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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 없이 ‘소녀’를 검색했다

디지털성범죄특수본 운영 종료 뒤 엔번방 통로 다크웹 접속자, 다시 1만9천 명
등록 2021-11-06 14:16 수정 2021-11-09 01:32
2020년 3월, 텔레그램 메신저에서 ‘박사방’을 운영하며 불법 성착취 영상을 제작·판매한 조주빈이 검찰에 송치됐다. 떠들썩했던 ‘엔(n)번방’ ‘박사방’ 주범이 잡혔지만 디지털성범죄는 현재진행형이다. 공동취재사진

2020년 3월, 텔레그램 메신저에서 ‘박사방’을 운영하며 불법 성착취 영상을 제작·판매한 조주빈이 검찰에 송치됐다. 떠들썩했던 ‘엔(n)번방’ ‘박사방’ 주범이 잡혔지만 디지털성범죄는 현재진행형이다. 공동취재사진

총 2807건 단속, 3575명 검거, 245명 구속. 경찰청이 2020년 3월부터 12월까지 약 9개월간 디지털성범죄특별수사본부(특수본)를 운영한 성과다. ‘엔(n)번방’ ‘박사방’을 운영하며 디지털 성착취물을 제작·유포해 언론에 떠들썩하게 보도됐던 이들이 한 명씩 검거됐다. 현역 군인이던 이기야(이원호)를 포함해 부따(강훈), 갓갓(문형욱), 박사방을 운영한 조주빈 등이 체포됐다. 이 밖에도 검거된 피의자 중엔 직접 성착취물을 제작하거나 이를 유포하는 단체대화방 등을 운영한 자만 511명에 달했다.

특수본 운영은 끝났지만, 디지털성범죄는 여전하다. 오히려 ‘엔번방’이 세상에 알려지기 이전보다 더 활발해진 경향도 눈에 띈다. 피해자 신상정보나 영상이 공유되는 ‘다크웹’이나 성착취 동영상을 주로 유포하는 익명 채팅방(메신저), 성착취물에 접근하는 경로를 홍보해주는 주요 소셜미디어 계정 등을 분석한 결과에서 이런 경향이 보인다.

피해자 신상정보가 거래 담보물로

법무부는 디지털성범죄 전문위원회를 꾸려 다크웹 보안기술 기업인 에스투더블유(S2W)와 빅데이터 분석기업 아르스프락시아, 디지털성범죄를 공론화해온 리셋(ReSET), 추적단 불꽃 등과 함께 디지털성범죄 현황을 분석했다. 세계적인 다크웹 사이트 누적 50만 개, 수천 명이 접속한 익명 채팅방 2곳 등을 분석해 게시물과 접속자 수 등을 집계했다.

먼저 2019년 1월~2021년 10월 다크웹에 접속한 한국인 통계(국내 접속자 기준)를 뽑아봤더니, 2019년 이후 하루 최고 1만9천 명까지 늘어났다가 특수본 등 수사 압박이 강화된 2020년 6월 이후에는 1만 명대 초반까지 줄어들었다. 하지만 특수본 활동이 종료된 직후인 2021년 1월에는 다시 1만4천 명으로 증가했다. 접속자는 점차 늘어나 2021년 9월 다시 1만9천 명을 넘어섰다.

다크웹에 접속하는 주요 목적은 디지털성범죄다. S2W가 다크웹 사이트 50만 개를 분석한 결과, 전체 콘텐츠의 45%가량이 디지털성범죄 피해물이거나 음란물이었다. 특히 한국어를 사용하는 다크웹 사이트 11개에 올라온 게시글 총 7만1387건을 분석했더니, 성범죄 관련 게시글 수가 7712건(2020년 1월1일~10월25일)에서 1년 새 19.5% 늘어나 9213건(2021년 1월1일~10월25일)을 기록했다.

