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외국선 ‘임금 체불’ 아니라 ‘임금 절도’” 김 신부님 악명이 높아지는 이유

한국어 교실·노동상담·의료동반 지원하는 ‘김포 이웃살이’…임금체불 등 범죄·차별·인권침해 함께 맞서 싸우기도
등록 2024-06-22 01:10 수정 2024-06-28 07:02
2024년 6월16일 오전 김포 이웃살이에서 한국어 수업이 열리고 있다. 조일준 기자

2024년 6월16일 오전 김포 이웃살이에서 한국어 수업이 열리고 있다. 조일준 기자


“‘먹는다’는 동사는 ‘먹다’가 기본형이에요. 이걸로 말을 만들 때는 ‘먹’만 남기고 나머지는 버리세요. 지나간 일은 ‘먹’에 ‘었다’를 붙여서 먹었다, 먹었어요. 지금 먹으면 먹는다, 먹어요. 앞으로 예정이면 먹을게요, 먹을 거예요. 반대말은 동사 앞에 ‘안’을 붙이면 돼요. 먹다-안 먹다, 좋다-안 좋다.”

한국어 수업도 정성스러운 식사도 ‘무료’

2024년 6월16일 경기 김포시 통진읍에 있는 한 건물 1층과 2층의 교실 곳곳에서 우리말 수업이 한창이었다. 피부색과 모국어가 서로 다른 학생들이 선생님의 말 한마디에 귀를 쫑긋 세웠다. 울타리가 없이 탁 트인 마당의 나들목에 큼직하게 ‘이주노동자지원센터 이웃살이’라고 쓰인 간판이 이곳의 쓰임새를 알린다. 천주교 예수회가 2005년 개소하고도 자체 건물이 없어 여기저기 이사를 다니다가 2016년 예수회 기금으로 연면적 820㎡(지상 210평, 지하 40평) 규모의 건물을 신축했다. 안정호 신부가 센터장, 김주찬 신부가 노동 사목, 오현철 신부가 의료 지원과 재정을 맡는다. 평신도 상근자 2명까지 모두 5명이 센터의 운영과 살림을 꾸려간다. 1층에는 사무실과 로비, 식당, 응접실이, 2층에는 경당(소성당)과 교실 5개, 쉼터 방 4개가 있다.

천주교 예수회가 경기 김포시 통진읍에 마련한 이주노동자지원센터 이웃살이 전경. 조일준 기자

천주교 예수회가 경기 김포시 통진읍에 마련한 이주노동자지원센터 이웃살이 전경. 조일준 기자


매주 일요일 아침이면 삼삼오오 수강생들이 모여들면서 이웃살이 공동체도 활기를 띤다. 한국어 수강생만 약 150명. 오전 10시부터 두 시간 수업을 마치면 점심시간이다. 조금 전까지 교실로 쓰이던 식당에 수강생들이 가득 차고, 배식구 앞에도 줄이 길게 섰다. 식당 입구에는 무지개 그림 바탕에 ‘레인보우 식당’이라고 쓰인 팻말이 붙었다. 다양성의 아름다움을 상징한다.

안정호 신부는 “이웃살이 건물만으로는 교실이 부족해서 인근 통진도서관에서 2개 반(교실), 통진동 성당에서 1개 반을 더 빌렸다. 3개 반은 바깥에서 일요일 오전 수업을 하고, 마치면 여기로 와서 점심을 먹는다”고 말했다. 수업과 식사는 모두 무료다. 강사뿐 아니라 식당 주방에서 음식을 준비하는 이들은 무보수 자원봉사자들이다. 각각 10명 안팎으로 모두 네 팀으로 꾸려진 주방팀은 4주마다 돌아가며 수강생과 교사, 자원봉사자까지 약 200명분의 식사 한 끼를 정성스레 차려낸다. 꼭 천주교 신자가 아니어도 이웃살이의 뜻에 공감하는 시민들이 김포뿐 아니라 서울에서도 찾아와 기꺼이 시간과 재능과 마음을 나눈다. 화·목요일에는 중도입국 자녀들을 위한 한국어 교실도 운영한다. 중도입국 자녀는 결혼이민자가 한국인 배우자와 재혼한 뒤 본국에서 데려온 자녀, 또는 결혼이주자가 한국에서 낳은 자녀를 양육할 형편이 안돼 자신의 본국 가족에게 맡겨 키우다가 데려온 청소년이다.

