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안 생기면 둘이 개 키우면서 알콩달콩 살아도 돼.”
생리주기가 시작되고 과배란 주사를 맞는 기간이 되면 나는 무척 예민해진다. 둔한 남편이지만 그때만은 내 눈치를 보며 이런 말을 건넨다. 결과가 무엇이든 부담 갖지 말라는 선의에서 하는 말이고, 진심으로 나를 걱정해서 하는 말이란 것도 잘 안다. 남편도 나만큼이나 지쳐가고 있는 것 같아 코끝이 찡해온다.
내 마음도 하루에 여러 번 오락가락한다. 삼신할머니가 우리 부부에게 아이가 없다고 하면 없는 거지, 이렇게까지 자연의 흐름을 거슬러 도전해야 할까. 그래도 열심히 바라면 기적처럼 예쁘고 건강한 아이가 우리 가정에도 찾아오지 않을까. 생각이 계속 이어지지만 그냥 한숨 한 번으로 오늘의 번뇌를 정리한다. 고민할 시간이 부족하기도 하고 고민해봤자 답도 나오지 않는다. 의지 하나로 버티는 것 하나는 자신 있는 내가 이렇게도 무력했던 적이 있던가. 차오르는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 눈에 힘주다보니 눈이 시리다. 답을 찾을 수 없는 이 문제를 서둘러 내 뇌 구석 어딘가로 쑤셔넣는다.
결혼 전 우리 부부는 출산에 합의를 쉽게 이룬 편이었다. 결혼한다면 애도 낳으면 좋겠다던 남편은 내 의사를 더 많이 존중한다고 했다. 나는 부모가 얼마나 힘들게 우리 남매를 키웠는지보다 일단은 주변에 형제자매가 많은 집이 부러웠던 어린이였다. 형제자매가 그 가족의 자산 같아 보였다. 나는 아직도 생물학적으로 가능하다면 (돈은 없지만) 아이 둘은 낳고 싶다. 이런 나를 보고 엄마가 된 한 친구는 “아이가 알아서 잘 자란다는 착각이 한순간 깨질 수도 있다”고 말했지만 내게 임신과 출산은 부정적인 것, 두려운 것만은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난임일기를 연재하고 한 독자가 질문해주신 “이런 시대에 재생산에 대한 욕망은 어디서 출발하는가”라는 질문에 쉽게 ‘논리적인’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냥 나는 기회가 닿으면 아이를 낳고 싶은 사람이었다는 걸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다. 아쉽게도 그 기회는 임신에 유리한 나이를 훌쩍 지나서 찾아왔다.
내가 가족의 가치를 재발견한 것은 20대 후반~30대 초반 사회생활을 하면서부터다. 직장인이 된 뒤 내 인간관계 역시 매우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기적인 사람들을 보는 것에 지쳤고 나 역시 누군가에게 그렇게 차가운 사람으로 보였을 것이다. 친절한 듯하지만 은근히 배타적이고 조금만 달라도 공동체에서 배제하고 탈락시키는 사회, 느슨했던 공동체들은 해체되고 끊을 수 없는 혈연 단위만 남을 것만 같은 불안감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떨 때는 남보다 못한 가족이 최후의 보루가 맞을까 질문해보지만, 가족이 주는 따뜻함은 여전히 남아 있다.
가족끼리만 잘 살아보고자 아이를 낳으려는 욕망이 강해졌다고는 오해하지 않길 바란다. 객관적으로 절대 화목한 가정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는 가정임에도 불구하고, 나를 둘러싼 많은 사회공동체 중에서 내게 가장 큰 위로를 주는 곳이 가족이었을 뿐이다. 그리고 지금 내가 생각하는 삶의 가장 행복한 조각이 가족과의 화목한 시간들이었기 때문에 아직도 아이를 낳고 싶을 뿐이다.
