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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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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죽음이 영향을 적게 미치도록

장애인 아이의 성인 이후 삶을 계획하는 ‘역행설계’
등록 2021-05-11 15:37 수정 2021-05-11 23:51
송명숙 교사 제공

송명숙 교사 제공

“장애 학생의 개별화 교육 계획을 세울 때는 역행설계(Backward Planning)가 필요하다. 미래의 장기적인 모습을 생각해서 목표를 설정하고 그러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하나씩 계획을 세우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성인 그 이후의 삶’이다.”

특수교사 송명숙(사진)이 전하는 25년간의 도전과 실천 사례를 담은 책 <모두를 위한 통합교육을 그리다>에서 이 문장을 보고는 “어, 맞아요 맞아!”라며 흥분해버렸다. 발달장애인 아들의 엄마로 살아온 지 13년. 그 세월 동안 알게 된 가장 큰 깨달음이 바로 이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른 살 자립을 목표로

“우리는요 지금 당장, 오늘 하루, 올 1년을 위한 양육과 교육을 하면 안 돼요. 시야를 멀리 보고 목표로 삼을 한 지점을 설정해야 해요. 그에 따라 지금 해야 할 일이 완전히 달라지거든요. 그 지점은 우리 아이가 자라 자립하는 날일 거예요. 저는 아들의 서른 살을 목표로 잡고 있어요.”

나는 학부모 대상 연수가 있을 때마다 이 말을 입이 닳도록 강조했다. “아이보다 하루만 더 살게 해주세요”라는 건 어차피 이뤄지지 않을 헛된 바람이다. 우리는 무조건 발달장애인 자식을 남겨둔 채 먼저 눈감을 것이며, 부모가 죽는 그날부터 자식 인생이 지옥으로 변하지 않도록 준비해야 한다. 그 준비를 도울 수 있는 게 역행설계다. 나는 엄청난 시행착오를 겪으며 온몸으로 부딪혀 알게 된 이 사실이, 역행설계라는 이름으로 이미 나와 있는 이론이었다니…. 그간 방황했던 세월이 억울하면서도 더 자세히 알고 싶어 몸이 근질거렸다. 궁금하면 어떡해? 직접 물어보면 되지. 송명숙 선생님이 재직 중인 경기도 수원 중앙기독초등학교로 향했다.

송 선생님은 “나중에 아이가 성인이 됐을 때 어떤 모습으로 살기 원하는지 명확히 그려야 한다”고 말했다. 어떤 형태의 독립을 구상하는지에 따라 저마다 우선순위가 달라지고 개인의 특성에 맞게 꼭 필요한 것을 놓치지 않고 준비할 수 있기 때문인데, 자식이 부모에게서 독립하는 형태는 다양했다. 개인의 성향에 맞게 독립 형태를 그린 뒤 이를 위해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을 장기·단기 계획을 세워 차근차근 실행하면 된다. 이것이 역행설계다. 말로만 들으면 이토록 쉬운 일이 없다.

사실 역행설계라는 단어를 몰랐을 뿐 우리는 모두 인생을 역행설계하며 산다. 남편과 나는 내년에 은행 대출금을 털어내는 게 목표다. 이 목표를 세운 뒤 남편은 갖고 싶다 노래 불렀던 운동화를 포기했고, 나는 눈앞에 어른거리던 자수정 반지를 포기했다. 목표가 정해지면서 현재의 지출 내용도 달라졌다.

비장애인 딸도 마찬가지다. 초등 6학년이 된 딸은 최근 어떤 삶을 살고 싶다는 목표가 생겼는데 그 목표를 위해선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하고, 그 직업을 가지려면 어느 수준의 대학을 가야 하고, 그 대학에 가려면 지금 영어학원을 다른 학원으로 바꾸는 게 좋겠다며 나에게 학원을 옮기겠다고 말했다.

딸의 엄마로선 큰 틀의 방향성을 잡으면서

사람이라면 누구나 일상에서 당연하게 활용하는 역행설계인데 왜 몇 년 전까지의 나는 그 당연한 생각을 못하고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을까. ‘딸의 엄마’로선 어떤 교육과 양육을 하겠다는 큰 틀의 방향성이 잡혀 있었지만 ‘아들의 엄마’로선 그저 오늘 하루를 열심히, 이번 한 달을 충실히, 올 한 해를 무사히 보내는 것만이 중요했다.

몰랐기 때문이다. 발달장애에 대해 몰랐기에 아들과 함께 사는 미래의 삶을 머릿속에 그린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다르다고도 생각했다. 아들은 나나 남편이나 딸과는 뭔가 다르지 않겠냐고, 삶조차 다를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아들을 사람이 아닌 발달장애인이라는 틀에 가둬놓고 바라봤기에 인간으로서 아들, 그의 ‘삶’을 바라보려는 노력은 애초에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지금 난 아들이 자립하는 서른 살의 어느 날을 매일 꿈꾸며 산다. 아들은 나 대신 활동지원사의 지원을 받아 낮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는 여러 활동을 하고, 밤이 되면 또 다른 활동지원사(그때는 24시간 활동지원제도가 정착될 것이다)나 주거 코디네이터가 아들과 친구가 함께 사는 아파트나 빌라로 출근해 아침까지 함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주 5일을 친구들과 어울려 살다 주말이면 아들은 남편과 내가 사는 집에 들를 것이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 아들이 그런 형태로 자립해야 그 생활에서 필요한 것을 마저 지원할 수 있다. 그래야만 어느 날 내가 우주 원자로 흩어지더라도 아들의 일상이 무너지지 않는다. 미래의 내 죽음이 아들 인생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것. ‘아들의 엄마’로서 내 삶은 그것을 위한 여정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치료·교육은 삶의 목표에서 수단으로

아들의 삶 전체를 하나로 연결된 일직선상에 놓고 역으로 설계하는 단계에 들어서면서 많은 게 변했다. 이전엔 삶의 목표가 치료·교육인 것처럼 살았는데, 역행설계를 시작한 뒤 치료·교육은 삶의 수단이 됐고 하나의 방향성으로 통합됐다. 당연히 학교와 치료실 등에 요구하는 내용이 달라졌으며 집에서 보내는 시간의 양상도 달라졌다.

비장애인인 나는 목표가 막연했어도 그냥저냥 살아왔지만 아들은 장애 특성으로 인해 더 세심한 지원과 계획이 필요하다. 그것을 위해 시각을 바꿔야 한다. 당장 오늘 하루를 열심히 사는 게 목표가 아니라, 미래의 어느 하루가 목표가 되고 그것을 위해 필요한 일을 지금부터 하나씩 채워가는 것이다. 그래야 나도 살고 아들도 산다. 오늘도 그때를 위한 하루를 또 즐겁게 시작해본다.

류승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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