특히 디지털성범죄 피해자의 신상정보(전화번호·주민등록번호·주소·학교 등)가 노출된 게시글이 늘어난 점이 우려된다. 다크웹에 한글로 된 게시글 중 피해자 신상정보 관련 게시글 비중은 2020년 17%(425건)에서 2021년 43.2%(1681건)로 급격히 증가했다. 이지원 S2W 부대표는 “피해자의 구체적인 신상정보가 있을수록 해당 성착취물에 대한 관심도와 (게시자에 대한) 일종의 ‘신뢰도’가 높아져서 (성착취물) 판매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텔레그램 채팅방 워드 클라우드. 위는 2020년, 아래는 2021년. 자료: 아르스프락시아 분석·제공

텔레그램 채팅방 워드 클라우드. 위는 2020년, 아래는 2021년. 자료: 아르스프락시아 분석·제공

‘소녀’나 ‘자궁’ 등장 횟수 10배 이상 급증

디지털 성착취물이 공유되고 유포되면서 확산되는 과정에 피해자 신상정보가 일종의 거래 담보물이 된 것이다. 이 부대표는 “동일한 성범죄 사건을 두고 ‘사건명→피해자 정보→구체적 피해자 신상정보→정보를 기반으로 한 자료 재공유’ 흐름으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와 관련한 미확인 정보까지 공유하고, 피해자뿐만 아니라 관련 없는 일반인까지 신상정보가 노출되는 피해를 볼 가능성이 커진다.

성착취물이 유포되는 텔레그램 등 주요 익명 채팅방을 분석한 결과에서도 성범죄와 관련된 주요 키워드 언급량이 크게 늘어났다. 아르스프락시아가 채팅방 2곳에서 오간 대화 텍스트 총 31만 건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2021년 ‘소녀’나 ‘자궁’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횟수가 2020년 같은 기간에 견줘 최대 20배까지 급증했다. 여성의 성기나 강간 등의 단어 언급량도 늘었다.

장재연 아르스프락시아 데이터 애널리스트는 “2020년에는 경찰 수사에 대한 두려움이 대화에 전반적으로 나타나는 반면, 2021년에는 수사에 대한 두려움이 없기 때문에 자료를 비밀스럽게 공유하려는 특성(번호방, 추방, 거래 등의 단어 사용)이 사라졌다”며 “기존에는 웹하드를 통해 (성착취물을) 공유했다면 지금은 사진과 영상을 직접 메시지로 보여주고 품평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고 분석했다.

익명 채팅방 운영자의 변화도 포착됐다. 장 애널리스트는 “2020년에는 ‘와치맨’ ‘로리대장태범’ 등 특정 운영자에 대한 언급이 지배적이었으나 2021년에는 ‘큐브, 희연, 제로스, 쌀국수뚝배기(쌀뚝), 김갑돌’ 등 다수의 운영자가 각자 비밀방을 개설해 미성년자 성착취물 유포, 마약 판매, 불법도박장 운영 등을 하는 것으로 파악된다”고 설명했다. 이미 구속된 운영자를 옹호하거나 그리워하는 글도 발견됐다.

구속된 운영자들 그리워하기도

이러한 분석 결과는 일시적인 집중 수사만으로는 디지털성범죄의 고리를 끊을 수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법무부 디지털성범죄 전문위원회는 오픈채팅방 등을 운영하는 플랫폼 채널에 이러한 디지털 성착취물을 공유·유포하는 행위의 불법성과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알리는 문구를 보이도록 하는 방식으로 범죄행위를 제지할 것을 권고했다.

다크웹 같은 폐쇄적인 플랫폼에 적용할 수 있는 기술적 조처를 점검하고 개발하는 등의 노력도 필요하다. 이지원 S2W 부대표는 “현재 기술 수준으로도 다크웹 게시글을 실시간으로 수집해 범죄 관련성을 판단하거나, 인공지능(AI) 기술을 이용해 범죄 관련성이 높은 게시글에서 성범죄 관련 단어나 개인을 특정할 수 있는 정보를 자동으로 추출할 수 있다”면서도 “다크웹에서는 주소나 접근 권한 등이 수시로 바뀌기 때문에 (다크웹을) 장기적으로 분석하고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 했다.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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