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 얘네 건초를 또 바닥에 떨어뜨려놨네. 아까워라….”
햇볕이 뜨거웠던 2023년 4월14일 낮, 수레를 밀고 소 보금자리에 들어선 추현욱(40)씨가 소리쳤다. ‘소 돌보미’ 현욱씨 눈에는 소들이 바닥에 떨어뜨린 건초와 똥덩이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반면 딸 가야(5)는 소들이 무얼 하는지가 가장 궁금하다. 보금자리로 걸어오며 가야는 예상했다. “메밀이는 밥 먹고 있을 것 같고, 엉이는 서 있을 것 같아. 부들이는 앉아 있을 것 같은데?”
거의 맞혔다. 보금자리에 다가가니 메밀이가 건초를 씹다가 쳐다본다. 다른 소들은 앉아서 시간을 보낸다. “메밀이! 바나나 먹어.” 신난 가야가 인기 간식 바나나를 메밀이에게 쑥 내민다.
이곳은 우유나 고기를 생산하려고 소를 사육하는 ‘우사’가 아니다. 소들이 경제적 재화가 아닌 생명을 가진 동물로 늙어가도록 마련된 ‘소 보금자리’(생추어리)다. ‘인간의 착취와 학대에서 구출된 동물들의 안식처’라는 뜻으로 미국에서 처음 시작된 생추어리 운동은 한국에서도 2020년 ‘새벽이 생추어리’가 만들어진 것을 시작으로 말·염소 등 다양한 동물 쉼터로 확대되고 있다.
2022년 11월 강원도 인제군에 마련된 꽃풀소 보금자리(달뜨는 보금자리)도 국내 최초의 소 생추어리다. 2021년 8월 도축장에 들어갈 뻔한 소 여섯을 동물해방물결이 구조해 이곳으로 옮겼다. 소들의 보금자리는 누가, 어떻게 돌보고 유지할까. 보금자리 이주 6개월을 맞아 소 생추어리를 돌보는 현욱씨 가족과 동물해방물결(동해물) 이지연 대표를 <한겨레21>이 만났다.
현욱씨 가족의 하루는 아침 해가 뜨는 6시30분께 시작된다. 두 아이와 아침밥을 먹고 꽃풀소 보금자리로 가면 “소들이 밥을 달라고 서성이고 있”다. 먹이통에 건초를 채우고 바닥 곳곳을 치운다. 현욱씨가 1시간 넘게 땀 흘리는 동안 아이들은 소들과 논다. “아이들도 소를 좋아하고 소들도 아이 구경하는 걸 좋아해요. ‘서로 돌봄’이라고 생각해요. 아예 도시락을 싸가서 아침 내내 있을 때도 있어요.”
아이들 점심 먹이고 쉬다가 소들 점심 챙기면 오후 3시, 텃밭에서 잠시 일하고 나면 다시 소 돌봄이다. 아이들과 함께 소털을 빗겨주거나 바닥에 떨어진 건초를 줍고 더러워진 급수기를 닦는다. 비닐하우스인 보금자리 내부 온도가 지나치게 올라가지 않도록 낮엔 창문을 열어뒀다가 밤중에 가서 닫기도 한다. 꽃풀소들은 네덜란드 북부 지방 출신의 ‘홀스타인’ 소라 더위에 민감하다. 아이들과 소들이 모두 잠드는 밤중이면 현욱씨는 혼자 돌봄일지를 쓰고 낮에 찍은 소들 사진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다. 그렇게 소 보금자리의 하루가 저문다.
꽃풀소들은 2021년 목장 폐업으로 도살 위기에 처했다가 동해물 활동가들의 도움으로 구조됐다. ‘강인하게 자라라’는 뜻으로 들풀 이름을 따서 엉이·머위·부들·창포·메밀·미나리라는 새 이름이 붙었다. 소들의 거처를 활동가들이 물색하던 중 청년 이주를 희망하던 인제군과 연이 닿아 그곳에 터 잡을 수 있었다. 현재는 동해물 활동가 6명이 인제를 수시로 오가며 시설 유지·보수와 홍보 등을 맡고 2022년 11월 상주 돌보미 활동가인 현욱씨 가정까지 합류하면서 소 돌봄 공동체의 모양새를 갖추게 됐다. 돌봄에 필요한 재정은 ‘살리미’라는 200여명의 후원자들 도움으로 마련한다.
