋아하지만 축구화가 난 없어
참, 내 소개를 깜빡했네. 난 충남 공주에 사는 영수라고 해. 초등학교 6학년이야. 내년에는 누나들처럼 중학생이 되지. 체격은 좀 작아. 우리 학교 1~2학년 아이들 중에는 나보다 한 뼘은 더 키가 큰 애들도 있어. 그래도 괜찮아. 난 그 애들보다 잘 달릴 수 있거든. 배가 고프면 더 빨리 달리지. 집에는 엄마랑 누나 둘이 있어. 누나들은 다 중학교 2학년이야. 큰누나는 원래 중학교 3학년 나이인데 초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교통사고를 당했대. 머리를 많이 다쳐서 학교에 잘 못 갔다고 엄마가 그랬어. 그래서 한 살 아래 둘째누나랑 같은 학년이야. 아이고, 유치원 다니는 막내를 잊어버렸네. 일곱 살 먹은 여동생이야. 내 말을 좀 안 들어서 요즘 미워졌어. 아빠는 없냐고? 아빠, 아빠는, 있는데 같이 안 살아. 엄마랑 12년 전에 이혼했대. 이혼이 뭔지 난 잘 몰라. 선생님한테 물어보려다가 참은 적도 있어. 내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돼서 엄마·아빠가 이혼했대.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 이혼, 이혼 하고 소리내서 말하면 휘파람 소리가 나. 왠지 슬픈 소리 같아.
우리 집? 작은 아파트야. 방이 하나밖에 없어. 거기선 누나 둘이 자. 난 엄마랑 막내랑 같이 거실에서 자. 어른들이 17평짜리래. 지난해 9월에 이리 이사를 왔어. 한 달에 한 번씩 돈을 또 내야 한대. 엄마가 월세라고 불러. 25만원이라는데, 그게 얼마큼 큰돈인지는 모르겠어. 내가 좋아하는 새우맛 과자가 1300원이니까, 음, 그러면 몇 개를 살 수 있는 거지? 에잇, 잘 모르겠다. 아무튼 내가 좋아하는 과자를 엄청 많이 사서 먹을 수 있는 돈이야. 엄마는 과자를 거의 사주지 않거든. 돈이 없대. 나라에서 한 달에 145만원을 준다는데, 우리 집이 가난해서 나라에서 도와주는 거래. 다른 친구들은 어떤지 모르겠어. 친구들은 새우맛 과자를 자주 사먹는 걸 보면 우리 집보다는 잘사는 것 같아.
집에는 책상이 하나도 없어. 숙제를 하려면 방바닥에 누워서 해야 돼. 그래서 조금만 지나도 허리가 아파. 공부하기가 싫어져. 누나들도 그럴 거야. 큰누나는 아예 옆 동 친구네 집에 가서 공부를 해. 오늘, 내일 중간고사를 보거든. 거기는 책상이 있대. 큰누나는 공부를 잘해. 반에서 1등도 여러 번 했거든. 저번에는 전교 부회장 선거에도 나갔어. 아깝게 떨어져서 좀 시무룩해 있어. 작은누나는 나랑 잘 놀아주는데 공부는 잘 못하나봐. 간호사가 꿈이라는데 그건 공부 못해도 되는 건가? 큰누나 꿈은 가수야. 다비치의 이해리를 젤 좋아해. 거실에 컴퓨터가 하나 있는데 누나들이 먼저 써야 해서 내 차례는 잘 안 돌아와. 하고 싶은 게임이 있는데 많이 못해. 그래서 자주 뾰로통해져.
엄마는 많이 아파. 한 달에 한 번씩 병원에 가야 해. 약을 한 움큼 받아서 돌아와. 그 약을 먹으면 몸이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리는 것 같대. 그리고 잠을 계속 자. 살도 많이 쪄서, 예전보다 한 40kg은 더 몸무게가 늘었대. 약을 안 먹으면 좋을 것 같지? 하지만 엄마는 약을 안 먹으면 무서워져. 옆집 아줌마가 그러는데, 우울증에다 조울증이라는 것까지 겹쳐서 그렇대. 감기 걸리면 훌쩍거리는 것처럼 슬픈 병인가봐. 병원에 다닌 게 4년도 넘었어. 엄마는 요즘 약을 사흘에 한 번만 먹어. 너무 힘들 때만 먹으려고 그런대. 병원 의사 선생님은 엄마한테 입원하라고 하는데, 엄마는 그렇게 못해. 우리가 아직 어려서 걱정이 많이 되나봐. 그럴 땐 아빠가 미워. 아무렇게나 돌멩이를 자주 걷어차게 돼.
돌멩이 걷어차도 발보다 마음이 아파
두 달 전 얘기도 해야 하나? 작게 들어줘, 알았지? 그땐 사과나무에 아직 꽃이 피기 전이었어. 그날도 길가 돌멩이가 괜히 미워서 뻥뻥 차면서 집에 왔어. 이상하게 조용했어. 엄마가 침대에 누워 있었지. 또 약을 먹어서 잠이 쏟아졌나보다 생각했어. 창밖이 검은 물감을 칠한 것처럼 깜깜해졌는데도 엄마가 잠에서 깨질 않았어. 배도 고프고 그래서 엄마를 흔들어 깨웠어. 근데 엄마가 일어나지 않는 거야. 숙제를 안 하고 학교에 간 날처럼 덜컥 겁이 났어. 누나들한테 전화를 했지. 앙, 울음이 터졌어. 얼마나 지났을까, 삐용삐용 소리를 내며 구급차가 와서는 엄마를 실어서 갔어. 그날 오줌을 싼 것 같아.
