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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동아시아에 희망을 보여주마!

등록 2003-10-10 00:00 수정 2020-05-03 04:23

21세기 새로운 비전을 찾는 비판적 지성들… 국가의 경계를 넘어 열린 공동체 지향

‘동아시아의 비판적 지성’에 대해 소개하는 일도, 읽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니다. 한국·중국·일본을 함께 생각하는 ‘동아시아’ 담론은 중국의 개혁·개방과 유럽연합 등 세계 곳곳의 블록화 흐름 속에서 세 나라 인문학계에서 떠오르는 유행사조가 되었지만, 실제 세 나라의 현실이 어떠하며 그곳의 사람들이 무엇을 고민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려지고 공유된 것이 적기 때문이다.

더구나 근대 형성 과정에서 서로 침략과 지배, 굴욕과 저항으로 얽힌 ‘상처’를 아직 풀지 못하고 있는 이곳, ‘동아시아의 협력’을 이야기하면서 실제로는 국가주의적 민족주의 바람이 거세지고 있는 현실에서 자국중심주의적 또는 경제중심주의적 동아시아 담론을 넘어선 ‘동아시아’를 성찰하기는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일본에서는 우경화와 군국주의의 부활이, 중국에서는 민족주의와 신자유주의의 결합이, 한반도에서는 극심한 이념 대립과 남북의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국내 학자들의 기획… 깊이 있는 고민들

창작과비평이 창비라는 이름으로 처음 내놓은 야심작 ‘동아시아의 비판적 지성’ 시리즈는 이런 때에 중국과 타이완, 일본에서 비판적 지식인으로 꼽히는 6명의 학자를 불러 모아 ‘왜 동아시아인가’가 아닌, ‘어떤 동아시아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동아시아 지역이 자국중심주의에 갇히지 않고 열린 공동체로 나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다양한 견해를 보여주는 시리즈다.

이 시리즈는 기존 책을 번역하지 않고, 국내 학자들이 직접 기획해 2차 세계대전 이후에 태어난 각 나라의 학자들을 선정한 다음 그들의 주요 논문을 묶고 그들이 자신의 삶과 사상을 소개하는 ‘지적 편력’과 한국 학자들과의 깊이 있는 대담을 덧붙여 그들의 고민을 다각도에서 엿보게 했다. 여기에 참가한 6명은 공통적으로 자국의 현실에 비판적 입장을 취하면서 동아시아의 보편질서, 나아가 지구적 체제에 문제의식을 보여온 이들이다. 천꽝싱 타이완 칭화대 교수의 , 순꺼 중국사회과학원 연구원의 , 추이즈위안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의 , 왕후이 칭화대 교수의 , 사카이 나오키 미국 코넬대학 교수의 , 야마무로 신이치 교토대학 교수의 가 그 결과물이다.

이들이 고민하는 ‘동아시아 담론’은 하나가 아닌 다양하고 열린 관점이다. 특히 국가의 경계와 민족주의에 대해서는 의견이 많이 다르다. 사카이 나오키는 내셔널리즘(국민주의·민족주의)에 대한 가장 강도 높은 비판자인데, 다수파의 국민주의뿐만 아니라 이에 저항하는 소수파의 민족주의조차도 배제와 차별의 기제를 안고 있다는 점에서 극복해야 할 이념으로 본다. 이에 대해 야마무로 신이찌는 ‘국민국가론’이 국민국가의 억압성을 해체하는 데 몰두하다 부정의 방향으로 치닫고 있음을 비판하고 근대국가 설립의 주체인 국민이야말로 국가를 바꿔나갈 수 있다는 ‘국민주체’를 강조했다. 중국 대륙에서 동아시아 단위의 사유에 대해 제일 먼저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한 순꺼는 일본 지식인들이 쉽게 국민국가를 해체하거나 옹호하려는 주장을 하는 것이 진정한 문제 해결을 회피하는 것이라며 국민국가 경계의 안과 밖을 모두 생각하는 지적 긴장을 통해 진정한 동아시아적 시각이 세워진다고 강조한다.

관점은 달라도 동아시아 연대 한목소리

중국 지성계에서 ‘신좌파’로 불리는 추이즈위안과 왕후이는 ‘중국의 미래’에 대해 개입한다. 이들은 개혁개방 이후 사회주의 경제 시스템이 자유주의 경제체제로 바뀌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문제점들을 이야기하면서 사회주의 경제 시스템은 폐기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재검토되어야 하며, 러시아 등과는 달리 중국은 사회주의 역사적 경험의 장점을 살린 제3의 길로 가야 한다고 말한다. 왕후이는 나름의 독자적인 근대성을 모색해가던 중국 근대성이 덩샤오핑의 기획이 진행되면서 어떻게 물신주의에 빠져버렸는가를 날카롭게 지적한다.

대만의 쳔광싱은 타이완의 현안인 성적(省籍) 모순의 문제, 즉 본성인과 외성인의 갈등문제를 탈식민·탈냉전·탈제국화의 거시적 관점에서 접근한다. 또한 타이완을 동북아의 변방이 아닌 동남아의 중심으로 설정하기 위해 식민과 냉전의 메커니즘을 동남아에서 새롭게 적용하려는 타이완 지식인 사회의 하위 제국주의적 시각을 통렬히 비판한다.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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