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전국에 은둔 청년이 얼마나 있는지, 그들은 누구이며 왜 은둔하게 됐는지, 방 안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정부 차원의 전국적 실태조사를 한 적이 없고 이를 구체적으로 파고든 국내 언론 보도도 많지 않았다. 일체의 접촉과 소통을 거부하며 방 안에 은둔 중인 청년을 만나기는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이 발행하는 독립언론 <단비뉴스>의 기자 5명은 2021년 7월부터 9월까지 석 달 동안 은둔 청년들의 일상을 직접 취재했다. 은둔 청년을 지원하는 단체의 도움을 받거나 기자들이 직접 수소문하고 설득해 전국 각지에서 은둔 중이거나 은둔에서 갓 탈출한 청년 25명을 만났다. 은둔형 외톨이들이 가입한 인터넷 커뮤니티를 분석해 은둔 청년들의 일반적 행동과 정서를 분석했다. 전문가 11명을 따로 만나 인터뷰했고, 2500여 쪽에 이르는 관련 보고서와 연구논문도 읽었다.
실명 보도가 원칙이라는 점을 25명의 은둔 청년과 그 가족에게 설득했으나, 이들은 신상 노출을 매우 꺼렸다. 은둔 경험을 세상에 알리면 사회적 낙인이 찍힐까봐 많이 걱정했다. 이에 기사에서는 은둔 청년과 그 가족의 이름을 모두 가명으로 표기했다. 거주 지역은 광역 단위 또는 시군구까지만 밝혔다.
이강원·임예진·임효진·최은솔·현경아 <단비뉴스> 기자 fhrmdldls@gmail.com
*기사에 나오는 은둔 청년의 이름은 당사자들이 요청해 모두 가명으로 썼습니다.
3평(약 9.9㎡)짜리 정사각형 방 안. 서울 성북구에 사는 김나연(28)씨는 2018년 봄부터 2020년 여름까지, 그 안에만 있었다. 가로 1.5m, 세로 2m 크기의 침대에 누워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그다음 2021년 봄까지는 가끔 집을 나서 도서관에 혼자 앉아 있다가 방으로 돌아왔다. 은둔 생활을 하는 3년 내내 거의 아무하고도 말하지 않았다. 함께 사는 부모와도 대화를 피했다.
은둔에서 탈출한 지 몇 달 되지 않은 김나연씨는 그 시절을 생생히 기억한다. “모든 것이 그대로 있었어요.” 책상 위에는 은둔 생활 내내 한 번도 켜지 않은 노트북이 있었다. 책장에는 몇 년 동안 한 번도 펼치지 않은 경제학 서적이 꽂혀 있었다. 옷장조차 열지 않았다. “안 입는 옷을 엄마가 가끔 빨아줬어요. 옷이 썩지는 않았죠.”
그 시절, 김씨는 눈이 떠지면 일어났다. 오전 10시에서 오후 1시 사이에 눈이 뜨였다. 언제 눈이 떠지건 상관없었다. 눈을 뜨면 스마트폰부터 찾았다. 동영상을 틀었다. 종일 그것만 봤다. 돈이 없었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가입 첫 달에는 돈을 내지 않아도 되므로, 넷플릭스의 무료 기간이 끝나면 왓챠로 옮겼다. 영화나 드라마가 지겨워지면 카카오나 네이버에서 무료 웹툰을 봤다. 그마저 볼 게 없으면 ‘맘카페’ 같은 온라인 커뮤니티를 배회했다. 그저 시간을 보내는 용도였다. 그러다 눈이 감기면 잤다.
