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이 차고 기울 듯 여성의 몸도 한 달마다 채워지고 비워진다. 난소와 자궁 이야기다. 초승달에서 반달을 거쳐 보름달이 되고, 다시 하현달이 되듯 여성의 자궁과 난소도 월경(생리) 기간을 기준으로 순환한다. 여성은 월경을 반복하면서 시간의 흐름을 떠올린다. 월경이란 가임기 여성의 자궁내막에 수정란이 착상할 수 있도록 두껍게 채워진 뒤 무너지면서 피가 나오는 현상이다. 그 뒤 분비되는 호르몬이 다시 난포를 자라게 하고 배란으로 이어진다. 이후 자궁내막이 두껍게 자라고 다시 자궁내막이 무너지면서 다음달 월경을 한다.
난임 치료를 받다보면 너무나 익숙해서 소중함을 몰랐던 월경을 간절히 기다리게 된다. 임신을 생각하지 않던 시절 월경이란, 다소 몸의 컨디션이 좋지 않은 기간을 의미했다. 내게 월경 기간은 특별하지 않았다. 단지 흰색이나 베이지색 하의는 피해야 하며, 수영장에 가지 못하고, 식욕이 늘어 다이어트가 소용없는 기간에 불과했다. 그러나 아이를 낳을 생각을 하고 나서야 학창 시절에 배운 여성의 월경주기, 월경 전후로 여성의 몸에서 벌어지는 일을 자세히 탐구한다.
“다음 월경 시작하면 내원하세요.” 난임병원에서 의사에게 가장 자주 듣는 말 중 하나일 것이다. 2주 뒤도 아니고, 몇 월 며칠도 아니고 월경이 시작돼야만 다음 차수의 난임 치료를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 월경일에 보자는 의사의 말이 아득하게 들렸다. 1시간 혹은 10분 단위로 쪼개어 살면서 임신과 출산도 빨리 숙제처럼 해치우고 싶은 나와 같은 마음의 여성들이라면 이 말이 더 기운 빠지게 들릴 것이다. 하지만 이내 그 모호함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세상 누구도 스스로 생리를 며칠에 하게 될지 예견할 수 없다. 특히 난임 치료를 받고 있는 여성이라면, 규칙적이었던 생리주기도 각종 호르몬제의 투입과 수술, 시술 등으로 항상성이 깨지는 경험을 한다. 기존에 불규칙한 주기 때문에 힘들었던 여성이라면 예측하기는 더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다. 다음 월경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조급한 마음을 달래고 일에 매진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난임 치료 중 가장 힘든 과정은 무엇일까. 난임 치료를 받기 전이라면 ‘자가 주사 맞기’를 꼽을 것이다. 당뇨환자가 인슐린 주사를 맞듯이, 난임 환자도 매일 병원에 갈 수 없기에 의사의 처방을 받아 산 주사약을 일정 기간 복부에 자가 주사를 놓아 난포를 키우고 자궁내막을 두껍게 유지한다. 그 뒤 실제 주사약이 효과가 있는지 진행 상황을 확인한 의사가 다음 처방을 계속한다. 간호사도 아닌 비전문가인 나 스스로 내 생살에 주사를 수시로 놓아야 한다니 잘할 수 있을지, 아프진 않을지 덜컥 겁이 난다.
간호사한테서 처음 주사기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설명을 들었을 때 얼마나 긴장했고 두려웠는지 생생하게 기억난다. 한 번 주사할 때마다 수만원씩 주고 사는 비싼 약이고 꼭 맞아야 하는 약인 만큼 혹시라도 내가 실수해 일을 그르칠까봐 여러 차례 설명을 듣고 그 자리에서 복습도 했다. 1년 넘게 난임 치료를 받은 지금이야 너무나 익숙하지만, 처음에는 실수를 참 많이 했다. 생리식염수로 주사제 알갱이를 녹이고 다시 3㎜ 주삿바늘을 더 얇은 펜니들로 교체하고 바늘을 복부에 찔러 넣기까지 수십 분이 걸렸다. 펜타입 주사제가 사용이 쉽다고 하지만, 혹시 내가 잘못된 양을 주사할까봐 또 불안했다. 이런 과정에서 바늘에 찔려 손가락과 복부에서 피가 난 적도 있었고, 알갱이가 다 녹지 않고 거품이 많이 나서 당황스러웠던 적도 있다. 여러 차례 같은 자리에 맞다보니 이미 경직된 복부에 또 한 번 바늘을 찔러야 하는, 말 그대로 생살을 찢는 고통을 느낄 때도 있다. 그런데 그 과정을 수개월, 1년 넘게 지나보니 주사 맞는 것보다 더한 고통은 따로 있었다.
