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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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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을 불법취업자로 둔갑시키는 통역사들

난민인권센터, 허위 면접조서 피해 사례 19건 발견…

제주 예멘 난민도 “통역사가 다그쳐서 위축됐다”
등록 2018-07-24 05:22 수정 2020-05-02 19:28
엉터리 통역으로 난민면접에서 피해를 입은 난민 신청자와 난민인권센터가 7월18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건물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피해 보상과 재발 방지를 촉구하고 있다.

엉터리 통역으로 난민면접에서 피해를 입은 난민 신청자와 난민인권센터가 7월18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건물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피해 보상과 재발 방지를 촉구하고 있다.

“돈을 벌기 위해 난민 신청을 했다.”

2015년 10월 한국에 들어와 난민 인정 신청을 한 수단인 A는 자신의 난민면접조서에 적힌 내용을 확인하고 깜짝 놀랐다. 자신이 하지 않은 말이 기록됐기 때문이다.

A는 2011년 수단의 대학교수가 집권여당에 가입한 대학생들에게 기말고사 문제를 유출한 비리를 대학신문사에 폭로했다가 반정부 인물로 낙인이 찍혔다고 주장한다. 2014년 1월, 반정부 시위에 가담한 그는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체포돼 한 달 동안 고문을 당했다. A는 보석으로 풀려난 뒤 난민 신청을 위해 한국으로 왔다.

내가 하지 않은 말이 적혔다

하지만 면접조서에는 박해의 위협 대신 경제적 이유로 왔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난민 신청 사유를 말하시오’라는 질문에 “한국에서 합법적으로 장기간 체류하면서 일을 하고 돈을 벌기 위해 난민 신청을 했다”고 기록됐다. ‘언제 귀국할 수 있나’라는 질문에는 “한국에서 일을 해 돈을 많이 벌면 수단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대답한 것으로 적혀 있다.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는 2016년 5월19일, 난민 면접 내용을 토대로 A를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면접조서에 문제가 있음을 깨달은 그는 서울행정법원에 난민불인정처분을 취소해달라고 소송을 제기했지만, 법원은 2017년 4월 출입국관리사무소의 손을 들어줬다.

A는 서울고등법원 항소심에서 조서에 기록된 내용을 말한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난민 신청 이유를 묻는 말에 ‘수단에서 문제가 있어 고문당하고, 한 달 이상 감금당했다’고 했다. 한국에서 일하는 이유를 물었을 때는 ‘돈을 모으는 목적이 아니라 한국에서 생활하기 위해 일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돈을 모아서 수단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고 했다.

자신의 면접에 들어온 통역사 장아무개 씨의 자질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A는 “장씨의 아랍어를 이해할 수 없었고, 장씨도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면접이 끝나고 나서 설명하겠다며 넘어갔다”며 “(조서 내용 확인 때) 서명할 것을 요구했지만 ‘아직 설명을 안 했기 때문에 서명하기 싫다’고 하자 장씨가 서명하면 설명해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내가 서명을 하니까 시간이 다 돼 설명을 못한다면서 면접이 끝났다”고 했다. 면접조서는 한글로 작성되기 때문에 통역사가 조서를 읽어주지 않으면 난민 신청자는 조서 내용을 알 방법이 없다.

A의 변호인은 통역사 장씨가 참여해 작성된 아랍어권 난민 신청자 여러 명의 면접조서에서 ‘돈을 벌기 위해 난민 신청을 했다. 돈을 많이 벌면 자국에 돌아갈 수 있다’와 같은 문장이 발견됐고, 이에 문제를 제기하는 소송이 여러 건 진행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6월27일 A의 난민불인정처분 취소 판결을 내리면서 “장씨가 통역한 난민면접에서 이러한 기록이 많은 것은 통역 방식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A가 하지 않은 진술이 왜곡되는 등 면접 절차가 부실했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A는 난민 인정 재심사를 준비한다.

