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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성우들’이 자꾸 친해지고 싶다 한다

[외로움 놀이] ‘가짜 사랑’이라는 팬데믹, ‘연애상도례’ 적용되는 로맨스 스캠 대책을
등록 2023-11-11 13:05 수정 2023-11-15 08:00
필자의 인스타그램 계정으로 온 낯선 계정의 메시지. 

필자의 인스타그램 계정으로 온 낯선 계정의 메시지. 

해당 계정 닉네임을 인스타그램에서 검색하면 아이디만 다르고 프로필이 같은 계정이 수십 개 나온다. 도우리 제공

해당 계정 닉네임을 인스타그램에서 검색하면 아이디만 다르고 프로필이 같은 계정이 수십 개 나온다. 도우리 제공

“안녕하세요~ 친해지고 싶어서 디엠 드려요^^” 내 인스타그램에서는 ‘디지털-백마 탄 왕자’를 자처하는 계정들이 주기적으로 말을 걸어온다. 몇 주 전에는 벚나무를 배경으로 한 해사한 얼굴의 ‘현성우’라는 남자로부터 디엠(DM·일대일 메시지)이 도착했다. 그의 프로필 사진을 눌러 확대해서 봤다. 음, 잘생겼군. 그러곤 바로 차단했다. ‘이런 남자가 갑자기 말을 걸 리가 없다는 경험칙 + 도저히 숨겨지지 않는 (젊은이 흉내를 내는) 중년 남성의 말투 = 사기’라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사귈 듯 가장해 호감을 산 뒤 돈이든 몸이든 갈취하려는 ‘로맨스 스캠’(Romance Scam) 말이다. 소름 끼치게도 며칠 뒤 현성우씨가 나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아이디만 다른 채로. 검색해보니 현성우씨는 수십 명 존재했고, 계정마다 여자들‘만’(!) 1천여 명씩 팔로하고 있었다.

로맨스 산업 vs 로맨스 스캠

파라다이스그룹의 혼외자를 가장한 전청조씨가 벌인 로맨스 스캠을 둘러싼 뉴스로 연일 시끄럽다. 사건 당사자들의 내밀한 속사정이나 과거사는 물론이고 관련 행적이 밈(Meme)으로 소비 중이다. 그럴수록 부각되는 것은 로맨스 스캠 대상자의 미숙한 판단력이다. 로맨스 스캠 목적의 접근을 분별하거나 그것에 당하지 않기 위한 지침도 여기저기 공유된다. 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가 생긴 이래 여자로서 받아왔던, 이제는 너무 익숙해서 문제의식조차 무뎌진 스캠 DM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분명 로맨스 스캠은 그저 사적인 일이 아니며, 몇 가지 지침을 외우고 정신을 차리자는 다짐으로만 피할 수 없다는 것도.

사람들은 로맨스 스캠 피해자에게 ‘그렇게 외모가 뛰어나고 재력이 많은 사람이 당신에게 접근할 리 없지 않냐’며 자기 분수를 알지 못한 탓이라고 손가락질한다. 일확천금처럼 ‘일확천애(愛)’를 노렸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랑은 종종 허위 매물처럼 우리 앞에 나타나지 않던가. 대체로 끼리끼리 만난다고는 해도, 관계를 맺는 일에는 재무제표처럼 매력 자본이나 감정의 자산과 부채를 셈할 수 없는 영역이 항상 남기 마련이다. 특히 사랑의 취향은 물론 가치관과 계급이라는 필터 버블(Filter Bubble)을 넘어서게 하는, 전복적이면서도 파괴적인 가능성이 잠재해왔고, 그런 사례를 주변에서도 찾을 수 있다. (내 경우를 들자면 가장 오래 사귄 남자친구가 귀갓길 만원 지하철 안에서 만난 낯선 사람이었다.)

또 과연 연애와 로맨스 스캠의 경계를 뚜렷이 그을 수 있는가? 사람들은 사랑 산업에 기꺼이 지갑을 열어왔다. (벌써 요즘 편의점과 빵집에서 광고하는) 빼빼로데이 등 각종 기념일과 데이트 코스, 웨딩업체가 요구하는 각종 옵션…. 사랑 산업의 시장 규모와 로맨스 스캠에 빼앗긴 피해자들의 돈의 규모, 무엇보다 마음의 크기를 비교하면 과연 얼마나 차이가 날까.

