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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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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 n번방’ 이성일, 호주서 징역 몇 년?

호주가 ‘아동자료 소지’ 더 엄벌하지만, 피해자 있고 ‘범죄단체 조직’ 적용 가능한 한국으로 불러 수사·재판해야
등록 2023-01-10 12:21 수정 2023-01-13 04:15
2022년 11월23일(현지시각)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에서 ‘제2의 n번방’ 주범인 미성년자 성착취범 ‘엘’이 체포돼 구금 중이다. 서울경찰청 제공

2022년 11월23일(현지시각)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에서 ‘제2의 n번방’ 주범인 미성년자 성착취범 ‘엘’이 체포돼 구금 중이다. 서울경찰청 제공

2022년 11월23일(현지시각) 오전 오스트레일리아(호주)연방경찰 아동보호팀은 한국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와의 합동수사로 시드니 외곽의 한 주택에서 한국 국적의 27살 남성 ‘엘’을 검거했다. 그는 2020년 12월 말부터 2022년 8월15일까지 시드니에서 온라인을 통해 한국의 아동·청소년 9명을 협박해 알몸이나 성착취 장면을 촬영하고 1200여 개 영상을 텔레그램에서 유포한 혐의(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를 받고 있다. ‘엘’의 실체는 2022년 12월22일 호주에서 열린 두 번째 보석심사재판에서 ‘이성일’이란 실명이 공개되면서 드러났다.

한국 경찰이 밝힌 ‘엘’의 범행은 아동·청소년을 협박해 성착취물을 제작·유포한 것이지만, 2023년 1월 현재 호주 경찰이 기소한 범죄명은 ‘아동학대자료 소지(최대 징역 15년)’와 ‘휴대전화 암호공개 거부(최대 징역 10년)’다. 호주 경찰은 추가 기소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다만 1월18일 예정된 재판을 앞두고 아직 추가 기소 소식은 없다. 한국 경찰은 관련 수사기록을 토대로 “호주 경찰이 ‘아동학대물’에 대한 ‘소지’ 외에 ‘제작’ 혐의로도 기소할 수 있도록 협조할 예정이며, 여죄(남은 죄) 파악을 통해 범죄인인도 절차를 밟겠다”고 밝혔다.

한국은 속지주의와 속인주의(한국 국적이면 국외에서 범죄를 저질러도 한국에서 처벌 가능)를 모두 택하고 있다. ‘엘’은 2010년 이후 호주로 건너간 상태지만 영주권을 취득하지 않아 한국에서도 처벌이 가능하다. ‘엘’의 범행은 1990년 체결한 한국과 호주의 범죄인인도조약의 인도 대상 범죄에 속하며 관련 증거도 많이 확보한 상태라 엘에 대한 인도 요청이 가능하다. 그러나 호주가 피의자의 국적과 상관없이 호주에서 저지른 범죄에 대해 호주에서 처벌하는 속지주의를 채택하고, ‘엘’의 범행에 대한 처벌 의지를 강력하게 표명하는 만큼 국내 송환이 빨리 이뤄지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엘’ 처벌 의지 강력하게 표명하는 호주

호주에서 진행되는 ‘엘’의 수사와 재판에 대해서는 우려와 기대가 공존한다. 호주는 2017년 ‘소라넷’의 주요 운영진 4명이 뉴질랜드·말레이시아 등을 거쳐 도피한 곳으로, 당시 한국에서 범죄인인도를 청구했으나 한국 국적만을 가진 송아무개만 자진 귀국했다. 귀국하지 않은 운영자 세 명(윤아무개, 홍아무개, 박아무개)이 호주 시민권과 영주권을 가진데다, 호주가 성인 대상 성착취물 제작·유포·소지 등을 강력 처벌하지 않는 나라여서 한국 수사기관도 사실상 손을 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호주는 아동 성착취와 성학대 등에는 강경 대응 기조를 유지한다. 2018년 호주연방경찰 주도로 아동성착취대응센터(ACCCE)를 설립했다. 2019년에는 ‘아동포르노그래피’를 ‘아동학대자료’로 명칭을 변경하고 아동학대자료를 소지할 경우 처벌하는 규정을 신설하기도 했다. 또한 호주 밖에 거주하는 아동에 대한 성학대 처벌을 강화하는 것 등의 내용을 담아 ‘아동 성착취에 관한 법’을 개정했다. 2019년 필리핀에 ‘필리핀 아동 인터넷범죄센터’(PICACC)를 설립하는 등 국제공조수사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이 때문에 아동·청소년 대상 성착취범인 ‘엘’의 경우 오히려 한국보다 호주에서 재판받는 것이 더 큰 엄벌을 받으리라는 주장이 있다. 이번에 기소된 ‘아동학대자료 소지’만 해도 한국(아동·청소년 성착취물 소지 등)의 경우 법정형은 ‘징역 1년 이상’이고, 양형기준에 따라 최대한 범위를 넓히더라도 징역 6년9개월 정도다. 게다가 개정된 법과 양형기준에 기반해도 실제로 ‘소지’ 혐의 관련 재판에서 실형 선고가 전무하다시피 한 한국 현실에 견주면, 호주는 최대 징역 15년까지 가능하다.