2024년 6월16일 김포 이웃살이에서 한국어 수업을 마친 이주노동자들이 점심을 먹고 있다. 조일준 기자

2024년 6월16일 김포 이웃살이에서 한국어 수업을 마친 이주노동자들이 점심을 먹고 있다. 조일준 기자


2024년 6월16일 김포 이웃살이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점심 식사를 준비하고 있다. 조일준 기자

2024년 6월16일 김포 이웃살이에서 자원봉사자들이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점심 식사를 준비하고 있다. 조일준 기자


“이주민 자꾸 만나야 편견도 깨져요”

일요일 오후반 한국어 수업 강사인 임명옥(60)씨는 4년 전까지 입시학원에서 국어와 논술을 가르쳤다. “은퇴한 뒤에 제가 잘할 수 있고 의미도 있는 일을 해보려고 한국어 교원 자격증을 땄어요. 마침 성당에 다니는 지인한테 김포 이웃살이에서 외국인 이주민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칠 강사를 구한다는 말을 듣고 찾아왔어요.”

그는 수강생들이 동기를 갖고 자발적으로 오니까 수업 분위기가 좋다고 귀띔했다. “이주노동자들은 일터에서 한국말과 문화를 배우기 어려워요. 한국인 관리자들이 하는 말이 뻔하고, 온종일 이주노동자들끼리 일만 하니까요. 그래서 이웃살이에 오는 건 한국어 학습뿐 아니라 사교와 친목 활동이기도 해요.”

임씨도 처음에는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선입견이 있었다. “김포시에서도 시골 마을로 이사 왔는데, 외국인들이 많아 무서웠어요. 밤에는 아이들에게도 바깥에 나가지 말라고 했죠. 그런데 자원봉사를 하면서 그들을 자주 만나보니까, 그냥 우리랑 똑같은 사람이더라고요. 직접 대면해보지 않으면 편견을 깨기 힘들어요.”

김포 이웃살이의 프로그램은 한국어 교실 말고도 다양하다. 임금체불, 산업재해, 사업장 변경, 권리 구제 등 ‘노동 상담’과, 산모나 미등록 노동자들을 위한 ‘의료 동반’ 지원은 일상적으로 이뤄진다. 새 일자리를 찾거나 심신이 지친 노동자들이 일정 기간 머물다 갈 수 있는 ‘쉼터’도 두 곳에 40~50명 수용 규모로 운영한다. 쉼터는 애초 이웃살이 건물의 방 한 칸을 활용했는데,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게 되자 앞서 신부님들이 기거하다 이웃살이로 옮겨온 뒤 처분하려던 2층 양옥까지 이주노동자들의 임시 보금자리로 내주었다. 일요일에는 필리핀 등 영어권 가톨릭 신자들을 위한 영어 미사도 한다.

매주 토요일에는 다문화가정 아이들이 댄스, 미술, 음악, 체육 활동을 즐기는 ‘꿈터’를 운영한다. 예수회 기금에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지원을 보태 지하층 창고에 방음벽과 흡음재를 설치하고 에어컨까지 갖춘 5인조 밴드 연습실로 리모델링했다. 김주찬 신부가 색소폰을 불고, 베트남·우즈베키스탄·파키스탄·필리핀 등에서 온 결혼이주여성들의 10대 자녀들이 베이스기타, 전자기타, 드럼, 키보드를 맡는다. 김 신부는 “연말에 한국어 발표회를 하는데,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작은 콘서트를 열 계획”이라고 말했다.

