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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광장이 좋다

[한겨레21X한겨레교육 공동기획] 목소리 묵살된 내 삶 속 광장… 지치지 않고 발언하는 법을 배우다
등록 2025-01-10 18:05 수정 2025-01-16 16:53

미지의 소리 다음 원고를 모집합니다.

다음 주제 나에게 민주주의란 ○○다

분량 원고지 10장(2천 자) 안팎

마감 2025년 2월2일 밤 12시

발표 제1550호

문의·접수 leejw@hanien.co.kr

※ 응모시 메일 제목은 [미지의소리_이름] 기재, 메일 본문에 [핸드폰번호]를 반드시 기재 부탁드립니다.

※ 원고료: 당선작 1편 10만원, 한겨레교육 마일리지 10만 점

※ 마일리지는 한겨레교육 전 강의 대상 적용 가능합니다.

※ 마일리지 사용기한: 적립일로부터 한 달 내

2024년 12월7일 국민의힘 의원들의 불참으로 12·3 내란 피의자인 대통령 윤석열에 대한 탄핵소추안 의결이 투표 불성립된 직후 여의도 국회 앞 시민들의 모습. 이종근 선임기자

2024년 12월7일 국민의힘 의원들의 불참으로 12·3 내란 피의자인 대통령 윤석열에 대한 탄핵소추안 의결이 투표 불성립된 직후 여의도 국회 앞 시민들의 모습. 이종근 선임기자


“성희님은 의견 없으세요?” “네. 괜찮은 것 같아요.”

아니, 사실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이 흐름은 말해도 묵살할 테니 빨리 넘어가자는 상호 합의다. 이것이 회사 생활의 룰이다.

고등학생 때는 하고 싶은 말을 다 했다. 속옷 색깔을 왜 지정하는 건지. 생리 때문에 야자를 빼려면 왜 증거를 대야 하는지. 몇몇 선생님에게 밉보였다. 어디 감히 학생이 버르장머리 없이 교사한테 대드냐는 대사를 아직도 줄줄 왼다.

광장이 좋다. 두 발로 땅을 딛고 가슴을 활짝 편다. 오른팔을 높이 쳐들고 힘껏 구호를 외친다. 당당하게 내 의견을 말할 수 있다. 열여덟에 만난 나의 첫 광장에서 비로소 사람으로 존중받는 기분이 들었다. ‘피청구인을 파면한다’라는 승리의 한 줄에 가슴이 벅차다는 느낌을 알았다. 이번 내란 사태를 겪으며 촛불로 가득 찼던 광장이 선연하게 떠올랐다.

광장에서 이어지는 호의

그때 광장에 두고 온 나를 다시 만난 곳은 탄핵 집회로 가는 1호선 열차였다. 열차 안은 토요일 오후답지 않게 상기된 사람들로 만원이었다. “내리고 타세요.” “밀지 맙시다.” 사람 많음에 무관심하던 이들이 말을 꺼냈다. 평소 지하철에서 헤드폰으로 귀를 틀어막고 있지만 이날만큼은 동참했다. 내가 이렇게 큰 소리로 말할 수 있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여의도역 인파를 따라 국회의사당대로 왼편에 자리를 잡았다. 세 시가 막 지나고, 사회자의 안내에 따라 탄핵 구호를 삼창하기 시작했다. 내 앞에는 젊은 여성과 유치원생 아이가 있었다. 아이는 낯선 광경이 어색한지 칭얼댔다. 옆에서 노조원 한 분이 다가왔다. 울지도 않고 씩씩하다며 노래 나오면 같이 부르자고 아이를 달랬다. 나도 아이와 나눠 드시라며 가방에서 과자를 꺼내 여성에게 드렸다. 광장에서는 누구나 선뜻 호의를 베풀 수 있고,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다. 뜻을 관철하려면 끝까지 한목소리가 필요하다. 서로 몸과 마음이 상하지 않게 배려하는 이유다.

오후 다섯 시, 탄핵안 표결 본회의가 시작됐다. 뒤늦게 합류한 친구와 함께 춥고 배고프니 빨리 탄핵하라는 돌림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사회자가 국민의힘 의원들이 표결하지 않고 국회를 빠져나갔다는 사실을 알렸다. 부결을 노심초사하던 것이 무색했다. 목이 쉬어라 아우성친 결과가 이런 허탈함이라니. 사람들은 일제히 탄성을 토했고 일부는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벌써 가느냐는 아쉬운 소리도 할 수 없었다. 묵살된 광장에서 각자 ‘중립국’을 찾아 떠날 뿐이다. 소설 ‘광장’의 주인공처럼 말이다.

목소리 내기에 열중할래

나도 그렇다. 사회에서 침묵을 강요당할 때면 유리 파편을 삼킨 듯 괴로웠다. 목 안에 유리 파편이 박힌 채로 다음 말을 삼키는 고통을 안다.

