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7년 11월25일, 영국 런던동물원에 오랑우탄이 도착했다.
인도네시아 보르네오섬에서 막 귀국한 ‘미스터 모스’라는 사람에게서 사온 3살 어린 암컷이라는 것 말고는 자료가 많지 않지만, 빈약한 기록물 중 눈에 띄는 그림이 있다. 긴 스웨터에 바지를 입은 제니. 왼손으로 밧줄을 잡고 오른손을 내민다. 먹이를 구걸하는 굶주린 야수가 아니다. 엄마를 부르는 온순한 어린아이처럼 고귀하고 우아한 생명체가 거기 있다.
이렇게 인간과 닮은 동물이 있다니!런던동물원 개원 이후 처음 전시된 오랑우탄인 제니는 영국 사회에 열광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1830년 수컷이 들어온 적이 있지만, 사흘 만에 숨졌다.) 하지만 당시 신문 기사를 보건대 그의 고향은 어디고 어떻게 잡혀 이송됐는지에는 관심이 없었다. 19세기 중반 사육 기술이 유인원을 번식시킬 만큼은 아니었으므로, 제니는 야생에서 새끼 때 잡힌 것이 분명했다. 다 큰 오랑우탄은 사람보다 힘이 대여섯 배는 세서, 동물상이 사길 꺼렸다. 그래서 어미를 먼저 죽여 떼어놓은 뒤, 새끼를 산 채로 ‘납치’하는 사냥 방법이 일반적이었다.
제니는 런던에 오자마자 습한 비바람이 부는 겨울을 맞았다. 기린사(기린 사육 시설)가 살 곳으로 배정됐다. 지금도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건물인 기린사는 런던동물원에서 그나마 가장 따뜻했지만, 열대의 야생동물에게 도시의 동물원은 여전히 열악했다. 먼저 들어온 침팬지 토미는 불과 두 달 만에 숨졌다.
제니에게 얼마 안 있어 친구가 생겼다. 한두 살 어린 수컷 오랑우탄이 들어온 것이다. 그는 침팬지 ‘토미’의 이름을 이어받았다.
두 오랑우탄 주변에서 서성이던 이가 있었다. 영국 해군 측량선인 비글호를 타고 세계를 돌다 온 젊은 학자였던 그는 다름 아닌 찰스 다윈이었다. 다윈은 감히 입 밖에 낼 수 없는 질문을 가슴에 품고 있었다. 인간은 어디서 왔는가? 인간과 동물이 공통의 조상을 가졌다면, 인간은 어떻게 다른 특성을 가지게 됐을까?
그 점에서 다윈의 눈은 인간과 비슷하게 생긴 오랑우탄에 쏠렸다. 그림이 보여주듯 오랑우탄 제니는 사람처럼 길러지고 있었다. 안락의자가 있고 카펫이 깔린 방에서 전담 사육사 제임스 고스가 아기 다루듯 제니를 대했다. 제니에게도 고스는 엄마 다음으로 처음 정을 준 존재였다. 1838년 9월, 다윈은 고스에게 눈을 떼지 않는 제니의 모습을 관찰했다. 고스가 사과를 내놓았다가 숨기자, 제니는 고함을 지르며 광분했다. 고스가 타일렀다.
“제니, 울지 말고 착한 아이처럼 굴면 사과 줄게.”
제니가 점차 침착해졌다. 다윈이 물었다.
“제니가 당신 말을 알아듣는 건가요?”
“물론이죠, 선생님.”
지금은 별 볼일 없는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1838년의 동물학자에게는 놀라운 광경이었다. 사람 같은 얼굴에 두 발로 걷는 동물이 있다는 것도 놀라운데, 지능과 행동도 사람과 비슷하다니! (오랑우탄은 성체가 될수록 사람과 차이가 커진다. 하지만 당시 유럽 사회에서 관찰할 수 있는 건 새끼뿐이었다.) 사람처럼 길러지기도 했지만, 제니의 행동은 실제 사람의 아기와 비슷했다.
