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어는 손으로 전하는 언어라고만 생각했다. 아니었다. 온몸으로 언어를 만드는 사람을 본다. 팔과 어깨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얼굴 근육이 자유자재로 움직인다. 방송 전에는 다소 딱딱한 얼굴이었는데, 통역을 위해 두 손을 가슴께로 올리자 얼굴에 여러 겹의 선이 생긴다. 갑자기 등장한 주름만큼이나 본 적 없는 다채로운 표정이 그의 얼굴을 빠르게 스친다. 손짓보다 표정에 시선을 빼앗긴다.
“재미있어서 이 일을 계속했어요.”
그의 말을 알 것 같다. 그는 이 언어의 매력에 빠져버린 것이다.
내게 수어는 낯선 언어다. 나름 존중한다며 외국어 정도로 여겼다. 내가 배우지 않고 관심 두지 않는 외국어. 한 국가에 살아도 그 정도 거리두기는 가능했다. 내 주변에 수어를 쓰는 사람이 없으니까. 사람이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 이유를 담은 책이 <퀴어는 당신 옆에서 일하고 있다>였다. 성소수자 직장인을 숨기는 세상에 관해 말했지만, 내 주변에 보이지 않는 농인은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러다 이 책으로 북토크를 하고 싶다는 연락을 받았다. ‘수어로 소통하는 독서모임(데프북)’이라는 곳이었다. 행사가 시작될 때까지 별생각이 없었다. 인사 정도를 수어로 익혀서 갔다. 그런데 인터뷰 기록이라는 책의 특성상, 행사 내내 이 말이 등장했다. ‘상대의 말을 듣는다.’ 그것도 그냥 듣나. 귀 기울여 듣는다. 언어를 보는 사람들 앞에서 ‘듣고 말하는 일’에 대해 말하려니 민망할 지경이었다. 자꾸 통역 쪽을 힐끔거렸다. 내가 하는 말이 내 앞의 사람들을 상처 입히지 않길. 수어통역 과정에서 표현이 순화되길 바랄 뿐이었다. 수어통역사를 인터뷰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그날 기억 때문이다. 수어통역협동조합을 통해 장진석(49) 통역사를 알게 됐다.
대학 수화동아리에 들어갔다. 1992년, 수화동아리가 대학에 생겨나던 참이었다. 수어가 무엇인지 잘 모르고, 무작정 좋아하는 학생을 따라 가입한 거였다. 막상 배워보니 재미있었다. 어릴 적부터 재미없는 것은 못하는 성격이었다. 군대를 다녀와서도 수어와의 인연은 이어졌다. 텔레비전 방송을 보는데 아는 얼굴이 보였다. 복지관 봉사모임에서 본 적이 있는 선배였다. 수어통역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수어통역사라는 직업이 장진석씨의 눈에 들어왔다. 이후 더 열심히 수어를 배웠다. 그래서 자신이 꽤 수어를 잘하는 줄 알았단다.
“처음으로 농인들을 만났는데 제가 하는 말을 못 알아듣는 듯했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지금까지 제가 배웠던 것은 수어라기보다 한국어(청인들의 언어)에다 단어만 그대로 가져다 붙인 거더라고요. ‘수지 한국어’를 쓴 거예요.”
단순하게 표현하면 수지 한국어는 ‘콩글리시’라고 할까. 영어에는 영어식 문법이 있다. 이 문법을 무시한 채 단어 몇 개를 조합해 말하는 언어를 우리는 콩글리시라고 한다. 수어에도 수어만의 문법이 있었다. 하지만 당시는 1990년대 중후반, 전문 수어통역사 과정 같은 것은 꿈꿀 수 없었다. 농인의 사회적 지위가 지금보다 더 낮았고, 수어통역을 직업이라 여기지 않고 봉사 정도로 취급하는 분위기였다. 수어통역사를 뽑는 국가 공인 자격증이 생겨난 것은 2006년에 이르러서다.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제대로’ 수어 공부를 하게 됐을까.
“저희 사부님이 수어를 고쳐주셨죠.”
이제는 고인이 된 ‘사부님’은 농아노인회에서 처음 만났다. 만났을 당시 칠순의 나이였다. 청년 진석씨는 무작정 수어를 가르쳐달라고 했다. 이후 그는 낮에는 위층에 있는 노인회에서 수어를 배우고, 저녁이면 사부님을 따라 ‘농인 구락부(클럽)’에서 시간을 보냈다. 구락부는 노인회 건물에 있던 친목 공간으로, 그곳에서 노년 농인들은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하고 마작 같은 유희도 즐겼다. 구락부는 이름에 걸맞게 제법 미군 클럽 같은 느낌이 났다. 젊은 시절 미군 피엑스(PX)에서 자재 정리와 회계 일을 한 사부님 작품이라고 했다. “어차피 한국 사람(청인)들도 미국말을 모르니까, 똑같잖아요.” 근현대사 속에서 농인들은 묘한 평등을 맛봤다.
