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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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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김정은 만남 4자 구도의 신호탄?

북한은 북·중·러 3각 협력 관계, 남한은 북-미 협상에 도움될 것으로 해석

각국 전략적 이익 놓고 셈법 빨라져
등록 2019-06-24 10:54 수정 2020-05-03 04:29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평양 순안공항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영접한 뒤 시 주석과 동행한 중국 관계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CCTV 화면 갈무리.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평양 순안공항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영접한 뒤 시 주석과 동행한 중국 관계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CCTV 화면 갈무리. 연합뉴스

평양 방문에 나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전용기가 내린 지난 6월20일 평양 순안공항(평양국제비행장)에는 ‘선혈이 뭉쳐 만든 북·중 양국 인민 사이의 굳은 우의와 단결 만세’ 같은 펼침막이 걸려 있었다. 북한과 중국은 양국 우호 협력 관계를 묘사할 때 ‘피’(선혈)를 자주 언급한다. 북한과 중국은 냉전 때부터 “강산이 맞닿은 이웃이며 피로 뭉친 관계(鮮血凝成·선혈응성)이고 순치 관계(脣齒相依·순치상의)”라고 강조해왔다.

상감령 정신 나눈 사회주의 형제의 포옹

북한 노동당 기관지 이 시진핑 주석의 방북 첫날인 6월20일치 지면을 ‘시진핑 주석 방북 특집’으로 꾸몄다. 이날 사설은 “조중 친선은 오래고도 간고한 혁명투쟁의 불길 속에서 피로써 맺어지고 온갖 시련을 이겨내면서 끊임없이 계승되어온 불패의 친선이며 두 나라 공동의 재부”라고 주장했다. 사설은 “세월이 아무리 흐르고 산천이 변한다고 하여도 절대로 변할 수도 퇴색될 수도 없는 것이 조(북)중 인민의 친선의 정이고 단결의 유대”라고 주장했다.

시 주석은 방북을 하루 앞둔 6월19일 1면에 기고한 글에서 “(중-조의) 우정은 천만금을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것”이라며 북-중 친선을 강조했다. 북한과 중국 친선의 뿌리는 항일투쟁과 한국전쟁에서 함께 피 흘린 역사적 경험이다.

중국은 항미원조(抗美援朝·미국에 대항해 조선을 돕는다)를 명분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한국전쟁 중 상감령(上甘嶺) 전투는 북-중 혈맹 관계를 상징한다. 중국은 1951년 10~11월 강원도 철원 오성산 부근의 저격능선 전투와 삼각고지 전투를 합해 ‘상감령 전투’라고 한다. 중국은 상감령 전투를 ‘미제와 싸워 이긴 성전(聖戰)’이라고 평가한다. 상감령 전투는 중국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렸고 영화로 만들어졌다. 중국에서 ‘상감령 정신’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조국과 인민의 승리를 위해 봉헌하는 불요불굴의 의지, 그리고 일치단결로 용감하고 완강하게 전투에 임해 끝까지 승리를 쟁취하겠다”는 정신을 뜻한다. 최근 중국에서는 미국과 무역전쟁을 맞아 대미 항전 분위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상감령 정신’을 강조하고 있다.

6월17일 시 주석의 방북 일정을 발표한 것은 중국 외교부가 아니라 쑹타오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이었다. 시 주석의 이번 방북은 ‘국가 대 국가’ 행사가 아니라 북한 노동당과 중국 공산당끼리 ‘당 대 당’ 성격의 교류 행사이기 때문이다.

지난 1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방중 때는 쑹타오 당 대외연락부장이 압록강 건너 북-중 국경의 단둥역까지 나와 김 위원장을 영접했고 일정을 마치고 돌아가는 김 위원장을 배웅했다. 당시 김 위원장과 쑹타오 부장은 왼쪽 가슴과 오른쪽 가슴을 번갈아 세 번 끌어안았다. 이른바 ‘사회주의 형제 포옹’이었다.

냉전 시절, 소련과 동구권 국가 정상들이 만나면 서로 끌어안고 볼에 번갈아 세 번 키스했다. 이른바 ‘사회주의 형제 키스’는 사회주의국가끼리 튼튼한 유대의 상징이었다. 키스 문화가 없는 아시아 사회주의국가 정상들은 포옹을 했다. 1990년대 동구권이 무너진 뒤 사회주의 형제 키스는 사라졌지만, 사회주의 형제 포옹은 중국, 북한 등 아시아에 남아 있다.

중국은 시 주석 방북을 ‘국빈(國事·국사) 방문’이라고 발표했고, 북한 도 이번 방북을 ‘국가 방문’이라고 밝혔다. 중국이 시 주석 방북을 관영 언론에 브리핑할 때 외교부 관리가 배석했다. 일부에서는 이를 두고 북-중 관계가 ‘당 대 당’에서 ‘국가 대 국가’로 전환됐다는 분석도 나왔다.

북한 인민들이 큰길에 나와 ‘피로 맺은 동맹’ 시진핑 국가주석을 환영하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 인민들이 큰길에 나와 ‘피로 맺은 동맹’ 시진핑 국가주석을 환영하고 있다. 연합뉴스

당 대 당에서 국가 대 국가로

중국이 6월17일 시 주석 방북을 전격 발표하자 가장 큰 의문은 ‘왜 지금이냐’였다. 중국은 왜 지금을 방북 적기로 판단했을까? 올해가 북-중 수교 70주년이고, 지난해부터 김정은 위원장이 네 차례나 중국을 방문했기에 올해 시 주석의 답방 형식 방북은 기정사실처럼 돼 있었다. 애초 중국이 남북관계와 북-미 관계, 미-중 무역전쟁 상황을 지켜보며 가을까지 방북 시기를 저울질할 것이란 예상이 많았다.

