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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발찌 찬 사장이 말했다 “이러다 내가 죽겠다”

[한겨레21×한겨레교육 공동기획] 부서진 노동자의 몸을 사업주가 느낀다면...구의역 청년의 오지 않은 미래
등록 2025-06-26 22:47 수정 2025-07-01 07:54
생성형 인공지능(AI) ‘퍼플렉시티 프로’에 “장진우씨의 글과 관련한 이미지를 그려달라”는 지시어를 입력해 생성한 이미지.

생성형 인공지능(AI) ‘퍼플렉시티 프로’에 “장진우씨의 글과 관련한 이미지를 그려달라”는 지시어를 입력해 생성한 이미지.


※이 글은 실화가 아닌 상상을 바탕으로 쓴 픽션입니다.

 

찌릿.

“아 따가워 진짜. 이러면 잠을 잘 수가 없잖아.”

잔뜩 상기된 얼굴로 깨어난 A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은 후 휴대전화가 놓인 선반을 거칠게 더듬었다. 예쁜 아이가 활짝 웃는 화면 위에 찍힌 숫자는 새벽 3시를 가리켰다. 익숙한 손놀림으로 다이얼 화면을 띄우고 1번을 꾹 누르며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삭였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 밤만 세 번째였다. “사장님…” 하는 기어들어 가는 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다.

“강 실장, 오늘 밤만 몇 번째야. 이러다 내가 먼저 죽겠어, 내가.”

“죄송합니다, 사장님. 면목 없습니다.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지구-1210의 한국 의회는 10년 전 ‘중대재해처벌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노동 현장에서 사망자가 발생하면 사업주가 법적 책임을 진다는 점에서는 기존과 같았다. 특이한 점은, 법률적 판단이 끝나기 전이라도 혐의가 있는 사업주는 예외 없이 ‘안전발찌’를 착용해야 한다는 조항이었다. 안전발찌는 일종의 에이아이(AI·인공지능) 형벌 도구였다. 현장 노동자가 일정 수준 이상의 위험에 노출되면, 사업주는 전기충격을 받았다.

 

산재 유가족 오체투지에 여론 뒤집히고

위험 수준 평가는 인공지능 기술을 통해 이뤄졌다. 인명 피해 가능성이 있는 현장 노동자에게는 시계 형태의 AI 위험 측정기와 소형 카메라가 지급됐다. 측정기는 심박수, 스트레스 지수, 피로도 등 생리적 상태를 분석해 고위험 노동 수행 가능 여부를 판단했다. 카메라는 동행 여부를 추적해 ‘2인 1조’ 안전 규칙 준수 여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 모든 데이터는 종합적으로 수치화돼 사내 데이터베이스(DB)에 누적됐고, 실시간 연계로 안전발찌 작동 여부가 결정됐다.

물론 반발은 거셌다. 사업주의 인권 침해, 노동자의 개인정보 침해 우려 등 날마다 비판이 쏟아졌다.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수단이 잔혹하다는 이유로 신중론을 펴는 이도 많았다. 수단이 다소 극단적인 건 사실이었기에 여론도 반대쪽으로 기울어갔다.

어느 날인가, 산업재해 유가족들이 국회를 향해 오체투지를 시작했다. 눈가에 반짝이던 유리 조각들이 바닥에 닿는 이마에 부딪혀 산산이 부서졌고, 보는 이들의 가슴에 박혀 피를 냈다. 망자들의 억울함이 심장과 울대를 쳐 애끓는 목소리가 되었다. 모든 정치적 셈법과 경제적 이해관계는 텅 빈 마음의 진공 속에서 질식해버린 지 오래였다. 아들과 딸, 아빠와 엄마를 잃고도 반복되는 죽음의 연쇄 속에, 쓰라리지만 너무나 귀해 도무지 지울 수 없는 기억들이 끝없이 되살아났다. 그것은 주장이나 요구가 아니었다. 제발 살려달라는 애원이었다. 이들의 간절한 호소가 결국 여론을 뒤집었다.