“그런데 구락부에 가면 사부님이 ‘너는 수어 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 가만히 보기만 해’ 그러시는 거예요. 그 말의 의미를 나중에 알았죠. 그렇게 몇 개월 지나니까 제가 농인들 대화를 알아보는 거예요. 저도 놀랐고 사부님도 놀랐고.”
눈이 열린 것이다.
“영어를 배울 때도 귀가 먼저 뚫려야 한다고 하잖아요. 그거랑 똑같아요. 눈이 먼저 트여야 하죠.”
농인들이 실생활에서 쓰는 언어를 알게 되자 수어의 매력이 더 크게 다가왔다. 농인에게 언어는 보는 것이다. 우리가 목소리 톤이나 억양으로 구별하는 것을 이들은 모두 눈으로 판별한다. 구어가 가지는 순차성에 얽매이지 않는다.
“‘나는 매우 배고프다’를 통역한다면, 수어가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나는-매우-배고프다’ 이렇게 순서대로 말해요. 하지만 농인들은 이렇게 표현하지 않아요.”
동시에 표현할 수 있다. 손뿐 아니라 어깨, 턱, 눈 모든 신체가 ‘발화’를 돕기 때문이다. 진석씨가 얼굴 표정을 격하게 사용한 이유이기도 했다. 표정은 좋다, 싫다 같은 감정이나 억양 표현은 물론이고, 매우·조금·멀리 같은 수식어로도 심지어 문장부호로도 역할을 한다.
“얼굴 표정(표지)은 ‘비수지신호’라고 하는데 수어에서는 비수지신호가 중요해요. 먹었어. 먹었어? 표정만으로 다른 말이 되죠.”
그런 까닭에 코로나19 시기에도 수어통역사는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는다. 반짝이는 반지나 팔찌 등도 착용하지 않는다. 시선을 분산시킬 것은 치운다. 온몸이 언어가 되게 한다. 진석씨도 평소엔 늘 차고 다닌다는 결혼 예물 시계를 무대에 오를 때는 풀어둔다. 손목 통증 때문이기도 하다. 팔을 올린 채 손목을 내내 움직인다. 보통 30분에서 1시간가량 쉬지 않고 진행된다. 한자리에 서서 팔만 움직이면 되는 일이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근육에 부담이 적은 노동이 아니다.
“의사 선생님의 이야기로는 다른 사람들은 쓰지 않을 근육을 많이 사용한대요.”
온몸으로 표현되는 아름다운 언어를 통역하는 대가였다. 팔 안쪽 근육에서 시작해 어느새 어깨와 허리 통증으로 이어졌다. “특히 손목터널증후군. 알파벳 같은 ‘지문자’는 글자 모양을 하나하나 만들거든요. 뉴스 같은 거 통역하다보면 시간이 없으니까 빨리 써야 하잖아요.”
그러다보면 손에 힘이 들어간다. 지문자만 고충이 아니다. 한눈에 들어오고 단번에 이해되는 표현만이 수어로 살아남을 수 있다. 그 과정을 아직 거치지 않은 용어들도 있다. 신조어나 전문용어 등이다. 이 경우 미리 파악해 다른 언어로 대체하거나 그 뜻을 간명하게 풀어야 한다.
게다가 통역사는 어디에나 간다. 농인이 있고 언어가 있는 자리에는 어디에나 있다. 방송사, 강의실, 영화제, 공연장, 정책토론장 그리고 집회 현장에도 간다. 장애인 인권을 요구하는 집회에 통역을 요청받는다. 그러니 행사 내용을 미리 숙지하지 않으면 낭패를 본다. 당일 연단에 서서 통역하는 시간보다 사전에 내용을 이해하고 준비하는 데 시간을 더 쓴다.
“계속 물어봐요. 행사 주최 쪽에도 물어보고, 물어봤던 거 또 묻고. 용어도 묻고, 이 멘트가 어떤 상황에서 나왔는지도 묻고.”
수어는 자막이 아니다. 텍스트 안에 담긴 맥락을 함께 전달해야 하는 일이다. 영화는 몇 번씩 보고 공연 노래는 가사를 외울 때까지 듣는다.
“음악 같은 경우 행사 때는 거의 제가 공연한다고 생각하고 준비하죠. 특히 젊은 사람들 축제는 모르는 노래가 많이 나오잖아요. 팝송 같은 것은 한국어로 번역한 걸 보면서 듣고 또 듣고.”
방송사에서 만난 그는 방송에 들어가기 전, 벗었던 안경을 다시 쓰곤 목을 앞으로 길게 뺀 채 브라운관 화면을 골똘히 바라봤다. 통역할 내용을 보는 거였다. 방송사의 강한 불빛에 눈을 자꾸만 찌푸리면서도 하나도 놓치지 않을 기세다. 그럴 때 사라졌던 주름이 잠시 미간에 나타난다. 큐 신호가 오면, 세상 누구보다 풍부한 표정을 지닌 사람으로 변할 것이 예상되지 않는 얼굴이다.
