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 내놔, 엄마 내놔, 우리 엄마 어딨어?”
나무는 나를 붙들고 흔들며 울부짖었다. 나를 가짜라고 했다. 진짜 엄마를 제거하고 엄마 행세를 하는 가짜. 가장 사랑하는 엄마를 뺏어간 사람.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미운 사람이었다. 왜 내가 가짜로 보이는 걸까? 나는 죄책감에 빠졌다. 건강하게 성장하던 아이가 어느 날 갑자기 환청을 듣고 걷잡을 수 없는 불안으로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자고, 웅크리고만 있는 상태가 됐을 때, 이유도 원인도 모르고 병명을 모를 때. 그 절망도 절망이었지만, 엄마가 가짜로 보이는 망상은 더 깊은 죄책감에 사로잡히게 했다.
내가 일하고 공부하는 바쁜 엄마여서 그랬을까? 함께 사는 시어머니와 나 사이에서 아이가 혼란스러워서 그랬을까? 죄책감으로 가슴을 치고 또 치고, 아이 몰래 울고 또 울다가도 너무 궁금했다. 왜 엄마가 가짜로 보일까?
한의원을 거쳐, 최면술 한다는 의사를 거쳐, 동네 정신과를 거쳐 간 곳은 소아정신과 전문의원이었다. 응급이라고 했다. 급성 정신증이라 당장 입원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대학병원 소아정신과 병동에 입원했다. 그런데 어느 의사도 왜 엄마가 가짜로 보이는 망상이 있는지 설명해주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그래서 열심히 자료를 뒤졌다. 결국 찾아낸 것이 카프그라(카그라스) 증후군(Capgras syndrome). 가장 가까운 사람이 가짜로 보이는 증상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뇌 손상 환자나 조현병, 치매 환자에게 나타나는 증상.
전전두엽이 완전히 발달하지 않은 소아여서 그런 것인지, 많은 조현병 환자가 발병 전 전구 증상으로 자신이나 자신과 가까운 사람이 낯선 존재로 느껴진다고 했으니 조현병의 전형적인 증상인지. 나는 카프그라 증후군이 궁금했다.
그 질문에 답을 준 사람은 인지신경과학자 라마찬드란(V. S. Ramachandran) 박사였다. 그는 ‘명령하는 뇌, 착각하는 뇌’에서 카프그라 증후군을 자세하게 소개했다. 그에 따르면, 사물을 보고 무엇인지 인지하는 뇌의 시각 경로는 정상적으로 정보를 처리하지만, 그것을 보고 감정을 떠올리는 감정 경로가 뇌 신경세포 손상 등의 문제로 정보를 처리하지 못할 때 부조화가 일어난다. 대상을 시각적으로 인식은 하지만 기대하는 감정의 느낌이 없어지는 것이다. 엄마로 보이지만 엄마에게서 느껴지던 감정이 없는 상황, 이 혼란을 해소하기 위해 눈앞의 상대가 가짜라는 결론을 내리며 합리화한다. 망상은 그렇게 정교화한다.
그렇다. 내 잘못이 아니었다. 내가 나쁜 엄마여서 생긴 증상이 아니었다. 심리적인 문제가 아니었고, 정신분석으로 해결될 것이 아니었다. 이 증상은 인간이 아직 도달하지 못한 뇌의 문제였다. 그것도 뇌의 편도체로 전달되는 신경세포 뉴런의 문제.
인간의 뇌는 약 1천억 개의 신경세포, 즉 뉴런으로 이뤄져 있고, 그 뉴런을 연결하는 시냅스는 뉴런 사이에서 정보를 공유한다. 뇌는 아직 미지의 신체다. 뇌는 단단한 두개골로 둘러싸여 있으며, 치료약물이 직접 전달되기 어려운 장기다. 게다가 뇌는 마음, 개성 그리고 행동을 결정하는 복합적인 자아의 무대다. 이러니 뇌 질환 연구가 어려울 수밖에. 뇌 질환은 오랫동안 의학이 접근하기 어려운 분야였고, 치료제 개발도 더딘 분야였다. 뇌과학이 발달하기 전까지 정신병은 ‘귀신들림’이었다.
1950년대 이후 뇌의 생물학적 원인에 주목한 2세대 항정신병 약물이 개발되면서 정신질환은 치료 가능한 질병, 신체적인 질병, 뇌 질환으로 이해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가장 치료하기 힘든 질병, 가장 오랫동안 지속하는 질병인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병을 아는 것이 중요했다. 도대체 어떤 질병인지, 이 증상은 왜 생겼는지를 아는 것 말이다. 상대를 알아야 대응 전략을 세울 수 있으니까.
카프그라 증후군이 무엇인지를 알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병을 알았으니 이제 치료할 단계. 조현병은 대증요법을 쓴다. 증상에 따라 약물을 쓰고 그 약물에 대한 반응을 보는 것이다. 이 약, 저 약을 써보고 증상을 잡는 약을 쓰게 된다. 부작용은 줄이고 증상을 완화하는 약의 조합이 중요하다. 그래서 나무는 클로자핀을 주 치료제로 쓰게 됐다. 이젠 상대도 알았고 전략도 통했다.
하지만 카프그라 증후군으로 인한 죄책감에서 빠져나오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머리로는 죄책감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죄책감은 치료에 도움이 안 된다고 되뇌지만 마음 깊숙한 곳엔 죄책감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그래서 첫 입원 뒤 1년이 지난 날, 나는 삭발했다. 기도하려고, 나의 두려움과 걱정을 떨쳐내려고. 나무의 증상과 나무를 분리해서 볼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기도하려고.
한편으로는 뇌과학을 공부하고, 한편으로는 기도했다. 이런 이율배반적인 선택이라니. 뇌과학을 공부한 것은 병의 증상과 그 원인을 알기 위해서였고, 기도하는 것은 심리적 안정을 위해서였다. ‘평화를 주소서’라는 기도. 이 둘은 다 필요했다. 과학도, 영성도 정신질환 환자를 돌보는 데 필수다.
결국 나무의 증상이 호전된 다음에야 죄책감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하지만 카프그라 증후군이 무엇인지 알려고 뇌과학을 공부한 것은 증상과 환자를 객관적으로 보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 그리고 돌보는 나를 다치지 않게 하는 데 도움이 됐다. 알아야 그다음을 해나갈 수 있으니까, 안갯속에 있을 때가 가장 불안한 법이니까 말이다.
요즘 나무는 엄마가 가짜라는 말을 더는 하지 않는다. 엄마와 데이트하는 것을 가장 좋아하는 20대 청년, 엄마와 맛있는 것 먹고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하는 청년이다. 카프그라 증후군으로 우리 관계는 무너지지 않았다. 아니 더 단단해졌다. 뇌과학도, 기도도 둘 다 힘이 세다. 증상과 환자를 분리해서 볼 것, 돌보는 나를 잘 돌볼 것, 이 두 가지를 가능하게 했다.
윤서 여성학 박사
*정신병동에서도 아이는 자라요: 16년째 조현병과 동거하는 28살 청년 ‘나무’(가명) 이야기를 어머니 윤서(필명)가 기록한 글. 조현병을 앓는 나무의 시점에서 이지안이 그림을 그립니다.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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