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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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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리한 한스, 바보 같은 인간

동물 지능을 탐구하는 과학적 시도는 웃음거리 되었지만, 동물과 인간의 소통에 주목해야
등록 2019-05-01 11:02 수정 2020-05-03 04:29
덧셈, 뺄셈은 물론 제곱근까지 척척 계산했던 영리한 말 한스와 그의 주인 폰 오스텐. 누구도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덧셈, 뺄셈은 물론 제곱근까지 척척 계산했던 영리한 말 한스와 그의 주인 폰 오스텐. 누구도 거짓말은 하지 않았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20세기 초반 독일에는 ‘한스’라는 말이 있었어요. 한스는 계산을 잘하고 시계도 읽는가 하면 요일도 맞혀서 ‘영리한 한스’라고 불렸지요. 아주 유명했어요. 수학 교사였던 빌헬름 폰 오스텐은 4년 동안 한스를 가르쳤고, 데리고 다니면서 자랑했지요. 사람들이 몰려들었어요.

“4 곱하기 3은 무엇이지?”

그러면 한스가 ‘탕, 탕, 탕’ 발을 구르기 시작합니다.

하나, 둘, 셋… 열 번째 말발굽 소리가 울리고 열한 번째 소리가 울리자 사람들은 숨죽이고 침을 꿀꺽 삼킵니다. 오스텐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한스의 얼굴을 쳐다봅니다. 한스는 더 이상 발을 구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잠시 있다가 열두 번째 ‘탕’. 답을 맞혔습니다.

소문이 퍼지면서, 한스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말이 되었습니다. 과학자들로 위원회가 소집돼 검증을 벌였지만, 속였다는 증거를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세상에! 계산할 수 있는 말이 있다니! 그때 독일의 심리학자 오스카어 풍스트가 나타납니다. 그리고 한스의 지적 능력을 검증하는 실험을 제안합니다. 돈을 벌려고 동물에게 서커스를 시키는 장사치가 아니었던 오스텐은 흔쾌히 수락합니다. 풍스트는 주인인 오스텐 대신 다른 사람이 문제를 내도록 했습니다. 오스텐에게 커튼 뒤에 서서 질문하라고도 했습니다. 이렇게 하자, 한스의 정답률은 현저히 떨어졌습니다. 풍스트의 설명은 이랬습니다.

“한스가 발을 구르고 정답에 이르렀을 때, 군중의 분위기가 바뀝니다. 특히 주인인 오스텐은 한스가 발을 구를 때는 아래를 내려다보다가 정답에 가까워지면 고개를 올렸기 때문에 그의 넓은 모자챙이 아주 살짝 위로 올라갔지요. 누구도 거짓말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한스가 계산한 것은 아닙니다. 주인의 몸짓이나 표정에 예민하게 반응한 겁니다.”

그리고 아무도 믿지 않았다

이 사건은 과학사에서 매우 유명한 실험이다. 동물행동학계와 심리학계에 ‘외부 관찰자 효과’를 배제하는 방법론적 원칙이 확립되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실험자나 피험자에게 특정한 정보가 제공돼서는 안 되고, 실험은 되도록 진공상태에 가까워야 한다. 이를 위해서 ‘맹검법’이 쓰이는데, 풍스트가 오스텐에게 커튼 뒤에 숨어 문제를 내라고 한 것이 바로 그런 방법이다.

이 사건은 학계가 좀더 엄격해지는 계기가 되었지만, 인간과 동물의 정치적 관계에서는 역류를 불러왔다. 찰스 다윈의 진화론이 나옴으로써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에 인간과 동물을 새롭게 바라보게 되었고, 동물의 지능과 감정 등을 바라보려는 시도가 늘어나게 되었다. 그러나 대중에게 이 사건은 일종의 ‘사기극’으로 폄하됐고, 동물 지능을 탐구하는 과학적 시도는 웃음거리가 됐다.

이런 시선은 50여년 이어져, 1960~70년대 수백 개의 단어를 수화로 가르친 ‘유인원 언어 실험’에도 주류 학자들은 냉소를 던졌다. 이들이 연 학술회의의 이름은 ‘영리한 한스 현상: 말, 고래, 유인원과 사람들의 의사소통’이었다. 거울로 자신을 인식한 고든 갤럽 박사의 침팬지, 간단한 문장을 만들어 쓴 천재 앵무새 알렉스 등에 대해서도 사람들은 믿지 않게 되었다. 영리한 한스 이후 회의주의자들은 동물의 놀라운 지능이 연구자가 무의식중에 신호를 주거나 먹이 보상의 결과라며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여기서 나는 우리가 놓친 게 두 가지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오스텐과 한스 둘 다 문제를 푸는 데 열정적이었다는 것이고, 둘째는 어쨌든 한스가 정답을 맞혔다는 것이다.

