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청주엔 우암산이 있다. 353m로 높지도 낮지도 않은 산이다. 청주 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청주의 남북을 가로지르는 젖줄 무심천도 조망할 수 있다. 소가 누운 듯한 형세로 ‘우암’(牛岩)이란 이름을 얻었으며, 전엔 ‘와우산’(臥牛山)으로도 불렸다.
속리산 천왕봉에서 북서쪽으로 뻗은 한남금북정맥의 한 줄기인 우암산은 청주를 어머니처럼 품는다. 그 덕에 주말이면 청주 시민 수천 명이 우암의 품에 들었다가 좋은 기운을 받고 돌아오곤 한다. 우암산과 이웃한 명암·내덕·우암·대성·문화·용암동 등 모든 마을에선 우암산으로 이어지는 등산로가 있다. 2017년 우암산 생물다양성탐사단이 낸 보고서를 보면 하늘다람쥐·참매 등 천연기념물과 소나무·참나무 등 나무 169종, 참나리 등 꽃·풀 181종, 사슴벌레 등 곤충 179종이 서식하는 생태계 보물창고다.
이곳에 둘레길이 생긴다. ‘우암산 둘레길’이다. 충북권역 첫 도심 둘레길이다. 2022년 3월 착공해 2023년 6월 초여름에 선보일 예정이다. 지금 실시설계를 하면서 관계기관 등과의 협의도 진행 중이다. 예산은 100억원이다. 충북도가 75억원을 내고, 청주시가 25억원을 낸다.
우암산 둘레길은 생태계 복원이면서 도시 재생이라는 데 뜻이 있다. 우암산 자락과 허리 등을 두른 우암산 순회도로 2차로 가운데 한쪽 차로를 둘레길로 복원한다. 우암산 순회도로는 1972~1974년 도심 교통 분산 등을 이유로 만들어졌다. 청주시 등은 삼일역사공원~청주 어린이회관 사이 4.2㎞ 구간 가운데 청주 시내 쪽 한 차로를 둘레길로 복원하고, 산 쪽 1개 차로는 일방통행로로 남길 참이다. 차로 방향은 삼일역사공원에서 어린이회관 쪽을 염두에 두고 있다. 이 길은 상당산성, 국립청주박물관 등으로 이어진다.
지금도 이 길을 따라 청주 시내를 조망할 수 있는 보도가 있지만, 낡고 좁은데다 차도와 붙어 있어 시내 풍광에 홀려 걷다보면 사고가 날 수도 있다. 박근수 청주시 지역개발과 주무관은 “우암산 공원을 시민에게 돌려주려는 뜻으로 우암산 둘레길을 조성하고 있다. 우암산 환경을 살리고, 시민들이 안전하게 우암산을 누릴 수 있는 명품 길을 조성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환경단체 “2개 차로 모두 보행로로 바꿔야”반대도 있다. 둘레길 조성에 따라 양방향 교통로가 일방으로 바뀌면서 이 일대 교통 문제가 거론됐다. 우암산 순회도로 중간 지점인 청주 청원구 내덕동 안덕벌 일대 상인 등은 일방통행로로 바뀌면 상권이 위축될 우려가 있다며 반대한다. 이들은 ‘청주시는 우암산 일방통행 공청회를 반드시 개최하라’ 등의 펼침막을 순회도로와 상가 곳곳에 내걸었다. 우암산에 자리한 관음사의 신도회도 ‘일방통행 둘레길 설치 반대’ 펼침막을 걸었다. 김대희 ‘우암산 일방통행 공사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은 “100억원을 들여 멀쩡한 길 한쪽을 없애고 일방통행으로 만드는데 주민들의 의견은 제대로 듣지 않았다. 일방통행이 되면 가뜩이나 손님들의 발길이 줄어 막막한데 안덕벌 상권은 더 죽는다. 대책 없는 공사를 반대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충북도와 청주시 등은 이들의 반대에 손사래를 친다. 청주시 관계자는 “수차례 주민 공청회, 설명회 등을 열어 의견을 모았다. 우암산 둘레길 주변 여섯 마을 가운데 다섯 마을이 둘레길 조성과 일방통행 조정을 수용했다. 둘레길 조성이 도시 재생, 환경 보존, 관광 활성화 등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환경단체 등도 환영한다. 아예 우암산 순회도로 전체를 둘레길로 만들자는 주장도 나온다. 이성우 청주충북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일방통행로를 남기기보다 아예 우암산 순회도로를 다 뜯어내고 시민들이 제대로 걷고, 우암산 환경을 누릴 수 있게 바꾸는 게 좋다. 반쪽 둘레길은 조금 아쉽다”고 말했다. 환경운동가 출신 박완희 청주시의회 의원도 “충북도와 청주시가 모처럼 시민을 위해 좋은 결단을 내렸다. 청주시 외곽에 순환도로 등을 촘촘히 만들어 둘레길을 조성해도 교통 순환에 문제가 없을 것이다. 주변 상권 활성화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우암산 둘레길 조성과 함께 주변 마을과 명소, 역사·문화 공간 등도 눈길을 끈다.
우암산 아래 첫 마을 수암골이 눈에 띈다. 수암골은 ‘수동’과 이웃한 ‘우암동’을 아우르는 마을이다. 1945년 해방 직후 오갈 데 없는 이들이 우암산 자락 비탈진 곳에 다닥다닥 판잣집을 지으면서 마을이 됐다. 한국전쟁 때 피란민들도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 1970년대 이후 재개발, 주거환경 개선 등이 이어졌지만 마을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시간이 멈춘 마을의 모습이 오히려 마을을 살렸다. 2008년 충북민족미술인협회 이홍원 화백 등이 마을 골목에 붓을 대면서 청주를 대표하는 벽화마을로 거듭났다. 어깨가 부딪힐 정도로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 집 안이 훤히 보이는 낮은 담벼락엔 호랑이·꽃·아이 등 익살스러운 그림이 앉았다. 이곳은 영화·드라마 촬영 명소이기도 하다. 드라마 <카인과 아벨>(2009), <제빵왕 김탁구>(2010), <영광의 재인>(2011), 영화 <언니>(2018) 등이 이곳에서 촬영됐다. 수암골이 끝나는 곳에 <사랑이 뭐길래> <사랑과 야망> 등 수많은 히트작을 낸 김수현 작가를 기리는 ‘김수현 드라마 아트홀’도 있다.
우암산 순회도로 첫머리인 삼일역사공원도 우암산 둘레길과 함께 시민의 공간으로 탈바꿈할 기회를 얻었다. 1980년 충북도 등이 조성한 공원엔 신홍식·권동진·손병희·권병덕·신석구 선생 등 1919년 독립선언서에 서명하고, 3·1 운동을 주도한 충북 출신 민족 대표 5명의 동상이 있다. 청주 지역 3·1 운동을 기념하는 항일독립운동기념탑도 있다. 정지성 청주 문화사랑모임 대표는 “일방통행 차로를 낀 우암산 둘레길 하나로 우암산 환경과 주변 마을이 살아날 수는 없다. 우암산과 역사 공간 삼일공원, 주변 수암골 등의 접근성을 키울 수 있는 공간과 프로그램 등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청주=글·사진 오윤주 <한겨레> 기자 st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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