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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017년 그리고 2021년, 군인의 죽음

등록 2021-08-21 11:34 수정 2021-08-22 01:45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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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상관에게 성폭력 피해를 입은 여성 군인 한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021년 5월 공군 중사가 사망한 지 3개월 만이다. 두 사건의 발생과 진행 과정은 판에 박힌 듯 같다.

해군 ㄱ중사는 5월27일 민간 식당에서 ㄴ상사에게 성추행을 당했다. 부대에 새로 전입한 지 사흘째였다. ㄱ중사는 피해 사실을 바로 주임상사에게 보고했으나, 구두 경고만 받은 가해자는 ㄱ중사를 불러 술을 따르게 하고 ‘술을 따르지 않으면 3년간 재수 없을 것’이라고 악담했다. ㄱ중사는 사건 발생 70여 일 만인 8월12일 숙소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정식 신고한 지 사흘 만이었다.

두 피해 중사는 성별로도, 계급으로도 취약한 위치에 있었다. 공통점은 ‘여성’ 그리고 ‘부사관’이다. 여성과 낮은 계급이라는 복합적 위치는 폭력에 쉽게 노출됐다. 국방부에 따르면, 2020년 군에서 발생한 성폭력 사건 771건 중 여성 피해자의 신분은 중·하사(58.6%)가 가장 많았다. 남성 가해자는 대부분 선임 부사관(50.6%), 영관장교(23%)다. 중·하사가 해당되는 부사관은 장기 복무 심사를 통과해야만 정년을 보장받기 때문에 인사권자의 평가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ㄱ중사도 마찬가지였던 것으로 보인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ㄱ중사가 가해자 아닌 다른 상관에게 ‘이번 사건을 문제 삼으면 진급에서 누락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유족이 전했다”고 밝혔다. ㄱ중사는 2021년 말 진급을 앞두고 있었고, 인사평가에서 가점을 받을 수 있는 섬 복무를 자원했다가 피해를 입었다. 부사관 인권상황 실태조사(국가인권위원회, 2018)도 부사관들이 문제제기를 꺼리는 사실을 뒷받침한다. 이 조사에서 여성부사관 74.3%는 상사에게 인권침해를 당하고도 ‘그냥 참고 지나갔다’고 답했다. ‘부대가 시끄러워질까봐’(28.1%), ‘시정 요구가 소용없어서’(26.8%), ‘진급·평점 불이익이 우려돼서’(21.6%)가 주요 이유였다.

왜 애초 주임상사에게 “사건이 외부로 노출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던 ㄱ중사는 정식 신고를 했을까. 고립된 섬 생활의 특성상 가해자와 자주 마주할 수밖에 없는데다, 가해자에게 업무 배제와 따돌림을 당했다는 유족의 진술도 있다. 사망하기 전 나흘 동안 성고충상담관과 8차례 전화 통화를 한 것으로 보면, ㄱ중사가 피해 이후 겪은 고통이 꽤 컸을 것으로 보인다. ㄱ중사가 3개월간 어떤 상황에 놓였기에 생각을 바꿔 신고하고 사망했는지에 대해 면밀한 조사가 필요하다.

국방부와 군은 “ㄱ중사가 외부에 알리기 원치 않았다” “신고 접수 이후 가해자와 분리했다”며 군이 취하지 않은 절차상 문제점은 없다고 해명하는 데 급급하다. 하지만 피해자가 원치 않아 조처할 수 없었다며 피해자의 말 뒤에 숨을 것이 아니라, 3개월 동안 왜 가해자와 공간 분리를 하지 않았는지, 공군 사망 사건 이후 전군에 성폭력 신고기간(6월3~30일)을 뒀는데도 왜 사건을 인지하지 못했는지, 또 여성가족부에 성폭력 사건을 즉시 보고하도록 성폭력방지법이 개정됐는데도 왜 뒤늦게 통보했는지 등을 밝혀야 한다.

2013년 육군 대위가 상관의 성폭력과 가혹 행위로 세상을 떠났다. 2017년 해군 대위가 상관에게 성폭력을 당했다는 말을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 그리고 2021년 또다시 같은 사건이 발생했다. 우리는 답해야 한다. 도대체 왜 피해자가 죽어야 하나.

장수경 <한겨레> 기자 flying71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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