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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노보 칸지, 불을 모방하다

동물의 한계를 깨뜨린 ‘스타 동물’ 칸지

종간 교류하는 ‘사람과’의 미래를 상상하라
등록 2018-06-26 16:33 수정 2020-05-03 04:28
수 세비지 럼바우 박사와 함께 마시멜로를 구워 먹는 보노보 칸지. 유튜브 갈무리

수 세비지 럼바우 박사와 함께 마시멜로를 구워 먹는 보노보 칸지. 유튜브 갈무리

숲에서 두 발로 걷는 동물 하나가 나뭇가지를 모아 온다. 검은 털과 평평한 이마, 구부정하지만 사람과 비슷한 체격이다. 나무를 쌓은 뒤 라이터를 들고 불을 붙인다. 불은 활활 타오르고, 열기가 전해졌는지 잠깐 몸을 비키던 동물은 마시멜로를 나뭇가지에 끼워 구워 먹는다.

서커스 묘기가 아니다. 놀라운 일을 한 건 보노보다. 그의 이름은 ‘칸지’. 세상에서 가장 영리한 동물을 꼽으라면, 단연코 꼽힐 주인공이다. 칸지는 언어 사용, 도구 제작 그리고 불 만들기 ‘3종 세트’를 완성했다. 그간 인간만이 할 수 있다고 내세웠던 것들이다.

칸지는 순수 ‘야생동물’이 아니다. 1980년 미국의 여키스영장류연구센터에서 태어났다. 유인원에게 수화를 가르치는 연구가 유행이던 시절, 미국 조지아주립대 연구팀은 미국 수화 대신 ‘렉시그램’이라는 그림문자를 가르치는 연구를 하고 있었다. 칸지는 학생이 아니었다. 원래 그의 양모인 ‘마타타’를 가르쳤는데, 아들인 칸지가 어깨너머로 문자를 자연스레 ‘깨우쳤다’. 연구팀은 실험 대상을 칸지로 바꾸었다.

‘인간 3종 세트’ 도전한 칸지

그 뒤, 칸지는 잇따라 동물의 한계를 깨뜨린 ‘스타 동물’로 등극했다. 그는 렉시그램을 사용해 3천 개의 영어 단어를 익혀 연구자인 수 세비지 럼바우 박사와 소통했다. 결코 낮은 수준의 언어가 아니었다. 기호학자 찰스 샌더스 퍼스는 인간이 전달하는 ‘표상’을 세 가지 수준으로 분류했다. 아이콘(화장실 문의 남녀 그림처럼 유사성으로 연결된 표상), 인덱스(온도계처럼 상관관계로 보여주는 표상), 상징(사물과 연관 없이 임의적 약속으로 성립되는 문자)이다. 하나의 렉시그램을 특정 의미와 연결하고 소통하는 ‘상징’은 가장 높은 수준의 언어였다. 쉽게 말하면, 우리 인간이 어느 날 말을 잃고 한자로만 소통한다면, 칸지가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칸지는 다양한 도구를 만들어 썼다. 2012년 수 세비지 럼바우 박사 등이 쓴 논문을 보면, 칸지는 큰 돌을 깨뜨려 다양한 크기의 뭉툭하고 날카로운 도구를 만들어 구멍을 뚫고 긁어냈다. 이전에는 날카로운 부싯돌을 만들어 밧줄을 자르기도 했는데, 그보다 훨씬 다양한 도구를 여러 목적에 사용하는 능력이 밝혀진 것이다.

논문이 출판된 뒤, 언론은 칸지가 석기 시대 인류의 도구 사용 수준을 보여주었다고 놀라움을 표시했다. 호들갑이 아니었다. 칸지가 쓴 석기는 인류학자 루이스 리키 박사가 올도완 협곡에서 발견한 고인류의 석제 도구를 닮아 있었다.

그렇다면 야생 어딘가에 석기를 쓰는 유인원 문명은 왜 없다는 말인가? 아니, 있다. 이미 많은 영장류학자가 ‘석기 문명’을 발견했다. 동아프리카의 침팬지 무리는 견과류를 깨 먹기 위해 돌을 이용한다. 최적의 모룻돌을 찾아서 견과를 올려놓고 최적의 망칫돌을 찾아 깬다. 적당치 않으면 깨고 갈아서 만든다. 당신이 지금 숲에 떨어져 이것을 하라고 한다면, 적합한 돌을 찾지도 못할뿐더러 돌을 잡는 힘의 조절, 타격 지점의 선정, 정교한 망치질 등의 작업을 수행하지 못할 것이다.

