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말고사 기간인 14살 아이는 “사회는 자신 있어”라고 말했습니다. 중학교 1학년 2학기 사회 시험은 ‘현대 정치 제도’에 관한 것인가 봅니다. “우리나라는 대통령제이고 영국이나 일본은 내각제라며?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내각제적 요소가 있어 국회의원이 장관 겸직을 할 수 있다”고 설명하던 녀석이 갑자기 물었습니다. “그런데 윤석열은 왜 계엄을 한 거야? 그게 진짜 될 거라고 생각한 거야?”
비상계엄, 내란, 친위 쿠데타, 장악, 소요, 북파공작원까지. 뉴스 언어에서 사실상 실효를 다했다고 여겨지던 개념과 단어들이 연일 사회를 달구고 있습니다. 2024년 12월3일 밤 10시28분, 대통령 윤석열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국회의 1차 탄핵소추안 부결과 2차 탄핵소추안 의결까지 이어진 보름 정도를 돌이켜보면 비현실이란 말로는 다 설명이 안 됩니다. 아예 현실을 초월한 시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대통령 윤석열은 내란 피의자가 된 지금도 ‘자유’와 ‘민주주의 체제’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살면서 단 한 번도 ‘자유’와 ‘민주주의’ 바깥을 경험한 적이 없는 세대에 지금의 상황을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지 감조차 잡히지 않습니다. 현실 사회의 질서는 멀쩡한 반면 본인이 들여다보는 확증편향의 미디어 세계 속 세상만 어지러운 것인데, 이를 바로잡겠다며 군대를 헌법기관에 동원한 상황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합니다. 덜컹거리고 느리더라도 결국 세상은 보다 합리적인 방향으로 굴러간다고 믿었는데 2024년 말, 그 믿음이 통째로 부서져버렸습니다.
물론, 비상계엄을 2시간 만에 해제할 수 있었던 체제의 저력, 비상계엄 선포는 내란이었다고 규정하며 열흘 만에 그를 탄핵시켜낸 시민적 총의가 있기에 시간이 걸리더라도 내란 모의와 실행의 진상이 밝혀지고 내란을 지시한 우두머리와 공동정범들을 모두 처벌하는 상황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믿습니다. 아니, 꼭 그렇게 돼야 할 것입니다. 내란 우두머리와 공동정범들의 죄목을 정리하며, 그들의 한심함에 자꾸 작업을 멈추게 됐습니다. 그 한심함은 결국 우리를 비추는 거울일 텐데, 극우 유튜버 알고리즘에 갇혀 내란을 벌인 대통령과 그 주변, 그리고 내란에도 불구하고 그 권력을 지키거나 승계하겠다며 발버둥 친 정치인들의 행태까지.
동시에 그 과정은 아시아에서 가장 성공적인 민주화 과정을 밟았다는 한국 사회가 대통령 한 명이 이상하면 이토록 허약한 지배 체제라는 사실을 은폐하며 아슬아슬하게 운영돼왔음을 규명하는 과정이기도 해야 할 것입니다. 살면서 세 번째 탄핵 국면을 맞았지만, 계엄은 처음입니다. 한국 ‘사회’는 좀 안다, 십수년 기자를 하며 그래도 ‘사회’는 자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비상계엄을 거치며 정말 자신이 없어졌습니다. 분명한 건 이제 난장판이 된 체제 위에 다시 민주주의를 함께 지어나가야 한다는 것뿐입니다. 계엄을 처음 맞이한 모든 이들과 함께 그 ‘새로 만날 세계’로 가고 싶습니다.
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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