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4명과 함께 2000년대 문학을 정리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참석자는 이광호, 심진경, 함돈균, 허윤진씨다. 이광호 서울예대 교수는 한국에서 가장 성실한 현장 비평가로 정평이 나 있다. 심진경씨는 여성과 섹슈얼리티 문제에 천착해왔다. 함돈균씨는 2000년대 시의 새로운 경향을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있는 젊은 비평가로 정치평론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허윤진씨는 2003년 초 신인문학상 평론부문에 당선돼 최연소 문학평론가의 타이틀을 얻은 기대주다.
심진경(사회·이하 심): 2010년 중반에 2000년대를 돌아보려니 당황스럽다. 그래도 재미있는 자리가 될 것 같다. 설문 결과 분석부터 시작해보자.
이광호(이하 이): 이런 식의 설문이 문학적이지는 않다. 풍문의 힘에 의해 좌우되는 경향이 강하다. 상징성이 강한 사람, 명망이 높은 사람 위주로 선정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살펴봐야 한다. 소설과 시 장르에 대한 전문가 집단의 태도의 이중성이 흥미롭다. 소설의 순위는 대중의 지지를 받는 작품 중 문학성을 고려한 순위다. 특히 장편이 그렇다. 문학평론가들도 장편은 상품이라는 데 동의하고 있는 것이다. 시집은 현저하게 논쟁적이거나 전위적인 것 중심으로 선택한 경향이 보인다. 미학적 전위성을 보여준 젊은 작가가 소설에서는 많이 포함되지 못했다.
가 장편 1위 자격을 갖춘 뛰어난 소설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약간은 의외다. 정밀한 특유의 문체 미학과 역사를 보는 새로운 관점 등 문학적 성취도 확보하고 있지만, 장편의 사회적인 파급력을 고려한 것 같다. 가 가진 독서 상품으로서의 두드러진 사회적 가치를 비평가 집단도 받아들인 결과다.
함돈균(이하 함): 한국문학사를 살펴볼 때 시 장르가 대중적·사회적 영향력에서 문학 이슈를 주도해본 적이 많지 않다. 비평가 집단도 소설 평론이 주도해왔다고 해야 한다. 그런데 2000년대 한국 문학에서 역전됐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문학의 죽음’이라는 말이 풍문처럼 떠돌 때 그것을 역전시킨 것이 시의 역동성이었다. 가 대표적이다. 1990년대 한국 시를 풍미했던 것이 여성시다. 이때 여성시는 정치적 폭력성도 문제지만 젠더 지배가 문제가 된다고 부각시켰다. 그런데 이 시집은 여성시마저도 낡은 것으로 만들었다. 한국 문학, 특히 시에서는 우리말의 고유성 속에서 무엇인가 이뤄내야 한다는 이데올로기적 요구가 있다. 그런데 이 시집에서는 일본인 주인공이 등장하고 번역시의 문법 같은 것을 의도적으로 투입하면서 한국어 문법을 교란시킨다. 이건 한국문학사가 경험했던 가장 래디컬(radical·급진적)한 형태의 전위라고 할 수 있다.
장르에 따라 다른 전문가 집단의 이중성심: 황병승이 시집에서 선두를 차지하는 것은 미학적 파괴력이다. 소설 분야에서는 비평가 집단에도 미학적 파괴력보다는 문학시장에서의 논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 않나 하는 암묵적인 동의가 있는 듯하다. 2000년대 초반부터 논의되던 1990년대 문학을 벗어난 글쓰기, 예를 들면 이광호의 ‘무중력의 글쓰기’에서 중요하게 언급되는 작가들은 다 빠져 있다. 한유주·김태용·윤성희·김중혁이 빠졌고, 편혜영만 간신히 들어가 있다.
