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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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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 출석부터가 미션… 도전의 연속 6년 대학 생활

건축학과에서 산림조경학과로, 도전의 연속이었던 6년간의 대학 생활
등록 2024-08-03 15:18 수정 2024-08-08 17:24
일러스트레이션 이지안

일러스트레이션 이지안


“똑똑.” 연구실 문을 두드리고 들어간다. 5층짜리 건물 5층에 있는 건축학과 교수 연구실이다. 교수가 학부모를 만나고 싶어 한다고. 대학에서도 학부모 상담을 하나 궁금했지만 한편 불러주시니 고마웠다. 대학교 건축학과 1학년 1학기, 5년제 건축학과는 예상보다 훨씬 어려운 전공이었다. 공업수학도 해야 하고, 캐드(CAD) 설계도 배워야 하고. 중고등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한 나무가 따라가기에는 벅찬 전공이었다. 교수는 휴학을 권했다. 건축학과 인증 심사가 있는데 이렇게 따라오지 못하는 학생이 있으면 불리하다고 했다. 한 학기만 쉬고, 다음 학기에 오면 졸업할 때까지 잘 챙기겠다는 약속도 잊지 않았다. 우리는 고민했다. 건축학을 계속할지, 아니 할 수 있을지. 설계하면 밤도 새우고 팀 작업을 많이 해야 하는데, 나무의 컨디션으로 그런 활동을 할 수 있을지 고민이 많았다. 결론은 일단 휴학하고 고민하기로. 휴학할 때 나무는 타던 자전거를 교수에게 맡겼다.

나무와 방을 쓰기 싫다는 룸메이트

기숙사에서도 쫓겨났다. 룸메이트가 약물 부작용으로 침을 많이 흘리는 나무와 방을 같이 쓰기 싫다고 한 것이다. 그리고 매일 밤 11시30분이면 군대처럼 점호하는데 그 시간에 나무는 점호에 출석하지 못했다. 저녁 약을 먹고 이미 잠들어 있었기 때문. 나무는 벌점이 쌓여서 결국 기숙사에 다시 등록하지 못했다. 기숙사에 자신의 병을 알리고 도움을 받으라고 했지만 나무는 하지 않았다. 조현병에 대한 편견과 낙인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대신 대학 상담센터 문을 두드렸다. 거기서는 질병을 알리고 도움을 청했다. 하지만 대학 상담센터는 대학 생활의 어려움이나 기초적인 심리상담을 하는 곳이지 조현병 환자를 돕는 기관은 아니었다. 몇 회 상담받았으나 도움이 되지 못했다. 결국 나무가 혼자 헤쳐나가야 했다.

다음해, 나무는 건축학과 복학 대신 다시 같은 대학에 입학 원서를 냈다. 전공은 산림조경학과. 곤충을 좋아하는 나무의 적성에 가깝고, 산림조경을 공부하면 치료에도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에 내린 결정이었다. 2018년 3월, 나무는 다시 입학해 새로운 전공을 공부했다. 공업수학도 없고 밤새워 할 팀 작업도 없었다. 다행이었다.

교수에게 맡겨둔 자전거를 다시 타고 대학 캠퍼스를 오가며 테니스 동아리, 야구 동아리, 노래 동아리도 기웃거려보고, 친구들과 어울려보기도 하면서 새롭게 대학 생활을 했다. 동아리는 오래가지 못했고 학과 친구들과도 친해지지 못한 아웃사이더였지만 집에 있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들어야 할 수업이 있고, 해야 할 일이 있고, 어딘가에 소속돼 있다는 느낌이 나무의 자존감을 향상시켰다. 대학 때 들었던 수업 중에 종교학 개론, 영화 보고 비평하기, 글쓰기 수업이 좋았다고 나무는 기억한다. 읽고 쓰는 수업은 전공수업보다 따라가기 수월했기 때문이고, 발병 전부터 책 읽고 글 쓰고 영화 보는 것을 좋아했던 나무의 취향이 반영된 것이다.

