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다윈의 이 출간된 1859년, 영국 뉴캐슬에서는 세계 최초의 ‘도그쇼’가 열렸다. 같은 해에 이 두 사건이 벌어진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1836년 비글호를 타고 5년의 항해를 마치고 돌아온 다윈은 20년 넘게 화석과 뼈에 파묻혀 진화론의 기초를 놓으며 틈틈이 살아 있는 동물을 보러 다녔다. 이 책 첫 장에는 개와 비둘기 이야기가 나온다. 자연의 진화(자연선택·natural selection)를 논하기 앞서 다윈은 인간이 만든 ‘진화’(인위선택·artificial selection)를 연구했던 것이다.
150년 이어진 ‘신의 경연장’
그즈음 영국에서는 귀족에서 중산층으로 애견 문화가 퍼지며 열풍이 불고 있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부는 반려견 열풍 못지않았던 거 같다. 특이할 만한 것은 그때 애견 열풍이 새로운 품종 개발과 결부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그전까지는 사냥이나 양치기, 쥐잡기 등 목적에 맞게 개를 교배해 만드는 정도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개의 ‘미적 가치’에 집중하기 시작했고, 브리더(육종가)들도 전문화됐다. 덩치는 작게, 눈은 크게, 얼굴은 평평하게… 사람들의 미적 욕망은 끝이 없었다.
다윈은 서로 다른 개의 형태에 주목했다. 이를테면, 가장 큰 품종인 그레이트데인은 웬만한 사람 어른 덩치에 육박하지만, 치와와의 어깨 높이는 15cm에 지나지 않는다. 어떻게 두 동물이 같은 종이라고 할 수 있을까? 다윈은 사람이 단기간에 인위선택으로 이렇게 다른 동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억겁의 시간을 장악한 자연은 현재의 생물종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진화론을 공격하는 이들에게 다윈은 이렇게 반박할 수 있었다. 개를 보라! 그레이트데인과 치와와가 하나의 뿌리에서 나왔다면, 인간과 오랑우탄, 침팬지의 조상도 하나라고 할 수 있지 않은가?
2018년 3월11일 영국 버밍엄 실내 스타디움에 수천 명의 관중이 운집했다. 2만1천 대 1의 경쟁을 뚫고 7개 부문에서 최고견으로 선정된 개들이 쫄랑쫄랑 입장했다. 7마리 중 올해의 개가 선발된다. 수석 심판관이 하운드 부문에서 최고견으로 뽑힌 개 ‘칠리’에게 다가갔다. 칠리의 털을 부드럽게 쓰다듬고, 근육을 손가락으로 집어보았다. 칠리는 몸을 가만히 대주었고, 진지한 정적이 흘렀다. 세계 수백만 명의 애견인들이 시청한다는 방송을 중계하는 아나운서와 해설자만 흥분해 탄성을 질렀다.
“아름다운 귀족의 머리에 살짝 오목한 주둥이를 가진 포인터입니다. 높은 두 귀, 후각 능력을 보여주는 큰 콧구멍 그리고 아름다운 몸의 곡선! 주도면밀한 교배로 귀족적인 개를 만들어냈습니다.”
“포인터는 항상 예술가 같습니다. 저 우아한 곡선을 보세요.”
1859년 뉴캐슬에서 열린 최초의 도그쇼는 세계 최대의 도그쇼 ‘크러프츠’로 이어졌다. 1891년 버밍엄에서 시작된 크러프츠는 ‘신들의 경연장’이 되어, 신이 된 인간이 자신들이 생산한 생명을 내놓고 얼마나 아름답고 절도 있는지를 겨룬다. 150년이 흐른 지금, 세계의 개 품종은 400종이 넘는다. 적어도 3분의 2 이상은 다윈의 시대 이후 만들어졌다.
인간이 보기에 좋았더라
개는 보통 10~20년을 산다. 해마다 새끼를 낳는다. 초파리보다는 못하지만, 개의 몸도 나쁘지 않은 유전학 실험실이다. 자연에선 이렇게 빨리 결과를 볼 수 없다. 자연선택은 (초파리 같은 일부 생물종을 제외하고는) 인간이 인식할 수 없는 시간대를 거쳐 나타난다. 그래서 유전학자 스티브 존스는 도그쇼를 “모두가 볼 수 있도록 분필로 그려놓은 진화”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단기간에 이뤄지는 ‘인위선택’은 심각한 부작용을 불러온다. 우연히 눈이 큰 새끼를 얻었다고 치자. 사람과 눈을 맞출 때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개다. 이 개는 나중에 어미가 되어 눈이 큰 자식을 낳을 확률이 높다. 눈이 큰 형질을 빨리 고정하기 위해 브리더들은 이제 형제들끼리, 부모 자식끼리 교배한다. 눈이 큰 개의 품종이 확립되겠지만, 유전자풀을 축소시켜 결국 유전병을 부른다.