은둔 기간에 김씨는 하루 한 끼만 먹었다. “움직이지 않아서 배고플 일이 없었어요.” 식사 시간은 보통 오후 4시였다. 눈 떠지는 대로 영화, 드라마, 웹툰을 보다가 허기가 지면 엄마를 불렀다. 하루 중 그때가 유일하게 말하는 시간이었다. 엄마는 볶음밥이 담긴 그릇을 방에 넣어줬다. 김씨는 유일한 그날의 끼니를 침대 위에서 빠르게 먹어치웠다. 때가 되면 엄마가 조용히 방에 들어와 뒷정리했다. 방 청소도 엄마가 했다. 청소하는 동안 김씨는 침대에 누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드물게 은둔 탈출을 도모하기도 했다. 이렇게 지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면, 스마트폰으로 구직 사이트에 들어가 채용 공고를 살폈다. 그때마다 김씨는 자신감을 잃었다. “쌓아놓은 스펙이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사립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그래도 김씨는 자격증 하나 없는 무능력자라고 자신을 탓했다. 자책할 때마다 김씨는 침대에 다시 웅크렸다. 스마트폰을 켜고 가상세계로 도망갔다.
김나연씨 같은 이들을 ‘은둔형 외톨이’라고 부른다. 일본에서는 이들을 ‘틀어박히다’라는 뜻의 ‘히키코모리’라고 한다. 원래 틀어박혀 지내는 청년을 주로 일컫는 용어였지만, 이런 현상이 중노년층에서도 발견됐다. 최근에는 은둔형 외톨이로 지내는 청년을 ‘청년 은둔형 외톨이’ 또는 ‘은둔 청년’이라고 한다.
이 용어가 한국에 처음 소개된 것은 20여 년 전이다. 삼성사회정신건강연구소는 2002년 일본에서 열린 제12차 세계정신의학회에서 한국에 은둔형 외톨이 현상이 발생했다고 보고했다. ‘히키코모리’라는 용어를 처음 쓴 일본의 정신의학과 의사 사이토 다마키 일본 쓰쿠바대학 교수(사회정신보건학)는 ‘사회참여를 하지 않은 상태가 6개월 이상 지속됐지만, 정신장애를 그 원인으로 생각하기 어려운 경우’라고 히키코모리를 정의했다. 은둔형 외톨이 현상이 개인의 정신병리 문제가 아닌 사회구조에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 것이다.
광주광역시는 다른 지방자치단체는 물론 중앙정부보다 한발 앞서 이 문제에 주목했다. 2019년 10월 ‘광주광역시 은둔형 외톨이 지원 조례’를 제정했다. 이 조례는 은둔형 외톨이를 법률적으로 정의한 국내 최초의 사례다. 이에 따르면 은둔형 외톨이는 ‘사회·경제·문화적으로 다양한 사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일정 기간 이상을 자신만의 한정된 공간에서 외부와 단절된 상태로 생활하여 정상적인 사회활동이 현저히 곤란한 사람’을 말한다.
은둔형 외톨이는 니트(NEET·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와는 다르다. 니트는 나라에서 정한 의무교육을 마친 뒤에도 진학이나 취직을 하지 않으면서 직업훈련도 받지 않는 사람을 뜻한다. 니트는 구직활동을 거부할 뿐, 대인관계를 맺으면서 각종 사회활동을 한다는 점에서 은둔형 외톨이와 차이가 있다. 다만 니트로 지내던 사람이 인간관계를 끊어버리면 은둔형 외톨이가 된다. 은둔 청년의 전 단계가 니트인 셈이다.
취재팀은 2021년 7월부터 9월까지 은둔 청년들의 일상과 일생을 직접 취재했다. 은둔 청년을 지원하는 단체의 도움을 받거나 기자들이 직접 수소문하고 설득하여, 전국 각지에서 은둔 중이거나 은둔에서 갓 탈출한 25명의 청년을 만났다. 은둔 청년 25명에게 은둔 기간에 무엇을 했는지 물었다. 이들은 김나연씨와 비슷하게 하루를 보냈다. 주로 게임하거나(56%), 드라마·영화를 보거나(44%), 오랫동안 잠을 잤다(44%·이상 복수응답). 게임, 영상 시청 그리고 과도할 정도로 긴 시간의 수면은 ‘사회로부터 회피하는 방편’에 해당한다(청년재단, ‘고립 청년(은둔형 외톨이) 실태조사 최종보고서’, 2020).
