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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브 음모론에서 파헤쳐야 할 진짜 흑막은

‘오컬트 장르’ 된 민희진 기자회견...발언권 없는 아이돌 둘러싼 제로섬게임
등록 2024-05-10 23:04 수정 2024-05-16 11:26
뉴진스 '버블검' 뮤직비디오 속 한 장면. 하이브레이블즈 유튜브 갈무리

뉴진스 '버블검' 뮤직비디오 속 한 장면. 하이브레이블즈 유튜브 갈무리


찢었다, 도파민이 폭발했다, 이윽고 음모론이 들끓었다. 2024년 4월25일, 민희진 어도어 대표의 기자회견장. 민 대표가 모회사 하이브에 대한 경영권 탈취 의혹을 “맞다이”한 120여 분의 시간은 온 나라를 뒤집어놓았다. 민희진이 착용한 파란색 캡모자와 초록색 줄무늬 맨투맨의 ‘완판’, 각종 어록 패러디와 밈(meme), 가수 나훈아가 바지 벨트를 풀어 헤쳤던 ‘세기의 회견’을 갱신했다는 평가, 하이브뿐 아니라 제이와이피(JYP)엔터테인먼트를 비롯한 케이(K)-엔터테인먼트 종목 시가총액 1조3천억원가량 증발 소식까지. 와중에 두드러지는 건 하이브-사이비 세계관의 빅뱅이다.

K팝에서 ‘파묘’로의 변곡점

지금 뉴진스의 여러 뮤직비디오(MV) 유튜브 댓글난과 각종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선한 민희진과 뉴진스’를 음해하려던 “겁나 험한 것”을 파헤치는 음모론이 도배되고 있다. 알고 보니 하이브와 어도어의 경영권 분쟁 배후에 명상기업 단월드가 있었고, 민 대표는 미리 감독한 MV 곳곳에 이러한 메시지를 심어뒀다는 것이다. K팝에서 ‘파묘’(K-오컬트)로의 장르 전환이라 할 만하다. 그런데 이건 조금 이상하다. 여론은 왜 민 대표가 옳다는 강렬한 진실의 느낌 그리고 하이브와 방시혁 의장을 향한 비판에 그치지 않고, 제3의 세력을 소환하는가? 음모론이 그 사회의 부조리와 불안을 반영한다는 오래된 명제를 떠올리며 다시 묻는다면, 하이브-사이비 음모론이 진정 말하려는 바는 무엇일까?

민 대표는 진실이란 팩트 여부가 아니라 듣는 이의 위치성의 문제라는 것을 잘 알았다. 여기에 정교한 거짓의 시대에 떠오른 최신식 진실 포맷, ‘격식 없는 격식’이 동원됐다. 정장 아닌 일상복 차림으로, 다듬어진 논리를 무시하고 비속어와 은어라는 ‘저잣거리 언어’로, 엔터 업계 관계자보단 적폐를 고발하는 ‘팬덤의 입장’으로, 배임 모의에서 ‘번아웃 온 직장인의 농담’으로, 배신자가 아닌 ‘표절 피해자’로, 계약권 해지 시도를 ‘최애의 엄마’ 마음으로 대중과 거리 감각을 초밀착했다. 즉 ‘민희진=뉴진스=대중’이라는 빙의(憑依)를 해냈다. 속세를 견디는 국민의 한을 풀어주는 이 ‘씻김굿 회견’에서 무복(巫服)은 푸른색 갓과 초록빛 저고리요 무구(巫具)는 생수와 마이크이고 선임 변호사들의 한숨은 조무(助巫)였다. 이는 도파민적 합일의 감각을 주었고, 동시에 폭력적이었다.

민 대표는 법적 진위와 사적 이익 다툼이라는 상식적이고 전통적인 진실에 맞대응하지 않았다. 해명하지 않음으로써 성공적으로 해명했고 TPO(시간·장소·상황)를 무시함으로써 TPO를 지켰다. 이렇게 기존의 상식과 진실의 세계가 비틀림으로써 기이해진 세계를 어떻게 다시 매끄럽게 만들 것인가? 또 내부자끼리 나눈 카톡 대화 공개로 꽁꽁 은폐돼 있던 엔터 업계의 적나라한 내장도 목격할 수 있게 됐지만, 오히려 눈이 멀었다. 이 너무 구체적인 (그러나 조각난) 정보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또 팬으로서 아이돌이 노골적으로 상품으로 다뤄진다는 진실을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 하이브와 방 의장을 ‘악’으로 지목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더욱 거대한 배후가 존재한다!