내 몸의 속도와 내가 속한 사회의 속도가 다르게 간다는 게 문제의 시작이다. 사회생활을 15년 이상 하고서야 통장에 현금을 남겨봤다. 결혼하고 3~4년이 지나서야 부부의 힘으로 온전히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게 됐다. 그 전까지는 감히 나라는 존재의 사회경제적 무게를 저울에 재보려 한 적도 없다. 나도 남편도 월말에 내야 하는 카드값과 월세 등을 걱정하며 월급 중독자로 살았다. 이제야 주위를 둘러보고 아이를 낳아볼 여유가 생겼는데 나도 모르게 내 몸은 생물학적으로 임신하기에는 유리하지 않게 변해버렸고 질병에도 노출돼 있었음을 깨닫는 중이다. 그리고 이 힘든 길에 서서 나는 계속 부유하고 있다. 이 ‘타이밍’의 부조화가 저출생을 부른다는 확신이 들었다.
최근 결혼과 출생률이 반등하고 있다는 보도를 보면서도 같은 생각을 했다. 청춘들은 서서히 성공과 안정의 기준을 바꾸고 있다. 과거에 우선시됐던 사회경제적 성공의 기준은 이제 환영받지 못한다. 예를 들어 나나 내 또래 친구 상당수가 더 좋은 일자리를 새로 구하려 노력하거나, 조직 내에서 권력을 잡기 위해 노력하지도, 애초에 그런 삶을 기대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아이를 낳고 싶어 하는 이들의 수는 바닥을 치고 오르는 중이다. 현실이 팍팍해도 결혼과 출산을 하는 이유는 이 험한 세상에서도 미래의 꿈을 꾸고 싶다는 희망을 놓고 싶지 않아서는 아닐까. 당연한 말이지만, 월세 낼 것을 걱정하고 부모 봉양에 지쳐가는 청춘에 미래는 없다. 그러나 행복 자체에 대한 열망은 남아 있을 수 있다. 다른 많은 것을 포기하고 나서야 소소한 가정에서의 행복을 찾고 싶은 건 아닐까.
비혼과 혼인, 출산과 비출산이라는 삶의 여러 선택지에서 내가 더 행복해할 것 같은 한쪽 길을 택해서 걷고 있을 뿐이다. 나는 한때 일을 정말 열심히 했지만, 생애 갈림길에서 한참을 고민하다 아이가 있는 삶을 선택했을 뿐이다. 그리고 이 결심을, 그 행복을 감당할 경제사회적 수준이 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임 치료는 나의 또 다른 희망, 나의 책임이자 도전이다. 그 무게가 꽤 무겁다. 실패의 경험으로 기억되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함과 불안함의 크기가 점점 커져간다.
자연임신과 시험관 임신의 차이점은 임신 준비 기간에 집중돼 있다. 자연임신도 준비 기간이 있지만, 자궁에 착상한 수정란이 아기집을 만들고 엄마 배 속에서 아기가 자리를 잡고 나서 본격적으로 병원 생활을 시작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시험관 임신은 난자를 채취하는 그 과정을 운 좋게는 한 번, 운이 나쁘거나 난소 기능이 나쁘면 여러 달 동안 이어서 진행해야 한다. 임신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자궁에 수정란을 이식하는 고비가 또 있다. 자연임신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모든 것이 의사의 판단으로 결정되고 채취와 이식 단계 내내 병원에 다녀야 한다.
그래서 많은 난임 여성이 회사를 그만두거나 휴직을 선택한다. 난임 병원 생활 1년이 넘어가는 언젠가 나는 의사 앞에서 소리 내어 엉엉 울어버렸다. 일주일에 3일 이상 병원에 가서 2시간 넘게 대기하며 3분가량의 의사 진료를 보러 다니는 데 지쳐버린 상태였다.
“제가 지금 휴직할 처지도 못 돼서요. 이번주에 또 휴가를 내기가 너무 힘든데 어쩌죠.”
“난임 휴가가 있어요. 그걸 써보는 건 어때요?”