허: 이런 논의가 ‘장편소설 논의’와 연결된다(한국이 주빈국으로 초대된 2005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이후 나온, 단편에서 장편으로 한국 문학의 체질을 변형시키자는 논의를 가리킨다. 이 논의는 공모전과 지원금에 실질적인 영향을 끼쳤다. 한 예로 창비 장편 공모전, 자음과모음 장편 공모전 등이 새로이 만들어지고 문예진흥원의 지원금이 장편소설로 쏠렸다-편집자). 작가들이 자생적으로 장편을 대거 쓰기 시작한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와 문학 무역을 할 때 상품으로서의 소설이 필요해진 것이다. 한국 소설이 휴대전화처럼 거래된다. 한국 문화가 문학작품이라는 무형의 생산품을 어떻게 취급하는지를 보이는 단적인 예다.
이: 한국에서 최근 장편에 대한 기대와 요구는 다소 강박적이다. 시장과 출판자본과 저널리즘의 공모, 그리고 타자의 인준에 목마른 노벨상 콤플렉스가 숨어 있다. 그런데 거액의 장편 공모로 수확한 작품이 이번 리스트에도 별로 없다. 박민규와 천명관 정도다.
심: 창비와 자음과모음만이 아니라 2008년 즈음에 연재 지면도 많이 늘어났다. 웹진에서도 공간이 늘어났다. 웅진의 뿔, 예스24의 나비 등이다. 그 결과 1~2년 사이에 장편이 많이 생산됐다. 하지만 양적 증가에 비해 질적 담보는 이뤄지지 못했다. 좋은 작품으로 선정된 것은 이전부터 써왔던 작가들의 성과물이다.
함: 연재 공간이 많아졌지만 좋은 작품이 쏟아지지 않았다는 것은,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필연성’이 있지 않았을까 한다. 숙고하고 써야 제대로 된 작품이 나올 텐데, 상품화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숙성되지 않은 작품이 출간되는 경향이 있다. 시집도 등단 1년 된 사람들을 여러 출판사에서 쌍끌이로 끌고 간다.
이: 연재 지면이 많이 늘어나서 상대적으로 좋은 전작 장편이 줄어들게 됐다. 단편 숙련 기간을 통과한 뒤 공들인 전작 장편을 쓰는 과정이 적어졌다. 지금 상황은 젊은 작가에게는 새로운 가능성이 될 수도 있지만 재능을 일찍 소모시키는 측면도 있다. 준비도 되기 전에 출판자본에 의해 링에 너무 빨리 불려 올라간다.
심: 그동안 한국 작가들은 단편소설을 쓰면서 문단의 보호 안에서 살아왔다. 시장의 압력이 없는 창작 환경에서 살았다는 것이다. 일본 작가들의 경우 뛰어난 작품을 쓰는 작가가 한꺼번에 2~3편을 연재하면서 따로 전작을 쓰기도 한다. 문학은 예술작품일 수 있지만 좋은 상품이기도 하다. 두 가지 전제가 모두 있어야 한다. 위기가 될지 기회가 될지 모르겠지만, 문학적으로 시장 논리 안에서 작가 스스로 살아남으려면 각고의 노력을 해야 한다.
이: 가혹한 시장의 상황을 견뎌야 하는 것은 맞다. 그런데 장편이 그렇게 많이 나왔는데 판매 1만 부를 넘는 책이 별로 없다. 독자의 문학적 취향이 다양하지 않은 현실에서 대부분의 작가는 좌절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연재는 현실적으로 출판자본이 원고료를 보장해주는 것이 됐다. 다양한 작품들이 1만~2만 부 이상 팔린다면 좋겠지만, 장편에 대한 강박적 요구와는 달리 대부분의 작가는 시장에서 예정된 좌절을 겪어야 한다.
늘어난 장편에 질적 담보가 안 된 것은 필연이다심: 다섯 사람의 100만 부 작가보다 1만 부, 2만 부 파는 작가가 많아져야 한다는 데 동감한다. 독자의 선택 폭이 넓어짐에 따라 취향 폭도 넓어질 것이다. 이번 조사에서 평론가들이 ‘양극화 사회’ ‘루저’ ‘백수’를 2000년대 한국 문학의 중요한 키워드로 제시했다.
