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발장은행이 초겨울에 열매를 맺었다. 현행 벌금제의 모순과 불평등을 개선하는 법안이 국회 입법을 코앞에 둔 것이다. 실천하는 인권활동가와 학자들이 이룬 성과다.
지난 11월25일 형법 일부개정법률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1소위를 통과했다. 법사위 전체회의와 본회의를 남겨두었지만 여야 모두 이견이 없는 ‘무쟁점 법안’이다. 법안을 대표 발의한 새정치민주연합 홍종학 의원을 비롯해 여야 의원들의 공감이 큰 몫을 했다.
영국은 제도 바꿔 노역장 유치 90% 줄어
법안의 뼈대는 벌금제에도 징역형처럼 집행유예를 두도록 한 것이다. 1953년 형법 제정 뒤 62년 만에 ‘형벌 효과의 불평등’을 다소나마 개선할 수 있게 됐다. 집행유예를 선고할 수 있는 벌금 상한은 500만원으로 정했다. 이와 함께 벌금의 납입 기한 연장과 분할 납입 조항을 형사소송법에 규정한 것도 의미가 적지 않다. 그동안 ‘재산형 등에 관한 검찰집행사무규칙’으로 운용되던 것을 법률에 규정함으로써 적극적인 활용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때맞춰 국회입법조사처는 12월2일 ‘벌금형 제도의 문제점과 입법 과제’ 정책보고서를 내놨다. 조규범 법제사법팀 입법조사관은 보고서에서 벌금형 제도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한 뒤 개선 과제를 제시했다. 보고서에는 경제적 상황과 무관하게 형을 선고하는 총액벌금제 대신 실질적인 형벌 평등을 위한 일수벌금제의 도입, 노역장 유치 제도의 폐지와 벌금형 집행유예 제안 등이 담겼다. 장발장은행의 취지와 정확히 일치한다.
영국은 1993~94년 해마다 벌금을 내지 못해 감옥에 갇힌 사람이 2만2천 명을 넘었다. 그러나 벌금 미납자를 구금하는 대신 사회봉사 명령이나 운전면허 취소 등의 조처를 시행한 결과 2007~2008년 그 수가 1천~2천 명 수준으로 크게 줄었다. 반면 벌금 징수율은 2002~2003년 5%에서 2007~2008년 95%로 급증했다(최준혁, ‘벌금형의 합리적 산정 가능성’, 26권 3호). 장발장은행 대출심사위원인 김희수 변호사는 “영국 사례를 볼 때 법안이 통과되면 국내에서도 벌금을 내지 못해 노역장에 유치되는 사람이 크게 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은 연구과제(‘소액벌금 미납자에 대한 노역장 유치 제도의 문제점과 개선 방안’, 연구책임자 서주연 변호사)를 수행하면서 장발장은행 대출자들의 특성을 분석하기도 했다. 지난 9월 초순까지 대출자 231명을 전수조사해보니, 기초생활수급자(18.6%)나 한부모가정(4.8%)이 많았다. 부양 가족 수는 2명이 26%, 3명이 22.5%, 4~7명 또한 14.7%나 됐다. 연간 소득이 아예 없는 이도 28.6%로 나타났다. 위반 죄목으로는 도로교통법 위반이 21.6%로 첫손에 꼽혔다. ‘경제적 빈곤→생계형 범죄→벌금 미납→노역장 유치’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통계로도 확인되는 대목이다.
장발장은행과 주빌리은행 업무 제휴지난 2월25일 출범 뒤 장발장은행은 17차례 심사를 통해 285명에게 5억4천여만원을 대출했다. 대출 종잣돈인 후원금은 2천여 명의 개인·단체·교회에서 4억7천여만원을 보내주었다. 도움을 받은 ‘장발장’들 가운데 9명이 이미 장발장은행에 대출금을 모두 갚았고 126명이 상환을 하고 있다. 에서 지난 3~7월 기획 연재(우리 시대 ‘장발장’들)를 하면서 만난 7명 가운데 2명도 대출금 상환을 마쳤다.
장발장은행을 운영하는 인권연대 오창익 사무국장은 “남은 개혁 과제인 일수벌금제 도입 등을 위해 계속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장발장은행은 장기 연체자들의 빚을 탕감해주는 주빌리은행(상임이사 제윤경)과 12월10일(세계인권선언일) 업무 제휴를 맺는다. 후원 문의 02-749-9004.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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