제주도에서 예멘인 486명의 난민면접이 진행 중인 가운데 A와 같은 아랍어권 난민 신청자들의 면접이 엉터리로 진행된 사실이 무더기로 드러나고 있다. 난민에 부정적인 여론은 ‘난민 신청자가 한국에 오래 체류하기 위해 난민 인정 재심사를 남용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당초 허술한 난민 심사 때문에 난민의 재심사 요청이 이뤄지는 것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통역사 장씨는 왜?
난민 심사 과정에서 잘못된 통역으로 피해를 입은 난민 신청자들이 7월18일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내고 있다.

난민 심사 과정에서 잘못된 통역으로 피해를 입은 난민 신청자들이 7월18일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내고 있다.

난민인권센터는 7월18일 국가인권위원회에 “피해자에 대한 보상책을 마련하고, 법무부에 문제를 개선하도록 권고해달라”며 진정서를 냈다. 난민인권센터와 재단법인 동천은 진정서 제출 전 인권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A처럼 난민면접조서가 잘못 작성된 사례 19건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모두 A의 면접을 맡았던 통역관 장씨와 서울 출입국·외국인청 조아무개 조사관이 담당한 난민면접이었다.

피해 사례의 면접조서에는 “일을 하고 돈을 벌 목적으로 난민 신청을 했다”라는 문장이 똑같이 적혀 있었다. ‘난민 신청서에 적은 난민 신청 이유는 거짓인가’라는 질문에 “모두 사실이 아니다. 난민 신청을 위해 거짓으로 적었다”는 내용도 동일하게 기록됐다. 어렵게 먼 나라까지 와서 난민 신청을 하면서 신청서에 쓴 내용이 거짓이라고 면접에서 말했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장씨는 난민 전문 통역사도 아니고 서울 시내 한 사립대학교 학생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랍어를 이중 전공하는 장씨가 지난 2년간 맡은 난민 심사는 100건에 이른다. 법무부는 장씨가 관여해 결정된 난민 불인정 결정 중 55건을 직권 취소했다. 이 중 두 건은 이미 재심사를 통해 난민으로 인정됐다. 장씨는 현재 난민 심사 통역을 하지 않는다.

난민인권센터 구소연 활동가는 “난민면접조서가 허위로 작성됐다는 것은 난민으로 인정받을 기회를 빼앗겼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법무부는 공식적인 사과는커녕 해당 공무원을 징계하지도 않았다. 난민 심사를 어떻게 내실 있게 할지 대책은 이야기하지 않고, ‘남용적 난민 재심사’ 프레임을 꺼내들고 난민법을 후퇴시키려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렇게 난민 심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난민 신청자는 이의 제기와 취소 소송, 재심사까지 거치면서 경제적 부담을 떠안는다. ‘가짜 난민’이라는 낙인이 찍혀 정신적 고통도 받는다. 난민인권센터는 “먼저 난민 심사 피해자들에게 보상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난민 전문 통역사의 선발 심사 기준을 ‘명확히 하고, 난민면접 과정의 녹음·녹화를 의무화하는 등 구체적인 대책 마련을 요구한다”고 했다.

엉터리 난민 심사가 개선되지 않으면 고국의 박해를 피해 떠나온 난민 신청자의 안타까운 피해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최근 난민 신청자가 몰려든 제주도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는 것으로 의 취재 결과 드러났다.

무사증 입국 제도로 올해 제주도에 들어와 난민 인정 신청을 한 무함마드 (가명)는 7월 초에 면접을 봤다. 그는 한국에 온 이유를 묻자 “전쟁을 피해 예멘을 떠나서 갈 수 있는 나라가 말레이시아밖에 없었다. 하지만 말레이시아에서도 일할 수 없었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떠나야 했다. 그래서 한국에 왔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통역사 C씨는 무함마드의 대답을 아랍어로 확인하는 과정에서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온 것”이라는 언급하지 않은 문장을 끼워넣었다. 당황한 무함마드는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온 것이 아니라고 설명했지만 통역사는 계속 한국에 와 난민 신청을 한 이유에 ‘금전적 이유’를 포함했다. 무함마드는 과 한 대화에서 “통역사가 내가 하지 않은 돈 이야기를 계속해서 한쪽으로 몰고 가려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나를 무시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나빴다”고 말했다.

