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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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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 가해자가 적극적으로 국민참여재판 원하는 이유

국민참여재판 성범죄 사건 무죄율 14%에서 48%로 늘어난 이유…
배심원은 가해자에게 과몰입, 피해자는 낯선 사람들에게 ‘피해자다움’ 증명해야
등록 2022-06-23 23:19 수정 2022-06-24 11:10
일러스트레이션 임우정

일러스트레이션 임우정

‘어, 존다.’

최근 진행된 성폭력 사건 국민참여재판 중 피해자 증인신문 과정에서 일부 배심원이 조는 모습이 포착됐다. 피해 이후 일정 시간이 지난 뒤 가해자를 고소한 사건이었다. 피해자와 피고인 모두 신체접촉이 있었음은 인정했으나 그 상황 등을 두고 첨예하게 대립했기에 피해자 증인신문으로 진술의 신빙성을 판단하는 게 중요했다. 하지만 법적 지식이 부족하고 관련 훈련을 받지 않은 일반인인 배심원들이 장시간 이어지는 재판을 버티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런 상황을 유독 성폭력 사건의 가해자와 조력자들이 적극 활용한다. 국민참여재판이 성범죄 가해자들의 방어 전략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국민참여재판은 2008년 도입된 시민의 사법참여제도 중 하나다. 영국·미국 등의 배심제(일반 국민으로 구성된 배심원단이 재판에 참여해 유·무죄 평결을 내리고 법관은 그에 따르는 것)와 독일·프랑스 등의 참심제(일반 국민인 참심원이 법관과 함께 재판부의 일원으로 참여해 동등한 권한에 따라 판단하는 것)를 혼용했다. 배심원들은 법관의 관여 없이 평의 뒤 평결(만장일치 원칙)에 이르는데, 이 평결은 권고적 효력이 있다. 법관의 판단과 배치될 경우, 배심원의 평결과 판결 선고의 내용이 다를 수 있다. 현재 국민참여재판은 형사사건 1심에 한정된다. 국민참여재판은 짧게는 하루, 길게는 사흘 정도 걸리며, 일반재판과 달리 오후 6시를 넘겨 진행되는 일이 많다.

2016년 이후 가해자가 적극적으로 신청

국민참여재판 신청은 피고인만 할 수 있고, 피해자가 거부해도 법관의 판단에 따라 진행할 수 있다. 2008년 제도 도입 뒤 추가 가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이유로 성폭력 사건을 배제하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았으나, 2016년 대법원이 “성폭력범죄 피해자나 법정대리인이 국민참여재판을 원하지 아니한다는 이유만으로 국민참여재판 배제 결정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할 수 없다”고 판시한 이후 피고인 쪽에서 적극적으로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하는 추세다. 대법원이 2021년 낸 ‘2008~2020년 국민참여재판 성과 분석’ 보고서를 보면 성범죄 사건의 국민참여재판 접수 건수는 총 1857건으로 전체의 23.6%를 차지(살인 947건, 강도 875건, 상해 221건 등)했다.

그런데 왜 성범죄 가해자에게 국민참여재판이 유리하다는 인식이 퍼져 방어 전략으로 자리잡은 것일까? 아직 관련 연구는 부족하지만, 결과적 측면에서 성범죄 사건 재판의 경우 다른 형사사건에 견줘 무죄 비율이 매우 높으며, 배심원단의 판단이 법관의 판단과 불일치(배심원단 무죄, 법관 유죄)하는 사례도 많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2021년 송재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법원에서 받은 ‘국민참여재판 실시 현황 자료(2010~2020년)’에 따르면 성범죄 사건의 무죄율은 2010년 14%에 불과했지만, 2020년 48%로 늘어났다. 실형률은 같은 기간 65.5%에서 39.1%로 떨어졌다. 국민참여재판이 무죄나 선처의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통계적으로 뒷받침된 셈이다.

국민참여재판은 통상 무죄를 주장하는 피고인이 신청하는 사례가 대부분이어서, 상대적으로 자백 사건이 많은 일반 재판보다 무죄 비율이 높다. 물증 확보가 어려운 성폭력 사건의 경우, 검사의 무리한 기소가 많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반면 2017년 서울대 홍진영 교수가 논문에서 지적했듯 배심원단에 “사회 일반에 통용되는 강간 통념”이 강하게 깔렸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배심원단이 지닌 ‘피해자다움’이라는 통념에 평결이 좌우될 수 있다는 의미다.

진술 신빙성은 재판 당일 인상에 좌우

이는 배심원 선정 과정의 한계와도 연결된다. 배심원 선정은 비공개로 진행되며, 출석한 후보 중 현장에서 무작위로 추출한 뒤 검사와 피고인 쪽의 질문으로 후보를 걸러내는 과정을 거치는데 이때 특정 성별과 연령대가 배제되는 일이 잦다. 특히 ‘젊은 여성’은 배심원이 되기 어렵다. 이번에 방청한 사건만 봐도 남성은 연령별로 다양하게 5명, 여성은 특정 연령대에 한정된 3명이었다.

