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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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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이 갑자기 문을 닫는다면

2020년 전체 읍면동 3545곳 중 48%가 소멸 위험 지역,
65살 이상이 전체 인구 절반을 넘은 읍면동은 38곳
등록 2021-07-05 07:00 수정 2021-07-06 01:54
2021년 6월30일 전북 완주군 고산면 읍내리 고산미소시장 야외광장에서 열린 ‘2021년 청년마을 합동 발대식’에 참석한 청년마을 대표들과 박성일 완주군수(앞줄 왼쪽 둘째), 송하진 전북도지사(셋째), 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넷째).

2021년 6월30일 전북 완주군 고산면 읍내리 고산미소시장 야외광장에서 열린 ‘2021년 청년마을 합동 발대식’에 참석한 청년마을 대표들과 박성일 완주군수(앞줄 왼쪽 둘째), 송하진 전북도지사(셋째), 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넷째).

아이가 잘 다니던 유치원이 하루아침에 문을 닫는다면? 이런 황당한 일이 지역 소도시에서 벌어진다. 2014년 경북 문경으로 귀향한 주재훈(34)씨의 경험이다. 그는 충남 천안에 있는 대학에서 영화연출을 전공하고 서울에서 영화촬영 현장에서 일하다가 건강이 나빠져 고향으로 돌아왔다. 귀향 이듬해 태어난 딸은 2019년 문경읍에 있는 유치원에 다녔다. 46년 전통의 유치원은 원생이 적어 운영상 어려움을 겪다가 그해 폐원했다.

2021년 6월30일 전북 완주군 고산면 읍내리 고산미소시장에서 열린 ‘2021년 청년마을 합동 발대식’에서 만난 주씨는 당시 느낀 황망함을 토로했다. “우리 지역 아이들이 줄어드는 현실이 피부에 와닿았다. 딸이 왜 갑자기 친구들과 떨어져야 하냐고 묻는데 할 말이 없었다.” 주씨는 2020년 3월부터 문경 청년 협의체 ‘가치살자’를 이끌고 있다. 2020년 5월 행정안전부가 청년들의 지역 활동과 정착을 지원한 ‘달빛탐사대’ 청년마을 프로젝트도 운영한다.

기준은 65살 이상 대비 20~39살 여성 비율

국내에서 ‘지방소멸’이란 말이 나온 지 5년이 지났다. 지방소멸은 수도권과 대도시로 인구가 몰리면서 특정 도시에 나타나는 △청년층 유출 △고령화 심화 △인구 감소 △도시 기능 저하 현상 등을 말한다. 일본 창성회의 의장 마스다 히로야가 2015년 저서 <지방소멸>에서 일본 지방자치단체 약 절반이 향후 30년 이내에 급격한 인구 감소에 직면할 것이라 경고하면서 쓴 말이다. 마스다는 책에서 ‘2010년부터 2040년까지 20~39살 여성 인구가 50% 이하로 감소하는 시구정촌의 수는 (인구 대도시권 유입에 따라) 현재의 추계보다 대폭 늘어 896개 자치단체, 즉 전체의 49.8%에 이른다’는 결과를 내놓아 일본 사회에 파장을 일으켰다.

