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달래꽃이 필 때는 도다리랑 오징어가 오고, 소찰밥나무가 무성할 때는 능성어가 와요. 다 철이 있어요.”
철 따라 물색 고운 바다에 그물을 던졌다. 그 세월이 60여 년. 박명순(69)씨는 12살에 낚싯대를 잡았다. 대대로 전남 여수 월호도에서 고기잡이하던 집안이다. 형이 대학에 가고, 누나들이 뭍으로 나가는 동안 박명순씨는 섬에 남아 아버지에게 낚시를 배웠다. 바람이 휘젓고 간 머리를 손으로 누르며 그는 말한다.
“옛날엔 제일 못난 자식이 남아 부모 모시고 살았지.”
그 말에 고개를 젓던 내 시야에 들어온 것은, 저 멀리 진분홍 꽃을 피운 섬. 도다리 철이다.
배가 큰 원을 그리듯 몸을 튼다. 넘어지지 않게 무얼 잡고 있으라 하지만, 주변에 딱히 잡을 만한 것은 보이지 않는다. 배 가운데 부착된 양망기가 털털 소리를 내며 그물을 끌어올리는 중이다. 사방이 바다이고 작은 선박에는 노란 플라스틱 바구니와 초록 그물망이 어지러이 널려 있다.
“바다는 모를 때는 재미있는데, 알고 나면 무서워.”
태어날 때부터 여수 바다와 함께한 명순씨와 다르게, 아내 염순애(65)씨는 나이 스물에 배를 처음 타봤다. 섬마을 시집으로 가던 그날이었다.
“처음에는 멀미도 엄청나게 했지. 토하다가 피가 나온 적도 있어요.”
순애씨는 피까지 토한 날을 떠올렸다. 양식장에서 거둬들인 미역을 가공 공장에 가져다주던 길. 해는 기울고 늦바람은 불어 다들 마음이 급했다. 속도를 올리자 작은 배는 물살 이는 대로 출렁이고, 새댁 순애씨는 배 귀퉁이를 붙잡고 바닷물에 속을 게워내야 했다. 바다에서 건진 것은 무엇이든 돈이 됐지만, 뭍으로 가져가 팔아야 비로소 그 돈을 만져볼 수 있었다. 그러다가 순애씨가 본격적으로 뱃사람이 된 것은 35년 전. 넷째를 출산한 직후였다.
“나 시집와서는 시아버지하고 신랑하고 낚시해서 살았지. 그때는 물고깃값을 좀 비싸게 쳐줬어요. 그런데 아이가 다섯이 된 거야. 딸이 너이에 막둥이가 아들. 낚시로는 안 되는 거예요.”
낚싯배는 자망(그물망 고기잡이) 배로 바뀌었다. 배 위로 끌어올려진 초록색 그물망 사이로 소라가 걸리고, 해삼이 딸려오고, 도다리가 파닥인다. 형형한 색을 지닌 불가사리를 보자 순애씨가 말한다.
“이게 원수예요, 원수. 막 먹어. 조개까지.”
그물망에 걸려서도 소라와 조갯살을 파먹는다고 했다. 이 조개 하나에 얼마, 소라는 하나에 얼마. 그물망에 무언가 걸려 올라오면 이 농어가, 이 기름치가, 이 도다리가 예전에는 값이 좋았다는 소개가 이어진다. 먹고사는 일 앞에서 불가사리는 경쟁자다.
명순씨가 그물을 끌어올리는 동안 순애씨는 그물 사이에서 아가미를 뻐금거리는 물고기를 빼내어 선칸 아래 수조에 던져둔다. 움직임조차 없는 소라나 해삼은 초록 망 무더기와 함께 쌓인다. 사이사이 형광 물건이 보이는데, 불가사리보다 색이 더 진하다. 낚시꾼들이 버리고 간 낚시찌다. 낚시찌를 빼내는 순애씨의 손이 아까와 다르게 더디다. “이거 때문에 그물이 다 찢겨요.” 조심스럽게 갈퀴를 망에서 떼어낸다.
“우리끼리 그래요. 얘는 눈만 갈겨도 찢어진다고.”
얇은 실로 이뤄진 그물은 쉽게 해졌다. 달에 한 번은 그물을 새로 갈아야 한다. 비바람이 거세도 무조건 배를 타고 나가던 젊은 날에는 한밤에 끔벅끔벅 졸면서 그물망을 갈았다. 손을 쉬지 않는 것이 습관이 돼 지금도 남편 명순씨는 틈만 나면 그물을 손질한다고 했다. 잠 못 자는 건 대수로운 일이 아니었다. 비바람이 불어도 배를 탔다. 파도에 그물망이 쓸려가지 않을까 마음 졸이느니 몸을 움직이는 게 나았다.