2024년 6월16일 오전 김포 이웃살이에서 노동 사목을 담당하는 김주찬 신부가 이주 배경 청소년들을 위한 음악 수업실을 소개하고 있다. 조일준 기자

2024년 6월16일 오전 김포 이웃살이에서 노동 사목을 담당하는 김주찬 신부가 이주 배경 청소년들을 위한 음악 수업실을 소개하고 있다. 조일준 기자


이웃살이는 자체 프로그램 말고도 법무부가 이주민을 대상으로 한 ‘사회통합 프로그램’도 위탁 운영한다. 이 프로그램을 이수하고 시험에 통과하면 한국 체류 자격과 조건이 훨씬 좋아진다. 안정호 신부는 “등록 개시일이 되면 5분 안에 다 끝나버릴 정도로 경쟁이 뜨겁다”고 했다.

2024년 6월16일 오전 김포 이웃살이에서 사회통합프로그램 수업이 열리고 있다. 조일준 기자

2024년 6월16일 오전 김포 이웃살이에서 사회통합프로그램 수업이 열리고 있다. 조일준 기자


한국에 고용허가제로 들어오는 대다수 이주노동자는 단순기능인력으로, 비전문 취업(E-9) 비자를 받는다. 정부가 임의로 지정하는 사업장에 배정되고, 일터 변경이 몹시 까다로우며, 가족과 동반할 수도 없다. 취업 기간은 최대 4년10개월까지만 허용된다. 노동자의 체류 자격 유지에 사실상 전권을 쥔 고용주에게 고분고분해야만 체류 기간 만료 뒤 일단 출국했다가 한 차례 더 같은 조건으로 재입국할 수 있다. 노동력만 빼먹는 사실상 ‘노예 계약’이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반면 숙련기능 전문직 취업(E-7) 비자는 사업장 변경이 자유롭고, 가족을 초청할 수 있으며, 특별한 문제가 없을 경우 2년마다 비자 갱신을 하면서 계속 체류할 수 있다. E-9 비자를 E-7 비자로 바꾸려면 법무부의 사회통합 프로그램을 수료하고 적정 점수를 취득해야 한다. 사회통합 교육은 ‘한국어와 한국문화’(0~4단계)와 ‘한국사회의 이해’ 과목으로 짜였다.

2024년 6월16일 김포 이주노동자 지원센터 이웃살이 사무실에서 센터장인 안정호 예수회 신부가 이주민 사회통합프로그램 교재를 보여주고 있다. 조일준 기자

2024년 6월16일 김포 이주노동자 지원센터 이웃살이 사무실에서 센터장인 안정호 예수회 신부가 이주민 사회통합프로그램 교재를 보여주고 있다. 조일준 기자


이주노동자 ‘임금 절도’ 금액 한 해에만 1200억원

결혼이민자가 1~3년마다 비자를 갱신해야 하는 F-6 비자 소지자도 사회통합 프로그램을 통과하면 영주권이 주어지는 F-5 비자로 변경할 수 있다. 2021년 한국에 온 타이 출신의 결혼이민자 께우(34)는 “일요일마다 인천 집에서 김포 이웃살이까지” 통학한다. “한국어 1단계 공부해요. 한국사도 공부하는데 어려워요. F-5 비자로 바꾸고 한국에서 관광 가이드 하고 싶어요.” 그는 ‘점심은 맛있었냐’는 물음에 “안 먹었어요. 다이어트해요”라며 깔깔 웃었다.

김포 이웃살이의 주말과 일요일은 외국인 이주자들이 고단한 몸과 마음을 달래는 ‘쉼터’이자 꿈을 가꾸고 키우는 ‘꿈터’, 밥상과 친교를 나누고 연대와 일치를 추구하는 ‘코이노니아’ 공동체다. 그러나 이곳 신부님들과 이주노동자들이 일상에서 부닥치는 현실은 거칠고 열악하다. 2021년 이웃살이에 파견돼 노동 사목을 담당하는 김주찬 신부는 그 최전선에서 온갖 불합리함과 차별, 편견과 인권침해에 맞서 싸운다.