김민수(27)씨도 하루 10시간 이상 컴퓨터 모니터 앞에 있었다. 그는 2012년부터 2021년까지 약 10년 동안 은둔했다. 전남 여수에서 서울로 ‘은둔하는 방’을 옮겼을 뿐, 영화나 드라마를 보며 틀어박혀 지낸 것은 마찬가지였다. “이야기에서 위안을 얻었던 거 같아요.” 은둔형 외톨이 지원단체의 도움으로 2021년 7월 회복 프로그램에 참여한 김씨가 말했다.
유종민(30)씨는 서울 강남구에서 2019년 말부터 2021년 초까지 약 1년6개월 동안 은둔 생활을 했다. 그는 하루 16시간 이상 게임하거나 영상을 보면서 살았다. “잠에서 깨면 곧바로 컴퓨터 전원부터 켰어요.” 그는 완전히 게임에 몰입했다. 컴퓨터를 켜면, 캐릭터 육성 게임인 <메이플스토리>를 실행했다. 그런 다음에는 다른 창을 열어 게임방송을 틀었다. 동시에 스마트폰으로 <디지몬 소울 체이서>에 접속했다. 밥도 컴퓨터 앞에서 먹었다. 만두나 볶음밥을 먹었다. 빨리 먹을 수 있는 냉동음식만 먹었다. “게임하는 것이 즐겁지 않았어요. 게임하는 게 괴로워서 기절할 정도가 되면, 고꾸라지듯 잠들었죠.” 게임은 그의 도피처이자 수면제였다.
취재팀이 만난 은둔 청년 25명은 한결같이 잠에 대해 말했다. 장명진(27)씨는 “온종일 누워 있기 힘들다고 생각하면서도 잠만 자고 있다”고 말했다. 장씨는 광주 북구에서 2014년 가을부터 지금까지 약 8년 동안 틀어박혀 지내고 있다. 눈을 뜨면, 장씨는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 스마트폰으로 <리그오브레전드> 게임 방송을 시청한다. 배가 고파지면 음식을 배달시켜 먹는다. 부모가 주고 간 신용카드로 결제한다. 밥을 다 먹으면 쓰레기는 방구석으로 밀어두고 곧바로 침대에 눕는다. 누운 자세로 스마트폰을 보다 잠이 든다. 잠에서 깨면 누운 채로 스마트폰을 집어 든다. 그렇게 침대에 누워만 있다고, 방에 틀어박힌 게 아니라 침대에만 틀어박혀 있다고 장씨는 자신의 생활을 설명했다.
그렇다고 은둔 청년이 방에서만 지내는 것은 아니다. 아주 제한된 시간 동안, 매우 제한적인 공간을 오가는 은둔형 외톨이도 있다. 황규상(29)씨는 은둔 기간에 혼자 피시(PC)방에 다녔다. 황씨는 2015년 봄부터 2017년 겨울까지 서울 구로구에서 은둔 생활을 했다. 대학을 자퇴한 뒤, 황씨는 친구들과도 모두 연락을 끊었다. 대신 피시방에 갔다. “마우스를 움직일 힘이 없어질 때까지 게임을 했어요.” 한숨도 자지 않고 적게는 15시간, 많게는 30시간 동안 피시방에서 혼자 게임했다. 잠자야 할 때만 집에 돌아갔다. 부모가 잠들었거나 외출한 새벽 또는 오후에 자신의 방에 들어갔다. 그때마다 황씨는 가족에게 자기 모습이 발견되지 않기를 바랐다. 가족은 은둔 생활을 하는 황씨에게 화내면서도 피시방 갈 돈을 쥐여줬다. “굶어 죽지 말라는 뜻이었겠죠.” 그 돈도 떨어지면, 도서관에 가서 아무 책이나 뒤적이며 시간을 보냈다.