‘갓갓’ 검거 늦어져 공범 평균 형량 낮아

그럼에도 ‘엘’의 국내 송환은 반드시 필요하다. 호주에서 ‘아동학대자료 소지’ 등 혐의로 유죄가 선고돼 형이 확정되더라도 한국 경찰이 여죄 수사 등을 적극적으로 해 기소할 경우 한국에서도 처벌할 수 있다. ‘박사방’이나 ‘n번방’ 운영자처럼 징역 20년 이상 중형 선고가 현실적으로 가능하겠냐는 비관론도 있지만, 법정형만 놓고 보면 ‘징역 5년 이상 또는 무기징역’ 선고가 가능한 ‘제작’ 혐의에 대해서는 한국의 수사·재판이 피해자에게 더 유리하게 전개될 수도 있다. 더구나 피해자들 모두 한국에 있기 때문에 피해자의 ‘형사사법절차 참여권 보장’ 등을 위해서도 ‘엘’의 송환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또 ‘엘’을 국내로 송환해야 공범들을 엄벌할 가능성도 커진다. 전 국민의 공분을 샀던 ‘n번방’의 경우, 운영자인 문형욱(갓갓)의 검거가 늦어지는 바람에 공범들 상당수의 수사·재판이 그 이전에 진행됐다. 그들의 평균 형량은 ‘징역 3.2년’에 그쳤다. 문형욱의 공범들은 ‘제작’ 혐의로 기소됐지만 운영자가 잡히지 않았기 때문에 ‘범죄단체 등의 조직’(범단죄, 형법 제114조) 혹은 ‘공동정범’(형법 제30조) 조항을 적용할 수 없었던 탓이다.

유사 범행을 저질렀는데 범단죄 등이 적용된 ‘박사방’ 일당이 징역 10년 이상 중형을 선고받은 것이나, 공동정범이 적용된 ‘프로젝트 n번방’의 공범들이 징역 8년 이상을 선고받은 것을 고려하면, ‘엘’ 공범들의 강력한 처벌을 위해서도 ‘엘’을 한국으로 데려와야 한다.

‘소라넷’ 운영진 3명도 잊지 말아야 할 2023년

가장 우려되는 점은 호주에서 유죄가 선고된 뒤 형기 만료 혹은 중도 국외 추방을 기다리며 시간을 날리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이 좀더 적극적이고 강하게 범죄인인도를 요구하는 형태로 송환 협상에 나설 필요가 있다. 호주와의 범죄인인도조약을 보더라도 호주에서 수사와 재판이 진행되는 경우 인도를 절대적으로 거절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조건을 내걸어 협상해야 한다. 임시송환의 형태로라도 ‘엘’을 한국으로 끌고 와서 수사와 재판을 진행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반드시 잡힌다’ 이후는 ‘반드시 처벌한다’여야 한다. 피해자들의 피해 복구와 일상 재구성은 가해자에 대한 적정 수준의 처벌에서 시작하며, 이는 일부에서 우려하는 엄벌주의의 한계와는 관계없다. ‘엘’의 국내 송환이 언제 진행될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와 관련한 수사와 재판의 추적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소라넷 운영진 3명에 대한 범죄인인도 청구 결과를 2023년에도 기억하며 따라가는 것처럼 몇 년이 걸리든 성착취범이 제대로 처벌받는 걸 지켜보겠다. 기억과 기록은 연대의 힘이다.

마녀 반성폭력 활동가·<그림자를 이으면 길이 된다> 저자

*마녀는 성폭력 재판이 열리는 전국 법원을 찾아가 지켜보고 기록하고 공유합니다.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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