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뒤쫓으려고 몇 걸음 뛰었다. 혼났다. 내 앞에서 마주 오던 말들이 흠칫 놀란 것이다.
“지금은 망아지들이 들어오는 때라 다들 예민해요.”
말의 시야는 350도. 인간보다 볼 수 있는 구간이 넓은 만큼 주변 자극에 더 민감하다. 특히 마장이 익숙하지 않은 망아지는 어떤 돌발 행동을 할지 몰라, 망아지들이 갓 들어오는 시기엔 다들 긴장한다고 했다.
“평소에는 우산도 안 들어요. 말들이 오해할 수 있으니.”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경마장을 안내해준 이가 말한다. 인터뷰하러 온 이를 배려해 우산을 챙겼지만, 다른 날엔 비가 오면 그냥 맞는다고.
마방에 걸린 화이트보드에 말들의 스케줄이 빼곡하게 적혔다. 이곳 경기도 과천 경마장(‘렛츠런파크 서울’)에만 경주마 1천3백여 마리가 있다. 4주마다 경주에 나간다. 그 하루를 위해 내내 훈련한다. 훈련이라 하지만 노동의 시간이기도 하다. 일은 많고, 경마장은 넓고, 말을 놀라게 하지 않기 위해 움직임을 최소로 줄여야 하니 경마장 사람들의 보폭이 남다르다. 잰걸음을 놀리거나 반대로 아예 걸음을 크게 해서 걷는다. 이 사람들은 자신의 걸음걸이를 알고 있을까. 그런데 23년차 마필관리사 성상현(47)씨는 이런 말을 한다.
“저는 사람들 볼 때 걷는 걸 유심히 봐요. 보행 상태를 보죠. 저 사람 어디가 안 좋네. 말 자세를 하도 보니까 버릇이 된 거예요.”
자세가 반듯해야 뛰는 데 무리가 없으니, 그의 눈은 늘 말의 걸음걸이를 주시한다. 마필관리사는 어린 말을 경주마로 훈련하는 사람이다. 경마장엔 말의 주인인 마주, 말과 함께 경기를 뛰는 기수, 경마의 감독 역할을 하는 조교사, 그리고 마필관리사가 있다.
모두가 말을 경기장에 올리기 위해 움직이지만, 마필관리사는 말 가까이에서 생활 전반을 케어하는 사람이다. 말이 지내는 구사를 관리하고, 먹이를 챙기고, 목욕시키고, 치료하고, 재활을 돕고, 안장 등 장구를 체크하고, 정기검진을 받게 하고, 훈련을 한다. 이 순간 말의 상태와 기량에 맞는 적절한 지원과 훈련이 무엇인지 판단한다. 그러니 몸을 보고 자세를 보고, 눈을 본다.
“시골 출신이라 동물은 늘 가까이했어도, 말은 처음 봐서. 여기에 와서 말을 처음 접하고 좀 당혹스러웠죠. 말이 위험하기도 하고요. 안전사고도 많이 나요. 이 개체를 접해보지 않았으니까, 모른다는 두려움이 컸던 것 같아요.”
마장에서 가장 많이 들은 주의사항은 말 뒤쪽에 서 있지 말라는 것이었다. 뒷발에 차일지도 모른다. “말은 초식동물이라 자신을 보호하려는 습성이 있어요. 그러니까 자기도 모르게 차는 거예요.” 말 한 마리 무게가 500㎏을 가볍게 넘는다. 인간이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 말이 위험한 것이 아니라, 말을 길들이는 과정에서 생기는 위험이다. 모른다는 두려움도 이 동물을 길들여야 하는 위치에서 생기는 막막함과 두려움이겠다.
“이 일을 계속해도 되나? 이 일이 과연 내 일인가? 그런 생각을 많이 했죠.”
마사회 안에는 늘 응급차 두 대가 대기해 있다. 이곳 과천에서는 한 해에 100여 명이 응급차로 병원에 이송된다. 마필관리사와 기수를 합치면 550여 명. 5명 중 1명꼴이다. 그러니 입사 초반, 많이들 떠난다.
“그것 말고도 새벽에 쉬지 못하니까. 주말에도 나와야 하고.”
지금은 출근 시간이 고정됐지만, 몇 년 전만 해도 해가 뜨기 전에 말을 돌보는 것이 상식처럼 여겨져 계절별로 출근 시간이 달랐다. 요즘도 아침 6시면 출근한다.
“진짜 못 다니겠다 싶었는데, 마필관리사는 기승자와 비기승자로 나뉘어요. 기승자는 말을 타고 같이 훈련하는 역할을 해요. 기승자가 되려면 교육이랑 실습, 훈련을 많이 받아요. 교육받으면서 ‘아, 말이 이런 것이구나’, 그때부터 흥미가 생겼던 것 같아요.”
18살에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고3 현장실습생이었다. 이후 이십 대 중반까지 제철소, 제본소, 제과업체 영업직 등 많은 일을 거쳤다. 동물을 대하는 직업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어려웠는데 결국 그 때문에 오래 다니게 됐다.
