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이 디지털성범죄를 정리하고, 앞으로 기록을 꾸준히 저장할 아카이브(stopn.hani.co.kr)를 열었습니다. 11월27일 나온 <한겨레21> 1340호는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 이후 1년동안 일궈온 성과와 성찰, 그리고 여전히 남은 과제로 채웠습니다. 이곳(https://smartstore.naver.com/hankyoreh21/products/5242400774)에서 구입 가능합니다.
비영리 시민단체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이하 한사성) 활동가들을 직접 만난 건 2017년께로 기억한다. 당시 함께 일하는 사건과 관련해 활동가 한 명과 식사하고 근처 편의점에서 먹거리를 쓸어담아 사무실을 찾았다. 좁은 공간, 적은 인원, 쉴 틈 없이 업무에 몰두하는 젊은 여성들. 디지털성폭력 범죄와 맞서 싸우는 10~20대 활동가들이 존경스러운 한편, 열악한 환경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걱정됐다. 그러나 한사성은 비영리 시민단체로 오늘도 싸움을 이어나가고 있다. 이들은 디지털성범죄 피해자 지원, 이슈파이팅, 법 개정 운동을 통해 성착취 시장과 이를 방조·활성화하는 제도 전반에 문제를 제기한다.
한국 사회는 이들의 활동 덕에 조금씩 변하고 있지만, 정작 활동가들의 삶이 어떤지 들여다보며 함께 고민하지는 않는다. 그들의 헌신을 당연한 일로 여기거나, 그 활동을 폄훼하고 색안경을 낀 채 보는 시선도 여전하다. 이들은 어떻게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며 싸워나가는 것일까. 한사성의 효린 활동가와 서면 인터뷰를 했다.
한사성은 다양한 활동을 해왔지만, 2018년 7월 ‘웹하드 카르텔’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것이 기억에 남는다. 특히 방송을 통한 공론화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했다.
“2018년 초 경찰청에 이선희 다큐멘터리 감독과 함께 ‘웹하드 카르텔’ 문제를 신고했으나 ‘여력이 없다’는 답변을 들은 뒤, 언론과 협업해 공론화하기로 결정했다. 방송 이후 청와대 국민청원 20만 명을 달성해, 수사기관의 전수조사를 이끌어냈다. 외부에서 압박하지 않았다면 관련 수사가 제대로 되지 않았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2015년 이후 웹하드 카르텔을 쫓으면서 산업화된 범죄조직에 대응하는 것의 어려움을 경험했는데, 활동 중 위험한 상황은 없었는지 궁금하다.
“실제 물리적 위협에 노출되기도 했다. 공론화 이후 활동가들은 안전 문제를 고려해 신변 보호 팔찌를 몇 개월간 착용했다. 사무실과 집을 오가는 것까지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단체활동을 하다 해코지당할까봐 입사를 포기한 이들도 있었다. 사무실로 낯선 남성이 찾아와 여러 안전장비를 갖춰두기도 했다.”
한사성은 웹하드업체-필터링업체-디지털장의사가 유착한 ‘웹하드 카르텔’을 세상에 알렸다. 추적 끝에 2018년 2월 경기남부지방경찰청에 웹하드 카르텔을 고발했고, SBS 시사프로 <그것이 알고 싶다> 팀과 협력해 ‘죽어도 사라지지 않는 웹하드 불법동영상의 진실’을 방송했다. 불법촬영물 유통이 개인 간 문제가 아니라 성산업화의 문제임을 고발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경찰 수사를 촉구하는 글을 올렸고, 분노한 시민들이 서명에 참여했다. 꼼짝 않던 경찰이 움직였다. 성산업화를 양산하는 구조를 세상에 알리고 그 구조를 뒤흔드는 첫발을 뗀 것이다. 이 거대한 카르텔을 알리기 위해 한사성은 현장 활동을 기반으로 법·제도적 사각지대를 훑었고 이 자료를 들고 여러 국회의원실과 접촉했다.
‘젊은 세대’로 이루어진 게 유리한 점한사성의 활동 영역은 입법, 사법을 넘나든다. 전문지식이 요구되는 분야다. 한사성은 어떻게 전문성을 쌓아왔는지 궁금했다.
“단체 내부에 법률 전문가가 따로 있지는 않다. 피해자 지원 같은 ‘현장 경험’도 기반이 된다. 입법 운동, 정책 제안 활동을 할 때는 외부에서 법률 자문을 받거나 여성 인권운동가들의 조언을 경청한다. 디지털성범죄 특성상 시대 흐름에 기민하게 대처할 수 있는 ‘젊은 세대’로 이루어져 유리한 점이 있었다. 한사성 구성원은 주로 20~30대 여성이고 신생 단체다보니 활동 초기에는 전문성을 인정받는 게 쉽지 않았다. 한국 사회에선 여전히 나이와 자격증, 성별이 권력과 전문성의 표상이기 때문에 젊은 일반인 여성들은 ‘풋내기’ 취급을 받기 쉽다. 그래서 더 전문성을 기르기 위해 노력했다.”
개인활동과 단체활동은 모두 장단점이 있지만, 단체활동의 경우 조직 운영 면에서 체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특히 ‘시민단체’는 비전문적인 아마추어 취급을 받을 때가 많다. 대의나 정의를 내세운 활동이라고 평가받을수록, 외부의 간섭이 심하고 평가는 박하다. 활동에 전념할 수 있는 기반도 있어야 한다. 비영리 시민단체인 한사성은 정부 지원을 받지 않는다. 외부 사업을 수행해 인건비를 충당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 후원금으로 유지비용을 댄다. 사무실 임대료, 인건비, 기타 운영비를 마련하기 위한 대안을 고민 중이다. ‘여성운동’을 ‘일’로서 한다는 건 무엇일까.
나는 성폭력 피해 생존자에서 연대자(활동가)로 자연스럽게 넘어온 경우다. 내 위치와 역량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다보니 여기까지 왔는데, 한사성 활동가들은 왜 활동가가 되었을까.
“나는 한사성 활동을 하기 전까지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2016년 서울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직장에서 ‘메갈이냐’는 질문을 받았다. 직업이 페미니스트일 수는 없을까 고민했다. 일종의 직종전환처럼 한사성 활동에 뛰어들었다. 다른 활동가들도 다 같지 않을까. 세상에 균열을 내고 싶은 걷잡을 수 없는 분노가 있을 수도, 참담한 현실을 견딜 수 없어 발 벗고 나서고 싶을 수도, 누구나 안전한 세상을 바랄 수도 있고.”
연대 활동을 지속하는 이유에 대해 많이 질문받는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중 하나는, 시스템이 피해자·약자·소수자를 위해 기능할 수 있도록 감시하고 바꾸는 것이다. 연대나 지지 기반이 없는, 경제적으로 취약했던, 그래서 혼자 싸울 수밖에 없었던 2010년의 나 같은 성폭력 피해자가 더는 없기를 바라기에 법·제도를 지속적으로 흔드는 것이다.
바꿀 수 있을까. 체념이 깔린 이런 질문을 자주 듣는데, 그때마다 답한다. 바꿀 것이고 바뀌고 있다고. 연대 활동을 한 그 시간 동안 그 변화를 보았고, 앞으로도 변하게 할 거라고. 그러나 변화는 ‘저절로, 알아서, 당연히’ 찾아오지 않는다. 끊임없이 비판하고 행동하는 이들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한사성도 그 변화를 이끄는 한 축이다.
마녀 반성폭력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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