동물 돌봄이 생소한 한국에서 생추어리를 만들기란 쉽지 않았다. 우선 축산업 동물사육 규정에 맞춰야 하니 충분히 넓게 만들 수 없었다. “우리가 만들려는 건 소들이 편히 쉬는 보금자리인데 법적으론 ‘축사’예요. 보금자리를 축사의 좁은 면적 규정에 맞추고 소가 밖으로 나가지 않도록 통제하는 구조로 만들어야 해서 아쉬웠죠.” 이지연 대표의 말이다.
소 돌봄에 필요한 정보도 부족했다. “우리나라에서 홀스타인 남성 소를 칭하는 말은 그냥 ‘육우’예요. 제한된 사육기간 안에 육우를 최대한 살찌우고 수익을 극대화하는 것에 관한 정보는 많죠. 하지만 이 동물이 어떤 본성을 지녔고 어떤 생태적 필요가 있는지에 관한 정보는 찾기 힘들어요. 그런 상황에서 당장 이사하고 돌봄을 해야 하니 많이 헤맸죠. 그러다 미나리 사고가 났고요.”
미나리는 다른 소들과 함께 구조됐지만 보금자리 입주 한 달 전 몸을 다쳐 세상을 떠났다. 이 대표가 미나리를 치료하려고 수의사, 수의학과 교수를 수소문했지만 국내에는 무게 1톤인 동물의 전신 엑스레이를 찍을 시설도, 재활할 기구도 없었다. 어렵게 구조한 소를 속수무책으로 떠나보내며 이 대표는 돌봄이 갖는 한계와 의미를 배웠다.
“미나리를 잃은 게 너무 큰 충격이어서 한동안 소들을 과잉보호했어요. 그들의 생존능력을 믿어야 상호 간에 건강한 돌봄이 구축될 텐데 저는 가능한 위험을 다 제거하고 통제하려 한 거예요. 그런데 지내다보니 소들이 알아서 잘 살더라고요. 저도 조금씩 내려놓았죠. 지금은 먹이도 살 찌우는 용도의 사료는 끊고 질 좋은 건초랑 콩비지, 과일간식을 줘요. 그래도 다들 건강해요.” 이 대표의 말이다.
이제는 나름대로 돌봄의 체계가 잡혔다. 소 돌봄에 관한 이야기는 활동가들이 모인 SNS 대화방에서 수시로 나누고, 논의가 필요한 안건은 2주마다 열리는 ‘돌봄회의’에서 정한다. ‘날이 더워지니 소들이 쉴 그늘막을 만들자’는 의견도 회의 자리에서 나왔다. 동해물 활동가들은 꽃풀소 보금자리 앞 신월분교가 리모델링되는 대로 인제군으로 아예 이주할 계획이다.
현재 인제군에 상주하는 소 돌봄 가족은 캐나다에서 이주한 현욱·타샤 부부와 두 아이 가야·솔, 모두 네 명이다. 현재는 타샤가 잠시 외국에 나가 있어 현욱씨가 두 아이를 데리고 소를 돌본다. 텃밭에서 농사지으며 자급자족하고 싶어 소 돌보미를 자처했지만 현욱씨도 소를 키워본 경험은 없다. 더구나 덩치가 사람보다 큰 홀스타인 소라니, 그에게도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다.
“처음엔 소들이 뛰면 무서웠어요. ‘밥 다 줬으니 갈게’ 하고 얼른 도망갔죠. 그런데 지내다보니 얘 들이 뛰는 게 저를 놀래는 게 아니라 같이 놀자는 거더라고요. 지금은 얘네가 뛰면 ‘좋아하는구나’ 생각해요.”
소들의 마음을 얻으려 노력도 했다. “소가 덩치는 커도 겁이 많아서요. 헛기침하거나 수레를 실수로 넘어뜨리면 화들짝 놀라서 도망가요. 그래서 애먼 행동을 안 하려고 하죠. 요즘은 등도 만져주고 빗질도 해줘요. 옛날에는 소 턱밑을 만지면 불편한지 고개를 도리도리했는데 요즘은 괜찮아해 요.”
