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이 문명의 발상지라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한반도의 강도 선사시대(구·신석기, 청동기)와 역사시대를 거쳐 근·현대까지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형성했다. 특히 금강과 영산강은 고대 문명 교류의 주역이던 백제 역사와 함께하기에 이를 빼고 백제의 역사와 문화를 논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문화재청이 한반도 대운하 사업 추진 당시 작성한 보고서를 보면, 금강 유역에서 국가가 지정한 문화재는 국보와 보물을 합쳐 29곳, 조사를 하면 중요한 문화재가 발굴될 매장문화재 분포 지역은 40곳이다. 그나마 대운하 사업 추진 때는 언급도 없던 역사적 문화재가 4대강 사업으로 둔갑한 뒤 언급되고 있기는 하지만, 정부가 법을 작위적으로 해석해 문화재보호법을 위반하고 있다.
사업 지역 확정도 안 한 채 문화재 조사첫째, 문화재보호법은 모든 공사에서 기본 계획이 수립된 뒤 문화재 조사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4대강 사업의 경우 정확한 사업 지역도 확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문화재 조사를 했다. 특히 정부는 임의대로 계획을 변경하면서 농지 리모델링장, 준설토 야적장 등에 대한 문화재 조사를 극히 일부 지역에서만 했다.
둘째, 문화재 지표조사 범위 항목을 임의대로 설정해 법을 어겼다. ‘문화재 지표조사 방법 및 절차 등에 관한 규정’을 보면 조사 범위는 “지표(수중)의 현상변경 여부와 사업예정지역과의 이격거리에 관계없이 공사 중 또는 공사 완료 후 당해 사업목적물의 운용으로 인하여 구조적·경관적·환경적 훼손 우려가 있는 영향권 내의 문화유적(토취장, 사토장, 준설토 적치장, 농지 리모델링장, 가설도로 등 가설물 설치지역 포함)”, 사업예정지 경계로부터 50m 범위, 사업예정 지역에 포함되는 유적과 연속되는 일련의 유적 전체 등을 조사 내용에 포함하게 돼 있으며, 특히 국가 지정 문화재의 경우 500m 이내의 지역은 정밀조사를 하게 돼 있으나 조사가 미비했다.
셋째, 문화재보호법에 따르면 지표와 수중 조사를 해야 한다고 분명히 명시돼 있지만, 2009년 최초 문화재 조사 때 수중 조사를 하지 않았다. 수중 조사는 청계천 복원 공사의 기준으로 엄격히 적용돼야 한다. 청계천 5.8km 공사 때는 하천 바닥까지 문화재 발굴 조사를 했다. 다만 이때 발굴된 유적이 현재 중랑하수처리장에 방치돼 있다.
무형 문화유산 조사는 손도 안 대
넷째, 4대강 문화재 조사는 사업 일정이 급하고 조사 기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매장문화재에만 실시했고, 천연기념물 등 자연문화재와 건축, 지명, 사회 민속 및 신앙, 나루터 등에 대한 인류학적 유산과 무형 문화유산에 대한 별도 조사가 없었다.
또한 문화재 지표조사 뒤 시범발굴은 전체 조사대상 면적의 1~2%만 실시하고 ‘유적이 없다’라고 결정한 뒤 공사를 강행했으며, 발굴 조사 때 어떤 유적이 조사됐는지 한 번도 공개적으로 검증하지 않았다. 특히 공주·부여 백제 문화유적의 세계문화유산 잠정 후보 지역에 대한 문화재 영향 검토도 전혀 하지 않았다.
금강 사업으로 훼손 우려가 큰 충남의 대표적 문화유산은 왕흥사지와 공산성 일대 유적지를 들 수 있다. 충남 부여군 규암면 사적 제427호인 왕흥사지는 주변 지역 전체(부소산성과 낙화암, 왕흥사지 일대)가 사적 경관에 들어가는 공간이다. 왕흥사지와 부소산성 사이의 모래를 아무런 사전 조치와 지형 등에 대한 고려 없이 준설하는 등 경관을 파괴하고 있다. 이는 백제 역사를 훼손하는 행위다.
왕흥사지는 부소산성과 낙화암, 고란사, 그리고 구드래 나루터가 한눈에 들어오는 곳으로 백제 시대엔 성왕이 배를 타고 와서 나라에 안녕을 빌던 곳이다. 왕흥사지에서 부소산성, 낙화암까지 500여m 전체 구역이 강과 함께 국가 유적지로 볼 수 있다. 이런 곳에 놀이기구(호암지구)를 설치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행위다.
공산성 붕괴 가능성 배제 못해
왕흥사지 주변을 준설하면 주변 경관 등에 현상변경을 일으킬 가능성도 크다. 따라서 단기적으로는 퇴적층의 깊이와 상태를 확인하는 면밀한 사전 검토, 주변 경관의 훼손 여부 검토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 장기적으로는 부소산성과 낙화암 등에서 왕흥사지 등에 이르는 구간, 좀더 광역으로는 상류의 호암사지에서 하류의 임강사지에 이르는 구간에 대한 체계적인 수중 정밀조사 계획을 수립해, 퇴적층에 묻혔을 수 있는 유적에 대한 확인이 필요하다.
백제 시대의 유물인 공산성은 사적 제12호로, 금강에 접한 표고 110m의 구릉 위에 석축과 토축으로 계곡을 둘러쌓은 포곡형(包谷型) 산성이다. 일제강점기의 지형도를 보면, 비록 증수기에는 공산성의 동·서 사면까지 물에 잠겼음을 확인할 수 있지만, 현재 안정화된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강 수위를 높이면 지각변동이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삼투압에 의해 지하수변이 상승하는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바, 이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있어야 한다. 특히 공산성은 큰 하천을 끼고 있으므로, 산성 자체의 붕괴 가능성에 대한 사전 검토가 있어야 한다. 백제 시대의 왕도였고 조선 시대에도 충청감영이 위치한 도시였으므로, 장기적인 수중 정밀조사도 필요하다.
원격지 교역의 거점이던 포구와 육상도로의 결절점이던 나루터에 대한 조사도 미비하다. 남당진처럼 조선 시대 조운선의 난파 가능성이 있었던 곳에는 수중조사가 선행되어야 한다. 포구와 나루터에 대해서는 고고학적 조사 외에 다른 조사가 거의 없었다. 강변에는 뱃길과 관련된 건축물이 다수 있었다. 또 금강은 백제 패망과 관련한 기벌포 전투 현장이자, 고려 말 최무선 장군이 우리나라 최초로 화약무기를 사용해 왜구를 물리친 현장이기도 하다. 금강에는 부여 유왕산놀이와 서천 남산놀이 같은 전설과 놀이가 있었다.
대백제전 수상 무대도 영구 설치 안 돼매장문화재 외에 유형과 무형의 문화유산에 대한 종합적인 검토가 있어야 한다. 그런 자료는 금강 사업의 올바른 방향 설정을 위한 기본 자료가 될 것이다. 또한 뱃길이 끊긴 이후 방치되다시피 했던 강변 문화유산의 발굴과 재평가를 거쳐 주변 지역과 연계해 활용하는 가능성까지 고려한다면 조사의 필요성은 더욱 커진다.
금강 유역에서 진행되는 보와 준설 공사는 즉각 중단돼야 한다. 나아가 논란이 되고 있는 문화재와 자연경관, 생태계 훼손 문제에 대해 정밀조사를 다시 해야 한다. 따라서 금강보를 전제로 설치되는 고마나루 지역의 대백제전 수상 무대도 마땅히 가설 무대(임시 무대)로 전환해야 할 것이다.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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