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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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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포용국가’에서 새 길을 찾다

문재인 대통령 정책그룹 이끄는 성경륭 전 대통령 비서실 정책실장…

“허니문 오래 못 가, 사회적 대화 위한 프로세스 만들어야”
등록 2017-07-18 18:04 수정 2020-05-03 04:28
성경륭 한림대 교수가 7월12일 오후 서울 광화문의 한 시민단체 사무실에서 <한겨레21>과 만났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의 오랜 동반자로 정책자문 그룹을 이끌고 있다. 김봉규 기자

성경륭 한림대 교수가 7월12일 오후 서울 광화문의 한 시민단체 사무실에서 <한겨레21>과 만났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의 오랜 동반자로 정책자문 그룹을 이끌고 있다. 김봉규 기자

“지금은 허니문이지만, 얼마나 갈까요? 차근차근 사회적 대화를 위한 프로세스를 만들어가야 해요. 그게 없으면, 기대가 한순간에 저항으로 역전될 수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정책그룹 좌장으로 최근 주목받는 성경륭 한림대 사회과학부 교수를 만났다. 성 교수는 노무현 정부에서 국가균형발전위원장과 청와대의 마지막 정책실장을 맡아 5년 내내 문 대통령과 호흡을 맞췄다.

성 교수는 2013년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심천(心天)회’란 정책자문 그룹을 만들어 문 대통령과 매달 모임을 열었다. 지난해 10월 대선에 대비해 교수 500명을 발기인으로 하는 싱크탱크 ‘정책공간 국민성장’의 발족을 이끌었으며, 올해 4월 더불어민주당의 포용국가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심천회-국민성장-포용국가위원회로 이어지는 성 교수의 정책그룹 멤버 다수는 문재인 정부의 정책을 이끌어가는 한 축을 형성하고 있다. 서훈 국가정보원장, 청와대의 김수현 사회수석과 김현철 경제보좌관,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와 낙마한 조대엽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 국정기획자문위원회의 송재호 제주대 교수 등이 대표적이다. 포용국가위원회 멤버들은 최근 란 정책제안집을 펴냈다.

문 대통령과 오랜 인연 ‘이심전심’

문재인 대통령과 생각도 성품도 닮은꼴인 듯하다. 주위에선 이심전심 사이라고도 하더라. 문 대통령과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나.

2002년 10월 하순께 처음 만났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 후보를 지지하는 학자 그룹이 부산에서 모이는 자리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부산시 공동선거대책위원장으로 축사를 했다. 그때 첫인상이 시골 농부 같다고 했더니, 이후 모든 언론에서 그 표현을 곧잘 받아쓰더라. (웃음) 도시에 살면서도 도시 때가 묻지 않은…, 문 대통령은 원체 수더분하고 후덕한 분이다.

대통령 당선 뒤 따로 만난 적이 있나.

워낙 바쁘시니…, 지난 5월 노무현 전 대통령 기일에 경남 김해 봉하 추모식에서 잠깐 뵈었다.

준비된 대통령이라는 문재인 정부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크다.

문 대통령은 개인적 덕목이나 지식이 출중하고, 정부 운영 경험도 풍부하다. 청와대에서 5년 동안 중요한 국가적 이슈를 관장했다. 그런 점에서 가장 준비가 잘된 대통령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런데 개혁 과제가 너무 많고, 국민의 기대는 이미 분출하고 있다. 정부 출범 일정이 당겨지면서 그것까지 준비할 시간은 부족했다.

걱정도 커 보인다.

지금은 허니문 기간이다. 이게 언제까지 갈까. 한순간에 저항과 불만으로 역전될 수 있다. 기대가 컸던 만큼 반작용도 클 것이다. 지금 할 일은 사회적 대화를 위한 프로세스를 시작하는 것이다. 이해관계자가 모여 다각적으로 대화하고 토론하고 합의해나가야 한다. 그런 식으로 나아질 것이라는 현실적 기대감을 국민이 공유하도록 해야 한다. 당장 얻는 게 없더라도, 국민은 기다려줄 수 있을 것이다.

“포용정책 구현한 나라는 번영”

노무현 대통령 부부가 2007년 10월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문재인 당시 비서실장(맨 왼쪽), 백종천 외교안보실장(왼쪽 두 번째), 성경륭 정책실장(맨 오른쪽)과 청와대 녹지원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성경륭 교수가 문재인 대통령의 정책자문 교수들과 함께 최근에 펴낸 정책제안집 <새로운 대한민국의 구상 포용국가>. 청와대사진기자단

노무현 대통령 부부가 2007년 10월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문재인 당시 비서실장(맨 왼쪽), 백종천 외교안보실장(왼쪽 두 번째), 성경륭 정책실장(맨 오른쪽)과 청와대 녹지원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성경륭 교수가 문재인 대통령의 정책자문 교수들과 함께 최근에 펴낸 정책제안집 <새로운 대한민국의 구상 포용국가>. 청와대사진기자단

성경륭 교수의 정책그룹이 펴낸 는 새로운 대한민국의 구상을 담은 정책제안집이다. ‘모두를 위한 국가, 약자를 살리는 세상을 위하여’라는 부제를 달았다. 전임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인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는 추천사에서 “새 정부에 대한 기대는 크고 지지도도 높지만, 참신한 행보와 스타일만으로 국민을 오래 끌고 갈 수는 없다. …더 늦기 전에 항로를 바꿔야 한다. …우리의 대안은 유럽의 사회적 시장경제… 유럽형 포용국가로 가야 한다. 시간이 많지 않다”고 적었다. 대런 애쓰모글루와 제임스 로빈슨의 베스트셀러 의 결론은 포용국가론의 이론적 토대 구실을 했다. “포용적 정치의 기초 위에 포용적 경제정책을 구현한 나라는 번영하고 그 반대의 길을 간 나라는 실패한다”는 것이다.