내가 다니는 회사는 아마도 한국 사회에서 꽤 괜찮은 회사일 것이다. 아니, 객관적으로도 나쁘지 않다. 체감상 평균에 가깝다. 국가(남녀고용평등과 일, 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의 기준을 성실히 따른다. 그러나 정작 국가의 기준이라는 게 난임여성이 느끼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회사 사규에서 “난임”을 검색해보면 2020년 1월에 개정됐다. 연간 3일 이내 휴가를 쓸 수 있고 최초 1일은 유급으로 한다. 단, 청구한 시기에 업무수행에 중대한 지장을 초래하는 경우에는 그 시기를 변경할 수 있다. 회사는 난임치료를 이유로 해고, 징계 등 불리한 처우를 해서는 안 되고, 난임여성은 이를 서류로 증빙해야 한다.
하지만 이 사규를 보았을 때 나는 난임 휴가는 신청하지 않아야겠다는 확신을 가졌다. 회사가 악독해서가 아니다. 한 달에 3일 이상 병원에 가는데 연간 3일이라니. 난임 휴가는 있으나 마나였다. 결국 연차를 사용하고 있다. 바쁘고 지쳐 있는 또 다른 동료, 그리고 관리자에게 매번 보고하고 나의 잦은 휴가를 배려해달라고 말했을 때 그들의 반응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또 난임 치료 중이라는 것을 회사에 알리면 곧이어 나에게 불이익이 가해질 것도 넉넉히 예상이 가능했다.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난임 치료 때문에 매달 여러 차례 유급휴가를 쓰는 팀원을 좋아할 조직이 얼마나 될까. 치료가 끝난다는 의미는 결국 임신한다는 것이니 어차피 내보내는 것이 더 나을 것이란 판단을 해도 내가 반박할 근거가 없었다. 조직이라는 곳을 믿을 수 없게 된 여러 번의 안 좋은 경험 때문에 부정적인 생각이 앞서게 돼서일 수 있지만, 내가 겪은 회사는 내 가족과 친구가 아니었다. 사규가 나를 지켜줄 것이란 기대는 조용히 접었다.
병원에 오가며 만난 친구, 지인들을 볼 때 그나마 대기업에 다니는 여성들은 병원비 혜택과 휴직 혜택이 있었다. 난임 휴가도 법이 보장하는 최소 연간 3일을 넘어서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그들 역시 휴가를 사용해도, 동기들과 같은 수준의 커리어를 쌓으며 성장하고 경쟁할 생각은 버렸다고 했다. 중소기업에 다닌다는 여성들은 그냥 조용히 휴직하거나 아예 그만두는 경우가 정말 많았다.
자원과 자본이 부족한 조직일수록 튀면 나만 더 외로워질 수도 있다는 걸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난임 휴가뿐 아니라 출산휴가, 육아휴직, 돌봄휴가, 병가, 무급휴직 등등 각종 노동자의 권리를 말할 때 눈치가 보이지 않아야 나 역시 난임 휴가를 사용했을 때 내게 어떤 불이익이 오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자랄 수 있다.
난임 치료가 죽을병이 아니라는 점에서 단순한 욕망 정도로 치부되는 듯하지만, 난임 치료는 질병 치료와 같다. 언제까지 치료받아야 할지 모르고 마음과 몸이 다치고 지치기 쉽다는 점이 그렇다. 난임이라는 새로 등장한 사회문제에 회사가 관대해지기 위해서는 실제 얼마나 휴가를 자주 사용하는지 파악하고, 이에 맞게 보장해줘야 하는 제도가 기본적으로 갖춰져야 한다. 나아가 난임 치료가 얼마나 힘들고 지치는 일인지, 또 이 과정이 질병 치료 과정이며 엄마가 될 준비를 하는 이들을 배려해야 하는 시간이라는 사실에 대한 공감과 지지가 필요하다.
난임여성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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