가장 개를 좋아한다는 나라 영국에서 순종견 문화에 대한 논란이 본격화한 건 2000년대 들어서다. 왜 눈이 큰 개들은 백내장에 걸리는 걸까? 왜 다리 짧은 개들은 관절염에 걸리기 쉬울까? 멋지고 성격 좋은 순종견일수록 병은 빈발했고, 늙을수록 고통은 커졌다. 영국 동물학대방지협회(RSPCA)는 2008년 ‘혈통견에 관한 과학 보고서’를 낸다. 동시에 공영방송 《BBC》도 혈통견의 문제를 파헤치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한다. 눈이 큰 개, 다리 짧은 개, 주름이 많은 개… 이 모든 개들이 늑대라는 하나의 조상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개는 다양해졌다. 하지만 비정상적인 신체 때문에 개들은 고통받고 있었다.
동물학대방지협회는 보고서에서 순종견을 만드는 행위로 개의 신체기관이 과장되게 만들어져 삶의 질이 떨어지며, 이같은 근친교배는 유전병을 부른다고 지적했다. 이를테면 짧은 다리는 척추 질환을 일으킨다. 머리를 크게 만들면 새끼는 출산 때 어미에게 흉기가 된다. 털을 없애거나 너무 길게 만들면, 온도 조절 능력이 떨어진다.
사람들은 카발리에 킹 찰스 스패니얼의 머리를 평평하게 만들려고 했다. 그러다보니 개의 뇌가 두개골 크기를 넘어 부풀어오르게 됐다. 이 품종에선 ‘척수공동증’이라는 두개골 기형이 상습적으로 나타난다. 잉글리시 불도그는 가장 극단적인 유전자 조작의 예다. 안면을 평평하게 만들어 주름이 많아지다보니, 눈꺼풀이 비정상적으로 말려들어간다. 이 개는 나이가 들면 눈꺼풀이 눈을 덮어 앞을 보지 못한다. 블러드하운드는 슬프게 보이는 얼굴이 매력적이어서 불행한 개가 됐다. 브리더들은 아래쪽 눈꺼풀이 처진 모습으로 형질을 고정했고, 이 슬픈 개의 눈은 항상 충혈되어 있다. 도베르만은 기면 발작에 걸린다. 열심히 뛰어놀다가 맥없이 쓰러진다.
인간은 생명을 생산한다. 그러나 동물을 생산할 때는 인간 아기를 대하는 것처럼 경외를 가지고 대하지 않는다. 오히려 개에 대한 인간의 취향은 변덕스러워, 유행을 탄다. 그 결과 과거의 인기견들은 자취를 감추고 특정 견종이 대량생산된다. 취약한 신체 구조와 유전병이 빈발하는 품종에 대중이 빠져들면, 개는 자기 종의 역사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터널을 통과해야만 한다.
한국 누렁이가 행복한 이유
미국에서 순종견 열풍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에 불어닥쳤다. 1950년대 순종견 비율은 5%에서 50%로 급등했다. 한 연구는 제2차 세계대전을 마치고 돌아온 퇴역 군인에게 정부가 주택 구입 등 혜택을 줬고, 그에 따라 정원 딸린 교외의 주택이 늘어나면서 개가 많아졌다고 추측한다. 푸들과 래브라도 리트리버처럼 꾸준히 인기를 얻은 견종도 있었지만, 로트와일러 같은 맹견은 ‘벼락인기’를 끌다가 소수의 취향으로 전락했다. 로트와일러는 제왕절개로 새끼를 낳아야 하고 당뇨, 백내장 등에 걸리기 쉽다.
1980년대 이후 동물보호운동의 성장과 함께 서구에서 순종견에 대한 집착과 열망은 일부 마니아층의 것으로 국한되기 시작했다. 유기견 보호소에서 입양하기와 잡종견이 행복하게 살아간다는 생각이 건강한 상식으로 자리잡았다. 2008년 논란 이후 크러프츠 도그쇼를 운영하는 케널 클럽은 근친교배로 낳은 개의 출전을 금지하는 규정을 신설했다. 《BBC》는 해마다 했던 생중계를 2009년부터 중단했다.
하지만 인간이 개를 키우는 심리의 뿌리에는 교감이나 보살핌 말고도 과시욕 같은 상충하는 욕망이 섞여 있다. 《BBC》의 포기 이후 민영방송 가 생중계 바통을 이어받았고, 아직도 크러프츠는 영국인들에게 미국의 슈퍼볼 같은 국가적 이벤트로 남아 있다. 2018년 크러프츠 시상식에 선 칠리와 티즈 앞으로 갑자기 동물단체 소속 활동가 두 명이 난입해 장내가 아수라장이 됐다. 그들이 미처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피켓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도그쇼: 개의 우생학”
늑대 무리를 떠나 인간 거주지에 가까이 머물면서 자연스럽게 진화해온 개를 ‘자연 견종’이라고 한다. 근친교배를 감수하고 짧은 시간에 특정 형질이 고정된 ‘순종견’과 대비되는 개념이다. 한국 개의 역사에선 영국이나 미국 같은 강력한 품종 교배가 없었다. 고작 삽살개의 긴 털이나 풍산개의 용맹성이 눈에 띄는 정도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누렁이는 가장 행복한 개일지 모른다. 보신탕으로 잡혀먹는 신세만 면한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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