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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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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뒤 똑같이 미성년 성추행한 경찰공무원

피고인 직업, 가족관계를 감형 사유로 삼지만
재산, 교육수준, 사회적 유대관계는 성범죄와 큰 관련 없어
등록 2022-05-27 00:40 수정 2022-05-27 10:37
일러스트레이션 임우정

일러스트레이션 임우정

“피고인이 80살의 고령이고 경찰공무원으로 성실하게 생활한 것으로 보이는 점… 피고인을 수사기관에 신고했던 초등학교 교장과 교감이 피고인의 선처를 바라는 탄원서를 제출한 점… 원심이 피고인에게 선고한 형은 무거워서 부당하다고 판단한다.”(서울고법 2018년 5월14일)

“피고인이 2018년께 동종의 범행으로 처벌받은 전력이 있지만, 그 이외에는 8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별다른 처벌 전력 없이 살아온 점에 비추어 성폭력범죄의 재범의 위험성이 있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점, 피고인은 80살이 넘는 고령으로 치매 진단을 받는 등 건강상태가 좋지 않고, 피고인의 가족들도 피고인에게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일 것을 다짐하고 있다.”(의정부지법 2019년 8월22일)

13살 미만 아동에게 연달아 두 차례 성폭력범죄(강제추행)를 저질렀던 경찰공무원 출신 80대 남성 ㄱ씨와 관련한 두 건의 판결문 내용이다. 두 번째 범행은 심지어 집행유예 기간에 일어났다. 각 재판부는 이 남성의 전 직업, 나이, 가정환경, 사회적 유대관계 등을 고려해 작량감경(정상참작감경)을 통한 징역형의 집행유예(서울고법), 벌금형(의정부지법)을 선고하고 신상정보 공개·고지 명령도 면제했다. 이렇게 풀려난 남성은 2022년 4월 또다시 13살 미만 아동에게 성폭력(성폭행)을 저질렀다. 법원이 나이, 직업, 사회적 유대관계 등을 고려해 재범 위험성이 낮다고 판단한 결과다.

학생은 장래 전문직, 공무원 종사할 거라며

성폭력범죄 판결문을 분석하다보면 피고인에게 유리한 양형 사유로 피고인의 직업과 사회적 유대관계가 자주 등장한다. 피고인이 전문직이거나 공무원 등 판사들이 보기에 안정적인 직업을 가졌고 가족과 지인, 직장 동료 등 주변인이 선처를 탄원하는 관계망이 있을 경우 재범 위험성이 낮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재범 위험성이 낮다는 게 입증됐다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현실 속 많은 통계자료는 판사들의 판단과 거리가 멀다.

2022년 5월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성폭력범죄와 관련한 양형기준 수정안을 발표했다. 긍정적인 일반참작사유 중 재범 위험성 등을 평가하는 요소로 ‘피고인이 고령’이라는 나이 기준은 삭제했으나, 여전히 ‘사회적 유대관계 분명’은 들어가 있다. 인터넷 열람으로 확인 가능한 판결문 가운데 ‘사회적 유대관계 분명(양호)’이 반영돼 작량감경, 징역형의 집행유예, 신상정보 공개·고지 명령 면제 등의 선처를 받은 성폭력 사건이 압도적으로 많다. 이 때문에 피고인들은 탄원서 등 ‘사회적 유대관계’를 증명하기 위해 각종 양형자료를 제출한다. 교육 정도가 높고, 사회적 지위가 있는 직장을 다니며, 가족이 있는데다, 안정적으로 돈을 벌면 잃을 게 많기에 재범률이 낮으리라는 법원의 판단을 기대한다.

이에 그치지 않고 법원은 피고인의 평판과 업적, 사회적 기여 정도를 감경 사유로 늘어놓고 직무 스트레스를 성범죄의 원인으로 언급하는 등 특정 직군에 온정적인 시각을 드러낸다. 형법 제51조 양형조건에 피고인의 평소 성행이나 가정환경 등이 있어 판결을 내릴 때 이를 고려할 수는 있지만, 법원이 선처를 베푸는 직군은 판사들이 보기에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군(전문직, 공무원 등)인 경우가 많다. 심지어 현재 그 직군에 종사하지 않지만 장래 그럴 가능성이 있는 학생, 수험생이 성범죄를 저질렀을 때도 선처를 남발한다.

