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류호정의 6월5일] 최연소 의원이 처음 받은 민원

6월5일 쿠팡 산재사망 노동자 사연을 듣다
등록 2020-12-20 13:54 수정 2020-12-21 00:14
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6월15일 국회 소통관에서 쿠팡 천안물류센터 조리실에서 일하다 숨진 조리노동자 사건과 관련해 철저한 진상조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류호정 의원실 제공

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6월15일 국회 소통관에서 쿠팡 천안물류센터 조리실에서 일하다 숨진 조리노동자 사건과 관련해 철저한 진상조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류호정 의원실 제공

사람 눈에는 보이지도 않는 작은 바이러스가 온 세상을 쥐고 흔든 2020년이 지나간다. 코로나19로 누구는 생명을 잃고 누구는 직장을 잃었다. ‘비대면’이 시대정신이 돼버린 세상을 거리두기, 모임 금지, 폐쇄와 봉쇄 같은 흉흉한 언어가 지배한다. 끝은커녕 진정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이 ‘전 지구적 유행’(팬데믹)이 사그라지더라도 우리는 코로나 이전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고개 숙이고 눈물만 흘린 2020년은 아니었다. 우리 삶을 더 높고 밝은 곳으로 밀어올리기 위한 싸움 또한 지속됐다. 장애나 성적 지향, 정치 성향, 종교 등을 이유로 한 어떤 차별도 허용하지 말자며 ‘차별금지법’을, 노동자가 일터에서 죽지 않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게 하자며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도입하려는 시민들의 움직임이 활발했다. 여성을 무자비한 착취 대상으로 삼은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의 범인들을 사법의 심판대에 올렸다.
고난과 희망이 교차한 2020년, <한겨레21> 독자에게 생생한 정보를 전한 취재원과 필자 19명이 ‘올해의 하루’를 일기 형식으로 보내왔다. _편집자주
6월5일 금요일

의원실에 필요한 집기가 다 들어오기도 전이었다. 임기를 시작한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았던 6월 초, 출근길에 SNS 메시지를 읽었다. ‘간곡히 부탁드립니다’라는 제목으로 시작하는 메시지는 쿠팡 천안 물류센터 내 직원식당에서 일하던 30대 조리노동자의 사망 소식을 담고 있었다. 발신인은 유가족이었다. ‘필요할 때 곁에 있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던 국회의원 류호정의 메시지를 봤다고 했다.

얼마 전까지 노조에서 일했으니, 산업재해 사망 소식을 많이 들었다. 당사자 이야기를 직접 들을 기회도 적지 않았다. 낯설지 않았지만 낯설어야만 했다. 나는 이 문제를 해결할 힘을 지닌 국회의원으로서 노동자 곁을 지키겠다고 한 다짐을 지키고 싶었다.

그렇게 6월5일 첫 민원인을 만났다. 아내를 잃은 남편은 말했다. 아내는 세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출근해서 아이들이 돌아올 무렵 퇴근했다. 월급이 많지는 않았지만 빠듯한 살림에 보탬이 되고 아이들도 돌볼 수 있어서 좋아했단다. 남편은 아내가 쓰러진 날이 막내의 초등학교 입학식이라고 울먹였다. ‘입학식 끝나고 이제 출근해’라던 휴대전화 메시지가 마지막이 될 줄 몰랐을 거다. 아내는 끝내 가족들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그녀가 일했던 쿠팡 물류센터의 직원식당은 평소에도 세제에 락스를 섞어 청소하게 했다고 한다. 식당 청소를 도맡아 했던 그녀는 평소에도 두통과 가슴통증을 호소했다. 그런데 회사는 코로나19가 닥치자 더 많이 락스를 섞게 했다. 방역 당국의 지침도 어겼다. 견딜 수 없어진 그녀는 일을 그만두려 했다. 그녀는 퇴직을 2주 남기고 일터에서 쓰러져 세상을 떠났다.

주변에서 괜찮냐며 쏟아지는 연락, 세 아이 돌봄, 출근 문제와 더불어 아내의 죽음을 밝혀야 하는 상황까지 모든 문제를 혼자 감당하고 있는 남편은 정신없어 보였다. “상황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 우선 자신과 아이들을 챙길 수 있도록 짐을 덜어주고 싶은 마음에 물었다. “원청인 쿠팡은 사망자가 하청업체 소속이라며 거리를 둬요. 하청업체는 그녀의 허약함을 탓합니다. 회사 쪽과 연락도 잘 안 되고, 사람이 죽었는데 책임지는 곳이 없어요.” 남편의 대답이었다. 늘 반복되는 줄거리. 노동자가 죽은 그곳에는 ‘책임 회피’만 있다. 유가족 가슴에 대못을 박으면서.

필요한 것을 준비할 테니 먼저 아이들을 챙기라고 말씀드렸다. 기자회견을 준비하고 필요한 자료를 정부에 요청해 받았다. 비슷한 사건이 연이어 터졌고, 같은 피해를 당한 노동자들이 뭉쳤다. 보고대회를 열고 국정감사에서 정부의 책임을 물었다. 최선을 다했지만 아직도 문제를 말끔히 해결하지 못했다.

산재 사망 하루 7명, 1년 2400명.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산재 사망률 1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재범률 97%. 하지만 그날 내가 충남 천안에서 들은 이야기는 건조한 숫자로 담을 수 없는 한 인간의 삶이었다. 남편은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었다. 정의당의 21대 국회 1호 법안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알려드렸다. 남편은 꼭 제정해달라고 했다.

그날 사고를, 수많은 그날의 일을 ‘과태료 몇 푼 내면 끝날 일’로 여기는 세상을 바꾸고 싶다. 우리 사회가 산업재해로 사망하는 노동자들과 남겨진 사람들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꼭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통과시킬 것이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

*류호정 정의당 의원은 제1310호 표지이야기 ‘90년대생이 온다’에서 21대 총선 최연소 당선자로서 <한겨레21>과 인터뷰했습니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