이러한 황씨의 행동은 은둔 청년의 전형적인 외출 방식이다. 취재팀이 만난 은둔 청년 25명 가운데 ‘제한적 외출’을 했던 사람은 12명(48%)이었다. 이들은 주로 피시방과 도서관을 오갔다. 이런 이들을 ‘활동성 외톨이’ 또는 ‘활동형 외톨이’라고 한다. 활동형 외톨이의 유형을 파악하는 것은 은둔 청년의 본질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 무조건 집 밖으로 내보낸다고 은둔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은둔 청년 가운데는 제한적 외출을 넘어 구직활동을 하거나 아르바이트한 경우도 있다. 이 경우에는 더 이상 은둔 청년으로 볼 수 없는 게 아닐까? 오상빈 광주시 동구 청소년상담복지센터장은 “바깥 활동을 하더라도 대인관계가 없으면 은둔형 외톨이 범주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몸은 밖에 있어도 정서적으로 고립된 상황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취재팀이 만난 은둔 청년 25명 가운데 16명(64%)은 은둔 기간 중 아르바이트한 경험이 있었다. 취업성공패키지 등 일자리 지원책을 이용해 구직활동을 한 사람은 4명(16%)이다. 그러나 이들 모두 ‘직장 상사나 동료 등과 정서적인 대인관계를 맺지 않았다’고 했다.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돈을 마련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돈이 생기면 다시 은둔을 시작했다.
장명진씨는 아무 일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집 근처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했다. 사람들과 마주치지 않는 새벽 6시부터 오후 4시까지 혼자 일했다. 최저시급에 야간수당을 조금 더한 돈만 받았다. 사람이 두려운 그는 혼자 일할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온종일 서 있었기에 무릎이 망가졌다. 1년 만에 주유소 일을 그만뒀다. 이후 1년 동안 다시 은둔했다. 그 뒤 또 한번 주유소에 취직했지만, 건강이 나빠져서 1년 만에 그만뒀고, 또다시 은둔을 시작했다.
왜 이렇게 됐을까. 취재팀은 은둔 청년 25명에게 매번 물었다. “왜 은둔하게 됐나요?” “잘 모르겠어요.” 장명진씨가 말했다. 다른 은둔 청년들도 비슷하게 답했다. 혼자 틀어박혀 지내는 이유를 은둔 청년들은 설명하기 어려워했다. 다만 대화를 이어가다보면 반드시 등장하는 경험이 있었다. 폭력과 좌절이었다.
25명 가운데 ‘학교나 직장에서 따돌림을 경험했다’고 답한 이는 15명(60%)이다. 18명(72%)은 ‘학교생활에서 좌절감을 느꼈다’고 했다. ‘가정·학교·사회 가운데 두 곳 이상에서 큰 좌절을 겪었다’고 한 사람은 20명(80%)이다. 생애 전반에 걸친 경쟁과 성취의 압력 앞에서 어떤 청년들은 ‘사라져버리는 것’을 대안으로 선택한다(김홍중, ‘서바이벌, 생존주의, 그리고 청년 세대’, 2015). 끊임없는 좌절을 경험하면서 형성된 우울감과 무력감이 삶에서 이탈하고 싶은 마음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민서(31)씨는 경기도 부천에서 2010년부터 2019년까지 9년7개월, 2021년 4개월간 두 차례 걸쳐 약 10년 동안 은둔했다. 이씨는 초등학교 시절 서울에서 경기도로 전학 가면서 따돌림을 당했다. 가해 학생은 학교 단체 사진에서 이씨 얼굴을 칼로 도려냈다. 이씨 어머니는 생계를 책임지느라 딸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사업이 망해 무능력자가 된 아버지는 계속 술만 마셨다. 아버지는 먹던 것을 이씨에게 던졌다. 이씨는 고생하는 어머니를 생각하며 버텼다. 버티는 삶에 한계가 왔다. 스무 살에 대학에 합격했으나 입학하지 못했다. 할머니가 모아둔 등록금을 아버지가 다른 곳에 써버렸다. 등록금을 낼 수 없었다. 기댈 곳이 없어진 이씨는 동급생들이 대학교 새내기가 되던 2010년, 은둔을 시작했다. 가족과의 대화도 끊었다.