더구나 배심원 교육은 당일 짧은 시간 영상으로 국민참여재판을 설명하는 정도에 그친다. ‘진술의 신빙성’ 판단이 재판 당일의 인상에 좌우될 위험성이 높다. 좁은 인간관계로 구성된 지역의 경우 아무리 무작위로 추출해도 피해자·피고인과 간접적으로 연결될 수 있어, 피해자가 배심원 앞에 서기를 꺼리거나 지역을 떠나기도 한다.

국민참여재판에서 배심원은 피고인에게 과몰입하는 경향이 있다. 성폭력 피해자는 낯선 일반인들 앞에 나서서 자신의 피해를 그들의 눈높이에 맞춰 전달하는 게 쉽지 않다. 성범죄 사건의 경우 피해자가 불출석하거나, 피고인 쪽이 피해자 없는 재판 진행을 요구하는 일이 많다. 결국 법정에선 피고인 쪽의 일방적인 호소나 주장이 떠돌고, 배심원은 ‘조두순’급의 성범죄자가 아닌 이상 피고인의 입장에 동조하게 된다.

반면 수사와 재판을 거치면서 언어체계가 무너지는 등 여러 문제를 안는 피해자의 경우 법정에 나서도 배심원이 원하는 ‘피해자다운 모습’이 아닐 수 있다. 배심원은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하는 데 더 엄격해진다. 일반인들은 토씨 하나 틀리지 않을 정도로 엄격한 진술 일치를 요구하는 경향이 있다. 거기에 유죄판결을 내리는 것이 일반인 입장에서 부담되는 것도 한몫한다.

재판 진행 과정에서 배심원을 설득하기 위한 검사와 피고인 쪽 변호인의 전략을 비교해봐도 피고인 쪽이 유리한 측면이 강하다. 전국에서 진행되는 국민참여재판을 모니터링했는데, 검사의 입증 노력은 일반 재판과 크게 차별화되지 않지만, 변호인의 방어 전략은 일반인의 통념을 강화하는 방향이 된다. 피고인 쪽은 사건과 무관한 피해자의 평소 행실이나 평판 등을 적극적으로 부각하고, ‘동의’ ‘성적 수치심(불쾌감)’ ‘성인지감수성’ 등 대중이 오해하기 쉬운 단어를 끌어와 사건을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포장한다.

변호인은 통념 강화, 법관은 배심원 배려

범죄의 입증 책임이 있는 검사는 일반인으로 구성된 배심원이 빠지기 쉬운 함정을 간과하거나 법정에서 증언하는 피해자에게 입증 책임을 떠넘기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곤 했다. 법관 역시 일반인인 배심원을 배려하는 데 치중해 오히려 절차 측면에서 피해자 보호를 소홀히 하거나 피고인 쪽의 부적절한 방어를 방치할 때도 있다.

맨 앞에서 언급한 사건은 이틀이 걸린 재판을 통해 배심원이 만장일치로 무죄를 평결했고, 재판부 역시 무죄를 선고했다. 신체접촉이 있었고 피해자가 불쾌감을 느꼈을 수는 있지만 이를 강제추행으로 보기 어렵고 피해자 진술 역시 일관성이 부족하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증인신문을 공개적으로 진행할 정도로 적극적인 성향의 피해자는 일반인이 기대하는 ‘피해자다운’ 피해자와는 거리가 멀었고, 피해자 진술 역시 맥락과 상황 등이 고려되지 않았다. 피고인 쪽은 피해자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샅샅이 뒤져가며 피해자가 피해자답지 않고 다른 이해관계에 기반해 문제를 제기했다는 주장을 지속했고, 검사는 배심원이 빠질 수 있는 함정에 적극 대응하지 못했다.

결국 ‘국민참여재판은 성범죄 피고인에게 유리하다’는 인식이 생겼고, 실제 피고인들은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피해자들은 본인의 선택과는 무관하게 법정에 끌려나가고 있다. 국민참여재판이 취지에 맞게 운영되려면 유독 높은 무죄율을 보이는 성범죄 사건의 깊이 있는 분석을 토대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시민들은 통념에 좌우되기도 쉽지만, 몇 가지 오해를 걷어내려는 노력이 뒷받침되면 충분히 감시자로, 나아가 판단하는 자로 성장할 수 있다. ‘강간 통념’과 ‘상식/법감정’을 등치시키려는 접근에서 벗어날 때 국민참여재판은 제대로 된 시민의 사법참여 혹은 사법감시를 위한 제도로 자리잡을 것이다.

마녀 반성폭력 활동가

*n번방 재판 방청기: 마녀는 성폭력 재판이 열리는 전국 법원을 찾아가 지켜보고 기록하고 공유합니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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