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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두순 사건, 검찰이 어떻게 기소했는지 아시나요

검경 수사권 조정의 폐해 ‘검찰 편’…‘국민의 피해’ 앞세워 여론전, 인권 보호 미약한 과거에는 침묵
등록 2022-05-10 16:38 수정 2022-05-17 01:34
일러스트레이션 임우정

일러스트레이션 임우정

‘검수완박? 대체 뭔가요?’ ‘개정안은 범죄 외면법, 범죄 방치법입니다.’ ‘검수완박, 누구를 위한 것입니까?’

매달 뉴스레터 정도의 게시물만 올라오던 대검찰청 공식블로그 ‘검찰 소식’에 2022년 4월20일 이후 2주 정도 우르르 쏟아지던 게시물 일부의 제목이다. ‘검수완박’으로 불리던 검찰청법·형사소송법 개정안과 관련해, 검찰이 언론과 시민에게 해당 개정안의 문제점을 알린다는 목적으로 올린 게시물을 보면서 생각했다. 역시 검찰은 위기에 처해야 외부와 소통이라도 하는 척한다. 그런데 개정안의 문제를 지적하기 위해 일반인 피해자의 고통을 앞세우고 경찰 수사 역량을 비하하며 공소유지를 위해 직접수사권 확보가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것을 보며, 검찰 내부의 자정과 성찰은 아직 멀었다고 판단했다.

조두순 사건, ‘13살 미만 강간상해’ 적용 안 해

검찰의 지적대로 2022년 5월3일 공포된 검찰청법·형사소송법 개정안 내용 중 일반 형사사건과 관련해 문제가 예견되는 지점이 있다. 경찰이 불송치한 사건에 대해 이의신청권자에서 고발인을 제외한 것은 대표적인 독소조항이다. 디지털성범죄나 아동학대, 내부고발 등 피해자가 피해를 인지 못하거나 신고·고소를 두려워하는 사건의 수사를 위축시킬 위험성이 크기 때문이다.

수사·재판에 걸쳐 연대와 재판 모니터링 활동을 해온 필자 입장에서 개정안에 대한 여러 비판에 공감하지만 형사사법 절차 측면에서의 공감이지, ‘수사 역량’이나 ‘인권 보호’ ‘공소유지’ 등과 관련된 검찰 주장에 수긍하기 때문은 아니다. 검찰은 특정 사건 중심으로 자신의 업적을 내세우기 바쁜데, 그런 논리라면 반대 사례도 얼마든지 내세울 수 있다. 1차 검경 수사권 조정이 있던 2021년 전후, 여성 대상 폭력 사건 등에서 검찰이 ‘수사–기소–공소유지’와 관련해 어땠는지 돌아보면 검찰 여론전의 한계가 드러난다.

검찰이 수사지휘권을 가지고 있던 2020년까지 여성 대상 폭력·살인 사건 등 일반 형사사건은 외부로 알려진 유명한 사건이 아닌 이상 검찰에 고소장을 제출해도 결국 수사는 경찰이 담당했다. 수사지휘권이 검찰에 있었기 때문에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처럼 수사 지연이 심각하지는 않았지만, 당시에도 불구속 사건의 경우 수사 지연이 발생했고 경찰이 사건을 검찰에 넘긴 뒤 직접 보완수사 등이 적극적으로 진행됐다고 보기도 어려웠다. 경찰이 성실하게 수사한 사건에 대해 검찰이 기록 등을 제대로 검토하지 않고 불기소처분을 내리거나 물적 증거의 확인 없이 ‘피해자답지 않다’는 이유로 피해자를 무고범으로 몰아 기소하는 사례도 많았다. 검찰은 법률전문가로서 경찰과 차별화된다고 주장하지만 ‘조두순 성폭력 사건’과 같이 법률 조항 적용이 부적절했던 사례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경찰은 성폭력특별법상 ‘13살 미만 미성년자에 대한 강간상해’를 적용해야 한다는 의견으로 검찰에 이 사건을 송치했지만, 검찰은 그보다 법정형이 낮은 ‘형법상 강간상해’로 조두순을 기소했고, 재판이 시작된 뒤에도 공소장 변경을 하지 않았다.