대학에 간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2013년 서울의 유명 사립대학 경제학과에 입학한 김나연씨는 대학에서 친구를 사귀지 못했다. 그는 중학교 2학년 때 따돌림을 당한 적이 있다. 고등학교 때는 모의고사 성적이 떨어지자 한강에 가서 ‘생명의 전화’를 붙잡고 울었다. 자신의 몸을 때리며 자해도 했다. 원하는 대학교에 입학하면 더 나은 삶이 펼쳐질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학점이라도 잘 받아야 존재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김씨는 인간관계를 포기하고 도서관에 틀어박혔다. 4.3 만점에 평점 4.13점을 받았다. 그것으로 해결될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명문대 졸업장과 높은 평점에도 불구하고 어학시험 점수, 대외활동, 인턴 경험 등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졸업 이후에 알았다. 취업 원서를 내볼 만한 곳이 없었다. 경력에 도움될까 싶어 워킹홀리데이를 준비하다가, 그마저 포기했다. 그는 2018년 봄 은둔을 시작했다. 자신을 패배자라고 생각했다. 2021년 4월 김씨는 대학병원 정신과에서 우울증이 지속해서 재발하는, 재발성 우울장애를 진단받았다.
은둔 청년 25명 가운데 17명(68%)은 우울증을 겪었다. 15명(60%)은 무기력감을 겪었다고 했다(이상 복수응답). 정신질환으로 약물치료를 받은 사람은 9명(36%), 병동에 입원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5명(20%)이다. 상담치료를 받은 사람도 10명(40%)이다.
서울 소재 대학교에 다니던 유종민씨는 대학교 4학년 무렵부터 은둔 조짐을 보였다. 자신과 잘 맞는 사람을 만나 교류하고 싶었지만 그런 사람을 찾기 힘들었다. 학교에 가면 혼자 동떨어진 느낌이 들었다. 그러자 등교하는 일조차 힘들어졌다.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멍한 상태로 시간을 보냈다. 뭐라도 할까 싶어 게임을 했다. 게임하다보면 게임에 빠진 자기 자신이 싫어졌다. 심할 때는 종일 누워 있었다. 방에는 쓰레기가 쌓여갔다. 유씨는 2020년 11월 경기도의 한 정신병원에 자진해 입원했다.
강세주(32)씨는 경기도 수원에서 2009년 내내 은둔했다. 은둔을 시작하면서 친구들과 연락을 끊었다. 연락이 와도 받지 않았다. 어느 날 친구가 집까지 찾아왔다. 집에 찾아온 친구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온몸이 굳어버렸다고 강씨는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무기력한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았거든요.” 대신 강씨는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척했다. 친구가 불러도 공부해야 한다며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에도 강씨는 수치스러웠다. “친구 앞에서 벌거벗은 느낌이었어요.”
우울증은 무기력한 감정을 동반한다. 무기력은 회의감, 피로감, 의욕 저하 등으로 나타난다. 무기력한 사람은 ‘나는 뭘 해도 안 된다’고 생각하며 자신감을 잃는다. 작은 일에도 과민반응을 보인다. 이로 인해 누군가를 만나거나 대화하는 일이 더욱 힘들어진다. 은둔과 우울은 쳇바퀴를 돈다.
이처럼 은둔 생활로 몸과 마음이 망가진 은둔 청년들은 사회에 대한 공포를 갖는다. 그 공포는 은둔형 외톨이들이 모인 인터넷카페 글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취재팀은 은둔형 외톨이가 모인 어느 인터넷카페에 2017년 1월부터 2021년 8월까지 4년7개월 동안 올라온 ‘소개글’ 471건을 분석했다. 소개글은 정회원 자격을 얻기 위해 자신에 대해 설명하는 글이다. 이 가운데는 ‘현재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가’를 묻는 글이 있었다. 서술형으로 적은 답을 유형별로 분류해보면 대인관계가 어렵다는 답(66.4%)이 가장 많았고 우울(49.6%), 무기력(12.7%), 불안(11.6%·이상 복수응답) 등 자기 감정 상태의 어려움을 토로한 경우가 뒤를 이었다.