이: 글 쓰는 사람들은 비정규직이다. 비정규직의 시선으로 사회를 바라볼 수밖에 없다. 2000년대 와서 그것이 더욱 의미심장해졌다. 물론 세대적인 의미도 포함된다. 선배 작가들이 지사적인 시선으로 집단의 공적 가치를 얘기했다면, 새로운 작가들의 경우 현실의 악몽이 실존적·감각적인 문제와 연결된다. 정통 리얼리즘 방식을 버리고 판타지·SF 등 주변 장르적인 요소를 끌어온다. 용산 사건도 전통적인 방식으로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허: 현재 젊은 세대의 작가들은 개인의 가능성을 잃고 집단 안에 익명적으로 매몰되느니, 굶더라도 개인으로 우아하게 굶겠다고 선언하는 듯하다. 문학의 정신적 가치가 인정받기 어려운 상황이 되면서 작가들은 외따로 자신의 처지와 싸우게 됐다. 예컨대 김사과의 소설 를 보면 주인공은 소설가가 돼도 세상을 바꿀 수 없으며, 문학의 아우라가 실종됐음을 깨닫게 된다.
함: 1990년대 중·후반 문학의 종언을 많이 이야기했다. 하지만 그 죽음은 계급혁명의 불가능성, 민중적 서사의 불가능성, 리얼리즘의 죽음이었다. 2000년대 작가들은 민중이 주도하는 계급혁명이 아니라, 제대로 된 시민적 삶조차 불가능하다는 자각과 전제 속에서 소설을 쓴다. 2000년대는 1997년 IMF 체제가 실감으로 와닿는 세계다. 제대로 된 개인으로 설 수 없는 시대다. 박민규가 1990년대 후반에 쓰기 시작해 2003년에 출간한 은 아마추어가 프로에 20 대 1로 지는 이야기인데, 아마추어리즘으로 더 이상 자본에 대항하는 일이 불가능한 시대라는 의미다.
루저, 무심하고 투명한 체념의 미학심: 현실을 받아들이는 태도도 변했다. 루저와 백수는 공상과학소설(SF)과 환상적인 요소를 도입했다. 자본주의 체제의 뚫고 나갈 수 없는 견고함을 목도하고 체념하고 순응하고, 그 결과로서 도피를 문학적 장치로 갖고 오는 것이 아닌가. 정치적·현실비판적으로 나갈 수도 있지만 속물적으로도 나아간다. 예를 들면 정이현은 ‘강남 여자’의 영악함을 잘 보여준다. 자본주의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 이미지를 가장하면서 실현해나간다. 강남 여자의 속물적 순응주의와 루저는 극과 극인 듯하지만, 현실을 체념하고 그 안에서 상상하려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박민규나 이기호, 김애란 등의 작가들은 현실에 모호한 슬픔으로 대응한다. 개인들의 태도는 십분 이해하는데, 거기까지다. 단편소설에서 드러났던, 웃음으로 눙친다든지 환상적 요소로 넘긴다는 게 지금에 와서 보기에 많은 한계가 있다. 작가들이 그 이상 나가지 못하고 원 안에서 맴돈다는 느낌이다.
이: 무심하고 투명한 체념의 미학이며, 악몽의 현실에서 개인의 존재 미학을 보존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젊은 작가들에게 왜 개인과 개인이 연대해서 싸우지 않느냐고 비판하기는 어렵다. 체념의 미학이라는 것도 현실에 대한 미학적 저항의 일부다. 선배 작가들은 집단적인 사회적 명분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지만, 지금은 그것조차 어려울 정도로 상대적으로 개인의 상황이 악화됐다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허: 모호한 체념이나 슬픔이 세대적 감수성일 수 있다. 한국 사회는 절대적 빈곤에서 상대적 빈곤의 세계로 변했다. 이청준과 조세희의 시대에는 독자가 작가와 비슷한 빈곤의 상태에 놓여 있어서 심정적 연대가 가능했다. 지금은 개인의 사회·경제적 신분을 개인의 능력치로 환원한다. 사회·경제적 신분이 낮은 경우 사회의 열외 인종으로 낙인찍힌다. 여기서 자존감을 잃지 않는 방법은 얇은 언어의 막과 감정의 막으로 자기를 포장하는 것이다. 물론 이 상황을 재현하는 것만으로는 문화적 파괴력이 충분하지 않으니 앞으로 나올 작품들을 지켜봐야겠다.