중국은 방북 방침 발표에도 신중한 태도였다. 지난 1월 김 위원장 4차 방중 뒤 시 주석 방북을 두고 양쪽 설명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었다. (1월10일치)은 김 위원장이 시 주석의 공식 방문을 요청했으며, 시 주석이 이를 흔쾌히 수락했다고 보도했다. 북한은 시 주석의 올해 방북을 기정사실화함으로써 김 위원장의 외교 업적을 과시하고, 중국처럼 큰 나라 지도자와 같은 반열에 올라 있는 지도자임을 띄우려고 했다.

하지만 중국 쪽 발표문에는 이런 내용이 빠져 있었다. 중국은 굳이 이 사실을 공개해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준비하던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 ‘북한을 편든다’는 오해를 사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시 주석 방북은 김정은 위원장 초청으로 국빈 방문하는 형식이지만, 중국에 필요했다는 분석이 많다. 최근 시 주석은 미국과 무역전쟁과 범죄인 인도 조례에 반대한 홍콩 시위로 어려운 처지에 놓였다. 6월 말 일본 오사카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와 미-중 정상회담,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한국 방문을 앞두고 있다.

시 주석의 방북 배경을 두고 ‘북핵 문제를 미-중 무역전쟁의 지렛대로 활용’하려는 것이란 분석과 ‘김정은 위원장의 의중을 파악해 북-미 대화 중재자 또는 촉진자 역할을 모색’하는 것이란 분석이 많았다. ‘북한 카드’를 활용해 무역전쟁 중인 미-중 관계를 개선하는 전환점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시 주석이 G20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북-미 대화에 대한 김정은 위원장의 뜻을 전달하고, 북핵 문제에 미-중 협력 의사를 다져 양국 관계를 개선하는 계기로 삼으려 한다고 분석한다. 북-중 정상회담에 대한 미국 정부 공식 입장은 ‘미국 목표는 북한의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 가능한 비핵화(FFVD)’이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함께 비핵화 목표 달성에 전념하고 있다’였다.

2005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을 평양 순안공항에서 맞이하고 있다. 연합뉴스

2005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을 평양 순안공항에서 맞이하고 있다. 연합뉴스

2001년과 비슷한 북·중·러 삼각관계

중국은 북한 카드나 지렛대 활용 같은 분석을 부인했다. 최근 중국 는 “일부 미국인이 중국이 무역전쟁 정세 아래에서 북·중 최고 지도자의 접촉을 (무역전쟁에 쓸) 카드화하고 있다고 의심한다”며 “이는 이데올로기적 편견과 협소한 지정학적 사고에서 비롯된 이기적 생각”이라고 반박했다.

시 주석의 방북을 중국 영향력 유지 차원에서 보는 시각도 있다. 중국의 대한반도 정책에서 중요한 기조 중 하나는 영향력 유지다. 지난해부터 한반도 정세가 북-미 정상회담, 남북 정상회담으로 추동되면서, 중국이 존재감을 확인하고 영향력을 과시할 필요가 생겼다.

중국 처지에선 북한에 대한 러시아 영향력 확대를 견제할 필요도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4월 러시아를 방문해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다. 김 위원장은 러시아 방문을 통해 베트남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뒤 중국에만 의지하지 않고 러시아의 힘도 빌리려고 했다. 지금과 비슷한 상황이 2001년에도 있었다. 당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2001년 7월26일~8월18일 러시아를 방문해 북-러가 가까워졌다. 이를 견제하러 당시 장쩌민 중국 주석이 그해 9월 방북했다.

북한 처지에서는 김정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으로 북-러 관계가 긴밀해진 뒤, 시 주석 방북으로 북-중 관계가 튼튼해지면 한반도 문제에서 북·중·러 3각 협력 관계를 만들 수 있다.

“인습적 교량적 역할로는 안 될 것”

우리나라 정부는 시 주석의 방북이 교착상태의 북-미 비핵화 협상 재개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은 6월2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6·15공동선언 19주년 기념 토론회 축사에서 “(지난해부터) 올해 1월까지 개최된 네 차례의 북-중 정상회담은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과정에서 의미 있는 역할을 했다”며 “이번 다섯 번째 회담 역시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이후 교착된 비핵화 협상이 조속히 재개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달리 한반도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 등에서 중국의 역할과 비중이 커져 빨리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최근 정세현 한겨레통일문화재단 이사장(전 통일부 장관)은 언론 인터뷰와 강연에서 “한반도 문제 해결 구도가 남-북-미 3자에서 남·북·미·중 4자로 바뀔 가능성이 대두됐다”고 진단했다. 그는 “앞으로 정전협정 서명 당사자인 중국이 평화협정 문제를 거론하면서 4자 프로세스로 들어올 것”이라며 “정전협정에 서명했던 중국이 평화협정을 꺼내는 것은 이제 자신들도 북핵 문제에 떳떳하게 4분의 1 지분을 가진 플레이어(선수)가 되겠다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정 이사장은 “인습적으로 북-미 간 교량적 역할을 해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게 하겠다는 방식으로는 접점을 만들지 못할 것”이라며 우리 정부가 빨리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진핑 주석 방북 이후 각국이 전략적 이익을 놓고 주판알 튕기기가 빨라졌다.

권혁철 한겨레평화연구소장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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