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팀(Team)기업가’들이 온다. 팀기업가는 팀을 혁신의 원동력으로 삼는 기업가를 뜻한다. 영어에선 ‘팀프러너’(Teampreneur, team+entrepreneur)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이들은 자본이 아니라 팀의 힘, 곧 사람들이 함께하는 힘으로 기업을 세우고 꾸려나간다.
성균관대와 계원예술대의 팀기업가들이 ‘동업하지 말라’는 각자도생형 기업문화의 고정관념을 깨는 협업형 창업(교육)에 도전했다. 해피브릿지협동조합이 세운 HBM협동조합경영연구소와 스페인의 몬드라곤협동조합이 이들의 길잡이 노릇을 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협업형 창업에 도전</font></font>두 대학 학생 50여 명은 지난해 9월부터 올 1월까지 5개월 동안 팀기업가 프로그램 ‘체인지메이커 랩’(Change Maker Lab)에 참여했다. 각각 열서너 명씩 네 팀으로 나눠, 모두 `13개 사업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서로 합쳤다가 깨지고 다시 마음을 모아 일어서는 혼돈의 시간이었다. 이동창(성균관대 시스템경영공학 2년)씨는 “코치들한테 물어도 답을 주지 않았다. 어떤 사업을 꾸리고, 수익을 어떻게 나눠야 할지, 모든 것을 우리 스스로 의논해서 정해야 했다. 실제 그렇게 해봤다는 것이 가장 큰 배움이었다. 가장 힘든 일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지원지(계원예술대 광고브랜드디자인 2년)씨도 “말이 협력이지, 우리 팀에선 쌍욕이 난무했다. 그 과정이 값졌던 것 같다. 사람 없이 살 수는 있지만 잘 살 수는 없다는 걸 배웠다”고 했다.
학생들은 이제 자신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체인지메이커임을 자부한다. 조하나(계원예술대 광고브랜드디자인 2년)씨는 “혼자서는 엄두를 못 냈을 텐데, ‘너’와 함께하니까 해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놀라운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체인지메이커 랩을 이끈 이원준 교수(성균관대 글로벌경영학)는 “이 과정은 학생들이 나 자신을 찾아가도록 도와주는 프로그램이다. 교수들은 학생들이 질문하거나 힘들어할 때 거들어주는 코치 역할을 한다. 답을 주는 게 아니라 학생들 마음에 씨를 뿌릴 뿐이다. 그 씨를 참새한테 빼앗기지 않고 잘 키워서 싹을 틔우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라고 말했다. 팀 창업 개척자로 나선 학생들과 마음의 씨를 뿌려준 코치들을 만났다.
지난 5개월 동안 어떤 사업을 벌였나.조하나 우리 팀은 4개 프로젝트 사업을 벌였다. ‘스쿱’ 프로젝트는 사업자등록증도 냈다. 추억의 사진과 메시지를 포토북으로 제작해주는 사업이다. ‘감각잔류’는 숨기고 싶은 자기의 감정을 액세서리에 담아주는 프로젝트로, 70만원 이상 순이익을 올렸다. 토이테라피를 접목해 공감 툴킷을 개발한 ‘모타워’ 프로젝트도 가능성을 보였다. 자기 계발 툴을 개발한 ‘언타이틀’에선 돈 냄새가 난다. (웃음)
장보경(성균관대 유전공학·심리학 4년) 우리 팀에서 수익모델을 확인한 것은 너와 나를 질문으로 이어주는 ‘열두시’라는 아이템 하나였다. 10만원 정도 벌었다. 아침 끼니를 거르는 학생에게 강의실까지 먹거리를 배달해주는 사업, 또래 청년이 공감할 수 있는 무대를 선사하는 생활 이벤트 기획, 재미있는 한자어를 활용한 이모티콘 프로젝트도 벌였다.
강현지(계원예술대 광고브랜드디자인 2년) 우리 팀은 알레르기 캐릭터 사업과 자신한테 집중할 수 있는 향을 뿜는 디퓨저, 캔들 등을 개발해 판매하는 사업을 했다.
이동창 우리 팀은 힙합음악 가사를 해석하고 즐기는 온라인 커뮤니티 서비스와 20대 커플을 겨냥한 ‘러브박스’ 선물 판매, ‘낭만자판기’라는 콘텐츠 서비스 같은 사업을 론칭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이기주의 극복하려면 감정 나눠야” </font></font>마음과 관련된 프로젝트가 많다. 왜 그런가.지원지 나 자신을 찾고 싶으면 체인지메이커 랩에 지원해보라는 교수님 말씀에 꽂혔다. 우리 고민을 해소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사업으로 구현하려고 했다.
강현지 그게 우리 20~30대의 트렌드다. 감정 표현을 하고 싶어도 사회가 막고 있지 않나.
서은빈(계원예술대 리빙디자인 2년) 이기주의를 극복하려면, 감정을 나누고 표현해야 한다는 결론을 사업으로 구현했다.