소마다 성격이 다 다르다. 서열 1위 ‘엉이’는 곁을 잘 내주지 않고, 서열 2위 ‘머위’는 욕심이 많다. 서열 3위 ‘창포’는 ‘엉이’의 총애를 받는다. 4위 ‘부들이’는 다른 소들에게 대들며 버티지만 5위 ‘메밀이’는 몸집이 왜소해 도망가기 바쁘다. 메밀이는 특히 사람을 좋아한다.
“처음엔 얘네도 저를 멀뚱멀뚱 쳐다만 봤는데 요즘은 제게 많이 의지한다고 느껴요. 다른 사람이 오면 벌떡 일어나서 경계하는데 제가 들어가면 그냥 다리를 쭉 뻗고 빈둥거리죠. 소들이 저를 쓱 쳐다보면 ‘어 왔니 ’ 하고 말하는 느낌이에요 . 메밀이는 종종 저를 핥아주고요. 부들이는 저를 따라다니면서 보란듯이 건초를 먹거나 퇴비를 무너뜨리며 재롱을 떨죠.”
현욱씨는 소를 키우며 아이들의 마음도 이해하게 됐다. “옛날에 소들한테 제가 막 화낸 적이 있어요. 퇴비사에 못 들어가게 막았는데 얘들이 힘이 좋으니까 그걸 부러뜨리고 안에 들어가서 놀더라고요. 제가 또다시 똥을 퍼올려야 해서 화가 났죠. 근데 소가 아이랑 똑같다고 생각하니까 내가 화낼 필요가 뭐 있나, 자기들은 자연스러운 일을 한 것뿐일 텐데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가 화내면 얘들도 참 힘들겠다 싶고요. 그다음부터는 아이들한테도 덜 화내고 사과도 하게 됐어요. 소를 키우며 마법 같은 일이 생긴 거죠.”
현욱·타샤 부부는 소 돌봄을 위해 캐나다에서 일부러 이주했다. 소 보금자리를 만드는 일이 “누군가는 꼭 해야 하는 일”이라 생각했고, 이왕이면 농사로 자급자족하는 삶을 꿈꿨던 “내가 할 수 있으면 더 좋겠다”고 생각해서다. 대규모 농사로 운영되는 캐나다에선 좀처럼 실현하기 어려웠던 꿈이다.
“보금자리라는 게 결국은 동물을 살리는 거잖아요. 동물을 살려서 키워놓으면 사람들이 와서 볼 것이고 축산업을 축소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했어요. 사람들이 마트에 진열된 고기나 유제품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잘 모르는데 보금자리가 그걸 연결해줄 테니까요. 당장 여기에 와본 지인들만 해도 ‘유제품 못 먹겠다’ 하는 분들이 있어요. 고기나 우유로만 보였던 소들이 살아서 걸어다니니까 ‘이걸 먹는 게 맞나’ 생각하지요. 얘는 생명인데 우리가 상품으로 본다는 걸 알게 되죠.”
이지연 대표는 생추어리에 대해 ‘동물에 관한 서사가 바뀌는 과정’이라고도 설명했다. “(54일간의 최장 장마가 있던) 2020년 여름 홍수 때 어렵게 살아남은 소들이 결국 다 도살됐잖아요. ‘어차피 먹힐 존재’라는 인식을 그때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동물을 구조하고 돌보는 건 ‘식용동물’에서 ‘자유를 찾아 떠난 동물’로 서사가 바뀌는 일이에요.”
일각에선 동물 생추어리에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동물복지가 좀더 잘돼 있을 뿐 결국은 사람이 가둬 키우는 시설이라는 이유다. 추현욱씨와 이지연 대표는 그런 시선에 공감하면서도 현실적인 한계를 말한다. “저도 지향하는 바는 마을에 소 데리고 산책하고 넓은 공간에서 풀 뜯게 해주는 거예요. 그런데 한국은 지금 생추어리 설립 초기인데다 동물을 풀어 키울 땅이 부족하니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지금 이것도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어요.”(추현욱씨) “아무래도 소들이 이웃과 공존해야 하니까 조력이 필요한데 장기적으로는 소들의 영역을 넓혀주고 싶어요. 호랑이만 야생동물인가요, 원래는 다들 자연적 삶을 영위하던 동물이죠. 그렇게 살 수 있도록 보금자리를 만들고 싶어요.”(이지연 대표)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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