구독형 인간관계 시대, ‘영구 구독’을 약속하는 사랑

미국의 비평가 토드 맥가원은 <자본주의와 욕망>(Capitalism and Desire)에서 “데이팅 서비스가 판매하는 상품은 식료품점의 상품보다 훨씬 값지다”고 이야기한다. 완전한 만족이라는 환상을 담고 있기에. 예를 들어 최고급 일식집에서 오마카세를 맛본다 해도 다시는 스시를 욕망하지 않을 만큼 영속적으로 만족하리라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많은 이가 ‘영혼의 반쪽’을 찾으면 사랑 대상에 대한 욕망이라는 문제가 영원히 해소되리라 믿는다는 것이다. 맥가원은 이 차이가 “자본주의에서 사랑이 중추적 역할을 맡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한다. 사랑이란 그저 여러 상품 중 하나인 것이 아니라 중심이 되는 상품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모든 상품은 사랑 대상을 본뜬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그러니까 로맨스 스캠은 사치재 중에서도 사치재, 즉 사랑을 취급한다. 친구 대여 서비스가 등장하는 등 인간관계가 점차 오티티(OTT) 구독형 서비스처럼 변해가는 시대에, 우정과 성애와 의리 등 모든 친밀성과 경제적 헌신까지 한데 모아 ‘영구 구독’을 약속하는(혹은 약속하는 듯 보이는) 사랑은 하이엔드(High-end)급 명품보다 희귀하고, 그만큼 갈망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특히 여성에게 그렇다.

최근 한 연구에 따르면 로맨스 스캠의 피해자는 70%가 여성이다(한국디지털포렌식학회 2023년 3월 발표). 여성만 유독 이 각박한 세상에서 정신 차리지 않은 탓일 리 없다. ‘사랑 사회학의 대가’라는 에바 일루즈는 일찍이 현대의 낭만적인 연애가 여성에게 왜 더 취약할 수밖에 없는지 지적했다. 사랑이 여성 자아의 정체성을 인정받는 핵심 수단이 됐지만, 사귀는 데 핵심적 매력이 (너무도 불안정하고 쉽게 변하는) 성적 매력이 된 구조 때문이라는 거다. 굳이 학자의 입을 빌리지 않더라도, 많은 여성에게 사랑이 얼마나 절실한 문제일 수밖에 없는지, 주변 여성들의 썸과 연애와 이별을 상담하며 같이 눈물짓거나 분노하거나 때때로 그 여성들에게조차 질려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에서 로맨스 스캠에 제대로 대처할 수 있는 법제도가 마련되지 않고 있다. ‘로맨스’이기에 사적인 일이어서, 기망이 아니라는 논리다. 친족 간 재산범죄는 가부장이 통제권을 가지도록 한 전근대적 법에서 유래한 친족상도례(親族相盜例)처럼, 일종의 ‘연애상도례’가 적용된다. 이렇게 ‘로맨스’ 형태가 결부된 여타 범죄들, 데이트폭력이나 스토킹범죄 모두가 그 심각성을 사회가 깨우치는 데 오래 걸린 이유다.

‘핵개인’ 시대에 더욱 창궐할 사기꾼들

누군가가 나에게 ‘사랑한다’고 속삭일 때, 이 문장의 목적어가 ‘오직 나’일까 ‘고객님’일까 끊임없이 의심할 수밖에 없는 세상이 돼간다. 나 혼자 자립해서 잘 살 수 있다는 ‘핵개인의 시대’에 대한 믿음이 커질수록, 아이러니하게도 로맨스 스캠 사기꾼은 피해자를 갈취할 ‘로맨스 각본’을 손쉽게 써낼 수 있다. 나만은 그 피해 당사자가 되지 않으리라는 기만과 착각에 먼저 거리를 두고, 우리가 마음 놓고 사랑할 사회에 대한 방안을 진지하게 고민할 때다.

도우리 작가·<우리는 중독을 사랑해>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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