대인관계로 어려움을 느낀다고 답한 내용을 다시 세분해보면, 단순히 ‘사람을 대하는 일이 어렵다’고 표현한 경우는 28.8%였지만, ‘사회에 대한 공포를 느낀다’거나 ‘사회공포증을 느낀다’ 등 사회 전반에 대한 두려움을 표현한 경우가 71.2%였다. ‘사회공포증’은 다른 사람 앞에 서면 불안을 느껴 사회적 상황을 회피하고, 이로 인해 대인관계 능력이 떨어지는 정신질환이다. 응답자가 실제로 전문의의 진단을 받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만큼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풀이된다.
25명 가운데 8명은 5년 이상 은둔구경수(26)씨도 그런 사회공포증을 경험했다. 전북 전주에 사는 구씨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자퇴하고, 2013년부터 2020년까지 8년 동안 은둔했다. 중학교 1학년 때 왕따를 당한 뒤로 사람이 많은 곳에 가면 불안했던 그는, 급식실에 갈 엄두가 안 나서 점심도 먹지 않았다. 은둔 기간에 사람들이 얼마나 무서웠는지를 구씨는 이렇게 설명했다. “사람들이 육식동물 같았어요.”
세상이 자신을 잡아먹을 것 같은 공포는 은둔의 시간을 늘린다. 은둔형 외톨이들을 위한 합숙소를 운영하는 김옥란 푸른고래 리커버리센터 센터장은 “사회에 나가려 해도 주눅 들어 있어서 못하게 된다. 결국 자신을 실패자로 낙인찍고 오랫동안 은둔하게 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취재팀이 만난 25명 가운데 8명(32%)은 5년 이상 은둔했거나 은둔 중이었다. 10년 이상 은둔한 경우도 5명(20%)이다.
이자연(28)씨도 장기 은둔자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자퇴해 경남 김해시에 있는 집에서 은둔을 시작했다. 은둔 초기 3년은 집에만 있었다. 스무 살 무렵 아르바이트라도 해보자는 생각에 편의점 일을 시작했다. 그러나 일주일 만에 잘렸다. 그 뒤 우울증과 자기혐오가 더욱 심해졌다. 외출조차 할 수 없었다. 이후 7년간 이씨는 집에서 나오지 못했다.
은둔이 길어지면, 더 극단적인 생각에 이르게 된다. 약 3년간 은둔 생활을 했던 김나연씨는 혼자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다 낙방한 뒤, 다시 한번 좌절했다.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다행히 늦지 않게 응급조치를 받을 수 있었다. 김씨는 대학병원 응급실을 거쳐 정신과 진료를 받아 폐쇄 병동에 입원했다. 그 시절을 조심스럽게 물었더니, 뜻밖의 대답을 들려줬다.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많아서 좋았어요.”
정신병동에 가서야 위로와 공감을 받은 김씨는 2021년 4월에 퇴원했다. 8월부터 11월 현재까지 시민단체가 운영하는 재활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은둔 탈출을 준비하고 있다. 구직활동을 위해 컴퓨터 자격증을 따려고 인터넷 강의도 듣고 있다.
김씨가 마주했던 밑바닥과 그 뒤에 찾아온 기적 같은 행운을 다른 은둔 청년도 겪고 있다. 약 1년6개월 동안 은둔했던 유종민씨는 늦은 나이지만, 대학에 복학해 마지막 학기를 다니고 있다. 은둔형 외톨이를 지원하는 사회적기업 ‘K2 인터내셔널 코리아’가 운영하는 ‘은둔고수’ 교육을 받고 있다. 은둔 경험을 한 이들이 은둔형 외톨이를 상담해주는 프로그램이다.
8년 동안 온종일 침대에 누워 있었다는 장명진씨의 은둔 생활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여전히 무릎, 팔꿈치, 허리가 좋지 않다. 다만 최근에는 광주 서구에 있는 상담센터에 가끔 나가서 상담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종일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10년 동안 은둔하며 “이야기에서 위안을 얻었다”던 김민수씨는 지원단체의 도움으로 2021년 7월 회복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석 달 정도 은둔 탈출을 시도하던 김씨는 10월 이후 모든 연락을 끊어버렸다. 다시 자신의 방에 틀어박힌 것으로 보인다.
이강원·임예진·임효진·최은솔·현경아 <단비뉴스> 기자 fhrmdldl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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