장보경 내가 나를 알면 남과 이야기하는 게 더 편안해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열두시’ 프로젝트는 나와 대화할 수 있는 툴을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로 파는 사업이다.
이동창 공감하는 사람들한테 즐거움을 주자는 걸 우리가 사업하는 이유로 삼았다.
체인지메이커 랩에 참가한 학생 50명을 코치들이 나서서 각각 15명 정도의 팀으로 나누었다. 이들은 매주 한 차례 전체 모임을 열었다. 사업은 프로젝트 단위로 진행됐다. 각 팀에서 2~4개 프로젝트를 론칭했는데, 이 가운데 한 팀만 처음 시작한 3개 프로젝트를 끝까지 끌고 갔고, 나머지 팀들은 중간에 뒤집어지고 바뀌었다. 원종호 코치(성공회대 협동조합경영학 겸임교수)는 “팀은 공동체이자 보호막 구실을 한다. 한 프로젝트가 망가져도, 다른 프로젝트로 넘어갈 수 있다는 뜻이다”라고 했다. 마이데르 비야베르데 코치(스페인 몬드라곤협동조합 MTA 코치)도 “한국 젊은이들을 처음 만났는데, 모든 일에 정답을 찾으려 하고 누군가 자신을 이끌어주길 바라더라. 자신과 미래에 대한 걱정도 많았다. 그러나 5개월 전과 비교하면, 상상하지 못했던 것을 이뤄냈다. 이제는 스스로 문제를 찾고 서로 도와가며 해결하려 한다”고 말했다.
팀기업가를 양성하는 팀아카데미(TA·Team Academy) 프로그램을 처음 개발한 이는 1993년 핀란드 이위베스퀼레대학의 요하네스 파르타넨 교수다. 원종호 코치는 “교수들이 학생들의 팀 창업을 이끄는 팀 코치 구실을 한다. 강의도 없고 시험도 없다. 이위베스퀼레대학에선 해마다 60여 명이 TA 프로그램에 입학하는데, 졸업생의 90% 이상이 6개월 안에 취업(창업 포함)하고, 50%가량이 2년 안에 창업한다. 2012년 통계를 보면, 재학생들의 사업 매출액이 200만유로(약 27억원)였다”고 말했다. 스페인 최대 협동조합인 몬드라곤에서도 TA 프로그램을 2007년부터 적극 받아들여 고유의 협동조합 문화를 융합한 ‘몬드라곤 팀아카데미’(MTA)로 발전시켰다. 이번 체인지메이커 랩은 MTA 프로그램을 도입한 것이다. 4월3일 국내에서 상설 운영되는 ‘MTA 서울랩’도 개설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5개월의 경험, 그들이 얻은 것은</font></font>5개월 동안 팀기업가를 경험했는데, 뭘 얻었나.장보경 전혀 알지 못하고 기대치도 각각인 팀원들이 모였다. 처음 팀을 만드는 데만 3개월이 걸렸다. 매일매일이 폭풍 전야였다. 그때가 정말 힘들었지만, 중요했다. 나와 맞는 프로젝트 파트너를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무슨 일을 하든 나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누군가가 정말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을 가두는 프레임을 박차고 나와 세상에 도전할 수 있는 기업가정신을 배웠다. 정답이 없고, 내가 하려는 게 정답임을 배웠다.
지원지 코치들이 정말 답을 안 주더라. 이거냐 저거냐 물으면, 두 가지 다 답이 있다는 식이었다. 코치의 그런 격려가 엄청난 힘이 됐다. 내가 하는 일이 틀린 게 아니구나, 두려움이 없어지고 할 수 있겠다는 믿음이 생겼다.
조하나 힘들어서 많이 울었다. 중간에 나간 친구들도 여럿이다. 아기들이 넘어질 때 ‘그래, 일어나봐’ 하지 않나. 그런 것처럼, 넘어지는 법을 배우고 일어서는 법도 배웠다.
서은빈 개인-프로젝트-팀이 유기적으로 연결됐다는 것을 알게 됐다. 셋 중 하나라도 빠지면 날 수가 없다. 다른 창업 프로그램에선 기획을 가르치는데, 여기서는 ‘그래 시작해봐’라고 한다. 탁상공론식 고정관념을 넘어설 수 있었다.
이동창 실제 해봤던 것은 몸에 체화되는 것 같다. 머리로 생각하지 않아도 행동으로 나오더라. 창업에서 가장 중요한 게 돈·지식·사람일 텐데, 돈은 못 벌었지만 사람과 지식은 많이 얻었다. 정말 다양한 사람을 겪었다. 여러 삶이 모두 가치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강현지 뭘 해도 두렵지 않을 것 같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늘 질문하게 될 것 같다. ‘이걸 왜 해야 하나?’ ’왜’를 생각하는 습관을 갖게 됐다.
<font color="#008ABD">글·사진</font> 김현대 선임기자 koala5@hani.co.kr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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