“마력이 있는 거 같아요. 내가 한 발 다가가면 한 발 물러서고, 한 발 물러서면 한 발 다가오고. 밀당이라고 할까요? 말이 지닌 매력이 있어요.”
관계니까. 그의 노동은 어떤 방식으로든 한 생명체와 관계를 맺어 수행하는 일이니까.
“사람이 다 다르듯이, 말도 다 달라요. 한번 믿으면 한없이 믿어주는데, 한번 거부감을 느끼면 오래가기도 하거든요. 사람이 어떻게 다가가는지에 따라 관계나 반응이 다 다른 거죠.”
안 그래도 그에게 갓 들어온 망아지가 맡겨진 참이었다. 태어난 지 두 해가 된 말이라고 했다. 어린 말은 제주목장 육성훈련소에서 키워졌다가 2023년 4월 이곳으로 왔다. 아침 7시 ‘조마삭 운동’(훈련되지 않은 말을 마삭줄을 이용해 운동시키는 것) 시간, 망아지는 원형 훈련장을 따라 둥글게 걷는다. “정해진 길로 걷는 거. 이게 얘네에겐 어려운 일이에요.” 길이 익숙해질 때까지 한참을 돈다. 넓은 평지에 펼쳐진 트랙을 줄 맞춰 뛰는 일도 말에겐 쉬운 일이 아니라고 했다.
“말은 결코 직선으로 달리지 않아요.”
그야 말은 줄 그어진 곳 없는 평원을 뛰는 동물이었으니까.
“말 자체가 뛰는 습성이 있어요. 자기들 보호 본능이거든요. 그런 말에게 지금은 아니야, 참아야 해. 참는 법을 알려주는 게 훈련이지요.”
훈련은 빨리 뛰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합을 맞춰 천천히 속도를 줄이는 것부터 시작한다. 마장에서는 이를 ‘순치한다’고 했다. 동물을 길들이는 일. 본능을 줄이고 사람을 따르게 하는, 그리고 경마 시스템에 말의 속도를 맞추는 과정. 이 과정에 사람의 노동과 기술이 들어간다.
“이때 마필관리사가 그냥 말 위에 타고 있는 것 같지만 손, 음성, 체중을 사용해서 계속 자극을 주는 거예요. 자극을 주면서 교감하며 달리는 거예요. 제 손 느낌을 이 친구가 알죠.”
재갈 끈을 당기면 서고, 옆구리를 차면 달리는 것이 아니다.
“속도를 낮출 때도 30킬로에서 20킬로로 낮추는 게 아니라, 29에서 28로, 28에서 27로. 몸을 뒤로 당겨 올라탄 사람의 체중을 줄여서 신호를 보내는 거거든요. 체중이 뭐 얼마나 달라지겠어요. 1~2킬로 미세한 차이겠죠. 그걸 말이 알아채게 하는 거.”
이런 일이 익숙하지 않은 어린 말일수록 더 숙련된 이와 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더 부드럽게 다뤄야 하니까요.”
재갈이 닿는 잇몸 쪽 피부는 연하기 때문에, 초기에 힘 조절을 못하는 관리사를 만나면 어린 말들의 피부가 딱딱해진다고 했다. 그러면 나중에 기수나 마필관리사가 더 많은 자극을 줘야 소통이 가능해진다. 서로에게 힘든 일이다. 적은 힘으로 말과 소통하는 것, 이것이 기술이다.
망아지가 훈련을 시작해 경주마가 되는 데 걸리는 기간은 3~6개월. 그렇다면 사람은 마필관리사가 되는 데 어느 정도 걸리나.
“입사야 누구든 할 수 있지만, 신마를 받아 훈련해서 주행 검사에서 합격하고 경주에 첫 출전을 했을 때, 그때 ‘이제부터 너는 경마인이다’ 하죠.”
그 기간이?
“5년 정도 걸리는 거 같아요. 그게 또 끝은 아닌 게, 제가 입사했을 때 한 선배가 그랬어요. 10년 지나고 이야기하자.”
10년쯤 지나야, 말에 관해 이야기 나눌 수준을 갖추게 된다는 우스갯소리다.
“말은 다 다르거든요. 수많은 케이스를 봐야 해요. 10년은 말을 돌봐야, 어떤 말을 맡겨도 이 말을 케어할 수 있겠구나 싶어지죠. 경주에 나간다는 종착역은 같지만 거기에 도달하는 방식은 다 다르기 때문에. 경험으로 이것저것 해보는 거죠. 매 순간 판단하고.”
같은 문제가 발생해도 말의 특성에 따라 전혀 다른 해결책이 필요할 때가 있다. 유독 경쟁심이 불타는 뜨거운 말들이 있다고 했다. 그런 말에게는 차분한 관리사가 필요하다. 경쟁을 좋아하지 않는 순한 말도 있다. 그럴 땐 여러 말과 함께 달리게 하면서 다른 말들을 아주 작은 차이로 지거나 이기게 한다고 했다. 그렇게 서로 맞춰가며 말에 대해 알아갔다. 더 알고 싶었다. 그래서 이곳에 남았다.
요즘은 보수교육이 늘어났지만, 예전에는 기술 배우기가 참으로 어려웠다.