심: 시에서는 ‘미래파 논쟁’(2005년에 쏟아지던 ‘낯설고 기괴한 시’에 대해 시인들이 먼저 ‘미래파’라고 호명했다. 황병승·장석원·김민정의 시가 거론된다-편집자)이 2000년대를 관통했다. 거론되던 작가들의 두 번째 시집이 2008년을 즈음해 다 나왔다. 그런데 논쟁이 이어지지는 않고 있다.
함: 미래파 논쟁에서 보이는 ‘새로운 시인의 출현’이라는 담론에서 그 작품을 옹호했던 비평가들은 절박함이 있었다. 기존 문단의 반발에 맞서서 그 작품들을 ‘일단’ 시로 인정해야 했다. 그리고 이 옹호자 중 하나인 나 같은 이들은 그 작품들 속에서 미학적 전위가 정치적 전위와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을 읽었다. 그런데 당시 시 담론을 주도했던 시인 중 한 분이 최근 사적인 자리에서 MB가 다 망쳤다고 말하더라. 사소한 것의 정치성, 미적 전위의 정치적 가능성에 대한 탐구가 정치적 전선이 명확해지다 보니 순식간에 사라졌다. 미래파 담론 같은 것이 시의 정치성 논의를 업그레이드하는 사전 정지 작업이 될 수도 있었는데, 경찰이 바라보는 상황 속에서 서울 한복판에서 사람이 죽어나가는 시대가 되다 보니, 이런 탐구가 수포로 돌아가고 만 게 아니냐는 것이다.
문학 출판, 내용 없는 헤게모니와 크기의 경쟁심: 디아스포라, 국경을 넘는 일을 키워드로 지적한 분도 많다.
이: 이것도 타자의 인정을 받는 세계적인 문학을 해야 하는 요구와 연관돼 있지만, 그 문학적 성과는 아직 아쉽다.
허: 이제까지 탈국경의 소설은 무대가 한국 바깥이었다. 하지만 문학적 공간이 한국이 아니라는 사실이 진정한 이방인의 상상력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이제껏 한국 문학에서는 ‘타자’의 시선으로 세계를 재구성하기보다 오히려 처럼 제국주의적인 방식으로 재현해온 것 같다. ‘여행 서사’를 디아스포라 서사로 착각한 것이 아닌가 한다.
심: 다문화가정의 세대가 성장해서 한국 문학 작품을 쓴다면 ‘국경을 넘는 일’이 시작되지 않을까. 2000년대에 본격화된 상업성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보자. 문학의 입지는 줄어드는데 문학 전문 출판사는 대형화하고 있다.
허: 문학 대형화가 문학 시장의 변화를 어떻게 이끌지 염려스럽다. 슈퍼마켓이 대형화하고 서점이 대형화돼야만 살아남듯, 출판사도 대형화돼야만 살아남을 수 있을까. 서로 다른 색깔을 가진 여러 출판사가 다양한 종을 다양한 방식으로 출판하는 것이 한국 문학을 풍요롭게 할 것이다.
이: 신진 문학 출판사가 성장하고 대형화하면서 기존의 상징적 질서를 돌파해 새로운 성과를 거둔 것은 의미 있다. 그런데 상대적으로 출판사와 에콜(학파)들의 색깔과 정체성은 약화됐다. 이제는 문학적 정체성을 고민하고 모색하는 출판자본은 거의 없다. 내용 없는 헤게모니와 크기의 경쟁이 돼버렸다. 순문학 시장의 크기는 한계가 있으므로 이른바 ‘본격문학’만 가지고 대형 출판사가 출현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문학출판의 상업성을 윤리성 측면에서 바라볼 필요는 없다. 다만 문학적 다양성이 보존되는 독서 시장의 구조가 아쉽다.