하이브뿐 아니라 타사 시가총액도 증발했다는 건

이러한 비판적 에너지를 작금의 음모론이 품게 됐다. 하이브-사이비 연관성을 파헤치는 누리꾼들은 (숱한 반박의 근거를 간과함에도) 마냥 비이성적이기보다 근사한 이미지와 퍼포먼스 이면에 속사정을 겪고 있던 민희진과 뉴진스, 나아가 K엔터 자체를 낯설게 바라보고 지지하려는 마음에 참여하고 있기도 하다. 음모론 주장에 대한 ‘ㄷㅅㅂㅈ’(댓삭방지)라는 댓글 실천은, 어른들의 세상은 혼란스러운데 MV 속 아이들의 세계는 너무 해맑은 간극 속에서 더더욱 K팝을 지키는 팬이자 시민으로서 집단적인 소명을 띠고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음모론의 기이하고 소름 돋는 감각, 은폐된 진실을 추적해나가는 의지를 아리아드네의 실처럼 이용하되 결국은 끊어내야 한다. 결국 이 기이함은 어떤 거대한 흑막보다도 ‘K엔터 산업 리스크’라는, 우리 자신의 문제와 연루돼 있기 때문이다. 민 대표의 기자회견 이후 하이브뿐 아니라 JYP엔터테인먼트를 비롯한 엔터테인먼트 종목 시가총액이 1조3천억원가량 증발했다는 건, K엔터 산업 전체가 공유하는 문제을 시사한다.

아이돌 업계와 음모론은 빛과 어둠의 관계였다. 에스엠(SM)엔터테인먼트와 비밀결사체 일루미나티의 연관설이나 1세대 아이돌 서태지와 아이들의 노래 속 ‘“피가 모자라” 괴담’이 대표적으로 그랬다. 순수하면서도 폭력적이고, 완벽하면서도 프래자일(취약)하고, 어디선가 끊임없이 ‘공급’되는 아름다운 아이들과 끊임없이 ‘밟혀야 하는’ 매혹적이고도 두려운 아이들의 세계를 다루는 업계를 반영한다. 특히 소녀는 금기이자 성적 에너지가 폭발적인 존재로 여겨지는데, 이들을 콘텐츠로 다루는 데는 전문적인 반면 인권 면에서는 한참 미숙한 어른들의 세계 자체가 괴담의 구조를 닮았다.

최근 이런 구조적 모순은 아이돌 업계가 ‘K팝 버전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릴 만큼 대내외적으로 급속도로 팽창하며 가속됐다. 특히 2023년 방탄소년단(BTS) 리더 아르엠(RM)이 스페인 매체 <엘파이스>와 했던 인터뷰는 상징적이다. “(K팝의) 젊음과 완벽성, 과도한 훈련에 대한 숭배”에 관해 질문받은 것이다. 불어나는 산업 그리고 복리로 불어나는 윤리적 질문에 “빠르고 격렬하게 일어난 모든 일엔 부작용이 있는 법”이라는 답의 시효가 동나고 있다. 우리는 이미 많은 고통과 심지어 죽음들을 목격해왔다. 그런데 지금 민 대표의 기자회견 이후의 음모론은 K엔터의 문제를 민희진-방시혁이라는 개별 영웅-악의 문제로, 아이돌 간의 다양한 공존을 (‘진짜’와 ‘아류’라는) 제로섬 게임으로 더더욱 뒤틀어버렸다.

‘대기업 여돌’은 세상이 무너져도 춤을 춘다

우리가 지금 당장 주목해야 하는 현안에는 무엇이 있을까? K팝 뉴스레터 <편협한 이달의 케이팝> 발행인 일석의 의견을 들었다. 그는 하이브-어도어 갈등 사태에서 “아이돌 당사자들한테 발언권이 없다는 점”을 지적하며 “어릴 때 더 예뻤다”는 발언을 들은 뉴진스 멤버, 그리고 표절 논란 중에도 후속곡 활동을 하게 된 그룹 아일릿 모두를 염려했다. 지금 여기 우리가 파헤쳐야 할 시급한 진실은, 법적 잘잘못을 따지는 일이나 K-다빈치코드적 흥미 혹은 이들을 바보라고 낙인찍는 것보다 일석의 말처럼 “세상이 무너져도 무해한 표정을 지으며 ‘아방한’ 춤을 춰야 하는 걸그룹의 현실, 여기서 더 큰 문제는 심지어 그나마 나은 여건일 ‘대기업 여돌’이라는 사실”과 같은 것들이다.

도우리 작가·<우리는 중독을 사랑해> 저자

*청춘의 봄비: 같은 비라도 어디에 내리느냐에 따라 풍경과 수해로 나뉘는 것처럼, 흥미롭지만 누군가에게는 불편할 이야기를 들려주려 합니다.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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