밤에 꿈을 꿨어. 이상한 계단을 내려가는 꿈. 뱅글뱅글 돌아서 내려가야 하는 계단이었어. 접었다 펴는 부채처럼 동그랗게 된 계단. 몇 바퀴를 돌아 내려갔을까, 아무리 가도 끝이 없는 거야. 고개를 돌려 위를 쳐다보았더니 어지러워서 그만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어. 쉬가 마려웠어. 엄마를 찾았는데 아무 데도 보이지 않았어. 쉬가 더 마려워서 바지춤을 움켜잡았어. 계단을 내려가지도 못하고, 올라가기는 더 무섭고…. 철퍼덕 엉덩이째로 앉아서 엉엉 울었어. 그러다 까무룩 잠이 들었는데, 눈을 뜨니까 막내가 엄마 옆에서 쌔근쌔근 자고 있더라. 눈이 가려워서 손으로 비볐더니 눈물이 묻었어. 그날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사과꽃을 보았던 거야. 멀리서 보면 하얀 튀밥 같은 사과꽃.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어.
그러고는 며칠이 지났는데, 장발장은행이란 걸 들었어. 처음 듣는 은행이었지. 눈꺼풀에 막내가 올라탔나 싶게 무겁더니 스르륵 잠이 들었나봐. 잠결이었어. 엄마랑 큰누나랑 소곤닥소곤닥. 뭐라고 하더라…. 기억나는 대로 말하면 이런 얘기였던 것 같아. 엄마가 올해 초에 안 좋은 일이 있었대. 아는 이모한테 전화가 와서 나갔는데 싸움이 나서 뜯어말리다가 엄마도 다쳤거든.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는데 142만원을 내야 했다는 거야. 근데 엄마는 돈이 없잖아. 그러니까 병원에서 엄마를 고소했대. 고소? 엄마가 잘못한 게 있으니 벌을 주라고 나라에 요구하는 거라던데? 그러고 나서 엄마한테 벌금 70만원을 내라는 통지서가 집으로 왔어. 70만원이 우리 집에 어딨겠어. 엄마는 지금도 누나들 현장학습비 10만원을 학교에 못 내고 있는데.
날마다 벌금 내라는 문자도 전화로 오고, 나중에는 ‘지명수배’라는 이상한 말이 찍힌 문자도 왔어. 엄마 얼굴이 우리 야단칠 때처럼 무서워진 걸 보면 큰일이 난 것 같았어. 벌금을 안 내다가 잡히면 하루에 5만원씩 쳐서 보름 가까이 교도소에 갇혀 있어야 한대. 그래서 엄마 얼굴이 사과보다 더 빨개지고 무서워졌나봐. 그러다 어느 날 텔레비전에서 장발장은행이 생겼다는 뉴스를 엄마가 봤대. 거기에 전화해서 무슨 신청서에다 여러 가지를 보냈더니 열흘쯤 뒤에 벌금 낼 돈을 거기서 보내줬대. 엄마는 6월부터 7만원씩 열 번을 갚아야 한대. 매일같이 말해도 석 달에 한 번씩 겨우 삼겹살을 먹는데, 엄마는 이제 그 돈도 아껴야 한대. 그래야 벌금 빌린 돈을 갚을 수 있거든. 이제 어린이날인데, 엄마는 5월이 없어졌으면 좋겠대. 장난감 안 사준다고 막내가 또 엄청 울 거야.
작은 비에도 축축 늘어지고 말아
사과꽃이 자꾸 생각이 나. 포르릉포르릉 바람에 흔들리면 더 예쁜 사과꽃이잖아? 꽃잎이 다섯 장이어서 꼭 우리 집 다섯 식구 같기도 해. 근데 비가 내리면 고만 축 늘어져버려. 요즘 나도, 우리 가족도 그런 것 같아. 예전에 읽었던 동화 얘기도 잘 기억이 안 나. 엄마한테 을 사달라고 졸라도 될까? 이제 어린이날인데…. 공주=글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
일러스트레이션 조승연
* ‘가난이 죄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을 모아 지난 2월 장발장은행이 문을 열었습니다. 무이자·무담보로 벌금을 대출해주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은 장발장은행의 도움을 받은 우리 시대 ‘장발장’들의 사연을 연재합니다. 기사는 인터넷 포털 사이트 다음의 ‘뉴스펀딩’에도 매주 월요일 오후 공개됩니다. 뉴스펀딩을 통해 모인 독자 여러분의 후원금 대부분은 장발장은행에 전해집니다.
☞뉴스펀딩 참여 방법: 뉴스펀딩 꼭지에 실린 기사를 보신 뒤 ‘후원하기’ 클릭.(본인 전자우편 계정 필요) ‘1000원, 1만원, 1만원 이상’ 가운데 후원하시려는 금액 선택. 다음캐시·카카오페이·휴대폰·신용카드 가운데 결제 수단 선택 뒤 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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