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이 디지털성범죄를 정리하고, 앞으로 기록을 꾸준히 저장할 아카이브(stopn.hani.co.kr)를 열었습니다. 11월27일 나온 <한겨레21> 1340호는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 이후 1년동안 일궈온 성과와 성찰, 그리고 여전히 남은 과제로 채웠습니다. 이곳(https://smartstore.naver.com/hankyoreh21/products/5242400774)에서 구입 가능합니다.
디지털성폭력 피해자 4명이 ‘너머n’에 6통의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엄청난 피해와 고통을 준 가해자, 같은 아픔을 가진 또 다른 피해자, 다시 살아갈 힘을 주는 연대자들에게 쓰는 편지입니다.
2020년 2월, 우리 이야기가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씨, 주모자 구속됐어요. 조만간 기사 뜰 거예요.” 조용한 밤 걸려온 변호사의 전화와 여러 신문사의 기사들, 그리고 실시간 검색어를 보고 숨이 멎을 뻔했습니다. “절대 잡히지 않는다.” “도망가봐라.” ‘박사’의 목소리가 여전히 생생하고, 나는 아직 그 시간에 묶여 있는데 (박사가 잡혔다는) 안심보단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단순히 몇 명의 주모자가 구속됐다고 한들, (n번방을 지켜본) 가담한 사람이 수없이 많다는 걸 나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사건 이전에도 여러 번 자살을 기도할 정도로 심한 우울증을 앓았습니다. 폐쇄병동에서 퇴원한 뒤에도 찌그러진 마음이 유독 괴로운 날마다 스스로에게 상처를 입혔습니다. 어린 나이부터 혼자 살았기에 의지할 곳은 물론 돈도 없던 나는 독사들이 득실대는 성인 채팅앱으로 들어갔습니다. 신체 노출 사진과 돈을 교환하자는 제안을 받았고, 이제 와서 되돌릴 것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차피 곧 죽어버릴 건데, 일종의 자해 행동을 하면서 돈을 번다는 게 나와 퍽 어울려 보였습니다. 맛있는 거라도 먹고 죽자.
그저 남들이 누리고 사는 걸 흉내 내고 싶었을 뿐인데, 상황은 예상외로 흘러갔습니다. 숨 고를 시간도 없이 나는 강압적인 목소리에 대답해야 했고, 수천 명이 있는 텔레그램 단체방에 실시간으로 신상과 사진이 유포되는 것을 지켜봐야 했습니다. 한참 연락이 없던 친구에게서 걸려온 전화기 너머의 머뭇거리는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내 얘기를 다 들었다고 말하던 친구도 길에서 마주했습니다. 남에게 피해를 주려고 한 적도, 실제로 준 적도 없는데 나는 자신을 부끄러워하는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경찰에 신고할 마음이 쉽게 들 수 없던 것은, 당장 눈으로 확인한 채팅방의 충격적인 규모와 쉽게 잡을 수 없다는 텔레그램이란 앱의 특성 때문입니다. 이미 나 같은 피해자가 셀 수 없이 많고, 더 무서운 협박이 찾아올 수도 있기에 극심한 공포만큼 무기력함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신고한다고 해서 바뀔 게 없다는 것보다, 신고하지 않으면 어떤 것도 나아지지 않는다는 게 더 확실했습니다. 머잖아 죽을 작정이긴 했지만, 그게 그 박사(조주빈) 때문이 되도록 할 순 없었습니다. 박사의 신상을 어떤 것도 알지 못한 채, 내가 가진 증거만으로 수사기관에서 진술하고 또다시 수개월이 지났습니다.
사건이 수면 위로 올라오고 예상대로 ‘n번방 피해자들의 실체’, 이런 주제의 의견이 여럿 보였습니다. 나는 그걸 홀린 듯이 보고 기가 찼습니다. 내 몸부림에 대해 그들은 ‘순수하지 않은 피해자’라고 평가해댔습니다. 이런 자격 없는 지껄임에 낙담하면 안 되는 이유는, 우리는 누구에게도 피해를 준 적이 없고 숨어야 하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신고조차 못했던 그때의 나에게 이제 와 하고 싶은 말은, 그 상황이 내 인생의 결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더는 나의 소중한 시간에 그들의 침입을 허용하지 말고 우리 조금만 용기를 내서 움직이자 하고 싶습니다.
우리 피해는 특정 언어로 설명하기 어려운 사건이지만, 앞으로 유사 범죄를 제지하기 위해서라도 우리의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이번 텔레그램 사건을 전담하는 변호사들이 모여 있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연대자가 있기에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앞으로 나서셔도, 뒤로 물러나셔도 좋습니다. 다만 우리가 함께 섰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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