혼자 남은 제니는 지푸라기로 기차를 만들었다. 일렬로 늘어선 지푸라기를 제니는 대나무 막대 속에 넣어 채우기 시작했다. 다윈이 신기해하자, 고스는 제니가 기린한테 갈 때 심지어 채찍을 가지고 간 적도 있다고 했다. 무서운 개 앞에 설 때는 쥘 수 있는 모든 것을 쥐려 한다고 했다.
이번에는 거울을 가져갔다. 제니는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자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거울을 제니 손에 쥐여주었다. 거울을 이렇게 저렇게 만져보던 제니는 거울에 입을 맞추었다. 이번에는 토미가 거울을 받아들었다. 토미도 키스를 했다. 제니의 행동을 보고 모방했음이 틀림없었다. 놀라운 점은 제니가 거울을 연구하는 듯이 보였다는 것이다. 거울이 부리는 마술이 도대체 어디서 왔는지 알아보려는 것 같았다.
다윈의 실험은 거기서 끝나고 몇 차례 짧은 만남은 이어지지 못한다. 간단한 자극을 주고 행동을 관찰한 것이었지만, 다윈과 제니의 만남은 현대의 동물권 신장과 동물행동학에 의미심장한 순간이었다.
거울을 본다는 것은나중에 다윈과 제니의 만남을 주목한 이는 미국의 비교심리학자 고든 갤럽이었다. 동물도 마음이 있을까? 그가 품었던 화두다. 동물은 스스로 생각하지 못하고 감정도 없는 기계라는 생각이 일반적일 때, 갤럽은 동물에게도 자의식이 있음을 거울로 입증해보려 했다.
그는 치밀하게 계획된 절차를 따랐다. 우선 침팬지에게 며칠 동안 거울을 주었다. 거울에 익숙해지자, 갤럽은 침팬지 눈썹에 몰래 빨간 물감을 칠했다. 다시 거울을 설치했다. 침팬지는 어떻게 했을까? 거울을 보고는 자기 눈썹 위를 만지작거렸다. 거울 속 이미지가 자신이라는 것을 안다는 뜻이었다.
그게 뭐 대단한 거냐고 물을지 모르겠지만 이걸 수행할 수 있는 동물은 유인원 4종(침팬지·오랑우탄·고릴라·보노보), 돌고래, 코끼리 그리고 유럽까치뿐이다. 당신이 머리 좋다고 칭찬하는 반려견조차 허공을 향해 멍멍 짖다가 실험에서 낙방한다.
거울을 통해 자신을 볼 수 있다는 것은 타자의 눈으로 자신을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자의식이 있다는 얘기다. 갤럽의 실험은 1970년 과학전문지 에 출판돼 충격을 던진다. 제인 구달이 탄자니아의 곰베강에서 침팬지의 도구 사용을 발견한 것과 맞먹는, 동물을 바라보는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사건이었다.
그런데 왜 당시 런던동물원은 제니를 사람처럼 길렀을까? 아마도 우리 종과 그들의 유사성에 매료됐기 때문일 것이다.
제니와 만남 뒤 20여 년이 흐른 1859년, 다윈은 을 출판한다. 이어 1871년 펴낸 에서는 좀더 직접적으로 인간과 유인원이 공통 조상을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 책에 대한 반응이 ‘존경스러운 오랑우탄’이라는 유명한 삽화다. 인간과 동물이 같은 가지에서 나왔다는 다윈의 주장은 당대 사람들에게 불편했고, 인간의 특별한 지위가 조금이라도 훼손되지 않길 바랐던 것이다.
진화론 기념비에 적혀야 할 이름유사성은 차이의 그림자라고 했던가. 우리는 동물이 인간과 비슷하다고 열광하면서, 동시에 동물은 인간을 따라올 수 없다며 차이를 강조한다. 고통과 감정, 도구 사용, 자의식 등 인간에게는 동물과 구별되는 특성이 있다고 강변해왔지만, 다윈 이후 진화과학은 이런 인간중심주의 신화를 깨뜨리고 있다. 1839년 5월, 제니는 2년을 살다 숨을 거둔다. 애초 열대의 고향을 떠나 오래 살 동물이 아니었다. 진화론 기념비에 동물에게도 한 줄을 내주어야 한다. 다윈에게 영감을 준 오랑우탄 제니의 이름이다.
런던=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전화신청▶ 1566-9595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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