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왜 쇼츠의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

한겨레21X한겨레교육 공동기획
[글쓰기 주제: 내가 꼭 지키려 하는 ‘시성비’(시간 대비 성과의 비율)는 무엇인가]
빠른 시간 안에 쉽게 알고자 한 오만함 대신 ‘한가로운 시간’을
등록 2024-04-05 21:51 수정 2024-05-01 14:17
지친 몸에 에너지를 불어넣는 시간을 선물하는 것이야말로 진정 내 몸을 아끼고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지혜가 아닐까. 서울 한강의 나들이객. 한겨레 신소영 기자

지친 몸에 에너지를 불어넣는 시간을 선물하는 것이야말로 진정 내 몸을 아끼고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지혜가 아닐까. 서울 한강의 나들이객. 한겨레 신소영 기자


초등학교 6학년 때의 일이다. 동네 수학학원에서 수업을 듣던 중, 옆에서 난데없이 괴성이 들렸다. 고개를 돌려 보니 옆자리 친구가 토하고 있었다. 난 그대로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 튀긴 토사물은 내 영토를 침범하고 있었다. 책상 위는 물론 책가방까지 젖었고, 평소 예민하고 비위가 약했던 난 한동안 속이 안 좋아 밥을 잘 못 먹었다. 상황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길거리에서 누군가 소란스레 끈적한 가래를 뱉으면, 튀긴 침방울이 내 피부에 들러붙어 뼛속까지 흡수되지 않을까 두려워 멀리 떨어졌다. 청결에 대한 집착은 어린 나를 옭아맸다.

머리가 더러움으로 가득 찰 때

‘빠름~ 빠름~ 빠름~ LTE 워프 올레!’ 요즘 내 심장을 쥐락펴락하는 건, 10여 년 전 버스커 버스커가 유쾌하게 노래한 빠름의 미학이다. 신분은 대학교 졸업을 눈앞에 둔 취준생이요, 장래 희망은 피디다. 악명 높은 언론사 시험.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안에 손전등은 주어지지 않는다. 최대한 많은 것을 최대한 빠르게 머리에 집어넣는 사람만이 동공을 키워 어둠에 적응할 수 있을 뿐. 그래도 다행히 24시간이란 한정된 자원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다. 이 진리에 따라 내 신체는 시간을 허투루 보내기를 거부하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이는 곧 남보다 많은 것을 알아야 한다는 강박과 놓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심어주었다. 어쩌면 난 패트릭 맥기니스가 말한 ‘포모 사피엔스’(놓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지닌 사람)일지도 모른다.

공부에 신물 날 때, 머리 식힐 겸 찾는 친구는 정보성 쇼츠다. 문어 피가 푸른색인 이유부터 스마트폰으로 현미경 만드는 법까지. 호기심 자극하는 주제와 빠르게 바뀌는 현란한 영상들의 조합에 나는 매료된다. 압축된 다방면의 정보를 머릿속에 욱여넣으며 스크롤 내리기를 반복하다보면, 내가 점점 아는 게 많아지는 것 같아 뿌듯하다. 자투리 시간을, 더 과장하면 24시간을 알차게 쓰는 기분이다. 물론 쇼츠가 알려주는 것이 내게 꼭 필요한 정보인지, 내가 무엇을 알고자 하는지는 불투명하다. 그래도 다람쥐가 겨울잠을 대비해 열매를 모으듯, 언젠가 조각난 정보를 유용하게 쓸 때가 오지 않을까.

두 해 전, 한 방송사의 디지털 뉴스 채널에서 인턴과 조연출로 근무하며 80여 개의 유튜브 쇼츠를 만들었다. 최근 포트폴리오를 정리하며 내가 제작한 쇼츠를 오랜만에 다시 볼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예상 못한 충격에 휩싸였다. 분명 내가 취재한 내용인데 새롭게 다가오는 부분이 있었다. 오류 체크를 위해 여러 번 검토한 영상인데, 기억이 불완전하다니. 그럼 지난주에 열심히 본 쇼츠는…? 사실 쉬운 문제다. 지난주까지 갈 것도 없다. 어제 먹은 점심 반찬이 기억나지 않듯, 어제 본 쇼츠 내용도 기억나지 않는다. 빠른 시간 안에 노력 없이 무언가를 쉽게 알고자 한 오만함에 얼굴이 뜨거워졌다.

내가 밥을 잘 못 먹었을 때, 엄마는 매일 밤 내 손을 꼭 잡고 동네를 걸었다. 난 어린 마음에 괜히 투정을 부렸다. 속 메스꺼운데 왜 걸어야 하냐고, 빨리 소화제 먹으면 안 되냐고. 엄마는 명쾌하게 답했다. 머리가 더러움에 대한 공포로 꽉 찼을 땐, 나무와 풀과 꽃의 싱그러움을 찾기 위해 시선을 돌려보라고. 그래야 두려움을 떨칠 수 있다고. 그뿐만은 아니라고. 걷는 과정에서 땀도 나고 소화도 된다고. 그래야 다시 저절로 밥 먹고 싶어지는 거라고. 약이 주는 빠른 효과에만 기댈 순 없다고….