25년째 수어통역을 하면서도 아직도 통역을 앞두고 긴장된다는 사람. 자신이 생각하기에 베테랑은 어떤 사람이냐고 물으니 “준비를 열심히 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통역이 잘됐다, 그러면 뿌듯하죠. 나 오늘은 진짜 잘했어, 이러면서 혼자 좋아서 킥킥거리고. 걸어가면서 오늘 진짜 잘했다, 막힘없이. 맛있는 거 먹어야겠다.”
이 순간을 위해 정성 들여 준비한다.
이런 노력이 무색하게도, 막상 통역하러 가면 수어는 그저 구색 맞추기로 생각하는 주최 쪽도 여전히 있다.
“많이 좋아졌지만 아직도 사전에 자료나 대본을 요청하면 귀찮아하는 분들이 있어요. 그냥 사람만 오면 되지, 준비할 게 뭐가 더 있냐. 사실 행사 때 통역 불러놓고 조명 끄는 분들도 계시거든요. 불 끄면 절대 안 되죠. 안 보이잖아요.”
농인에 대한 이해가 아직 부족하다. 이 사회가 그들의 언어를 이해할 마음이 덜하다는 것을 느낀다. 진석씨는 수화통역에서 당연하게 동시통역을 요구하는 태도도 지적했다.
“어떤 언어든 동시통역을 하면 실수할 가능성도 크죠. 말을 다듬을 시간이 없어지니까요.”
그 말을 보는 이만 어려운 것이 아니다. 수어로 동시통역을 하면 말 속도에 맞춰 평소보다 더 빠르게 손을 움직여야 한다. 통역사들의 고질병인 어깨, 팔, 목 통증이 커진다.
“시간을 들일 만큼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거겠죠.”
보통 영어 등 외국어를 통역할 때는 동시통역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다. ‘가치가 없다’고 쉽게 넘겨지는 그 시간은, 농인이라는 사회 구성원이 자신의 언어로 ‘발화’하고 세상의 다른 언어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시간이다.
이 사회가 농인의 말을 얼마나 들을 준비가 돼 있느냐는 수어통역사 수에서도 드러난다. 10여 년 전 진석씨가 수어통역센터에 근무했을 때나 지금이나, 지역구 센터마다 상주하는 통역사는 서넛이다. “특히 노인분들은 병원에 자주 가셔야 하잖아요.” 인터넷이나 전자서비스 이용도 익숙하지 않다. 그 필요에 비해 통역사 인원은 한참 부족하다. 2016년 한국수화언어법이 수어에 (청인의) 국어와 동등한 자격을 부여한 뒤로, 수어통역사가 크게 늘어 국내 2천여 명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자격증 취득 수일 뿐 현업 수어통역사는 이보다 더 적다.
통역사가 부족한데, 일을 구하지 못하는 통역사도 적지 않다. 앞서 이야기했듯 공공기관에서 고용하는 수어통역사 수는 턱없이 적다. 대부분 프리랜서이다. 프리랜서의 불안정함은 익히 알려진 바다. 그래서 장진석씨와 동료들은 협동조합을 만들었다. ‘수어통역협동조합’.
이곳에 현재 50여 명의 통역사가 가입돼 있다. 일자리를 나누고 역량 강화 과정을 함께한다. 내 눈을 끈 것은 농인통역사들과 함께 무대에 서는 모습이다. 혼자였다면 여러 ‘불편함’을 이유로 농인통역사가 연단에 설 기회는 쉽게 박탈당했을 것이다. 통역사가 안정적 일자리를 확보하는 것만큼 통역이 필요한 곳곳에 사람을 보내는 것도 협동조합의 바람이다.
수어는 침묵의 언어가 아니다. 인터뷰하며 진석씨는 자랑스럽다는 듯, 한 농인의 수어 표현을 전해줬다. 마치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거 같았다고 했다.
“봄여름가을겨울 단어를 따로 쓰는 게 아니라, 어떤 분이 갑자기 손으로 나무로 만들고, 그 나무에 나비가 날아오고, 그런데 갑자기 비가 내리는 거예요. 좀 있다가 나뭇잎이 툭툭 떨어지고.”
오로지 몸짓으로 그려낸다. 손가락 4개를 들어 계절을 나타내는 단어를 쓰지 않아도, 사계가 한눈에 펼쳐진다. 이 화려한 언어가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아는 방식으로만 그들의 언어를 들으려고 하니, 말하는데도 보이지 않는다. 세상이 농인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기에, 그 말을 전하는 통역사는 오늘도 분주하다.
희정 기록노동자·<두 번째 글쓰기> 저자
*베테랑의 몸: 기록노동자인 희정이 자신의 분야에서 숙련공(베테랑)으로 일해온 이들을 만나, 그들의 몸과 숙련노동에 대한 이야기를 적습니다. 4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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