무엇보다 월경 시작일을 내가 모른다는 것이 근본적 문제였다. 월경이 시작되면 2주가량이 중요했다. 그날부터 배란일까지 난자를 품은 난포를 여러 개 성숙시키는 과배란 기간에만 난포 성숙 치료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월경을 시작한 지 하루~사흘 사이에 병원에 방문해야 한다. 초음파를 통해 난포 크기나 내막 두께 등을 확인하고 의사를 만나 처방을 받아야지만 치료를 이어갈 수 있다. 지난달에 쓰던 약제 그대로 매달 구입만 해선 안 될까 생각도 할 수 있지만, 여성의 몸 상태는 매달 다르기 때문에 매달 의사로부터 적당한 약제와 용량을 처방받아야 한다.
매달 혹은 두 달에 한 번씩 약 2주 동안 사나흘 간격으로 반드시 병원에 가야 하고, 그 날짜를 미리 지정할 수 없다는 건 생각보다 꽤 힘든 일이었다. 그래서 난 난임 치료 과정의 진짜 어려움은, 이전의 삶과 비교했을 때 자유가 줄어서라고 꼽는다. 게다가 직장 내 허리 혹은 허벅지 수준의 직급에서 실무자로 일하는 남편과 내 업무 일정 역시 마음대로 조정할 수 없다. 여러 변수가 동시에 작동되는 룰렛 게임에서 답을 찾아내야 하는 것과 같이, 예측할 수 없는 날짜의 다음달 난임 치료를 위해 일도, 쉼도 과감하게 포기해야 한다. 가정에서의 모든 일정은 내 생리주기에 따라 짜이게 된다. 가족과 긴 여행을 계획했어도 월경 이후 배란주기와 겹칠 가능성이 있으면 피해야 했다. 국외 출장이 잦은 이라면 일정이 서로 겹치지 않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없다. 주사를 제때 맞지 않으면 한 달마다 찾아오는 소중한 기회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조바심에 울고 싶어진다.
가장 오싹했던 경험을 소개하면, 처음 처방받은 새로운 주사약의 보관법을 잘 숙지하지 못하고 기존 약제처럼 관리하다 약을 버려버린 사실을 깨달았던 날이었다. 자다가 그 사실이 불현듯 떠오른 건 새벽 3시였다. 나는 갑자기 침대에서 소리를 지르며 일어났다. 곤히 자던 남편이 놀라 왜 그러느냐고 물었고, 이어 나를 진정시켰지만 도저히 진정되지 않았다. 새벽 6시 해가 뜨자마자 병원으로 달려갔다. 하필 주치의가 그날 진료가 없는 날이었다. 당일 진료 예약이 가능한 다른 의사에게 재처방을 받아 주사에 성공하고서야 안도했다. 40년 가까이 건강하게 살았던 나는, 부끄럽게도 이제야 좋은 약과 의료진을 찾아 전국을 헤매는 다른 질병을 치료 중인 환자와 환자 가족의 초조하고 답답한 삶을 돌아볼 수 있게 됐다.
주사를 맞아야 하는 기간뿐 아니라 주사하는 시간도 정해져 있다. 보통 효과를 고려해 오전 중에 맞으라고 하지만, 특정일 특정 시간을 정해서 맞아야 하는 주사도 있다. 예를 들어 과배란한 난자들을 채취하는 수술 36시간 전에는 난포를 터뜨리는 주사를 맞아야 한다. 아침 수술이라면 보통 이틀 전 밤에 맞는 식이다. 그래야 채취 수술 과정이 수월해지기 때문에 대부분의 병원이 비급여인 이 주사약을 처방한다.
