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자식 간에도 ‘거리두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 고향 부모님 뵈러 가는 길은 조심스럽고, 자식들 얼굴 보러 움직이는 것도 부담스럽게 느껴집니다. 이젠 ‘민족 대이동’이란 말도 농경사회 유물로 남을 판입니다.
그래서 <한겨레21>이 ‘우동뉴스’(우리동네뉴스)를 준비했습니다. 명절에도 발이 묶여 옴짝달싹 못하는 독자들을 위해 <한겨레> 전국부 소속 기자 14명이 우리 동네의 따끈한 소식을 친절하고 맛깔스럽게 들려줍니다. 고향 소식에 목마른 독자에게 ‘꽃소식’이 되길 바랍니다._편집자 주
“어지르는 사람 따로 있고 치우는 사람 따로 있나.” 요즘 인천에서 이보다 딱 들어맞는 말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서울과 경기도의 쓰레기를 왜 인천에서 치워야 하느냐’ 하는 불만이자 ‘발생지 처리 원칙’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기도 합니다. 인천 서구에 있는 수도권매립지에 반입되는 하루 평균 2164t의 폐기물 중 80%가량이 서울·경기 지역에서 보내진 것입니다.
수도권매립지를 둘러싼 서울·경기·인천 3개 지자체의 해묵은 갈등이 최근 다시 촉발했습니다. 박남춘 인천시장이 2020년 10월 ‘2025년 수도권매립지 매립 종료’와 함께 ‘쓰레기 독립’을 선언하며 수도권 쓰레기 전쟁의 서막을 알렸습니다. 2025년 이후 서울·경기 지역 쓰레기를 더는 받지 않겠다는 최후통첩이었습니다.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서울·경기는 대체 매립지 공모 절차에 들어갔지만, 마땅한 후보지를 찾을지는 미지수입니다. 쓰레기 매립지가 꼭 필요한 시설인 줄은 알지만, ‘우리 동네에는 절대 안 된다’는 정서가 지배적이니까요. 수도권매립지 문제는 결국 누리는 사람들과 책임지는 사람들의 불일치에서 비극이 시작됩니다. “서울·경기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고도 투정”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는데, 대놓고 인천시 입장에서 말하자면 “그 돈 줄 테니 매립지 가져가겠느냐”고 되묻고 싶습니다.
단일 매립지로는 세계 최대 규모인 수도권매립지(1600만㎡)는 서울시 관할 쓰레기 처리장이던 난지도가 포화상태에 이르자 1992년 대체지로 조성한 곳입니다. 매립지 지정 당시 경기도가 “서울의 쓰레기를 경기도에 내다버리지 말라”며 반발하자, 경기와 인천까지 포함해 광역 폐기물 처리시설로 지었습니다. 사실상 처음부터 난지도매립지를 대체할 용도였던 셈이죠. 당시 시·도에 자치권이 없었기에 정부 주도로 가능했던 일입니다. 매립지 땅은 서울시(지분율 71.3%)와 환경부(28.7%)가 공동 소유하고, 시설 비용은 3개 시·도가 분담했습니다.
이렇게 탄생한 수도권매립지는 2016년 사용을 종료할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나 매립 종료를 2년여 앞둔 2014년 환경부와 서울·경기가 돌연 매립지 사용 연장을 주장했습니다. 1995년부터 쓰레기종량제가 실시되고, 재활용과 분리수거가 활성화하면서 잔여 용지가 절반가량 남자 사용을 연장하자는 제안이었죠.
당시 유정복 전 인천시장은 이에 반발해 ‘2016년 매립 종료 선언’까지 했지만, 당장 수도권매립지를 폐쇄하면 인천 지역 폐기물을 처리하기도 마땅치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박근혜 정부의 눈치도 봐야 했던 유 전 시장은 결국 협의기구 형태의 ‘수도권 4자(환경부·서울·경기·인천) 협의체’를 제안했고, 그 안에서 연장 논의가 이뤄졌습니다. 2015년 6월 4자 협의체는 매립 기간을 2025년까지 연장하기로 전격 합의했습니다.
대신 인천시는 매립지 주변 개발을 위한 여러 금전적 혜택을 받았습니다. 환경부와 서울시가 갖고 있던 매립면허권(토지소유권 포함) 1600만㎡ 중 1차분으로 665만㎡를 넘겨받았습니다. 매립지에 폐기물을 반입할 때 내는 수수료의 50%에 해당하는 연간 700억~800억원의 가산금도 받게 됐습니다.
언뜻 ‘밑지는 장사’가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 4자 협의에는 ‘사용 종료 때까지 대체 매립지가 조성되지 않을 경우 현 매립지 잔여 부지(3-2공구)의 최대 15%(106만㎡) 범위에서 추가 사용할 수 있다’는 독소 조항도 포함됐습니다. 추가 연장에 대한 종료 시한도 정하지 않아 ‘매립 영구화’의 구실을 줬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 이유기도 합니다.
4자 협의 이후 대체지 입지 선정을 위한 논의는 차일피일 미뤄졌습니다. 4자 협의체는 2019년 수도권매립지 대체지를 확보하기 위한 입지 선정 용역을 마치고도, 아직 용역 결과를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대체 후보지에 서울시는 한 곳도 없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참다못한 박남춘 시장이 결국 2020년 10월 쓰레기 독립 선언에 이어, 11월 인천시만의 쓰레기를 처리하는 자체 매립지와 권역별 소각장 4곳 건설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자체 매립지 후보지인 영흥도와 소각장 후보지 주변 곳곳에서 반발이 불 보듯 뻔한 상황인데도 말이죠. 6년 전 유 전 시장의 패착을 교훈 삼아 ‘진정성’을 의심받는 상황을 미리 차단하겠다는 의지로 읽히는 대목입니다.
실제 쓰레기 독립은 주민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습니다. 영흥화력발전소도 모자라 자체 매립지까지 들어설 예정인 영흥도의 주민들은 20년 전처럼 또다시 투쟁의 거리로 나섰습니다. 박 시장과 같은 당(더불어민주당) 소속인 장정민 옹진군수는 영흥도 자체 매립지 건설 계획을 백지화하라며 단식투쟁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인천시가 독자 행보에 나선 사이, 환경부·서울시·경기도는 5천억원에 이르는 파격적인 인센티브 제공 등을 내걸고 수도권 대체 매립지 입주 후보지 공모에 들어갔습니다. 다만 최소 220만㎡ 규모의 땅 확보, 후보지 경계 2㎞ 이내 주민 동의 50% 사전 확보, 사업용지 토지주 동의 70% 확보 등 까다로운 조건을 3개월 내 충족할 만한 기초지자체가 있을지 의문입니다.
인천시는 환경시설 설치 지역에 지역경제 활성화나 다양한 편익시설 제공 등 과감한 지원책을 제시하며 주민을 설득하는 데 사활을 걸고 있습니다. ‘2025년으로 설정해놓은 인천시의 수도권매립지 종료 시계’는 한 치의 물러섬 없이 달려가고 있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아 보입니다.
인천=이정하 <한겨레> 기자 jungha98@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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