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10월15일 한 패션잡지사가 연 유방암 인식 향상을 위한 자선행사에 참석한 연예인들. YTN 유튜브 채널 갈무리
연예인들이 웃고 떠드는 모습이 사람들의 분노를 부르고 있다. 2025년 10월15일 한 패션잡지사가 유방암 인식 향상을 위한 자선행사 ‘러브 유어 더블유’(Love Your W)를 열었다. 많은 연예인이 참석해 화려한 의상과 미모를 드러냈지만, 찬사가 아닌 비난이 쏟아졌다. 사회적 이슈나 질병, 인권문제 등을 기업이나 단체가 마케팅이나 이미지 개선으로만 이용하는 ‘핑크워싱’(pinkwashing)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행사와 그곳에 참석한 연예인들에 대한 폭발적인 반감의 양상은 정치적 올바름을 가장한 위선 이상의 문제다. 이 행사 자체는 2006년에 시작해 2025년 20주년을 맞았고, 핑크워싱에 대한 비판도 늘 있었기 때문이다.
이 논란의 가장 강력한 도화선으로 지목되는 것은 행사 현장에서 포착된 ‘5초 남짓의 대화 장면’이다. 유명 남자 아이돌과 여자 아이돌이 짧게 이야기를 나누는 영상으로, 조악한 화질이었지만 그 전파(엑스 조회수 546만9천 회)는 강력했다. 이뿐 아니라 다른 연예인들이 서로 눈빛을 교환하거나 옆자리에 앉아 웃고 있는 영상과 사진들도 함께 논란이 됐다.
그러니까 팬들은 이성 연예인 간의 ‘친목’에 노골적인 분노를 드러낸 것이다. 이와 맞물려 가슴을 묘사하는 박재범의 히트곡 ‘몸매’가 유방암 행사장에서 불린 것, 행사 규모와 이력에 견줘 적은 기부액 등이 연이어 문제로 제기됐다.
연예인의 연애에 대한 팬들의 경계는 하루이틀 벌어진 일이 아니다. 하지만 팬들의 불안과 분노는 과거의 ‘유사 연애’ 감정과 질적으로 다르다. 최근에는 유튜브 플랫폼 등을 통해 ‘크리에이터’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과 친밀성이 상품화되고, 여기에 팬이 참여하는 형태가 일반화되면서 방송인을 비롯한 연예인들은 단순한 ‘개인’ 이상의 존재가 됐다.1 특히 아이돌은 팬들의 후원, 응원, 홍보, 영업, 소비 그리고 소통을 통해 “함께 살아지고” 있기 때문에, 개인을 넘어 팬들과 연결된 ‘우리의 존재’, 즉 ‘최애’가 된다. 요즘 팬덤에 그러한 ‘최애’의 친목은 비가시적이어야 하고, 사적 욕망은 비즈니스적 관계 등 집단의 욕망과 일치할 때만 허용된다. 특히 팬들의 참여가 배제된 시상식, 체육대회, 패션쇼 등 오프라인에서의 ‘친목’은 팬들을 배제하고 팬들이 만든 질서를 언제든 무너뜨리는 장으로 받아들여진다. 실제로 2024년 에스파의 카리나와 배우 이재욱이 프라다 컬렉션을 계기로 만나고 열애를 인정한 사건은, 오프라인 행사에서의 친목에 대한 금기와 불안을 가시화했다.
이러한 반(反)친목주의에는 팬과 연예인을 이어주는 ‘팬더스트리’(팬덤+인더스트리)의 가속화가 큰 몫을 한다. 연예기획사는 응원봉·앨범·인형 같은 상품을 출시해 팬이 구매하도록 하고, 그 상품도 사행성을 조장하는 ‘랜덤 포카’(앨범 구매시 가수 포토카드 중 한 장을 무작위로 증정)나, 날로 높아져만 가는 ‘팬싸컷’(팬사인회 자격이 획득되는 가격 기준)으로 그 자본화가 심화하고 있다. ‘버블’이나 ‘위버스’ 앱 등 월정액 구독 서비스를 통해 스타와 사적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팬덤 플랫폼은 소통과 관계도 새롭게 자본화한다.