만약 내게 임신-출산이라는 긴 터널을 지나고 돌아볼 기회가 생긴다면, 혼자 외롭게 주사를 맞으며 안도하던 순간들을 떠올릴 것이다. 오전에만 맞아도 된다는 과배란 주사는 그나마 나았다. 출근 전 차분하게 방에서 주사를 맞고 일상을 시작하면 된다. 그러나 저녁 시간 혹은 해당 시간에 꼭 맞아야 하는 주사는 직장인인 내가 장소를 선택하기 어려웠다. 회사에 있을 때 잠시 취재방과 수유실에 가서 주사를 맞을 수 있는 경우는 운이 좋은 날이었다. 케이티엑스(KTX) 안, 그리고 서울역과 시내 식당가 여러 공중화장실 한 구석에서 복부에 주사를 맞고 있는 내 모습이 떠오른다. 인생에서 가장 많은 일을 하는 나이인 30대의 다양한 경험들을 포기하고 싶지 않은 욕심 많은 내가, 아이를 기다리는 또 다른 나에게 미안하다며 사과하곤 했다.
주변에 난임 여성이 있다면 아마 그 여성은 ‘갓생’(남들이 볼 때 모범적인 삶)을 살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다이어트하기 위해 식단 관리를 해본 적이 조금씩은 있겠지만, 임신을 위해서도 꽤 엄격한 식단 관리가 필요하다. 다이어트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궁과 난소의 건강을 북돋우고 갑상샘 호르몬과 혈당 관리를 꾸준히 해야지만 언젠가 찾아올 아기도 무탈하게 엄마와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 때문에 유산소 운동도 꾸준히 해야 한다(단, 난자 채취 직전에는 무리한 운동이나 격렬한 활동은 또 하지 말아야 한다)고 의사들은 조언한다. 엽산과 비타민D와 같이 임신 과정에 반드시 복용해야 하는 영양제에 노화를 막아주는 각종 항산화제 등을 한 움큼씩 먹다보면 내가 이렇게 열심히, 몸을 만들며 살아본 적이 있나 싶다. 난임 치료란, 수험생의 마음으로 성실하고 부지런하고 차분하게 심신을 단련시켜야만 견딜 수 있는 과정임을 새삼 깨닫는다.
난임 치료가 왜 힘드냐고 묻는다면, 일생을 성실하게 살아왔고, 열심히 노력해서 성과를 이뤄본 적 있는 많은 또래 여성들이 ‘갓생’과 ‘무너짐’을 오가며 지쳐가고 있어서라고 말하겠다. 팽팽하게 활시위를 당겨 조준하고 있는데 맥없이 풀려버리는 순간을 마주하는 경우가 꽤 많았다. 이렇게까지 열심히 했는데 목표를 이루지 못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점점 시들어간다. 시험관 시술 후 운좋게 임신이 됐다가 유산했을 때, 병원을 옮긴 뒤 적응하는 과정에서 결국 난자 채취에 실패했을 때 등 주로 내 노력이 배신당했을 때 나는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울고 좌절하고만 있다고 아무것도 달라질 게 없기 때문에 또다시 도전하는 수밖에 없었다. 모든 난임 여성은 이런 고독함 속에서 일상을 지키는 훈련을 하고 있다. 주사 맞는 고통쯤은 다음달 혹은 다다음달의 내 모습을 그릴 수 없다는 불확실성과 답답함과 비교하면 참을 만했다.
난임여성A
*우리들의 난임일기: 난임여성 A는 대학 졸업 뒤 사회생활 17년차가 된 서울 거주 여성입니다. 직업은 기자입니다. 난임 치료를 받는 1년5개월가량 꾸준히 일기를 쓰면서 난임이 나만의 문제가 아님을 알게 됐습니다. 난임은 젠더, 의료, 인구 문제와 복잡하게 얽힌 사회문제입니다. 난임 여성이 회사, 가정, 병원에서 겪는 이야기를 써보려 합니다. 4주에 한 번씩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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