심: 한국 문학에서는 모호한 선으로 둘러쳐진 문단이라는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 일본의 고단샤도 흡수한 랜덤하우스가 우리나라에 들어와 문학을 했다. 그런데 오래 못 버텼다. 한국 문학 출판사가 대형화한 건 사실이지만, 여전히 문단이라는 보이지 않는 문학제도의 힘이 있다. 문단에 대한 비판도 있지만 이런 상업화의 바람 속에서 견제해줄 수 있는, 한국 문학의 특수한 문학적 구조가 아닌가.
이: 제도 자체는 보수적이다. 문단이라는 제도도 마찬가지다. 문단이 시장을 견제하는 역할을 할 수도 있지만 시장과 타협하고 공모하기도 한다. 오히려 보수적인 메커니즘으로 상징적인 질서를 공고하게 하기도 한다. 새로운 문학은 제도를 뚫고 나와야 한다.
허: 이번 리스트는 시장 권력이 기존 평단의 지지를 필요로 하지 않으며, 평단도 거기에 투항했다는 선언은 아닐까 싶다. 앞으로 평론가는 시장 권력을 적절히 견제하는 내부 첩자가 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서평자, MD, 블로거 등이 평론가가 해온 역할을 점차 대체해갈 것 같다.
심: 정말 장사를 할 생각으로 잘 팔릴 만한 소재, 스타성 갖춘 작가를 완비해도 책이 잘 팔리지 않는다. 상업출판의 전략으로 만들어진 상업적인 생산물에 현혹되지만, 전혀 상업적이지 않은 문학에 끌리기도 한다. 문학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상업성이라는 것은 언제나 늘 견제해야 하지만, 대중이 항상 상황에 휩쓸리는 경우는 없다. 마지막으로 미래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허: 배명훈, 듀나 등 이제까지는 본격문학에서 잘 호명되지 않았던 작가들이 설문 응답에서 보인다. 어느 작품을 읽어도 비슷비슷한 문학 대신, 색다른 이야기를 하는 이런 작가들이 앞으로는 우세종이 되지 않을까 한다.
우세종이 될 변종들, 김연수·김애란의 성취심: 2000년대에 젊은 작가들이 있었다. 단편을 중심으로 활동했고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지만 그 한계가 1~2년 안에 드러나고 말았다. 뛰어난 단편소설도 많지만, 인물의 이름이 없고, 배경이 모호하고, 가족 관계 위주로 구성되는 세계의 한계가 보이는 작품이 많았다. 그런 단편으로 담아낼 수 없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 문학 외적인 시장의 압박이 있기도 하지만 이제 장편에 대한 내적인 요구가 저절로 생겨나지 않을까 한다. 최근 장편으로 등단한 작가 중에 그런 작가들도 보인다. 한겨레문학상 최진영()의 소설 등 장편소설이 담아내는 세계에 대해서 고민하고 그 고민을 현실화하려는 노력이 있지 않을까.
이: 사회에 대한 문학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리얼리즘으로의 회귀라기보다는 정치적 상상력의 확대일 것이다. 이번 리스트에서 대형 베스트셀러 작가를 제외하면, 김연수·김애란이 상징하는 바가 크다. 전문가 집단은 이 정도 수준에서 2000년대 문학의 성과와 대중적 소통의 수준을 합의하고 있다. 그 가이드라인이 김연수·김애란이 아닌가. 이들의 문학적 성취에서 출발해, 앞으로 문학적 다양성을 확대해야 할 것 같고, 이 리스트에 포함되지 않은 젊고 개성 있는 잠재적인 작가들의 2010년대 활동을 기대하게 된다.
함: 1990년대 중·후반에는 문학을 전공한 대학생들조차 영화를 하겠다고 선언하곤 했다. 이젠 후배들이 문학을 하겠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여러 풍문과 우려에도 불구하고 2000년대 한국 문학이 살아남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가 받은 이 2000년대 문학 리스트가 빈곤하다고 말할 수만은 없다. 소설은 어떤 방식이든 시대와의 접촉 측면이 강하다는 사실을 여전히 이 리스트가 보여준다. 2000년대 문학의 갱신을 선도한 시의 놀라운 역동성에도 관심 갖는 독자가 늘어났으면 한다.
정리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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