“기승 자격증을 따고 가도 말을 태워주지 않는 일도 많았어요.”
다들 바쁘기도 했고, 막내 관리사의 실력이 늘어 잔심부름할 사람이 사라지는 게 싫기도 했을 것이다.
“새벽 4시 이럴 때 출근하던 시절인데, 저는 2시30분에 와서 혼자 말을 탔어요. 아무도 모르게. 그렇게 타고 들어와서 말을 닦아 마구에 넣고. 남들 출근하면 그때 온 것처럼 일하고.”
기능을 빨리 익히고 싶어서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좋았다. “말과 함께 달리잖아요.” 말발굽 소리를 따라 자신의 심장 박동도 빨라지는 것이 좋았다. 그런 상현씨에게도 슬럼프가 찾아올 때가 있다.
“내가 조금만 뭘 더 해주면 저 말이 확 좋아질 게 눈에 보이는데, 그게 뭔지 모르겠고 안 될 때. 말한테 미안하죠. 내가 조금만 너를 더 정확히 파악하면 확 성장할 텐데. 우리끼린 ‘손바꿈’하면 말 기량이 늘어난다고 하거든요. 말이랑 더 잘 맞는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거죠. 그래야 하나 고민하던 때도 있고.”
어떻게 슬럼프를 극복했냐고 물으니 기본에 충실하려 했다고 답한다. 더 많이 물어보고, 더 많이 자세를 살피고, 체력관리도 꾸준히 한다. 말이 아니라 마필관리사 그 자신이 하는 일이다.
“말 타는 사람이 말의 움직임에 못 따라가면 말이 힘들어요. 말을 잘 탄다는 건 최대한 말의 움직임에 방해되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러려면 자세가 좋아야 해요.”
운동하고, 자세를 점검하고, 몸을 가볍게 만든다. 말을 타야 하니까.
“심지어 자세가 좋아야 슬럼프에서 빨리 돌아와요. 기본이 충실한 사람은 슬럼프에 빠져도 원인을 빠르게 파악할 수 있어요. 기본이 약하면 헤어나오기 어려워요.”
23년을 새벽 출근 했다. 앞서 언급한 응급차를 상현씨 또한 탄 적이 있다. 어깨 양쪽 근육이 파열됐다고 한다. 병실에 누워서 그는 생각했다. 말 보러 가고 싶다. 그가 경마 경기의 발상지인 영국으로 3개월 연수를 다녀와 그곳에서 읽은 경마 관련 소책자들을 자체 번역해서 책으로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영국은 경마에 대한 인식이 우리랑 완전히 다르거든요. 우리는 흔히 경마장 하면 도박부터 떠올리지만, 영국에선 경마가 경기이자 레저이고 문화죠.”
마장에 있는 동안 이런 말을 여러 차례 들었다. “저희 관리사들은 마권을 살 수가 없어요.” 경마장 종사자이기에 승마 투표권을 살 수 없다는 당연한 이야기를 굳이 하는 까닭은 자신들의 일터가 가진 이미지를 알기 때문이다. 직업의 자부심은 개인의 기능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것을 알기에 상현씨도 외국 경마장에서 책자를 가져왔을 테다.
“문화로 여겨지니까. 외국에선 말이 단지 승률이 아닌, 말 자체의 고유한 특성으로 사랑받는 것 같더라고요.”
경마장과 훈련장이 분리돼, 그곳에서는 말도 여유가 있고 기수와 마필관리사도 잰걸음을 놀리며 시간에 쫓겨 일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공간만일까. 직고용 형태와 노동의 대가를 지급하는 방식 또한 일하는 사람들의 걸음을 늦출 것이다. 한 예로, 과천 경마장의 마필관리사들은 개인사업주인 조교사와 개별로 고용계약을 맺지 않는다. 이들은 서울경마장조교사협회에 집단 고용돼 있다. 이것은 다른 경마장에 비해 안정된 일자리를 보장했다.
경마를 둘러싼 승률 비리와 임직원의 부정 수령, 높은 산업재해 사고율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떠올리며 경마장에 들어섰다. 마권을 움켜쥔 사람들로 가득 찬 주말의 경기장이 아닌, 누군가의 일터인 평일의 마장에서 23년차 마필관리사를 만났다. 비가 와도 우산을 쓰지 않는다는 사람들을 보며, 그들이 하는 노동과 동물의 노동을 생각한다.
상현씨에게 어떤 마필관리사가 베테랑이냐고 물었다. 그는 “말을 이해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해할 수 있을까요?”
나는 사람이 노동의 대상으로 부리는 동물을 이해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었는데, 그는 다르게 이해했다.
“인터뷰만으로 이해가 되면 그건 잘못됐지요.”
그가 20년에 걸쳐 이해해보려고 하는 동물이다. 그 애씀 또한 노동이라 하겠다.
글 희정 기록노동자·<두 번째 글쓰기> 저자, 사진 최형락*베테랑의 몸: 기록노동자인 희정이 자신의 분야에서 숙련공(베테랑)으로 일해온 이들을 만나, 그들의 몸과 숙련노동에 대한 이야기를 적습니다. 4주마다 연재.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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