“젊었으니까 돈 벌 생각에 멀리까지 나가고 그랬어요. 지금이야 앞바다를 슬슬 다녀오지. 멀리 나가면 물살이 엄청나요. 배가 크지 않으니까 파도가 오면 배가 (바다에) 들어갔다 나왔다 들어갔다 나왔다. 바다가, 무서워요.”
무서움을 이겨내게 하는 것은 다섯 남매의 얼굴이었다. 때마다 입혀야 하는 옷이 있고, 날마다 먹여야 하는 음식이 있었다.
“요즘 하는 건 일도 아니에요. 그때는 이런 기계가 어디 있어요? 그물도 다 손으로 끄집어 올렸어요. 그물도 삼마이라고 해서 무거웠어. 지금처럼 얇지도 않았어.”
세 겹으로 된 그물(삼중망)이라 해서 ‘삼마이’라고 불렀다. 무겁긴 해도 그게 튼튼했다고 아쉬워한다. 지금은 사용이 금지돼 창고에 넣어두었다. 삼중으로 이뤄진 그물이 어린 어류까지 포획할 가능성이 커서 사용이 금지된 것이다. “하지 말라는 게 많아졌어. 가지 말라는 곳도 많아지고, 놓아줘야 하는 고기도 많고.” 제재가 늘었다. 뭐든 예전 같지 않다. 물고깃값도 나날이 떨어지고, 잡히는 수도 예전만 못하다.
“그런데 사람은 할 말이 없는 게, 너무 많이 잡았어.”
지금은 바람 거센 날에 배를 타려고 하면 해경에서 연락이 온다고 했다. 아쉬운 마음이 들지만, 한해 한해 무거워지는 몸 생각에 발길을 돌린다. 몸도 예전 같지 않고 세상도 변했다. 변하지 않은 것은 몸에 붙은 바지런함뿐이다.
지금도 하루걸러 하루는 새벽마다 몸을 일으킨다. 어시장 직판장이 열리는 날이다. 이날도 새벽 3시에 선박 시동을 켰다고 했다. 요즘 하는 건 일도 아니라는 말이 무색하다. 꼭두새벽부터 직판장에 가 “다라이(대야)를 엎어”놓는다. 자리를 잡는 거였다. 발길이 많이 오가는 직판장 어귀에 자리를 펼쳐야 제값에 팔린다고 했다.
“오징어철 되면 전날 밤에 가도 마땅한 자리가 없어요.”
그런 날엔 오도카니 자리를 지키고 앉아 새벽 동이 틀 때까지 버티는 거였다. 허리부터 다리까지 안 아픈 곳이 없지만, 배 위에서는 안 아프다.
“배에서는 멀쩡하지. 돈 벌 생각에 아픈 걸 모르는 거지.”
하지만 선창에 내리면 순애씨는 바닥에 누워버린다. 그렇게 굳어버린 몸을 편다.
“바다 위에서는 다리에 힘을 주잖아요. 탁 버티고 서 있으려니까 몸이 굳지. 다리가 아프니까 허리도 아프고. 나이가 드니까 한해 두해가 달라. 다르더라고요.”
배 위에서는 한 발 움직이는 데도 힘이 들어간다. 물에 젖은 그물은 발에 엉키고 가판 구석에 밀쳐둔 해초류는 미끄덩거린다. 자칫 엉뚱한 곳을 밟아 넘어진다. 그물이 건져 올리는 것은 해산물만이 아니다. 딱딱하기 그지없는 돌덩이와 조개껍데기도, 날카로운 낚시나 유리 조각도 가판으로 올라온다. 긁히고 찔리기 좋다.
넘어져 바다에 빠지면 그때부터 진짜 큰일인데, 순애씨는 수영할 줄 모른다. 어릴 적부터 물속에 들어가면 귀가 울리고 어지러웠다고 한다. 그렇다면 흔들리는 가판 위도 만만치 않을 텐데. 뱃멀미가 유독 심했다는 말이 떠오른다. 하지만 이 한마디로 정리되는 세월이다. “몸에 배 가지고 괜찮아.” 바다 무서운 줄 아니 더 조심했단다. 그 덕에 크게 다친 곳 없이 뱃일해왔다. 반면 박명순씨는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는데, 탁 트인 바다보다 위험한 것은 의외로 양식장이라고 했다. “양식장에 빠져서 다칠 뻔했지. 바다랑 다르게 모서리가 있어, 나오려고 휘젓다가 더 부딪혀 찢기는 거라.” 한때 가두리 양식장도 했다. 태풍 매미가 다 휩쓸고 가기 전까진.