소크라테스가 말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재산

아무리 튼튼한 기계조차 오래 쓰려면 재정비가 필요한 법이다. 소크라테스는 ‘한가로운 시간’이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재산이라고 말했다. 지친 몸에 여유와 에너지를 불어넣는 시간을 선물하는 것이야말로 진정 내 몸을 아끼고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지혜일 테다. 읽고, 듣고, 외우는 것에 지친 밤. 유튜브 앱을 클릭하는 대신, 물병 하나 달랑 들고나와 한강 산책로를 걸어본다. 불빛 아래 아름답게 요동치는 물결들. 그 옆에 깨가 쏟아지는 커플들과 저 멀리 운동기구에 삼삼오오 모여든 어르신들. 느긋한 풍경과 시원한 밤공기에 머리가 맑아진다. 다시 책을 펴도 괜찮은 컨디션이 된 것 같다. 고작 30분의 산책이지만, 그로 인해 얻은 건강한 마음은 더 오래 지속된다. 앞으로의 ‘시’간을 ‘성’공적으로 보낼 수 있게 해주는 나만의 ‘비’법. 드디어 찾은 듯하다.

김나연 

 

*미지의 소리: MZ는 어떻다, 뭐가 다르다… 이런 구구절절한 제삼자의 평가는 이제 그만해주세요. MZ 당사자가 말하는 MZ. 4주마다 글을 공모해 심사 뒤 싣는다.

심사평
- 극단적으로 효율성을 추구하는 비효율적인 나라의 MZ

일곱 살 때 아들은 도미노 게임 마니아였다. 나무막대만을 쓰던 그가 어느 날 책이나 시디(CD) 케이스를 도미노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화장실 변기에서 시작한 도미노는 거실을 지나 부엌으로 갔다가 안방에 가서야 끝이 났다. 그걸 동영상으로 찍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던 그의 얼굴이 지금도 선하다. 스무 살이 넘은 아들은 더는 그런 놀이를 하지 않는다. ‘쓸모없는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는 게 틀림없다.

엠제트(MZ)세대는 구조적 ‘시간 빈곤자’들이다. 허투루 쓸 시간이 없어서다. 드라마나 영화는 2배속으로 보고, 가정간편식(HMR)으로 식사한다. 옷과 운동화는 무인세탁함 원스톱 서비스로 세탁한다. 높은 학점을 받고, 좋은 일자리를 얻으려면 1분1초라도 아껴야 한다. 마침 <트렌드코리아 2024>의 대표 키워드는 ‘분초사회’다.

개인이 효율성을 극대화하면 사회의 효율성도 극대화할까. 그러면 좋을 텐데 현실은 정반대다. 1분1초를 아끼며 비효율적 대학 입학 교육 경쟁에서 살아남은 MZ들은 세계 최장의 노동시간을 자랑하는 한국 기업에 입사해 비효율적 노동에 매달려야 한다. 결혼한 뒤에는 가사와 육아 노동으로 자유 시간은 꿈도 못 꾼다. ‘효율적 인간과 비효율적 사회’, 대한민국은 극단적으로 효율성을 추구하는, 가장 비효율적인 나라다.

2회차 ‘미지의 소리’ 선정작은 김나연씨가 쓴 글이다. 시성비를 삶의 모토로 삼아야 하는 입사준비생으로서 “최대한 많은 것을 최대한 빠르게 머리에 집어넣어야” 하고 “머리 식힐 때 보는 게 정보성 쇼츠”인 자신의 모습을 솔직하고 담백한 톤으로 털어놓는다. 시성비를 좇는 부박한 일상을 구원하는 자신만의 처방도 소개한다. 쓸모없는 것처럼 보이는 시간의 진짜 쓸모, 즉 ‘무쓸모의 쓸모’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통찰력 있는 에세이의 전형이다.

아플 자유도 없이 일하면서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자신의 이야기를 간결한 문장으로 정리한 허효은(필명)씨의 글, 다섯 살 때 처음 피아노 건반에 손을 얹은 이후 서점에 가 악보를 읽는 취미를 가지게 된 걸 고백한 이선재씨의 글, 토스 공부 경험을 소재 삼아 자신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경영할 수 있는지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존재들의 궁박한 처지를 보여준 허윤서씨의 글도 인상적이었다.

김창석 한겨레엔 교육부문 대표·한겨레교육 미디어아카데미 강사

다음 주제: 
내가 예능 프로그램 <환승연애>에 과몰입하는, 혹은 몰입하지 못하는 이유

원고지 10장(2천 자) 안팎

마감: 2024년 5월8일(수) 밤 12시 마감

발표: 제1513호

문의·접수 leejw @hanien.co.kr

원고료 당선작 1편 10만원

한겨레교육 마일리지 10만점 적립
※ 한겨레교육 전강의 적용 가능
※ 마일리지 사용기한 : 적립일로부터 한 달 내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