“아줌마가 무슨…” “남자를 몰라서…” 막말

검찰 수사 과정에서의 인권침해는 어떤가. 성인-비장애 성폭력 피해자가 신뢰관계인 동석을 요구하는데도 “아줌마가 무슨 신뢰관계인이 필요하냐”며 불허하고, 조사하겠다며 피해자를 부른 뒤 무고죄를 적용하겠다고 협박해 소 취하를 강요했으며, 성소수자인 성폭력 피해자에게 ‘남자를 몰라서’ 등을 운운하며 불쾌감을 주는 등 그 사례를 찾으려면 끝도 없다. 검찰은 기피신청 대상자도 아니기 때문에 검찰 수사 단계에서 당한 인권침해에 대한 구제도 요원했다. 유명 사건이야 재판 과정에 수사검사가 참석하기도 하지만, 일반 형사사건 재판은 공판검사가 누구냐에 따라 재판의 질 차이가 확연하다. 형사부와 공판부가 확대되고 검찰 단계 피의자신문조서의 증거능력이 약화돼 공판과정이 매우 중요해졌음에도 검찰의 변화는 더디다.

1차 검경 수사권 조정이 있던 2021년 이후 검찰은 과연 경찰과 구별될 만큼 열심히 제구실했는가? 이번 개정안과 관련된 각종 토론회 등에서 검찰 쪽이 사례를 들어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경찰의 수사 행태에 비난을 퍼붓는데, 그 사례들을 모니터링한 입장에서 어이없었다.

충북 청주에서 발생한 원아무개의 성폭력으로 두 명의 어린 피해자가 숨진 사건과 관련해 수사 지연으로 피해자들이 심적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죽음을 선택한 것은 맞지만, 그 책임 중 일부는 검찰에 있다. 의붓아버지인 가해자와 피해자 분리가 제대로 안 된 상태에서 경찰이 신청한 구속영장을 검찰이 계속 반려하면서 피해자들이 고통받았다. 심지어 피해자들이 숨진 뒤 세 번째 구속영장을 신청했는데 그 역시 반려됐다. 재판 초기 피고인 원씨 쪽이 피해자들에 대해 인신공격을 중심으로 방어전략을 짜서 재판에 임하는데도 검찰은 이를 적절히 제지하지 않았다.

보완수사만 하더라도 검찰이 직접 하기보다는 경찰에 요구하는 게 더 많았고 보완수사 요구 내용도 검경의 힘겨루기에 바탕을 둔 의도적 수사 지연 행태로 보이는 사례가 있었다. 수사에 대한 책임의식을 강조하지만, 사건 송치 혹은 불송치 뒤 이의신청 건에 대해 수사 지연의 책임을 물으면 경찰에 떠넘기던 검찰 모습도 기억한다. 그래서 검찰이 자신이 제구실을 한다는 전제로 이번 개정안에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는 모습이 의아하다. 시민이 검찰이 잘해서 개정안 비판에 힘을 싣는 게 아님을 검찰은 깨달아야 한다.

개정안 비판이 검찰 옹호일까

개정안과 관련해 검사들이 벌이는 ‘여론전’의 주된 내용은 바로 ‘국민의 피해’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자신들이 사수하려는 수사권에 대한 집착만 가득할 뿐 수사 단계에서 협조와 감시를 해야 할 대상으로서 경찰을 존중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국민을 위해 자신들이 어떻게 할 것이라는 청사진도 보인 바가 없다. 그간 있는 범죄는 감추고 없는 범죄는 주변을 털어서라도 만들어내던 검찰에 대한 반성은 보이지 않고, 그런 문제를 일으킨 ‘선배들’과 자신들을 동일선상에 놓지 말아달라는 불만이나 늘어놓았다. 그러면서 국민의 피해만을 강조하는 모습을 보니 결국 국민을 볼모로 협박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5월3일 공포된 검찰청법·형사소송법 개정안은 4개월 뒤인 9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박성진 대검찰청 차장검사는 “대검은 앞으로 헌법소송을 포함한 가능한 모든 법적 수단을 검토하는 등 적극 대응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개정안이 지닌 한계가 명확하기 때문에 비판하고 보완해야 함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에 앞서 검찰 스스로 어떻게 해야 신뢰를 얻을 수 있는지 더 많이 고민할 필요가 있다. 여론전 말고 현장에서 어떻게 국민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노력할지 그 방안을 보이길 바란다. 개정안을 비판하는 시민은 시스템 붕괴가 피해자-약자-소수자의 고통으로 이어질 것을 염려하는 것이지 검찰을 옹호하는 게 아니다. 신뢰는 저절로, 알아서, 당연히 쌓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신뢰를 얻으려면 검찰이 먼저 변해야 한다.

마녀 반성폭력 활동가

*'경찰편'은 1410호 '이렇게 엉망으로 돌아가는 수사라니' 참조. 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1917.html

*n번방 재판 방청기: 마녀는 성폭력 재판이 열리는 전국 법원을 찾아가 지켜보고 기록하고 공유합니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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