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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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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가 여전히 <사이버지옥>이 보기 어려운 이유

재연 애니메이션 시청도 고통스러워하는 피해자들
그들의 용기 내세우지만 추적자의 소회는 피해자에게 어떻게 가닿을까
등록 2022-06-07 18:17 수정 2022-06-10 10:54
일러스트레이션 임우정

일러스트레이션 임우정

“더 못 보겠어요. 안 볼래요.”

넷플릭스 다큐 <사이버 지옥: n번방을 무너뜨려라> 개봉 이후, 다큐 시청을 시도했다가 포기한 디지털성폭력 피해자들의 연락이 이어졌다. 영화 <걸캅스>나 드라마 <모범택시> 등 디지털성범죄를 다룬 작품을 보려다 포기한 이들이었기에 <사이버 지옥> 역시 거리를 두고 보기는 어려우리라 생각했다. 반디지털성폭력 활동가들과 만난 자리에서 활동가들도 과몰입 등을 경계하며 시청을 주저하는 분위기였는데, 실제 피해자들은 더 힘들었을 거다.

가해자 변호인 등장해 사건 정보 잘못 전달

2022년 5월23일 서울여자대학교 바롬종합설계프로젝트 주최 다큐상영회에서 주로 대학생으로 구성된 관객과 함께 <사이버 지옥>을 봤다. <사이버 지옥>은 사건 추적기를 인터뷰 형식으로 최대한 건조하고 속도감 있게 풀어낸 작품이다. ‘범인은 반드시 잡힌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는 제작 의도에 걸맞게, 한국 수사기관을 비웃던 두 동갑내기(1995년생) 디지털성범죄자인 ‘n번방’ 문형욱과 ‘박사방’ 조주빈의 검거 과정 연출은 신선했다. 2019년 7월과 9월의 추적단 ‘불꽃’, 2019년 11월 <한겨레>, 2020년 1월 SBS <궁금한 이야기 Y>, 2020년 2월 JTBC <스페셜 탐사 스포트라이트>로 이어지는 추적자들의 분투와 윤리적 고뇌를 다룬 부분, 범죄자 검거와 피해자 보호를 위해 잠복을 불사했던 경찰들의 노력, 그리고 마침내 2020년 3월과 5월에 검거된 두 범죄자. 아마 내가 일반인이었다면 충분히 ‘재미’를 느꼈을 거다.

<사이버 지옥> 제작 과정에서 제작진은 피해자 보호를 위해 여러 고민을 한 것으로 안다. 사건 영상과 사진은 직접 쓰지 않고 연출 뒤 모자이크 처리를 하거나 애니메이션으로 은유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을 썼는데, 이는 범행의 세부적인 묘사에 치중하던 기존 실화 바탕 영상물과는 차별되는 지점이었다. 조감독을 비롯해 <사이버 지옥> 제작 스태프의 70%가량을 차지한다는 여성들이 피해자 접촉, 다큐 속 애니메이션과 음악 제작 등을 맡으며 피해자의 추가 피해를 막고 사건을 자극적으로 전달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실시간 비대면 디지털성범죄의 특성을 부각해 이른바 ‘관전자’(소지·시청 사범 등)로 대변되는 공범들의 행태를 비춘 점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여러 장점이 있음에도 디지털성범죄 피해자의 연대자이자 활동가인 입장에서 <사이버 지옥>에 아쉬운 측면이 있다. 우선 가해자를 대변하는 변호인을 등장시켜 균형감을 유지하려는 연출 과정에서 사건 정보가 잘못 전달됐다. ‘부따’ 강훈의 변호인이 나와 사건과 관련된 그의 역할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그가 이미 법적으로 ‘박사방’의 2인자로서 범죄집단 조직·관리에 적극적인 관여를 한 것으로 판단받았음에도 ‘자금전달책’ 정도로 그의 역할을 축소했다. 물론 <사이버 지옥> 제작 시기를 고려할 때 구체적인 판결문 분석까지 반영하기는 어려웠겠지만, 그럼에도 ‘다큐’이기에 더 신경 써야 할 부분이다.

영화 홍보 위해 사실관계 자의적 재규정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한 것 역시 그동안 다른 언론사가 사용하던 방식과 확연히 구별되는 지점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피해자를 중심에 두고 그의 고통을 강조하며 가해자들의 영향력을 강조하는 구도이기에 피해당사자는 해당 애니메이션 시청을 고통스러워했다.