현시점에 이런 정책집을 펴낸 특별한 이유는.

여러 분야 사람들이 많이 읽고 토론하는 길잡이가 됐으면 좋겠다. 새 정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이런 인식을 공유했으면 좋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지난해 8월부터 외부 발제자를 초청해 집중적으로 세미나를 하고 토론하면서 준비했다. 탄핵 국면이 급박하게 진행되면서 지난해 말 출간 일정이 차질을 빚었고, 이제는 더 늦출 수 없어 서둘러 펴냈다.

왜 포용국가인가.

1987년 민주화 이후 정치 영역의 포용은 거의 최대치까지 왔다. 경제와 공동체 영역은 어떤가. 포용과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 한국이 세계 11위 경제대국이라며 헛소리를 하는데 불행과 불안, 불평등, 불신, 궁극적으로 지속불가능성은 오히려 커지고 있다. 이게 뭘까? 한국이 중병에 걸려 있다! 그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정치적으로 더 문을 열어야겠지만, 경제적으로 혁파하지 않으면 더 이상 대한민국은 존속하기 어렵다. 사회통합과 경제성장을 동시에 하는 사회적 시장경제로 거대한 패러다임 전환을 이루자는 것이다. 그렇게 혁신적 포용국가로 가자는 것이다.

“포용성, 혁신성, 유연성 함께”

혁신과 포용, 사회적 시장경제란 개념을 섞어서 말하는데 서로 어떻게 어울리나.

동아시아형 발전국가, 영미형 자유시장, 유럽대륙형 사회적 시장경제, 북유럽의 노르딕형 사회적 시장경제 모델을 각각 비교 분석했다. 사회통합과 경제성장을 동시에 실현하는 데 성공한 유일한 대안은 유럽대륙형과 노르딕형의 사회적 시장경제 모델이었다. 그 길을 그대로 따라갈 수는 없다. 하루아침에 따라잡을 수도 없다. 우리가 선택할 길은 무엇인가? 나름대로 분석해, 사회적 시장경제 모델의 세 가지 결정적 성공 원리를 찾아냈다. 포용성, 혁신성 그리고 유연성이었다.

셋 가운데 포용성을 특별히 강조한 것인가. 이유는.

지금은 비정규직과 고통받는 사람이 너무 많지 않은가. 굳이 단계를 나누자면 그들을 끌어안는 포용성을 높이는 일이 가장 시급하다. 이를 위해 국가가 뉴딜 방식으로 적자 재정을 과감하게 짤 수 있다. 4대강사업 같은 것이 아니라, 사람한테 직접 투자해야 한다. 교육·훈련이나 주거비를 보전해 어려운 처지에서 벗어나 미래를 준비할 수 있게 해야 한다.

포용성만으로 나라 발전을 이야기하긴 어려워 보인다.

그래서 혁신성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유럽 나라들이 포용의 복지 예산을 많이 투입하고도 버텨내는 비밀이 있더라. 바로 혁신을 이뤄내는 능력이다. 혁신성의 핵심은 두말할 것 없이 교육이다. 한국 아이들의 언어와 수리 능력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 한다. 그런데 나이 들면서 세계 꼴찌로 곤두박질친다. 노르딕 국가들은 끊임없이 교육 혁신 실험을 벌인다. 공공교육 투자도 세계 최고다. 이젠 전 생애에 걸쳐 창의적 학습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포용성, 혁신성이 충분히 이뤄지면 유연성을 갖춰야 한다. 기업의 해외 진출이나 고용 문제도 더 유연해져야 한다. 임금피크제 같은 것도 도입할 수 있다. 그래야 기업의 경쟁력 저하를 막을 수 있다.

성 교수는 포용성과 혁신성, 유연성을 구현하려면 사회적 대화가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에서 대통령 직속 국가사회경제조정회의 설치를 제안했다. 그 산하에 노사민정위원회와 사회갈등조정위원회를 두자는 것이다.

“갈등 못 풀면 독화살로 돌아와”

문재인 정부를 끌어가는 사람들한테 어떤 메시지를 던지고 있나.

최저임금 1만원, 비정규직 해소, 노인연금 확대 같은 욕구가 급격하게 분출하는데, 하루아침에 기대를 충족할 수는 없다. 일자리도 늘리겠다고 하지만 종국적인 열쇠는 기업에서 쥐고 있다. 분배의 갈등이 첨예하게 부닥치는 굵직한 현안을 툭툭 던져놓아서는 곤란하다. 하나하나가 독화살로 돌아올 수 있다. 시간은 정부의 편이 아니다. 비정규직은 손에 쥔 게 아직 없는데, 손해 봤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엄청난 위협감을 느낄 것이다. 저항 동력이 커지는 상황을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올겨울을 지나면서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걱정된다.

어떻게 풀어가자는 말인가.

정부가 급하게 출범해 사회적 갈등을 관리하는 준비가 부족했다. 대통령이 여러 이해관계자를 모아 회의를 주재할 필요가 있다. 경제와 사회를 따로 볼 게 아니라 이젠 통합적으로 가져가야 한다. 종전의 발전국가에서 포용국가로 가자는 의지를 천명하고 포용성과 혁신성, 유연성 협약의 대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각자 의견을 충분히 듣고 단계단계 사회적 협약 수준을 발전시켜야 한다. 성과도 공동 점검하고 전 국민이 이 과정에 동참하도록 해야 한다.

지금 정부에서 경제와 사회의 패러다임 대전환을 총괄하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있나.

(성 교수는 대답 대신 그저 웃었다.)

김현대 선임기자 koala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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