하지만 팬더스트리의 고비용 구조에 견줘 팬에 대한 대우는 무시에 가깝다. 그중 하나가 연예인 콘서트장에서의 과도한 ‘본인 확인’(티켓 예매자와 실제 입장객의 명의가 일치하는지 확인하는 절차) 문제다. 2025년 7월 밴드 데이식스의 한 팬이 콘서트장에서 공연 관계자에게 수능 신분증으로 인정되는 학생증으로도 본인 확인이 거부되자, 경찰에게 부탁해 공연장까지 동행해 신원확인을 했다가 결국 입장을 거부당한 일이 대표적인 사례다. 엔터테인먼트 업계는 점점 팬심을 위해 높은 비용뿐 아니라 극심한 감정 투입까지 요구하고 있다. 이런 구조는 “아이돌에게 상업적 성공을 위해 개인성을 유예할 것을 요구하고 팬덤 역시 이를 위해 희생하는”, ‘소비자 팬덤’의 부상과 이어져 있다.2
그런데 이 사태가 단지 팬덤의 일로 끝나지 않고 대중의 분노로 번진 이유는 무엇일까? 팬덤 안팎의 규칙 모두를 건드렸기 때문이다. 지금 시대는 점점 생산수단이나 노동, 심지어 명품 소비를 통해서도 자존감을 얻을 수 없다. 대신 대체될 수 없는 ‘집안’이나 ‘사랑받고 자란 티’, ‘외모’가 새로운 ‘행복’ 기준으로 부상하고 있다. 이번 유방암 자선행사는 그러한 외모와 노동소득으로 결코 도달 가능하지 않은 부, 그리고 불특정 다수의 관심을 독차지할 수 있는 연예인의 세계에 대한 불평등을 한눈에 목격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특히 행사장에서 새어 나온 셀럽끼리의 웃음과 교류가 건드린 이 시대의 ‘역린’은, ‘그들만의 세상’이 따로 존재하며 ‘나’는 결코 참여할 수 없다는 뚜렷한 박탈감인 동시에 그런 세상의 존재를 가리는 제스처조차 취하지 않았다는 배신감이다.
모두가 평등하다는 사회계약은 시효가 다했어도, 최소한 ‘모두가 평등하다’라는 ‘척’만큼은 유지돼야 한다는 믿음이 남아 있다. 그런데 이번 유방암 자선행사는 그 ‘척’조차 하지 않았다. 행사 현장을 담은 사진과 영상에서 유방암 인식 개선과 관련된 핑크리본 상징물이나 관심을 촉구하는 발언을 찾아보기 어려웠고, 연예인의 패션이나 인맥을 뽐내는 여느 시상식이나 파티와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연예인은 사적인 자아로서 정치적 의견을 표명하면 안 되지만, 동시에 표명하지 않을 때도 ‘자아가 없다’고 비판받는다. 이러한 팬 혹은 대중의 모순적인 요구는 소비자 팬덤의 시대에 더욱 강화되고 있다.
이러한 연예인들의 ‘자아 없는 이미지’에 대한 비난은 ‘딴따라’라는 연예인 혐오와 이어진다. 이번 논란으로 불거진 혐오의 근거로 ‘최종학력 피자스쿨’이라는 표현에 담긴 학벌주의, ‘그 돈 받고도 스케줄과 악플 때문에 힘들면 그만두면 된다’는 ‘누칼협’(누가 그 일 하라고 칼 들고 협박했냐) 정서는 결국 ‘나는 불편하게 돈 버는데 너는 안 그렇다’라는 좌절감이자 열등감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렇게 많은 욕망과 기회비용을 포기하고 ‘공부’했는데도, 혼자서 수많은 역할을 감당하며 번아웃(탈진)이 오고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도 시민으로서도 존중받지 못하며 버티고 있는데, 누구는 그러지 않고도 ‘몫’을 차지하고 있어 보일 때, 그 불안과 분노는 쉽사리 혐오로 흐른다.
너무 많은 것을 투자하고 노력하고도 그것이 어떻게 되돌아올지 알 수 없을뿐더러 호구라고 무시받는 상태. 그것은 팬덤뿐 아니라 현대인의 기본 정서다. 이번 유방암 자선행사가 자극한 그 ‘계급통’은 그저 연예인 혐오로 해소될 수 있을까? 행사를 개최한 잡지사 편집장의 신상을 털고, 그 회사를 국정감사장으로 불러세운다고 이 분노가 사라질까? 팬덤과 대중 박탈감의 바깥에서 팔짱 낀 채 모든 문제의 원인이 특정인의 허영으로 수렴되는 이 ‘왜곡’을 남의 일인 양 관망하는 ‘권력’은 죄가 없을까?
1. 김수진, ‘위반하는 사회: 실시간 인터넷방송 아프리카TV에서 나타나는 사회분화의 역동’, 2018
2. 김수아, ‘소비자-팬덤과 팬덤의 문화 정치’, 2020
도우리 작가·‘우리는 중독을 사랑해’ 저자
*청춘의 봄비: 같은 비라도 어디에 내리느냐에 따라 풍경과 수해로 나뉘는 것처럼, 흥미롭지만 누군가에게는 불편할 이야기를 씁니다. 4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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