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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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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한해라, 내버려둔 감나무

경남 밀양 편- 멀어서 가지 못한 곡성의 감나무밭,
약 없이도 농사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의 씨앗을 뿌리다
등록 2023-01-27 12:41 수정 2023-02-02 04:23
2022년 의외로 많은 감을 생산한 감나무 앞에서. “2023년에도 잘해보자.”

2022년 의외로 많은 감을 생산한 감나무 앞에서. “2023년에도 잘해보자.”

2022년 초, 이사 갈 전남 곡성에 무턱대고 감나무밭 700평을 얻었다. 자연농을 하려니 우리 땅이 없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무도 심고 꽃도 심고 풀도 좀 자라게 해야 하니, 땅주인의 눈치를 안 볼 땅이 필요했다 . 모아둔 돈은 없고, 과감하게 양가 부모님께 손을 벌렸다.

해 농사를 무리하게 지었다. 생강농사와 벼농사를 했다. 경남 밀양에 살며 곡성에서 감농사도 했다. 하필이면 농작물의 수확 기간이 비슷했다. 11월, 벼베기에 감따기에 생강 수확에 이를 모두 짝꿍과 나의 노동만으로 했다. 수확하고 나니 농사를 다시 할 생각이 나지 않았다. 농사를 때려치우고 다른 거로 돈 벌어야 하나.

2022년 감나무밭은 거의 관리해주지 못했다. 밀양에서 곡성까지의 거리 때문에 자주 가지 못했다 . 여름에 풀 한 번 매고 친환경 약재를 한 차례 뿌려준 것이 전부였다. 퇴비도 안 줬다. 감나무밭은 풀로 무성했다. 혹여나 하는 마음에 수확할 때쯤 감나무밭을 찾았다. 방치한 감나무에는 의외로 감이 많이 달려 있었다. 감나무 3분의 2에 감이 달려 있었다. 오랫동안 감농사를 해오신 동네 이장님도 “희한하다”며 놀라워했다. 병든 것처럼 검정 반점을 띤 감도 일부 있었지만 먹어보니 달고 맛있었다. 팔아도 되겠다 싶어 부랴부랴 준비해 지인 몇몇에게 감을 팔았다. 반응이 좋았다. 신기했다. 기존 관행농 감나무에는 퇴비를 주고 감이 하얘질 정도로 약을 뿌린다. 풀은 자라지 못하게 1년에 두세 번 예초(풀베기)한다. 감도 많이 달리고, 병 없는 깨끗한 감이 생산된다.

방치했는데 이 정도 상태면 나쁘지 않다. 감을 좋아하는 벌레의 천적을 만든다면 약 없이도 농사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고민을 하던 중 사단법인 다른백년이 주최한 ‘비즈니스 액티비스트’ 교육에서 ‘퍼머컬처 ’(Permaculture· 지속가능한 농업) 강의를 만났다.

퍼머컬처란 ‘Permanent’와 ‘ Agriculture’의 합성어로 자연에서 발견되는 반복적 형태와 관계를 모방해 지역에서 필요한 음식 , 섬유 , 에너지를 충족하는 문화다. 이런 방법을 차용한 밭 만들기를 ‘생태텃밭’이라 한다. 쉽게 말해 숲을 생각하면 된다. 숲은 인간이 관리하지 않지만 스스로 비옥한 땅을 만들어내 100년, 1천 년이 가는 숲이 된다. 나무는 열매를 내고 동물은 이 열매를 먹고 배설한다. 나뭇잎과 비가 이를 삭힌다. 지렁이는 이를 훌륭한 퇴비로 만들어내고 이곳에서 작은 풀이 자라고 벌레가 모이고 개구리, 뱀, 각종 동물이 모여 숲이 된다. 식물이든 동물이든 수많은 종이 공생한다.

토종 씨앗으로 2년간 농사지었다. 대부분 인간의 노동을 기반으로 한다. 토종 씨앗을 기반으로 하되 제초도 하고, 똥과 오줌으로 만든 비료도 준다. 사람에 따라 친환경 약재로 농약을 만들어 뿌리기도 한다. 하지만 생태텃밭은 내버려둬도 알아서 자란다니 이렇게 매력적일 수 없다. 감나무에는 스스로 영양분을 찾기 위해 뿌리를 깊이 내리는 인고의 시간일 테다 .

올해 감나무밭에는 다양한 작물로 가득 채워볼 것이다. 감나무 사이엔 두릅을 심고, 감나무 밑에는 그늘에서도 잘 자라는 취나물, 곰취, 산마늘 등을 심는다. 그 옆엔 마리골드를 심어 해충이 오지 못하게 한다 . 나무 그늘이 없는 곳엔 옥수수와 호박, 울타리콩을 심는다. 똑같은 700평이지만 감뿐만 아니라 추가로 다양한 소득을 낼 수 있다.

최근엔 이사 갈 집을 고치는 일로 종종 곡성에 간다. 시간이 난 틈을 타 감나무밭에 가서 흙을 만져본다. 꺼멓고, 보드랍다 . 따뜻하다. 수많은 미생물의 결정체다. 흙 한 줌에서 우주를 느낀다.

글·사진 박기완 토종씨드림 활동가

*농사꾼들: 농사를 크게 작게 지으면서 생기는 일을 들려주는 칼럼입니다. 김송은 송송책방 대표, 이아롬 프리랜서 기자, 박기완 토종씨드림 활동가가 돌아가며 매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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