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명 ‘부산 돌려차기 강간살인미수 사건’(이하 부산 돌려차기 사건) 가해자의 신상이 한 유튜버에 의해 공개됐다. 점점 누군가의 신상을 관음하고 싶은 욕구에 자제심을 발휘하는 데 역치가 낮아졌다고 느끼던 참이었다. 어떤 사건이 터졌을 때, 자동 완성 검색어나 연관 검색어로 ‘○○사건 가해자 신상/ ○○사건 가해자 인스타/ ○○사건 가해자 이름 초성’ 등이 뜰 때마다 사건의 끔찍함과 가해자의 괘씸함과 피해자의 고통 그리고 사법부 불신의 몫까지 저울질하며, 그 신상을 열 번 중 서너 번 정도 확인하는 식으로 겨우겨우 사적 제재에 분별심 있는 양심적인 시민 정체성을 유지했다.
그런데 부산 돌려차기 사건 가해자에 대한 유튜버의 폭로를 계기로, 이제 신상은 굳이 그렇게 검색하지 않고도 내 눈앞에 들이밀어지는 정보가 된 것을 알았다. 나는 온라인에서의 신상 공개라는 행위에 특이점이 생겼다고, ‘사적 제재냐 아니냐’라는 차원 너머의 일이 됐다고 느꼈다.
이번 유튜버가 과거 신상 공개자들, 양육비 미지급 부모의 신상 공개 사이트 ‘배드파더스’(Bad Fathers), 성범죄 추정인의 신상 공개 사이트 ‘디지털 교도소’ 등의 운영자와 달랐던 점은 국내 수사망을 피해 국외 서버를 우회하는 등 익명을 유지하지 않고 사법적 처벌을 감수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불법을 행한 불이익보다 신상 공개의 정당성과 이익이 더 크다고 외친 셈이다. 며칠 뒤 한 구의원이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해당 가해자의 신상 공개 흐름에 합세했다는 것은 정치권조차 그렇게 판단한다는 뜻이다.
이번 사건은 피해자 또한 온라인 플랫폼에서 직접 적극적으로 자신의 피해를 알렸다. 사건을 알리기 위한 인스타그램 계정까지 개설해 카드뉴스 등 콘텐츠를 제작하고 사람들과 소통 중이다. 사람들은 그렇게 큰 사건을 겪고도 열심히 활동하는 피해자를 두고 ‘대단하다’ ‘멋있다’는 반응이다. 하지만 이는 온라인에서의 ‘관심도’에 따라 죄목이나 처벌 수준이 달라지는 ‘무관무죄 유관유죄’ 현상 탓에 피해자가 직접 나설 수밖에 없는 열악한 상황에 더 가까워 보인다.
비슷한 시기 일가족 살인 사건의 유가족이라고 밝힌 유튜버 ‘온도니’와 ‘벗방’(진행자가 옷을 벗는 인터넷 방송)의 성착취 피해를 밝힌 한 시민 역시 유튜브에서 신상 노출을 감수하며 피해의 심각성과 가해자 처벌을 촉구했다. 온라인 플랫폼은 광고 수익을 기반으로 하는 사기업이고, 그 플랫폼의 이용자 정체성은 때에 따라 소비자이자 시민이자 콘텐츠 제작자이자 팬이자 인플루언서이자 광고 타깃으로 유동적으로 변한다는 점에서 취약하고 위태로운 수단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피해자들이 공적 기관이나 해결 수단이 아닌 온라인 플랫폼에 몰리고 있다.
신상 공개가 정치적·윤리적 수단이 됐다는 또 다른 사례는 전두환씨의 손자 전우원씨의 활약이다. 그는 기자회견 대신 자신의 SNS 계정에 친인척들의 신상과 자신의 각종 신분증을 공개했고 실시간 중계로 소통했다. 우리의 신분은 사기업이 마련한 ‘계정’에, 정의와 윤리는 플랫폼 자본주의의 이익으로 값비싸게 환원되는 ‘신상 공개’에 의존함을 너무도 잘 아는 자의 행위였다.
사실 요즘 가해자의 신상은 이번처럼 특정 유튜버에 의해서든 사법기관에 의해서든 누가 나서기 전부터 이미 온라인에서 알음알음 공개되는 정보가 돼버렸다. 부산 돌려차기 사건 가해자도 그랬고, 고유정이나 강남 납치 살인사건 가해자들의 신상도 여러 커뮤니티에서 다 퍼진 뒤 공개된 터라 ‘확인 사살’에 가까웠다. 이제 ‘디지털 교도소’는 특정 주동자나 사이트의 문제가 아니라, 일상화된 온라인 공간이 됐다는 신호다.
악(惡)조차 불확실한 시대다. 현대인은 그저 숨 쉬는 것만으로도 노동착취와 기후위기 등 경로를 뚜렷이 파악하기 어려운 부정의와 연루돼 있다. 이런 시대에 범죄자란 사회가 뭉쳐 처단해야 할 확실한 적이 되고, 확실한 정의에 대한 효능감을 준다. 사이코패스나 전과자라면 더더욱 적극적으로 사회에서 도려내기 좋은 존재다. 그래서 ‘엽기범죄 몰아보기’ ‘사이코패스 범죄 1시간 연속재생’ 같은 제목으로 실제 범죄가 콘텐츠화하고, 범죄에 대해 ‘이야기’하는 프로파일러 등이 새로운 엔터테이너로 부상한다.
신상 공개 같은 온라인 자경단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사법부에 대한 시민들의 불신 탓이라는 소리가 나오지만, 오히려 공생관계 같기도 하다. 사회적 반성이나 재발 방지, 교화, 피해 지원보다는 사회적 처벌의 정도와 강도가 ‘정의 구현’이 된다는 점에서 ‘사회의 사법화’ 양상으로 볼 수 있어서다. 이대로라면 사법부는 점점 해당 신상 공개가 공익적 목적에 부합하는지 판단하는 역할만 주로 맡을지도. 그렇다면 ‘교도소의 사이버 민영화’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른다. 점점 복잡해지는 사회갈등에 대한 처벌을 시민들이 알아서 도맡고, 대중의 ‘사이다’ 욕망과 관음적 흥미도 해소되니 말이다.
2016년 무렵 ‘팩트 폭력’이라는 신조어가 떠올랐다. 미국 대선을 기점으로 가짜뉴스와 음모론이 횡행하자, 다양한 입장에 대한 토론이나 숙고보다 그 근거의 거짓 여부를 폭로하는 ‘팩트 체크’로 정치적 논의가 환원돼버린 배경이 존재했다. 이제는 모든 갈등의 해결이 ‘신상 공개’로 환원되는 것 같다.
범죄자를 포함해 신상 공개 행위의 일반화는 사기업의 제재 권력이 일국의 입법부·행정부·사법부를 역전했다는 신호로 봐야 하지 않을까. 신상 공개를 통한 정의 구현에 대항해 우리의 분노를 그저 광고 수익으로 환원하려는 ‘유튜부’(YouTube+府)라는 권력에 우리의 주의를 집중해야 한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대신 ‘존경하는 조회수님’이라는 말이, ‘최대 조회수가 최대 행복’이라는 공리가 등장하기 전에 말이다.
도우리 작가·<우리는 중독을 사랑해> 저자
※참고: <더티 워크>, 이얼 프레스 지음, 오윤성 옮김, 한겨레출판사 펴냄
*청춘의 봄비: 같은 비라도 어디에 내리느냐에 따라 풍경과 수해로 나뉘는 것처럼, 흥미롭지만 누군가에게는 불편할 이야기를 들려주려 합니다.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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