두 사람이 젊었을 적만 해도, 이 작은 섬에 150여 가구가 있었다. 지금은 50가구쯤 된다. 다섯 남매가 졸업한 초등학교는 폐교됐다. 섬에 나이 든 사람만 살 것 같지만, 의외로 어부 일을 해보겠다고 유입된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고용이 불안해지자 기술로 먹고사는 일을 배우려는 사람이 늘어났다. 젊은 사람들은 최신 장비를 들고 바다로 온다.
“요즘은 프로타(무선 어군 탐지기) 같은 걸 사용하면 고기가 보인다고 그런다지만, 그걸로 안 돼요.”
여전히 가장 목 좋은 곳을 아는 것은 이 노년 부부.
“감이지. 아, 여기에 어망을 내리면 잡히겠다. 대체로 예감이 맞아요. 보면 딱 잡혀 있어. 그게 자신감이 되는 거지.”
한 분야에서 오랫동안 기술을 닦아온 사람들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툭 던지는 말이 있다. 그 말을 이 부부도 한다. “하다보면 알게 돼요.” 오래 하다보면 물길을 알게 된다고 명순씨는 말한다.
“하루에 물살이 네 번은 갈린다고. 우리는 만조 간조라 안 부르고, 가드리 자치기 이래. 물이 빠지고 들어오는 흐름을 잘 봐야지.”
아무리 최신 장비를 갖춰도 조류를 파악하지 못하면 엉뚱한 곳으로 쓸려간 그물을 건져 올려야 한다. 지도도, 나침반도 통하지 않는 망망대해에서 어종에 따라 물고기가 머무는 곳과 이동하는 길목을 빠삭하게 안다. 이 신기한 일을 설명하기 위해 순애씨가 힌트를 준다.
“어디에 물속의 산이 있는지 알아야 해요.”
물속의 산이란 바위를 말한다. 물살이 약한 바위 인근에 생물이 머물 가능성이 크니까. 하지만 물속에 잠긴, 보이지 않는 바위의 위치는 어떻게 알까.
“우리는 산가늠을 해요. 저기 섬에 있는 산하고 저 산하고 저 산. 세 군데를 딱 맞춰서.”
여수는 섬이 많은 곳이다. 낮에는 섬을 기준 삼아, 밤에는 등대불빛을 기준 삼아 거리를 잰다. 물속의 산이 있는 자리를 가늠해서 기억해둔다. 물고기가 매일 드나들 듯 명순씨와 순애씨도 매일 바다에 나갔다. 막연한 감이 아니라 오랜 경험이 주는 확신이다. 그렇게 확신이 들면, 물살이 ‘동동’할 때 그물을 내린다. 물살이 세지 않고, 공기가 든 부력통이 동동 뜨는 잔잔한 곳에 그물을 놓는 게다. 무엇이건 하다보면 안다. 오랫동안 성실히 하다보면.
“여기에 한 번 그물을 던졌는데 안 잡힌다고 계속 자리를 이동하면 안 돼요. 물때가 맞으면 고기들은 와요. 사람은 거짓말해도 고기는 거짓말 안 해. 언제고 와. 끝까지 참고 기다리면. 몇 번 해보고 포기하는 사람은 안 돼. 못 잡아.”
그러니 이 일의 가장 큰 노하우는 꾸준함. 묵묵히 제 일을 하며 기다리는 것.
“놀기 좋아하고 술 좋아하고 친구 좋아하면, 이거 못해요.”
반백 년 경력의 선장 박명순씨가 일침을 가한다.
명순씨는 주말에 교회 가는 것 말고는 바다밖에 모르는 사람이다.
“바다에 나오면 마음이 좋지. 편하지.”
초보자에겐 재미있고, 아는 사람에겐 무섭다는 바다가 명순씨에게는 편하다.
“바다가 내 은행이니까.”
그 은행 덕에 부부가 다섯 아이를 낳아 키우고 육지로 보냈다. 장성한 막내아들은 매일같이 안부를 물어오고, 바람이라도 불면 배를 띄울까봐 자녀들의 전화가 더 잦아진다. 여전히 손을 쉬게 하는 법을 모르지만, 순애씨는 그물을 잠시 내려놓고 꽃을 키우고 나무를 심는다. 젊은 시절 노래 한 가락씩 부르길 즐겼다는 명순씨는 한마디 해달라고 하니, “뭐든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살아야지”라며 평범하지만 실천하긴 어려운 일을 일러준다. 이들의 은행이자, 일터이자, 분투의 공간이자, 성실의 대가를 언제나 내주었을, 그리고 수많은 생이 살아가는 바다 위에서 이 노년 부부의 하루가 지나간다.
여수(전남)=글 희정 기록노동자·<두 번째 글쓰기> 저자, 사진 최형락
*베테랑의 몸: 기록노동자인 희정이 자신의 분야에서 숙련공(베테랑)으로 일해온 이들을 만나, 그들의 몸과 숙련노동에 대한 이야기를 적습니다.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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