타는 목마름으로 계속 소리칠 수 있게 한 건 다름 아닌 친구였다. 핸드폰이 터지는지 확인하려고 장갑을 벗었는데, 친구가 내 손등을 보더니 너무 빨갛다며 걱정했다. 친구는 따뜻해지라며 양손 사이에 내 손을 포갰다. 정작 그렇게 말하는 친구의 입술이 다 부르터 있었다. 웃음이 났다. 우리는 이렇게 약하고 무르면서 왜 서로 만나면 울지도 않는 걸까. 옳지 않은 걸 옳지 않다고 말하고 싶은 마음 하나로 우리는 서로의 용기가 된다. 나와 친구는 더 머무르기로 했다.

우리는 해산하지 않은 이들의 뒷모습을 따라갔다. 그러자 우리 뒤에도 행렬이 따라붙었다. 우리는 버르장머리 없이 도망간 국민의힘 의원들 이름을 하나씩 외쳤다. 돌아오라고 혼냈다. ‘임을 위한 행진곡’도 부르고, ‘다시 만난 세계’도 불렀다. 생각이 발화로 실천되는 순간은 무척 상쾌하다. 아무 거짓도 장식도 없는 내면의 진심이 모습을 드러내면, 아무리 힘들어도 스스로를 믿고 헤쳐나갈 수 있을 것 같다.

2024년을 탄핵 집회로 마무리한 만큼 2025년에는 ‘목소리 내기’에 열중하고자 한다. 조금 서툴러도 입 밖으로 꺼내서 벼리는 연습을 하려 한다. 회사에서 점심 메뉴 선정에라도 한마디 해야지. 그러다보면 회의에서도 소신껏 의견을 얹고, 광장에서도 지치지 않고 발언할 수 있을 것이다. 끝없이 나오는 뉴스를 보며 혼잣말부터 단련하는 요즘이다.

이성희 grandprix2018@naver.com

선정하며—2025년 딱 1%만 더 나아지고 싶은 것

뭔가를 새로 시작하기에는 늦고 그대로 주저앉기에는 아까운 나이는 몇 살일까. 놀랍게도 이 질문을 들은 사람들은 대부분 제 나이를 꼽는다고 한다. 실제 20년 이상 이 질문을 주변 사람들에게 전방위적으로 던져온 김소희 한겨레21 칼럼니스트는 “스무 살부터 일흔아홉 살까지는 확실히 자기 나이를 선택한다”고 단언했다.

인간은 죽는 날까지 더 나은 삶을 꿈꾼다. 문지방을 넘을 기력만 있으면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상상한다. 새해 벽두 삶에 대한 개선 의지는 반복적으로 정점을 찍는다. 문제는 결심이 결과를 낳지 못하는 데 있다. 습관은 의지로 생겨나는 게 아니다. 조지 버나드 쇼의 묘비명(“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은 우리 모두의 것이다.

대부분의 습관은 무의식의 영역이라고 뇌과학자들은 말한다. 거창한 신년 계획은 필패, 소박한 행동 실천은 필승인 이유다. 요컨대 새해 벽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한국의 명산 100곳 정복’이 아니라 ‘집 앞 산책로 10분 걷기’다. ‘원어민과 자유롭게 대화하기’가 아니라 ‘아리랑티브이(TV)로 뉴스 보기’다. 1% 나아져야 2% 개선의 힘이 쌓인다.

미지의 소리 10회차 주제 ‘2025년 딱 1%만 더 나아지고 싶은 것’의 선정작을 쓴 이성희씨는 ‘목소리 내기’를 꼽았다. 아닌 것을 볼 때 아니라고 말하기는, 구체적인 행동에 속하므로 그의 소망은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열여덟 살 때 처음 ‘광장’을 경험했던 그는 최근 여의도 탄핵 집회에 참석하면서 “조금 서툴러도 입 밖으로 꺼내서 벼리는 연습”을 통해 자기 목소리를 내겠다고 다짐한다.

계엄령 선포와 대통령 탄핵소추라는 잔혹극에서 발견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희망 중 하나가 엠제트(MZ) 세대가 내는 자기 목소리 아닐까. 여의도의 행동이, 용산의 실천으로, 남태령의 연대로 이어지는 걸 우리는 함께 목격했다. 그들은 이제 정치 효능감을 집단적으로 학습한 세대로 변모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일상의 삶 속에 깃든 것이며,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는 명제를 깨달은 그들이 그려낼 ‘다시 만난 세계’가 기대된다.

김창석 한겨레엔 교육부문 대표·한겨레교육 미디어아카데미 강사

※미지의 소리: MZ는 어떻다, 뭐가 다르다… 이런 구구절절한 제삼자의 평가는 이제 그만해주세요. MZ 당사자가 말하는 MZ. 4주마다 글을 공모해 심사 뒤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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