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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성착취물 삭제, 무조건 방심위 거쳐야?

법무부 전문위 “수사기관이 응급조처 해야”
수사기관도 삭제·차단 가능하게 법 개정 권고
등록 2021-11-06 14:22 수정 2021-11-09 01:31

디지털 성착취물이 발견됐을 때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에게 이를 삭제하라고 요구하거나 접속 차단 조처를 내리는 주체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다.

미성년자의 성착취 피해를 지원하는 십대여성인권센터의 조진경 대표는 신고할 때마다 방심위가 소극적으로 대처하거나 “요구하는 조처는 하기 어렵다”는 응답을 반복했다고 말한다. “랜덤채팅앱을 유해매체물로 지정해달라고 하니 ‘일부 이용자가 (미성년자 성착취 매개로) 악용한다고 해서 유해매체물로 지정할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죠. ‘부엌에서 요리할 때 칼을 쓰는데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이유로 칼을 금지할 수 있겠냐’고 하더라고요.” 조 대표는 방심위가 정부 예산을 받으면서도 ‘민간독립기구라서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한다고 전했다.

‘방송통신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은 “방송의 공공성, 공정성을 보장하고 정보통신에서의 건전한 문화”를 위해 독립적으로 방심위를 둔다고 명시하고 있다. 방심위는 이에 기반해 주로 선정적인 방송 내용을 제재하거나 인터넷에서 음란물이 유통될 경우 이를 사후 심의해 시정 요구 등을 한다. 이런 업무의 연장선에서 불법촬영이나 엔(n)번방 등 디지털 성착취물에 대한 시정 조처도 방심위가 맡아왔다. 현행법상 수사기관도 방심위에 ‘삭제 요청’을 해야만 조처할 수 있다. 방심위는 2020년 디지털성범죄 3만5559건에 대해 시정 조치를 했다고 밝혔는데, 대부분 성착취물이 유포된 인터넷 사이트의 접속을 차단하는 조처였다.

하지만 성착취물은 그동안 방심위가 심의한 ‘음란물’과 달리 명백한 범죄행위의 증거다. 음란물 심의와는 다른 조치가 필요하다. 법무부 디지털성범죄 전문위원회가 10월28일 “수사기관이 디지털성범죄 관련 신고를 받거나 관련 게시물 등을 발견한 경우 직접 즉각적인 피해 영상물 확산 차단 조처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법 개정을 권고한 이유다. 수사기관이 영상물을 채증하고 인터넷 서비스 제공자에게 직접 성착취물 삭제·차단 요청을 할 수 있도록 권한을 추가로 부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위는 법이 개정되면 성착취물이 삭제·차단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이 효과적으로 단축될 것으로 본다.

실제로 2021년 디지털성범죄 관련 안건 심의가 9600여 건 지연됐다. 방심위 제5기 위원회 구성이 7개월 넘게 늦어졌기 때문이다. 법무부 ‘디지털성범죄 등 대응 태스크포스팀’의 서지현 팀장은 “가정폭력이나 아동학대, 스토킹 범죄가 발생할 때 사법경찰관리가 현장에서 초기 대응을 할 수 있도록 응급조치 규정을 두고 있는데 디지털성범죄에도 이처럼 수사기관의 응급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법무부의 권고안은 법적 강제력이 없기 때문에 법이 개정되려면 법무부, 방심위, 경찰청 사이에 논의와 조율이 뒤따라야만 한다.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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