 

사장의 안위 달리자, 헐레벌떡 뛰어온 관리자

법안 공포 초기, 불면증에 시달리던 사업주들이 정부를 상대로 집단소송을 제기하며 혼란을 빚었다. 하지만 인사권자에게 잘 보여 승진을 도모하려는 조직 논리가 현장 단위로 작동하기 시작했고, 노동 환경은 급속히 안전해졌다. 2인 1조가 지켜지지 않아 사장님이 감전되는 날엔 원청 직원이라도 달려나가 공백을 메웠다. 관리 효율을 위해 위험 업무일수록 직고용이 늘어났고, 연간 2천 명대였던 재해 사망자는 10년 새 100명대로 줄었다. 제 손톱 밑의 가시가 가장 아프다. 사용자와 노동자 간 ‘고통의 연대’는 이들을 하나의 운명으로 묶어냈고, 비로소 함께 안전해졌다. 시간이 좀더 흐른 뒤엔 외려 사업주의 안전관리 성과를 조명하는 미담들이 신문과 방송을 뒤덮었다.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워야 할 정도로 바쁘게 일하는 열아홉 청년이 있었다. 구의역에서 홀로 안전문을 고치던 그는, 진입하는 열차에 치이기 직전 사장 지시로 헐레벌떡 달려온 원청 직원에 의해 구출됐다. 그는 얼마 전 어린 시절 꿈이던 기관사가 됐다.

충남 태안의 화력발전소에서 석탄 컨베이어를 관리하며, 동료들의 생명을 위해 노동운동을 하던 한 청년이 있었다. 그는 법안 개정 후 안전해진 환경 속에서 공부를 이어나갔다. 현재는 어머니와 함께 경북 구미에 재생에너지 기업을 세워 성공적으로 운영 중이다.

온 사회가 나서 귀하게 지켜낸 생명은 또 다른 생명을 품는다.

그는 내년 2월, 아빠가 된다.

 

장진우 jjw961122@gmail.com

 

선정하며-내게 가장 필요한 ○○전문 인공지능

 

기자협회보 2025년 6월23일치 기사를 보면 마감을 끝낸 기자들이 저녁도 안 먹고 공부하자고 모이는 교육이 있다. 한국기자협회와 삼성언론재단이 2025년 처음 시행하는 언론인 교육이 그것인데, 그 가운데 가장 인기 있는 강의는 ‘생성형 인공지능(AI)을 활용한 기사 쓰기’라고 한다. 현장 강의에 50명, 온라인 강의에 200명 넘는 현직 언론인이 몰렸다.

AI가 불가역적인 메가트렌드가 된 이래 우리는 너나없이 AI 활용 능력을 키우려 한다. 대체로 개인의 직무 역량을 어떻게 비약적으로 높일지가 고민의 핵심이다. 진보하는 기술을 좇지 못하면 몸값이 낮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제14차 ‘미지의 소리’ 주제는 ‘내게 가장 필요한 ○○전문 인공지능’이다. 엠제트(MZ)세대일수록 AI를 자기계발 도구 정도로 생각할 줄 알았는데 선입견이었던 것 같다. 당선작을 쓴 장진우씨는 위험에 노출된 현장 노동자들을 떠올렸다. 미래의 한 시점을 상상해서 쓴 픽션인데, 개인의 업무 역량을 높이는 AI가 아니라 전체 노동자가 안전한 노동 환경을 만드는 데 기여하는 형벌 전문 AI를 상상했다. 현장 노동자에게는 시계 형태의 AI 위험 측정기와 소형 카메라가 지급돼 심박수, 스트레스 지수, 피로도 등 생리적 상태를 분석해 고위험 노동 수행 가능 여부를 판단할 수 있게 한다. 이렇게 모인 데이터가 일정 수치를 넘으면 고용주가 찬 안전발찌가 작동돼 전기충격을 받는다는 스토리다. 개연성과 핍진성이 살짝 부족하게 읽히는 이야기이지만, 기술 진보에 대한 글쓴이의 공적 접근법과 문제의식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김창석 한겨레교육 미디어아카데미 강사

 

다음 주제: 이재명 대통령을 만나 세 개의 복주머니를 줄 수 있다면, 각각의 복주머니에 들어갈 나의 메시지는 무엇인가

분량 : 원고지 10장(2천 자) 안팎

마감 : 2025년 7월20일 밤 12시

발표 : 제 1574호

문의·접수 : leejw@hani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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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료: 당선작 1편 10만원, 한겨레교육 마일리지 10만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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