어떤 일상의 규칙을 만들까, 고민에 대한 대답

하지만 그 생활도 금방 끝났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학교 수업이 온라인 수업으로 바뀌었고, 온라인-오프라인 병행 수업을 하면서 학교를 안 가거나 일주일에 이틀 정도 가는 것으로 변경됐다. 자취방을 정리하고, 서울에서 케이티엑스(KTX)를 타고 통학했다. 어쩌다 꼭 자야 하는 날에는 학교 앞 모텔에 머물렀다. 전면 온라인 수업을 하다가 온라인-오프라인 병행 수업을 하다가. 대학을 다닌 듯 다니지 않은 듯한 2년이었다.

나무의 대학 진학은 20살을 앞두고 앞으로 무엇을 할까, 어떤 일상의 규칙을 만들어야 할까 하는 고민에 대한 대답이었다. 사회성 훈련의 목적이 가장 컸고, 나무도 소속될 커뮤니티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고졸 검정고시로 고등과정을 마친 상태에서 일반전형으로 갈 수 있는 대학은 많지 않았다. 나무는 집에서 가까운 전문대학과 지방 종합대학교를 방문해서 비교하더니 지방 종합대에 가겠다고 했다. 오랜 역사와 아름다운 캠퍼스를 자랑하는 사립 종합대였다. 그렇게 시작한 대학을 6년 동안 다녔다.

조현병을 가지고 대학 공부를 하는 것은 어려웠다. 게다가 입·퇴원을 반복하면서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기초학력이 부족했다. 시험기간 때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학과에 친한 친구가 없다보니 정보를 알기가 어려웠다. 약을 먹으면서 12시간 이상 자야 하는 나무에겐 수업에 출석하는 것, 부모와 떨어져서 자취하는 것 자체가 대학 생활의 가장 큰 미션이었다. 출석해서 강의실에 앉아 있는 것이 가장 우선이었고, 수업 마치고 돌아와 청소하고, 빨래하고, 먹거리를 챙겨야 하는 것이 두 번째 주요 과제였다.

그러면서도 방학 때마다 바리스타 학원, 자전거 정비 학원, 제과제빵 학원, 일본어 학원에 다녔다. 나무는 끊임없이 움직이고 모색했다. 병을 가지고, 약을 먹고 주사를 맞으면서도 살아가는 내가 여기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지방 종합대 졸업이 뭐 그리 어려운 일인가 하겠지만, 나무에게 그 6년은 도전의 연속이었다.

기차를 두 번 갈아타고 오신 외할머니

2023년 2월, 겨울 캠퍼스에서 사각모를 푸른 하늘 위로 날리며 졸업했다. 누구보다 애쓴 나무를 위해 우리는 손이 아프게 박수를 쳤다. 외할머니도 부산에서 고령의 몸을 이끌고 오셨다. 다른 손주 졸업식은 안 가도 나무 졸업식에는 참석해야 한다며 기차를 두 번 갈아타고 오신 것이다. 나무는 할머니 손을 잡고 캠퍼스 여기저기를 다니며 여기서는 테니스를 했고, 여기서는 야구를 했고, 여기서는 노래를 불렀다고 알려줬다. 우리는 그 이야기를 오래오래 들었다. 그리고 겨울 햇빛이 찬란한 캠퍼스를 마치 내 것인 양 누리기로 했다. 그날 우리는 사진을 백 장은 찍었을 것이다. 뛰고, 굴리면서, 우리끼리 졸업식을 성대하게 치르고 짜장면을 먹었다. 역시 졸업식 날에는 짜장면이지 하면서.

윤서 여성학 박사

 

*정신병동에서도 아이는 자라요: 16년째 조현병과 동거하는 28살 청년 ‘나무’(가명) 이야기를 어머니 윤서(필명)가 기록한 글. 조현병을 앓는 나무의 시점에서 이지안이 그림을 그립니다.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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