불을 이해한 퐁골리의 침팬지들
일부 침팬지들은 불의 속성을 이해하는 것으로 보인다. 산불이 휩쓸고 지나간 세네갈 퐁골리에서 걷고 있는 침팬지. 질 프로이츠, 니콜 헤어조그 제공

일부 침팬지들은 불의 속성을 이해하는 것으로 보인다. 산불이 휩쓸고 지나간 세네갈 퐁골리에서 걷고 있는 침팬지. 질 프로이츠, 니콜 헤어조그 제공

그러나 아직 유인원이 인간을 따라잡지 못한 것이 있으니, 바로 ‘불의 사용’이다. 미국 하버드대의 진화인류학자 리처드 랭엄은 불의 사용이 호모사피엔스의 진화에 결정적 구실을 했다고 본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두 발로 걷고 큰 턱뼈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190만~180만 년 전 이들의 후손 호모에렉투스에 이르러 턱과 치아가 상당히 작아져, 지금의 인간과 비슷해졌다.

이 차이는 무엇을 의미할까? 리처드 랭엄은 사냥한 고기를 익혀 먹었기(화식)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야생 열매를 먹으려면 큰 턱뼈와 강한 치아가 있어야 한다. 또한 채식은 공급하는 열량이 적으니, 많은 시간 줄곧 먹어야 한다. 실제로 현생 침팬지는 아주 가끔 사냥하고 주로 식물과 열매를 먹는다. 하루에 절반 이상의 시간을 씹는 데 쓴다. 반면 고기를 익히면 부드럽다. 변질이 줄어 저장성이 높아진다. 먹는 데 소비하는 시간을 다른 데 쓸 수 있다. 인간 문명의 발전이 화식으로 확보한 잉여 시간에서 왔다고 조심스럽게 추측해볼 수 있다.

그렇다면 침팬지와 오랑우탄, 고릴라 그리고 보노보는 도대체 왜 불을 쓰지 않은 걸까? 진화는 우연의 연속이기 때문에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아프리카 세네갈에서 침팬지 무리를 연구한 질 프로이츠 아이오와대 교수와 니콜 헤어조그 유타대 교수는 2017년 수수께끼의 문을 빼꼼히 열었다. 이들이 연구하는 세네갈 퐁골리는 해마다 건기에 산불이 나는 사바나 지역으로, 이곳에는 산불을 주기적으로 겪는 유일한 침팬지 무리가 살고 있었다. 정말 불과 초기 인류의 연관성을 연구하기 좋은 곳 아닌가? (더구나 이 침팬지들은 나무로 창을 만들어 ‘갈라고’라는 작은 원숭이를 사냥하는 동물로도 명성이 높다.)

두 인류학자가 보고한 결과는 의미심장했다. 퐁골리를 산불이 휩쓸고 간 뒤 침팬지들은 나무 밑을 뒤져 익은 아프젤리아 나무 열매를 찾아 먹었다. 평소 생으로 먹지 않는 먹이다. 산불이 번지는 중에는 산불의 유형과 불길 방향, 속도를 예측하고 행동했다. 그들은 산불이 빈발해도 서식지를 떠나지 않았고, 불을 자연현상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듯했다.

화식을 할 정도로 불을 자유자재로 다루려면 세 단계의 인지적 발전이 필요하다. 첫째는 불의 속성을 이해하는 개념화 단계, 둘째는 물을 뿌려 끄거나 반대로 불을 키우는 통제 단계, 셋째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불을 만드는 단계다. 두 인류학자는 퐁골리 침팬지들이 적어도 첫 번째 단계에 들어섰다고 봤다.

문화가 종을 넘나들면

그렇다면 장작을 모아 (비록 라이터이기는 하지만) 불을 켠 우리의 칸지는 어떤 단계에 이른 것일까? 칸지는 인간 문화에서 살았다. 그가 라이터를 켜는 것도, 장작을 모으는 것도 ‘모방’에서 시작됐다. (과거 동물원에서 담배를 피우던 원숭이처럼!) 마시멜로를 구워 먹으면서 칸지는 퐁골리 침팬지보다 더 깊은 수준의 불에 대한 이해에 다다랐을 것이다. 뜨겁군, 막 살아서 돌아다니는군, 무엇을 사라지게 만들 수 있군, 아니 먹이가 훨씬 부드럽고 맛있어지는데?

이쯤에서 나는 지능이 높은 침팬지나 보노보 같은 동물이 인간 문화 속에서 인간과 함께 살면, 수천~수만 년 뒤의 지구는 어떨까 상상해본다. 그들은 인간에게 무엇을 배울까? 또 그들은 인간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 문화가 종을 넘나들면 사람과(Hominidae·대형 유인원 6종과 인간으로 구성됨)의 진화는 어떤 방식으로 전개될지는 참으로 흥미로운 질문이 아닐 수 없다.

남종영 편집장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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