아울러 다큐 추적자들이 추적 뒤에 내놓은 결과물을 다 살펴본 입장에서 그 결과물에 그들이 강조하던 윤리적 고뇌가 얼마나 반영됐는지 의구심이 든다. 피해자의 용기를 내세워 추적자들의 선택이 불가피했음을 강조했으나, 그것이 해당 결과물의 한계를 없애주지 않는다고 본다. 추적자 입장에서 여기저기 늘어놓았던 소회가 사건 피해자에게 어떻게 가닿을지 추적자들은 알고 있을까? 물론 다큐 속에서 고민조차 할 생각 없는 언론·방송인들에 견주면 진일보한 것이라 볼 수 있지만, 여전히 한국 언론·방송은 피해자를 도구·대상화하는 측면이 강하다.

<사이버 지옥>에 나온 관계자들이 “2020년 이전에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범죄” “네트워크상에서 최신 테크놀로지를 통해 벌어진 뉴타입 크라임” “세계 최초의 비대면 조직적 사이버 성범죄” 등과 같이 영화 홍보나 재미를 위해 사실관계와 사건의 의미를 자의적으로 재규정하는 것을 두고 봐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영화 소재 측면에선 새로운 범죄처럼 보일 수 있으나, ‘n번방’으로 대변되는 디지털성범죄는 유구한 역사를 가진 한국형 성범죄로, 범행 수법 역시 2020년 이전부터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전달됐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결합한 성착취·성폭력 범죄가 실시간으로 공유되는 방식은 이미 ‘소라넷’(1999~2016년)의 ‘초대남’(실제 ‘n번방’ 공범들을 ‘초대남’으로 부르기도 했다) 등으로 나타났다. 주류나 약물에 취해 정신을 잃은 피해자를 ‘골뱅이’라고 부르며 생면부지의 남성들을 ‘초대’해 강간 등 물리적 성폭행과 함께 해당 내용을 촬영해 공유하는 방식이다. 2015년 소라넷을 모니터링하던 일반 시민들이 실시간으로 벌어지는 범죄를 목격하고 수사기관에 수사를 요청했으나 거부당한 장면을 온라인에서 본 이가 많았음에도, 그런 범죄가 2020년 들어 새롭게 등장한 것처럼 묘사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로 성착취 영상물을 거래하는 것도 오래전부터 퍼진 방식이다. ‘n번방’ 홍보를 담당한 ‘와치맨’ 전아무개가 블로그 이름으로 내걸었던 ‘AV스눕’(2013~2017년)이나 손정우가 운영했던 ‘W2V’(웰컴투비디오, 2015~2018년)가 대표 사례다. 여러 해킹 프로그램을 활용해 신상정보를 확보한 뒤 피해자를 협박해 일명 ‘노예’로 만들어 각종 성착취물을 제작한 뒤 관련 정보와 함께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방식 역시 ‘오카방’(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서 수년간 목격됐던 범죄 유형이다. 비대면의 조직적·집단적 성범죄 역시 앞서 언급한 모든 디지털성범죄에서 공통으로 나타났고 새로운 유형이라 보기 어렵다.

오히려 이런 범죄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관련 법리를 뒤늦게 찾아 그제야 적용해 처벌한 한국 형사사법 시스템의 뒷북 대응이라고 봐야 한다. 기성세대와는 확연하게 다른, 최첨단의 새로운 범죄 유형으로 규정하는 것은 앞세대의 문제를 덮어 디지털성범죄를 디지털네이티브만의 문제로 축소하려는 ‘어른들’의 비겁한 접근이라고 생각한다.

형사사법 시스템이 뒷북 대응했기에 새로워 보여

현시점에서 <사이버 지옥>이 갖는 상징성과 힘은 크다. 잊힌 사건을 환기하고, 선처받은 뒤 숨은 가해자를 불러내며, 이어지는 유사 디지털성범죄의 수사와 재판에 시민 감시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데 이 다큐는 가치가 있다. 소라넷의 ‘100만 명’, AV스눕의 ‘122만 명’, 그리고 ‘n번방/박사방’ 등으로 이어진 ‘26만 명’ 등 세대를 이어 우리 사회를 ‘지옥’으로 만들었던 이들이 여전히 우리 곁에 있다. 그래서 이제 <사이버 지옥> 속 ‘24인’이 아니라 우리 모두 그들을 쫓는 추적자가 돼야 한다. 범인은 반드시 잡힌다. 추적은 끝나지 않았다.

마녀 반성폭력 활동가

*n번방 재판 방청기: 마녀는 성폭력 재판이 열리는 전국 법원을 찾아가 지켜보고 기록하고 공유합니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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