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농민들의 대화를 엿듣던 어느 날. “밭에 광대나물이 번져서 고민이야.” “뭘 그런 걸로 고민해. 먹으면 다 없어지는걸.” 순간 웃음이 터졌다. 경작해본 사람이라면 그 뜻을 알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내 밭에는 광대나물이 있었나? 매년 봄마다 갈아엎는 주말농장에서 봄 동안 볼 수 있는 풀이라고는 쇠뜨기와 명아주뿐이었다. 여름이 오면 바랭이가 지독하게 번졌고, 쇠별꽃이 나타난 어느 날에는 드디어 새로운 풀이 나왔다고 감격할 만큼 다양성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밭도 갈지 않고, 비닐도 쓰지 않은 지 1년이 됐으니 새로운 풀의 구성을 기대해도 좋지 않을까. 그러고 보니 작년에 구석진 밭으로 옮기고 난 뒤 돼지감자와 환삼덩굴, 개망초를 발견했고 작년 겨울에는 드디어 노란 민들레꽃을 처음 만났다. 마침내 3월 중순 내린 단비에 힘을 얻은 풀이 올라오자 역시 삭막했던 작년 봄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가장 먼저 제비꽃이 보랏빛 꽃을 피워냈는데, 이 밭에서는 처음 보는 제비꽃이다. 제비꽃은 샐러드에 얹으면 아름답고 기분 좋은 한 끼를 완성해주고, 설탕에 재워 시럽을 만들면 청아한 푸른빛을 내는 너무나 반가운 손님이다.
남의 밭에 갈 때마다 주인의 핀잔을 받으면서 부지런히 캐온 냉이도 드디어 내 밭에 등장했다! 냉이를 캐서 무쳐 먹을까, 찌개에 넣을까 고민하다 냉이가 더 번지길 바라는 마음에 그냥 두기로 했다. 냉이와 닮은 지칭개와 개망초 사이로 광대나물의 화려한 물결 모양 잎도 눈에 띈다. 먹고자 하면 사라지는 풀이라 하니 이 녀석도 그냥 두기로 했다. 풀이 아까워 캐지 못하는 마음이라니. 풀을 없애고자 비닐 씌운 땅 위에 제초제를 치는 현대 농업을 역행하는 이 마음을 다른 농민들이 안다면 비웃을 테지만 냉이에 대한 나의 사랑은 정말 진지하니까.
3월 말, 주말농장에는 어김없이 트랙터가 등장했다. 트랙터는 우리 밭을 제외한 모든 구역을 순식간에 갈아엎었다. 내 눈에는 건조한 맨살을 드러낸 땅이 황량해 보였지만 주말농장을 나눠 쓰는 이웃들은 “깔끔하다”며 시원해하고는 그 위를 검은 비닐로 덮어버렸다. 땅을 뒤집으며 유실되는 수분과 탄소보다 풀이 아쉽다고 말하면 정신 나갔다는 소리를 듣기 딱 좋지만 나는 정말이지 풀이 아깝다. 그러니 전업농이 아닌 주말농장을 일구는 사람이라도 비닐을 벗겨내고 풀을 키우기를 바란다.
밭을 갈고, 비닐을 사다 덮을 비용과 노동으로 내가 키우지도 않은 냉이와 민들레를 캐고 명아주를 잘라 무쳐 먹는다면 횡재한 기분이 들지 않을까? 우리 밭 옆으로 트랙터의 칼날이 닿지 않는 좁다란 구역이 있다. 거기에는 매년 질기게 살아왔을 달래가 버티고 있었다. 고마운 달래를 캐내 틀밭으로 옮겨 심었다. 내년 채집에는 달래도 더해진다는 기대에 벌써 마음이 부풀어 오른다.
글·사진 이아롬 프리랜서 기자*농사꾼들: 농사를 크게 작게 지으면서 생기는 일을 들려주는 칼럼입니다. 김송은 송송책방 대표, 이아롬 프리랜서 기자, 박기완 토종씨드림 활동가가 돌아가며 매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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