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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 ‘뽑기’ 외에는 방법이 없다

독재와도 싸워봤고 대통령도 몰아내봤지만 입시만은 난공불락
등록 2019-03-22 10:56 수정 2020-05-03 04:29
문제집을 풀고 있는 아이. 한겨레 박종식 기자

문제집을 풀고 있는 아이. 한겨레 박종식 기자

중학교에 진학한 아이가 문답식 자기소개서를 공들여 썼다. 그중 ‘방과 후와 주말에 주로 무엇을 하는가’라는 질문에 “공부”라고 적었다. 어이없어서 이유를 물었더니 돌아온 대답은 이랬다. “그래야 튀지 않잖아. 그게 제일 (답변도) 짧고 무난해.” 이 아이는 체제 저항파도 자기 확신파도 아닌 그냥 눈에 띄는 게 싫은 것이다. 어쩜 눈에 띄기 싫어 이리도 정성을 기울이다니.

나는 내 아이와 나의 성정을 비교적 잘 안다. 음, 잘 알려고 노력한다. 공교육에서 배우는 것 이상의 학습을 할 아이가 아니라는 것과 나도 그 이상을 뒷받침할 수 없다는 것 말이다. 지금의 교육 체계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내려면 무엇보다 양육자의 ‘집념’이 따라야 하는데, 내 스스로도 그리 공부해본 적이 없어서 못 시키겠다. 기본적인 성실함은 가르치겠으나 더 많이 잘하라고는 못하겠다. 그러기엔 아이의 시간이 너무 아깝다. 내 시간과 기운은 더 아깝고.

그렇다고 마냥 손 놓지는 않는다. 나름 한다. 영어는 교과서 출판사가 학년 초 제공하는 듣기 자료로 ‘무려’ 예습을 한다. 꽤 알차게 만들어져 있다. 초등학교 3학년 첫 영어 수업을 앞두고 꿀 먹은 벙어리 될까봐 독려한 것인데, 아이는 오글거리는 말투와 제작 과정에서의 그림 실수 등을 잡아내는 걸 재미있어했다. 수학은 문제가 헐렁하게 담긴 문제집을 ‘집에 들여’ 단원 평가 위주로 복습했다. 회당 스무 문제 정도인데 내 아이는 한자리에서 열 문제 이상 풀면 몹시 불행해지기 때문에 홀수, 짝수 문제로 이틀에 걸쳐 풀었다. 중학생이 되었으니 이제 수학도 수업 전날 예습하기로 했다. 중학교 수학은 유난스럽지 않더라도 한 학기나 적어도 두어 달 정도는 ‘선행’해야 한다고들 하지만 그것도 엉덩이 붙이고 공부해본 아이에게나 해당될 일이다. 내 아이 깜냥에는 이 정도가 맞다. 학교 수업에서도 배우는 맛이 있어야 그 시간이 따분하지 않을 게 아닌가.

나는 틈틈이 아이 공부를 지도 편달하고 학원비를 내 호주머니에 넣는다. 내 노동에 정직한지라 비교적 ‘저렴하게’ 챙긴다. 이런 ‘학원비 삥땅’은 애를 잡지도 놓지도 말라고, 균형감을 유지하라고 나에게 주는 격려금이다. 이렇게 갈고닦은 균형감이 입시 레이스에 들어서도 유효할지 장담할 수 있을까.

최근 에서 인기리에 막을 내린 칼럼 ‘고사미맘 능력시험’을 아껴가며 보았다. 복잡하다 못해 엉망진창인 입시 실태를 생생하게 그렸다. 특히 마지막 회에는 눈물 없인 들을 수 없는 교육주체들의 ‘간증’이 담겼다. 교육 공학적으로야 학종(학생부종합전형)만 한 제도가 있을까. 하지만 선의와 경험과 지혜를 모으고 모았다는 그 학종이, 취지에 견줘 부작용이 어마무시하다는 걸 새삼 절감할 수 있다.

독재와도 싸워봤고 대통령도 몰아내봤다. 입시만은 난공불락이다. 점점 더 혼란과 불신에 빠져든다. 무슨 늪이나 펄 같다. 그사이 사회 양극화는 심해지고, 입시에 종속된 교육은 이를 부채질하는 것으로 보인다. 급기야 입시는 어른들의 대리전으로 전락해 가장 반교육적인 양상마저 보인다. 아이들을 볼모로 이게 무슨 짓인가. 특단의 방법은 없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뽑기’ 외에 답이 없다. 누군가 로또 맞았다고 할 때 부러워는 할지언정 불공정하다고 시비를 걸지는 않는다. 대학도 그냥 ‘뺑뺑이 운발’로 가는 게 가장 현실적인 방법인 것 같다. 대학에서 잘 가르쳐보고 그러고도 학업 실력이 안 되면 진급을 유예하거나 졸업을 안 시키면 된다. 단군 이래 최고 학력이라는 아이들이 그 정도 소화 못하랴. 이 모든 사달의 원인인 대학이 서열을 유지한 채 팔짱 끼고 앉아 온갖 기득권을 누리며, 오는 ‘고객’ 입맛대로 골라 손쉽게 ‘장사’하는 꼴을 더는 보기 싫다. 뺑뺑이로 학생 받아 대학 스스로 해결해라. 정부는 최대한 공정한 ‘뽑기 시스템’만 관리해주면 될 일이다.

김소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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