“제가 이주노동자들 떼인 돈 받아준 것만 재작년에 약 1억5천만원, 작년에 3억원 정도 됩니다. 전국적으로 보면 통계에 잡힌 것만도 1200억원이 넘어요. 임금은 노동자와 그 가족의 생계가 달렸잖아요. 북미나 유럽 선진국에선 임금 체불이 아니라 ‘임금 절도’로 보고 민사 배상뿐 아니라 형사 처벌까지 가능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노동부에 진정하면 사법경찰관 역할을 해야 할 근로감독관이 사업주의 편에서 거의 뭐 ‘조정’ ‘합의’해서, 체불임금의 60~70% 선에서 끝내버리고, ‘그것도 잘해준 것’이라고 해요. 처음엔 ‘그런가보다’ 했는데, 생각해보니 당연히 100%를 받아야 하고 연체이자와 위자료까지 받아야 맞겠더라고요. 그 뒤로는 노동부에서 중재하려 해도 ‘우린 합의 없다. 100% 안 주면 무조건 형사고소다’, 이렇게 갔더니 이제는 근로감독관들이 저를 미워하는 거예요.”

이때 옆에 있던 안정호 센터장이 “김 신부님이 악명이 높아지고 있어요”라고 거들어 좌중에 웃음이 터졌다. 그는 수도원 수습 시절에 이주노동자 지원 사목을 했던 인연으로 이웃살이 초대 센터장을 맡았고, 한때 재미동포 사목의 소임을 수행한 뒤 다시 센터로 왔다. 안 신부는 “예전엔 우리가 (사건 개요를) 정리해 통역까지 함께 가니 근로감독관이 고마워했는데, 최근 몇 년 새에는 ‘당신들이 노무사나 변호사도 아닌데 왜 개입하느냐’며 밀어내려 한다”고 말했다. “그게 지금 정부가 하는 행태거든요. 우리 같은 이주민 지원단체를 클로저(차단) 시키려 하니까 행정 현장에서도 영향을 받는 거예요.”

윤 정부, E-9 늘리고도 지원 예산 전액 삭감

실제로 윤석열 정부는 2024년 전국의 ‘외국인노동자 지원센터’ 예산(약 71억원)을 전액 삭감했다. 올해 비전문 취업(E-9) 비자 고용허가 규모를 역대 최대인 16만5천 명으로 크게 늘린 것과는 정반대의 역주행이다. 김포 이웃살이 쉼터에 머무는 미얀마 출신 노동자 묘 티하(36)는 2012년에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들어왔다. 2020년에 체류 기간이 만료됐지만 코로나19가 세계를 덮친데다 2021년 본국에서 군부 쿠데타가 벌어졌다. 귀국하면 군부의 징병 대상이어서 9월까지 인도적 체류를 허가받았다. 그러나 그의 출국 기한 유예 허가 통지서에는 ‘취업 불가’ 도장이 큼직하게 찍혀 있다. 당장 생활비가 막막한 그에게 이웃살이 쉼터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정부의 무신경 무책임과 법·제도의 경직성이 곳곳에서 이주노동자를 옥죈다.

김 신부는 “한국 사회가 이주노동자를 인격체로 대하기보다 그냥 도구로 보는 게 문제”라고 짚었다. “이주노동자 정책이 오직 경제 논리로만 가다보니 인권은 무시되고 존중이 결여돼 있어요. 사회통합 프로그램도 언어와 사회, 문화를 기계적으로 가르치는 걸 넘어 타인을 대하는 마인드셋(사고방식·태도)이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웃살이는 한국말이 서투르고 노동자 권리를 모르는 이주노동자들을 위해 2024년 1월1일 ‘필수 한국노동법’ 영상과 온라인 수첩을 여러 나라 언어로 만들었다. 정보무늬(QR코드)를 찍으면 누구나 볼 수 있다. 이웃살이 후원계좌는 농협 351-1184-3584-93.

김포 이웃살이가 이주 노동자들을 위해 여러 나라 언어로 만든 한국노동법 영상 강의와 온라인 수첩의 정보무늬(QR코드). 조일준 기자

김포 이웃살이가 이주 노동자들을 위해 여러 나라 언어로 만든 한국노동법 영상 강의와 온라인 수첩의 정보무늬(QR코드). 조일준 기자


글·사진 ​조일준 토요판 선임기자 iljun@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