“한쪽으로 몰아가려는 것 같다”

무함마드는 C씨와 의사소통도 잘되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그는 “통역사가 표준 아랍어를 썼는데 나는 예멘식 아랍어밖에 할 줄 몰라서 소통이 잘 안 됐다. 길게 설명하려고 하면 통역사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짧게 말하라’고 다그쳐서 위축됐다”고 했다. 통역사 C씨가 면접 통역을 한 다른 예멘인들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고 전해졌다. 제주예멘난민대책위원회(대책위)는 상황을 파악한 뒤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제주출입국·외국인청에 진상 규명과 문제 해결을 요구할 계획이다.

통역사들이 예멘인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는 지적도 나왔다. 7월 둘째 주에 면접을 본 살라(가명)는 “통역사 D씨가 아랍어를 완벽하게 구사하지 못했고, 아랍식 예멘어를 이해하지 못해 문제가 있었다. 내가 길게 말해도 통역사가 심사관에게 짧게 몇 마디만 해서 내 말을 다 전달하지 않는 것 같아 불안했다”고 말했다. 그는 “한 주제에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심사관이 주제를 바꾸기도 했다. 인터뷰에서 더 많은 말을 하고 싶었는데 설명이 불충분했던 것 같다. 아마 난민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 같다”며 괴로워했다.

전문가들은 국가마다 사용하는 아랍어가 달라 통역에 어려움이 있다고 지적했다. 한 아랍어 통역사는 “아랍어를 수십 개국에서 쓰는데 지역마다 단어와 억양이 차이가 커서 서로 알아듣지 못할 정도다. 한국에서 아랍어를 공부한 사람들은 표준 아랍어를 배우는데 예멘 같은 지역의 방언을 공부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했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7월19일 예멘 난민 문제와 관련해 “통역사가 많이 부족하다. 아랍어 전문 통역사 4명을 채용해서 대응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새로 채용된 이들도 난민 심사 현장에서 의사 소통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황필규 변호사는 “난민 신청자의 진술을 얼마나 정확하게 전달하는지가 난민심사의 핵심인데 이 부분이 잘 되지 않는다는 것은 한국의 난민심사 제도의 부실성이 드러나는 부분이다”라고 말했다.

난민 면접 통역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난민 신청자가 하지 않은 이야기가 조서에 포함돼도 난민들은 적극적으로 자기 이야기를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난민 신청자 중에는 과거 국가폭력과 박해를 겪은 사람이 많아 국가기관에 두려움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난민법은 난민 신청자가 변호사의 도움을 받을 권리(난민법 제12조)와 변호사가 아니더라도 신뢰 관계에 있는 사람이 함께 면접에 임할 수 있는 권리(난민법 제13조)를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권리가 있음을 알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난민인권센터가 2016년부터 조사한 피해 사례 19건 중에서 변호사나 다른 사람이 도와준 경우는 한 건도 없었다.

변호인 조력권 유명무실

제주도의 예멘 난민들도 비슷한 상황이다. 이 제주도 예멘 난민 10명에게 물었지만 변호인 등의 도움을 받았거나, 도움받을 수 있는 권리를 고지받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난민면접을 마친 한 예멘인은 “아무도 그런 것을 설명해주지 않았는데, 도움을 받았더라면 난민면접을 훨씬 잘 볼 수 있었을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난민인권센터 김연주 변호사는 “예멘 난민들이 제주도에 들어왔을 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면접에 동행하는 방안이 논의됐다. 하지만 제주도에 난민 관련 단체와 인권변호사가 없어서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대책위라도 함께 들어가면 좋은데 난민이 워낙 많아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제주=이재호 기자 ph@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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