국내 지방소멸 분석은 2016년 3월 처음 나왔다. 한국고용정보원 이상호 부연구위원은 ‘한국의 지방소멸에 관한 7가지 분석’이란 보고서에서 국내 지방소멸 위험성을 제기했다. 일본 마스다 히로야가 활용한 기준(20~39살 여성인구 감소율)을 변용해 두 집단 비율(65살 이상 고령인구 대비 20~39살 여성인구 비율)을 소멸 위험 기준으로 제시했다. 그는 고령인구가 젊은 여성 인구의 두 배가 넘는 지역을 ‘소멸 위험 지역’으로 분류했다. 그에 따르면 2014년 국내 228곳 시·군·구 지자체 중 79곳(34.6%)이 소멸 위험 지역이다. 2020년 5월엔 그 규모가 105곳(전체의 46.1%)으로 늘었다. 이상호 부연구위원은 “소멸 위험 지역은 타 지역보다 출산율이 오히려 높은 편이다. 보고서에서 전한 메시지의 핵심은 해당 지역 인구 유출을 막고 유입을 늘려야 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인구 규모와 연령별·지역별 분포는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다. 국내 총인구는 2020년 말 사상 처음 감소했다. 총 5182만9023명으로, 전년 대비 2만838명 줄었다. 올해 태어난 2021년생이 한국 나이 45살이 되면 어떻게 변할까. 통계청은 2065년 국내 장래 추계인구를 현재보다 1천만 명 넘게 줄어든 4029만3293명으로 추정한다. 그해 65살 이상 고령인구 비율(46.1%)은 15~64살 생산가능인구 비율(45.9%)을 넘어설 것으로 예측한다. 단 이런 인구 감소와 고령화 정도는 지역 편차가 크다.

하반기 ‘인구감소지역’ 고시 예정

수도권 인구는 2019년 말 국내 인구 절반을 넘어섰다. 국내 인구 5184만9861명 중 2592만5799명(50.0%)이 국토 면적 11.8%를 차지하는 수도권에 살고 있다. 1년간 상황은 더 나빠졌다. 2020년 말 기준 전체 인구는 2만838명 줄었지만 수도권 인구는 11만2508명 늘었다. 그 결과 ‘소멸 위험 지역’도 늘고 있다. 2017년 5월 전체 3549개 읍면동 중 소멸 위험 지역이 1483곳(41.8%)에서 2020년 5월 전체 3545곳 중 1702곳(48.0%)으로 늘었다. 이 가운데 65살 이상 고령인구가 이미 전체 인구 절반을 넘은 읍면동은 38곳에 이른다(강원도 철원군 근북면, 경북 의성군 신평면, 경남 거창군 신원면 등). 정부와 국회도 지방소멸에 대처하려는 행정·입법 작업에 착수했다. 행정안전부는 2021년 하반기, 사상 처음으로 정부 지정 ‘인구감소지역’을 고시할 예정이다. 2021년 6월1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국가균형발전 특별법 시행령’ 개정안에 따른 것이다. 현재 연령별 인구 구성, 인구감소율, 출생률, 인구 이동 추이, 재정 여건 등을 고려해 지정 기준을 마련하는 정부 연구용역이 진행 중이다. 국회엔 ‘지방소멸지역 지원 특별법’이 최소 5건 이상 발의돼 있다.

인구가 수도권과 대도시로 계속 몰려들면 어떤 문제가 발생할까. 마강래 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는 특정 지역 인구 감소에 따른 도시 기능 상실에 주목한다. “응급의료센터·백화점·산부인과·영화관 등 필수적인 도시 기능이 유지되려면 최소한의 배후 인구가 필요한데, 인구 15만 명 이하 중소도시들은 대부분 인구가 급감하는 추세여서 도시 기능을 담당하는 민간·공공 부문이 빠져나가고 인구는 더 줄어드는 악순환에 빠져 있다.” 마 교수는 “수도권과 비수도권, 대도시와 소도시가 역할을 분담해 상생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역 양극화가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

이상호 부연구위원은 지역에 따른 양극화가 개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봐야 한다고 했다. “쇠퇴하는 지역에 남은 사람은 계층적으로 더 취약해질 수밖에 없고, 대도시나 수도권으로 떠난 사람들은 사회·경제적 네트워크나 인적 자본 측면에서 동등한 출발선에 설 수 없기에 대도시 취약계층으로 진입하기 쉽다.” 그는 “지방소멸 관련 정책이 현실을 못 따라가고 있다. 지역 쇠퇴의 문제를 넘어 국가 발전 패러다임을 재구축하고 대안 찾기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완주=글 김선식 기자 kss@hani.co.kr, 사진 김진수 선임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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