자영업자, 일용직 노동자는 성실하지 않은가

현실은 법원의 기대와 차이가 있다. 2021년 10월 현대사회와성범죄연구회가 주최한 토론회에서 박기쁨 판사는 ‘디지털성범죄의 양형상 문제’ 발표를 통해 ‘피고인의 재산이나 교육 정도, 직업 등의 유무가 그 범죄의 발생과 크게 관련이 없다’고 판단했다. 성폭력의 경우 다른 흉악범죄(살인·강도·방화)에 비해 대졸 이상 학력자 비율이 높고 전문직(의사·변호사·교수·종교인·언론인·예술인 등) 비율도 상대적으로 높다(무직자 등의 비율은 상대적으로 낮다). 또한 서울 지역에 국한되지만 다른 흉악범죄와 달리 성범죄는 권역별 발생 등급 차이가 통계적으로 유의미하지 않아 재산, 생활수준, 교육수준 등과 큰 관련 없이 발생하고 있다. 즉, 성폭력범죄에서 ‘사회적 유대관계 분명(양호)’은 성범죄 재범 위험성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적용하기에 무리가 있다.

오히려 성범죄자는 자신의 평판과 업적, 기여도를 이용해 성폭력범죄를 저지른 뒤 피해자의 입을 틀어막는다. 사회적 유대관계가 분명하고 양호하다는 것은 성범죄를 저질렀을 때 주변에서 은폐나 축소를 적극적으로 도울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며, 사회적 유대관계가 특정인의 도덕성을 담보하는 것도 아니기에 기계적으로 감경 요소로 활용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또한 특정 직군에 우호적인 법원의 시각은 그 자체로 차별이다. 자영업자, 일용직 노동자, 무직자 등은 전문직·공무원과 달리 사회에 기여하지도, 성실하게 생활하지도 않았다고 단언할 수 있는가? 사회적 유대관계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가족·지인 등 주변의 선처 탄원을 기계적으로 반영하는데, 그런 인적자원이 없거나 부족한 사람이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은 무엇을 근거로 하는가?

범행 저질러도 은폐할 수 있다는 자신감

2022년 1월 법무부 디지털성범죄 등 전문위원회는 ‘객관적·합리적 양형을 위한 형법 양형조건 개정’ 등을 뼈대로 한 권고안을 내면서 가해자 중심 양형조건에 피해자 연령, 피해의 결과와 정도, 피해 회복 여부, 피해자의 처벌과 양형에 관한 의견 등을 반영하도록 요구했다. ‘사회적 유대관계 분명(양호)’ 등 가해자 위주의 양형조건과 그에 대한 기계적 반영이 피해자 소외로 이어져 피해 구제와 정의 실현에 공백을 가져오며, 불명확한 양형 판단에 따라 사법 불신이 야기됐다고 지적한 것이다.

경찰공무원 출신 80대 남성은 집행유예, (동종 전과로 집행유예 기간 중) 벌금형 선고 등 선처가 이어지고 신상정보 공개·고지 명령 등도 면제되면서 계속 범행을 저질렀던 지역에 머무를 수 있었고, 결국 3년 뒤 또다시 아동을 대상으로 더 강력한 성범죄를 저질렀다. 범행 이유로 ‘외롭다’고 말했다는 그 성범죄자에게 경찰공무원이었다는 점을 들어 성실하게 살아왔다고 평가하고, 사회적 유대관계가 분명해 재범 위험성이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사회를 자유롭게 활보하도록 선처한 재판부는 자신들의 판단에 어떻게 책임을 질 것인가?

이제 가해자 중심 양형조건을 세심하게 다시 살피고 분석해야 할 때다. 판사들의 기대와 다르게 그들은 ‘잃을 게 많아서 범행을 저지르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 지위와 관계망을 통해 ‘범행을 저질러도 은폐·축소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는 것’이다. 그런 사회적 지위와 인적 관계망을 가지고도 성범죄를 저질렀다면 그것이 감형 사유가 돼야 할까, 아니면 엄벌 사유가 돼야 할까.

마녀 반성폭력 활동가

*마녀는 성폭력 재판이 열리는 전국 법원을 찾아가 지켜보고 기록하고 공유합니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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