집에서 아이를 키워본 사람은 알 것이다. 아이들은 자신을 둘러싼 공기의 질감을 파악하는 데 천부적인 소질이 있으며, 자신에 대한 기대를 만족시키려는 인정 욕구가 크다. 사실 아이들은 논리를 이해해서 행동을 배우지 않는다. 부모를 모방하거나 다른 사람과의 사회적 관계에 적극적으로 반응함으로써 반복하고 익힐 뿐이다. 행동에 내재한 논리를 터득하는 것은 그 이후인 것 같다.

순식간에 나타나는 숫자를 보는 침팬지

그렇다면 우리가 생각하는 지능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인간과 비슷한 형식의 언어나 논리적 사고, 추상화 능력 등을 암암리에 전제하지만, 동물은 오히려 다른 차원에서 인간보다 영리하다. 일본 교토대 영장류연구소에는 ‘아유무’라는 침팬지가 있다. 아유무는 컴퓨터 화면에 나타났다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1에서 9까지 숫자들의 위치를 기억한다. 단기기억력과 관찰력에서 인간보다 월등한 이유는 침팬지가 숲에 살기 때문이다. 그들은 복잡한 숲의 작은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수백 개의 먹이가 있는 장소를 기억할 줄 안다.

자폐증이 있는 동물학자 템플 그랜딘은 동물이 인간보다 훨씬 시각적으로 민감하다고 말한다. 반면 인간은 기본적으로 서사에 지배받는다. 전형적인 유형에 익숙하고, 그런 유형을 찾도록 감각이 움직인다. 유형 외의 대상은 무시한다. 반면 동물은 디테일을 잡아내는 데 뛰어나다. 침팬지 아유무나 영리한 한스가 바로 그런 경우다.

한스가 정답을 맞힌 이유는 디테일을 보는 진화적 능력 외에 인간과의 유대감이 큰 동기가 되었을 것이다. 벨기에 과학철학자 빈시앙 데스프레는 상호의 ‘믿음’과 ‘관심’이 사람과 말의 육체를 긴밀하게 연결해, 가능하지 않은 일을 만들어냈다고 말한다. 한스가 수학적 논리를 이해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새로운 장을 펼쳐낸 것은 틀림없다는 것이다. 동물행동학자 프란스 드발 또한 “인간과 동물 사이에 자신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의사소통이 발달할 수 있다”며 둘 사이의 무한한 잠재력에 주목했다.

영리한 한스는 근대적 범주로는 설명할 수 없다. 이를테면, 인간과 1만 년 이상 소통하면서 화내고 위로하며 호흡을 맞춰온 개는 또 다른 영리한 한스다. 근대과학은 이성과 합리, 경제적 법칙 등으로 행동을 설명하지만, 인간과 개의 깊고 내밀한 관계에 대해선 ‘수박 겉 핥기’식일 뿐이다. 우리는 자신의 말에게 기대하고 행복해한 사람과 기대를 충족하기 위해 미세한 떨림을 감지한 말의 역사에 대해서도 탐구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야기는 또 하나의 반전을 맞는다.

개, 또 다른 영리한 한스

사기꾼으로 몰린 오스텐은 은둔자가 되어 5년 뒤 죽었습니다. 칼 크롤이라는 부자가 한스를 넘겨받고 말 세 마리를 데려와 다시 산수를 가르쳤지요. 몇 달이 지난 뒤, 말들은 또다시 계산을 해냈습니다. 그중 한 마리는 눈을 볼 수 없는 말이었으니, 무의식적인 몸짓에 반응한 것은 아니었겠지요. 한스는 어떻게 됐냐고요?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의 군용마로 차출돼 전쟁에서 숨졌습니다. 싸움터에서 총에 맞았거나 굶주린 병사들의 식량이 되었겠지요. 영리한 한스는 정말 천재였을까요? 어쩌면 의미 없는 질문을 두고 지금까지도 양 진영은 다툼을 벌이고 있답니다.

런던(영국)=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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