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도 얼어붙네/ 너의 뺨에 살얼음이/ 내 손으로 녹여서/ 따스하게 해줄게/ 내 손으로 녹여서/ 강물 되게 해줄게…”(‘12월 이야기’)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된 뒤 작가 한강이 부른 듀엣곡이 화제가 됐다. 싱어송라이터 겸 작가인 이지상과 함께 부른 노래였다. 11년 전 유튜브에 게시된 ‘12월 이야기’ 영상은 조회수 4만 회를 넘겼다. 사진 작업을 위해 전남 순천에 머물고 있는 이지상 작가에게 소감을 물었다.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이 질문이 나올 듯해서 찾아봤어요. 저는 어제 한 일도 잘 잊고 지내는 편이라서요. 최근엔 대구, 경북 안동, 경기 동두천에서 공연했습니다. 동두천에는 옛 기지촌 여성들의 성병 관리를 하던 수용소―이른바 몽키하우스―가 있는데 그걸 시에서 허물고 관광시설을 지으려 해서 철거를 반대하는 싸움을 하고 있거든요. 1992년 10월 미군 범죄자의 손에 사망한 윤금이씨의 추모곡도 만들었던 터라 마음이 쓰입니다. 지금은 사진 촬영을 위해 전남 순천에 와 있고요. 출판 계약한 지 2년이 넘은 책을 아직 한 문장도 못 쓰고 있거든요. 순천 와온해변에서 첫 문장을 시작했으면 좋겠습니다.”
―한강 작가와 함께 부른 노래 ‘12월 이야기’가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요.
“‘아~ 이런 일이 있었지’ 정도의 기억을 마음속으로만 갖고 있었어요. 그런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 노래를 아시는 분들이 하나둘씩 링크를 올리는 거예요. 어느 분께서 이렇게 댓글을 적어주셨어요. “노벨문학상 수상자와 듀엣 한 놈 있으면 나와보라 그래.” 유튜브 조회수 4만이면 많은 분이 ‘겨우’ 하시겠는데 저는 ‘겨우’의 몫으로만 30년 넘게 음악 하는 사람이라 굉장히 큰 숫자입니다. 요즘 무대에서 저를 소개할 때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와 듀엣을 한, 세계에 거의 없는 희귀 가수라고 너스레를 떱니다. 뿌듯합니다.”
―듀엣을 하고 앨범에 곡을 수록하게 된 계기는요.
“2005년 즈음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제작하는 작은 인터넷 방송을 한강 작가가 진행할 때 제가 음악 작업을 몇 번 도와드린 적이 있었고 ‘12월 이야기’도 그때 만났어요. 조심스럽게 듀엣 제안을 드렸죠. 조용히 수락해주셨어요. 녹음실에도 조용히 오시고 조용히 노래하시고 조용히 차 마셨어요. 그 음반에 제가 이렇게 적었더라고요. ‘노래를 부르면서 그녀는 떨지 않으려 했지만 저는 압니다. 세상과의 어떤 조우도 떨림이 없이는 이룰 수 없는 사람이란 걸. 소설가 한강 님의 노래를 싣게 된 건 제게 큰 행운입니다.’ 떨림으로 표현되는 세상과의 긴장 관계, 그것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게 된 가장 큰 동력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때 한강 작가님은 말보다 글을 더 많이 사랑하고 신뢰하는 사람이구나 느꼈고, 저도 말수 줄이는 노력을 좀 하게 됐습니다. 그 이듬해 작가님의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가 북시디 형태로 발매됐고요. 듀엣곡이 수록된 음반은 제 4집 ‘기억과 상상’인데 지금은 절판돼서 저도 한참 찾아야 한 장 나올까 하는 정도입니다.”
―다양한 활동을 하시는데 또 어떤 모습으로 곧 만나뵐 수 있을까요.
“충북 청주에서 두 번, 충남 천안에서 한 번 공연이 예정돼 있어요. 7집 음반 노래가 다 만들어져서 2024년 말쯤 녹음하려 합니다. 12월에 개인 공연을 할까 말까 망설이고 있습니다. 5개월 뒤에는 대구에서 사진전이 예정돼 있고요. 첫 질문에 말씀드렸던 지금 쓰고 있는 ‘와온’ 책은 아마 2025년 초쯤 초고가 나올 듯해요.”
―한겨레21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아~ 기승전21. 늘 믿죠. ‘임금이 포악하면 온 나라에 도적이 들끓는다’는 말이 있는데요. 다행히 포악한 임금을 백성이 심판할 수 있는 힘이 이른바 민주주의라는 체제에서는 가능하니까 어떤 방식으로든 폭정에 대한 심판은 불가피하다고 생각합니다만 들끓는 비난과 비판 속에서도 우리가 도적이 돼서는 안 되는 난제가 있지요. 더 냉철한 비판을 바탕으로 선명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인데요. 그 어려운 일을 한겨레21이 진보정론지로서 맡아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유진 선임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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